마음을 얻는 기술 - 상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 끌림의 순간 74
레일 라운즈 지음, 이민주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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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에티켓에 관한 기본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예가 있다. 아마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슬람권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이 아랍인의 집에 초대되었다. 식사를 하려고 앉으니 앞에 물을 담은 그릇이 있었다. 미국인은 흠 아랍사람들은 컵이 아니라 그릇에 물을 담아주는가보군 하고 그 물을 마셨다.

그러나 아랍권에선 손으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씯어야 하고 미국인이 마신 물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손을 씯으라고 준 물이었다. 미국인은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것을 본 주인은 잠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더니 미국인처럼 자기 몫의 물을 마셨다.

주인은 미국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아랍권에선 그런 관습이 있다고 설명하지 않았다. 아랍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적한다면 주인된 입장에서 그를 난처하게 하는 것이고 그의 무지를 폭로하는 일이 된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의 자신감과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부터 시작된다. 예의의 기본정신을 어기는 일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관한 이책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 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레일 라운즈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이 이책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스킬'에 관한 책이다. 책의 표지에 나와있듯이 이책은 어떤 일관된 줄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74가지 스킬을 한권에 모아놓았다는 성격이 강하다. 물론 그 스킬들은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인 상대에 대한 존중과 상대를 존중하면서 나 자신을 높이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상대를 존중할 마음이 안 생기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말과 행동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고 형식적인 예의에 어긋나지 않더라도 즉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더라도 마음이 그렇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잠깐 스쳐가는 사이면 몰라도 본심이 아니라면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아닌가?

맞는 말이다. 많은 커뮤니케이션 스킬 책들이 그런 기교적인 면을 가르치고 있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본심이 없다면 이책의 번역제목처럼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그리고 레일 라운즈의 모든 책이 그렇듯이 이책 역시 그런 기교를 말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본심이 있을 수 있는가? 수많은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이 스쳐지나가는 일회적인 관계이다. 영업용 미소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스쳐지나가는 관계가 아니더라도 상대의 본심을 모르고 오해하는 경우는 흔하다. 내용과 형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책은 물론 레일 라운즈의 다른 책들이 알려주는 것은 형식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형식을 갖추는 것이 내용보다 중요할 때가 많다.

이책의 성격이 그렇고 그런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나 스킬을 말해주는 책은 이책뿐이 아니다. 이책은 그리고 레일 라운즈의 다른 책들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레일 라운즈 책의 장점은 우선 스킬의 다양함이다. 이책에는 74가지 스킬이 소개되어 있다. 레일 라운즈의 다른 책들 역시 이책만큼 많은 스킬이 소개된다. 그러나 다양하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나열로 인해 기억하기도 힘들고 머리만 복잡한 경우가 더 많으니까. 사실 레일 라운즈의 책은 읽고 나면 그 내용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많은 내용이 우겨넣어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런 단점을 뛰어넘는 장점은 그 스킬들의 기원이다. 레일 라운즈의 책들이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이유는 그 스킬들 하나 하나가 그녀의 실제 체험에서 나온 것이기에 생생하게 전달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힘이 있다는 것이다. 레일 라운즈는 스킬을 소개할 때 다른 책에서 본 것 어디서 들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녀 자신 또는 그녀가 관찰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 경험에서 얻은 교훈들을 책에 쓴다. 그런 특징은 이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책은 이책 자체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 책이 그렇듯이 책 자체로 완결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책의 내용이 그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힘이 있지만 체계화되어 완결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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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술의 달인 예수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수의 7가지 대화 원칙
제드 메디파인드.에릭 로케스모 지음, 김수련 옮김 / 리더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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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가 신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신이건 아니건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신약성서에 나오듯이 그가 살아 생전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로 생각되었던 것은 사실인 것같다.

이책의 저자들은 기독교 신자들이다. 그러나 이책은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예수가 어떻게 메시아로 여겨질 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가 죽은 후 그의 12제자들이 목숨을 걸고 그의 가르침을 전파할 수 있는 영향력을 주었는가 하는 그의 인간적 힘을 다루고 있다.

이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예수의 힘은 그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었다. 저자들은 예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7가지로 요약한다. 관심, 관계맺기, 질문, 진심, 이야기 등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다루는 서적에는 거의 다 나오는 것으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저자들이 말하는 예수의 능력은 그런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진실을 전하는 예수의 능력이다.

이책은 물론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 서적이면 모두 진심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힘이 없다고 말한다. 이책이 보여주는 예수의 면모를 보면 그리고 성서가 전하는 예수의 행적을 보면 그는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감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그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고 그의 제자들이 그가 죽은 후 목숨을 걸었던 것은 그의 인품이었다.

이책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항목을 설명하면서 예수가 어떻게 자신의 인품으로 감동을 주었고 그 감동에 진실을 담아 자신의 메시지를 전했는가를 보여준다.

기독교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서 이책을 읽으면서 예수가 어떻게 생전에 메시아로 여겨졌는지 알수 있었기에 상당한 의미가 있었던 책이다.

그러나 이책은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대해 맛보기로 끝나는 감이 있다. 7장으로 나뉜 이책의 편제 자체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정작 이책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예수는 작게 다루어지는 감이 있다. 각 챕터의 구성은 먼저 각 컨셉에 대해 예화를 들어 설명하고 개념이 어느 정도 잡힌 다음 성서의 해당 스토리를 저자들이 나름 재구성한 소개를 통해 다시 개념을 잡는다. 문제는 그 다음 부분들이다. 각 챕터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그 다음 부분들은 대부분 예수와는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잡다한 예화들로 채워진다. 이러한 구성 때문에 이책은 예수라는 사람을 느끼기에는 부족하게 되었고 그렇다고 각 챕터가 다루는 컨셉이 이책에서 할당하는 분량정도로 충분히 다루어지기에도 미흡한 어정쩡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예수라는 사람을 느끼기에는 맛보기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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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번째 법칙 -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냉혹한 성공의 기술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4
로버트 그린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살림Biz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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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법칙, 전쟁의 기술, 유혹의 기술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의 신간인 이책은 저자의 이전 책들에 비하면 소품이랄 수 있다. 이전에 쓰인 책들이 모두 빡빡한 글자에 500페이지를 넘는 부피를 자랑했다면 이번의 저서는 글자도 크고 그책들에 비하면 적은 페이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전의 저서들보다 이책이 더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저작들의 편집은 그의 처음 저서인 권력의 법칙과 같은 체제를 따른다. 원서의 제목처럼 48법칙을 나열한 구성에 각 법칙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동서고금에서 동원하고 그 사례를 법칙에 따라 설명하는 식의 구성을 갖고 있다. 워낙 법칙이라 내세운 제목도 마키아벨리적인 노골적 내용인데다 동원된 사례도 워낙 다양하고 그 사례를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재미있는데다 그 이야기에 대한 코멘트도 법칙이란 제목만큼 노골적이라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구성이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저자가 말하려는 행동양식이 어떤 것인지는 감이 오지만 법칙들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도록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사례들도 한사람의 이미지를 그리기에는 너무나 잡다하면서 모자이크의 파편같은 느낌이다.

이책의 내용이 그의 전작들과 다른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50센트라는 랩퍼를 중심에 놓은 이책은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50센트는 어떻게 했을까? 란 질문에 구체적인 답이 나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책을 읽으면서 칭기스칸이 떠올랐다. 이책이 묘사하는 50센트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밑바닥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어리석음을 벗고 현실적으로 무엇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비참하고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을 고통스럽게 참으며 내디뎠던 사람. 이러한 묘사가 이책이 포커스를 두고 있는 50센트의 삶이었다. 그리고 같은 말을 칭기스칸의 삶에도 그리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몽골인들에게도 할 수 있다.

칭기스칸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암살 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몽골을 통일했었지만 동족에 의해 금나라에 팔려가 죽었던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몽골을 재통일하려고 했었다. 수십년째 몽골은 내전에 시달리고 잇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암살당했고 칭기스칸은 친척들에 의해 적에게 넘겨졌고 가까스로 탈출한 칭기스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그림자뿐이었다.

생존만이 최선인 그에겐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밑바닥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는 전란을 끝내고 먹는 것을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때가 올 것이라는 오지 않으면 그렇게 만들 것이라는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의지는 내전을 끝내고 몽골인들을 규합해 제국을 만들었다.

칭기스칸과 당시 몽골인들은 극한의 시절을 보내면서 두려움이란 감정을 극복했다. 이책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두려워 하는 대부분은 실제 닥쳐보면 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능히 대처해 나가는 자신에 놀라면서 할 수 잇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극한 상황은 두려움 때문에 현실을 윤색하는 허위의식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극한상황은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해 살아남는 것을 요구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실용주의자가 되어야 했고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았기에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생존이란 궁극적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냉혹함을 가지게 되었다. 이책에서 말하듯이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을 바꾸면 된다.

몽골인들이 적의 1/100의 병력을 가지고 제국을 세워질 수 잇었던 것은 극한의 환경에서 그들이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마인드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인드는 흑인 빈민가에서 마약장수를 하면서 밑바닥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50센트가 정상의 힘합 아티스트가 되고 사업가가 될 수 있었던 힘이라 저자는 말한다.

이상이 이책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을 짧게 정리해본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이미 읽은 사람들이든 읽지 않은 사람이든 이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읽은 사람들에겐 그의 이전 저서들의 요약이면서 결정판으로 읽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의 저서들에 대한 입문으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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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매달린 원숭이
헤르만 요세프 초헤 지음, 박병화 옮김 / 열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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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신부님의 눈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가이다. 이책의 저자인 초헤 신부는 중세 기독교에서 말했던 7가지 악덕(seven deadly sins)에 따라 세태를 분석해 나간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바라기만 해라 그러면 될 것이다'는 사이비 종교식의 주문을 읆으면 당신도 성공할 수있다 구체적으로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출처불명의 복음을 전파하는 시크릿같은 책이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성공은 일종의 종교가 되어 있다.

성공. 좋은 일이다. 누가 부자가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저자는 사람들이 바라는 성공이라는 것이 말초적인 쾌락을 쫓는 것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보통 성공의 궁극적인 표현으로 생각하는 부를 들어보자. 얼마만한 돈을 가지면 부를 이뤘다고 할 것인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돈을 쌓아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모아도 자기보다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보일 것이고 채울 수 없는 갈증을 느끼듯이 시기심이란 악덕에 물들어 계속 돈을 쌓아올리는 일만 계속될 뿐이다.

즉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바램은 만족을 모르는 쾌락이란 악덕이다. 그렇게 된 이유를 저자는 사람들이 바라는 성공이 성공 자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 말한다. 무엇을 위한 성공이냐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라는 외모지상주의와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부란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자유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 자유의 의미는 사람들의 시선이란 외적으로 주어진 공허한 의미이기 때문에 성공을 위한 성공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러나 성공의 길을 가는 사람보다는 가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고 그 길에 오르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덕은 분노이다. 사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분노 뒤에 오는 좌절과 좌절에 갇혀 살면서 시기심이란 악덕을 키운다(노무현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마이너스적 감정들이 노무현이란 분출구를 찾았던 것이다)

7가지 악덕으로 분류되는 쾌락, 탐식, 게으름(무관심), 분노, 시기심, 오만, 탐욕은 인간이면 누구나 빠질 수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결함이다. 저자는 그 악덕들의 근원에는 무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분명한 사람이 그런 악덕을 저지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악덕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보다 자신의 삶을 망치기에 더 슬픈 결함이다. 저자는 그러한 악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미덕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책을 끝낸다. 악덕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겸양, 금욕, 부동심, 기쁨의 나눔, 열정, 순종, 양보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책에는 더 많은 내용이 있다. 가령 후기 훗설이 자연과학적 태도가 생활세계를 잠식해 들어가면서 문명의 위기가 오게 되었다는 논지를 확장한 듯이 보이는, 시장의 논리가 삶을 지배하면서 즉 사회의 공통가치가 돈으로 통일되면서 의미가 상실된 것이라는 설명이나 재미를 추구하는 풍조의 무의미함, 자서전과 같은 장르가 유행하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삶에 관음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 역시 사람들간의 의미를 소통하는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라는 설명 등 흥미있는 내용이 많다. 그러나 그 내용들은 위에서 설명한 삶의 의미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논지가 전제되고 있다.

글자도 크고 두껍지도 않은 이책에 담긴 메시지는 밀도가 높다. 이책의 내용은 7가지 악덕이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적 윤리가 전제되어 잇다. 신부님이 쓴 것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신부님이 쓴 책이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듯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거부감없이 동의할 수있는 삶의 지혜이며 그 지혜는 2천년이란 기독교의 역사가 실린 무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책의 문제는 저자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삶의 의미는 자신이 찾는 것이고 그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다. 그러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엿보게 할 수 있다. 저자가 악덕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미덕도 삶의 의미가 있어야 추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말하듯이 그러한 미덕은 무한한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고 그러한 노력은 의미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책에서 의미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저자가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제시하는 미덕은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미덕이다. 성직자인 저자에게 그 미덕들의 의미는 기독교적 의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신자만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닌 책에서 신앙고백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앙꼬 빠진 빵이 되었다고 이책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앙서가 아닌 책이기에 이책은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보편성을 가진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자에겐 자신의 신앙으로 생략된 부분을 메우면 되는 것이고 비신자에겐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메우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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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창조하는 기도 - 광덕 스님 반야사상의 정수
광덕 지음, 혜담 스님 엮음 / 불광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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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수행법은 상식적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중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면 경전을 바탕으로한 교리적 수행과 간화선이라 불리는 선수행 두가지가 있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행해지는 수행법에는 한가지가 더 있다. 기도수행이다.

기도수행이란 경전을 읽는 것도 아니고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염불을 하는 것으로 성불이 된다고 하는 방법이다. 이게 뭔가 이아해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종교를 두가지로 나눌 때 나 이외에 존재자에게 의지하는 것 타력종교가 있고 나 자신에게 의지하는 자력종교가 있다고 배웠을 것이다.

불교는 대표적인 자력종교이다. 불교에선 신에 대한 신앙이 없다. 인간, 즉 나에 대한 신앙이 있을 뿐이다. 부처님을 모시고 절을 하는 것은 부처님이 보여준 불법을 모시는 것이고 불법은 내 안에 있는 나의 본성 즉 불성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신을 믿는 것 그리고 무엇을 이루어달라고 비는 것은 불교에서 원칙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러나 그렇다면 백일기도 천일기도라며 치성을 드리는 것은 무엇인가?

실제 절의 수입은 거의 무엇을 이뤄달라는 대가성 보시이다. 그래서 염불을 못하면 중은 굶어죽어야 한다.

기도수행에서 기도는 다른 종교에서 남의 힘을 빌리려고 비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내 안의 불성을 보는 것 즉 견성하는 것과 기도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책에선 기도는 믿음의 고백으로 우선 정의한다. 부처님을 믿는 것 즉 불법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염불을 하면서 정신집중을 하고 잡념을 없애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믿는 것이 불법 즉 내 안에 불성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면 수행법으로서 교리적으로 이상은 없다.

그러나 이책에서 말하는 바는 부처님 보살님의 힘을 빌리는 타력을 빌리는 형태로서 기도를 말한다는 것이 거부감이 든다. 그리고 이책의 기본적인 입장은 치성을 드리는 신도들의 입장과 마찬가지이다.

기도에 대한 기본 전제에 동의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책의 전제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을 평가할 입장은 아니다. 내용적인 측면을 떠나서 이책을 평가한다면 어떻할까?

이책은 스님들이 포교용으로 쓴 책자들, 평신도들이 읽기 위한 내용으로 생활적인 법문형식으로 쓰인 책들과 비슷한 문체로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읽기는 쉽다. 내용도 불교신도라면 괜찮은 내용이다. 그러나 불교신도가 아니라면 그리 권할만한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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