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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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던 동물원이 폐쇄된 후 일자리를 찾던 애나는 블루 감마라는 게임 회사에서 뜻밖의 일자리를 제안받게 되는데 디지탈 애완동물의 일종인 디지언트들을 훈련기키는 직업이다. 고작 몇달간의 소프트웨어 테스터 교육으로 큰 게임회사에 취엄할 수 있었던 건 블루 감마가 출시하는 디지털 애완 동물이 실제 동물을 다루던 기술이 절실히 필요할 만큼 고차원적으로 진화했기 대문이다.

20여년 전 다마고치의 형태로 전세계에 가상펫 열풍을 일으켰던 가상펫의 21세기 버전이라 생각할 수 있다. 뉴로 블래스터 라는 게놈 엔진을 사용하여 다양한 형태로 개체의 진화가 나타나고 의식이 있다. 이들의 서식지는 데이타 어스라는 게임 플랫폼으로 인간과 상호작용하지 않을 때에도 데이터 어스 내 환경 내 에서 다른 디지언트들과 상호 소통하면서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있다. (참고로 유전학적 진화와눈 다른 의미로 이 책에서는 개체의 변화를 진화라는 말로 쓰고 있다) 침팬지와 곰 등 여러 형태의 아바타를 사용하여 개별 사용자의 선호도와 니즈를 만족시킨다. 뉴로 블로스트 게놈 엔진을 사용한 디지언트들은 기본적으로 애완 동물의 필수 조건인 순종적 성격과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고 언어 능력을 비롯해 학습과 훈련에 의해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기에 출시와 더불어 빅히트를 친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여러 단편과 중편에서 보여준 소재의 신선함과 참신함으로 작가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여러 문학상을 받고도 전업작가가 아닌 모양이어서, 작품 발표눈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 한 편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비교할 때 임팩트 있는 반전의 묘미는 없지만 훨씬 성숙된 느낌을 받았고 무엇보다도 이 작은 소설이 현실과 근미래의 가상적 현실에 투사하는 방식에서 보여주는 핍진성과 현실에 대한 통찰은 놀랍기만 하다.

과학 소설이 독자에게 인도하는 것은 조금 다른 버전으로 대체된 가상의 시스템을 경험함으로써 철판같은 현실에서 제공하는 가치관과 철학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것이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는 자각하지 못한 다른 시선이 보는 미러를 통해 세계관을 이루는 것들을 자각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에 객체라는 말이 붙기에 프로그래밍을 배우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제목부터가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사실 내용도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테스트, 출시, 고객 대응 유지보수 등의 일련의 주기를 다룬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개발자이거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익숙하다면 훨씬 풍부하게 컨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IT 산업의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 책의 문장 하나 하나가 주는 의미와 현실에 대한 비유를 일부 놓칠 가능성이 있다. 장황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사 놓은지 오랜만에 읽은 이유 중 하나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은 독자평 몇개를 읽고 기대가 조금 떨어져서였는데, 전작을 읽은 독자들의 그런 실망감은 아마도 반전을 기대하는 장르적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내게는 오히려 잔잔한 울림이 오래도록 남는 과학기술적 상상력이 감성과 결합한, 전작 이상의 수작으로 평가된다.

인간의 뇌가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몰라도 우리는 무생물 소유물에게 자주 감정이입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끼던 물건들을 쉽게 방치하고 잊고 버린다. 유행이 밀물처럼 온세상을 덮쳤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듯 한 때 세상 전부라도 가진 듯 소유 속에 행복을 찾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것들로 변하고 새 것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크게 보면 이 소설은 그 대체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SNS만 해도 우리는 대세의 변화에 따라 천리안에서 각종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싸이월드에서 페북과 트위터 인스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이 파도 타듯 갈아타기를 반복하머 영원할 것 같았던 가치들 영광과 몰락을 지켜보았던가.

소프트웨어의 유지 보수가 어려운 건 아이러닉하게도 소프트웨어의 그 소프트함에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상태에서 고작 망가진 부품을 교체하는 수리 차원의 유지 보수를 요구하는 하드웨어 기계와 달리 소프트웨어는 출시 후에도 고객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쉽게 수용하고 변경할 수 수 있다. 계속되는 업그레이드는, 계속 생겨나는 다른 버전을 의미한다. 안드로이드 앱은 기본으로 자동 업데이트 되도록 설정되어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기능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갑자기 원하지 않는 (광고) 기능이 추가되거나 오래된 폰에서 메모리 문제나 오류 등이 나타나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거나 혹은 있던 기능이 사라지고 그 기능을 쓰려면 유료 버전을 사야되는 것 같은 정책의 변화를 수용해야 할 때가 있다. 원치 않은 업그레이드를 정지시키면 새로운 기능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를 경험하며 툴툴거리겠지만 개발사 측에서는 매번 발생하는 버전마다 다르게 발생하는 오류와 문제들을 개별적으로 관리할 수 없으므로 다른 대안이 없다.

객체라는 것의 예를 들면 이렇다. 마르코와 폴로는 같은 게놈을 가졌으므로 동일한 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언트들은 일정 기간 사이버 공간 상에서 훈련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각기 다른 성격이 발현하기 때문에 똑같은 게놈을 가졌다 해도 둘은 다른 개체이다. 쌍둥이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트레이너들이 이 디지언트들을 훈련시키는 이유는 유아기가 끝나 말을 배운 상태에서 주인과 소통할 수 있고 기르는 재미를 줄 수 있는 훈련된 상태의 애완동물을 구입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고 배변 훈련을 시키고 세상을 이해시키는 데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가. 디지들도 마찬가지.

마르코가 먼저 태어났고(생성되었고) 집중된 훈련을 통해 분별력도 생기고 말도 잘하게 되었을 때 이를 복사하여 복사판은 폴로라고 이름지었다. 애완동물로서 상품의 가치가 높아졌을때를 2살 버전이라고 한다면 이 때가 어떤 사용자에게는 가장 분양받기 적합한 상태일 수 있다. 이 버전의 복사본이 체크포인트에 저장되고 복사본은 언제든 얼만큼이든 판매가 가능하다. 소프트웨어는 매 업그레이드가 있을 때마다 체크포인트가 생성되어 모든 단계의 소스 코드들을 저장하고 있지만 학습된 버전은 매 순간 ‘진화’가 진행되므로 페므초인트는 주기적 혹은 어떤 임계점을 넘을 때로 임의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치 않는 버그가 발견되면 이전 버전으로 롤백하기도 한다. 여기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는데 한 디지언트가 욕을 배워 쓰는 것이 발견되자 모든 디지언트들을 한꺼전에 롤백하여 해당 트레이너가 디지언트 앞에서 욕하기 이전의 체크포인트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이들은 블루 감마가 채택한 뉴로블래스터 계열의 게놈 엔진으로 순종적이고 높은 지능을 가진 특성을 지냈고 각 개체마다 고유 게놈을 가지고 학습과 환경에 따라 개체 차원의 ‘진화’를 하게 된다. 회사에서는 일정 수준까지 학습을 시키고 이를 전시하는데 이들은 애나와 동료들이 각각 한두 명씩 맡은 프로토타입으로 블루감마의 마스코트러 불린다. 마스코트들은 여러 단계의 체크포인트에서 복사본으로 팔려 나가게 된다.

가령 내가 만일 디지언트라면 1살 버전 2살 버전.....10살 버전 이렇게 많은 나의 체크포인트에서 멈춘 상태의 여러 나이의 복사본이 존재하며 각기 다른 상태에서 각기 다른 무수히 많은 주인들에게 팔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객체가 된 복사판들은 각자의 세계에서 각기 다른 능력을 획득하며 각기 다른 성격으로 변화해 가기에 둘은 서로 만나도 각기 다른 개체가 된다. 여기에 설상 가상으로 소프트웨어 자원의 평등을 외치는 해커들에게 노출되어 해적판 디지언트들이 난무하게 되고 더욱이 데이터 어스 플랫폼 그러니까 가상세셰 자체도 복제판이 생겨나기까지 한다.

아무튼 마르코와 폴로는 애나와 평생 썸을 타면서도 안타깝게 매번 비껴가는 아바타 디자이너 데릭이 키우는 침팬치형 디지언트고 잭스는 애나가 맡은 로봇 바디를 가진 디지언트다. 마르코의 특정 나이에서 복사되어 동일 환경에서 양육 되었지만 둘의 성격은 다르다. 하나는 더 신중하고 하나는 더 모험적이다. 트레이너들 역시 가상 세계에서 디지언트들을 만나야 하므로 아바타를 쓰고 그들을 만난다.

가장 소름끼치는 설정은 이들이 가상 세계에서 현실 세계를 만나는 장면이다. 디지언트들이 크게 세계를 휩쓸자 로봇 회사에서 디지언트들의 기능과 감각에 상호 작용하는 로봇 바디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상 세계에서 아바타를 갈아입듯이 디지언트들은 아바타를 이 현실 세계의 로봇으로 갈아입으면 그들의 현실은 가상이 아닌 현실이 된다. 아바타로만 보던 애나의 몸을 현실에서 본 애나의 디지언트 잭스는 매끈한 아바타로만 만났던 애나의 실제를 보고 미세한 신체의 특성들 작은 땀구멍과 솜털들 같은 것들에 놀라고 매료당한다. 로봇 회사는 홍보를 위해 감마 블루의 디지언트들에게 주기적으로 이 로봇 바디를 입히고 현실 세계로 소풍을 내보낸다. 사회적 동물인 그들은 함께 어울려서 동물원에도 가고 현실 구경을 한다.

디지언트들의 성장과 쇠퇴는 현실의 소프트웨어의 흥망성쇠와 같은 맥락으로 흥하다가 쇠퇴의 길을 걷는다. 초기 투자와 유지 보수 비용이 워낙 크기에 판매만으로는 유지하기 어려워 사료 산업과 같은 보조적인 수익을 기대했지만 몇년 후 휩쑬고간 유행이 잦아들다 신규 고객의 유입은 줄고 디지언트를 중지시키는 고객이 점점 늘어나고 수입 창출을 기대했던 사료 투입 소프트웨어는 실패한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디지언트들이 성장하면서 제조사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요구사항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들의 게놈에 내재하는 예측불가능성은 개발자들의 목표를 빗나갔다. 너무 어려운 게임처럼 디지언트들의 도전과 보상 사이의 균형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재미를 벗어나 기울어졌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고객들은 그들의 디지탈 애원 동물들을 정지시키게 된다.

어떤 생태계도 인구 자체의 감소는 쇠퇴와 궁국적으로는 몰락이라는 길로 예언처럼 흘러가기 마련이다. 까탈맞고 돈도 많이 드는 디지언트들을 정지시키거나 유기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들을 보호하려는 여러 시도는 번번히 물거품이 되어간다. 그러는 사이 데이터 어스에서 게임도 하고 애완동물도 키우고 사회 생활을 하던 많은 사용자들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 가고 그들이 즐기던 게임둘도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식이 시작되면서 데이터 어스는 점점 인적없는 폐허가 되어 가고 남아있는 디지언트들은 몇몇 매니아층이 소유한 한 줌 안되는 디지언트들 뿐이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새로운 게놈의 디지언트들은 이런 복잡한 자아가 제거되고 한 가지에 집착하는 특성을 가졌는데 매력은 없지만 전문적인 일을 학습하는 데 뛰어나서 돈벌이가 되어 여러 산업에 응용되고 있지만 귀엽기 위해 태어난 디지언트들은 골고루 잘 하지만 어떤 특수 분야에 부각을 보이지는 않는다. 혹시 발현될 지 모를 천재성을 발굴하기 위해 없는 살림에 디지언트들의 교육비로 더욱 생활은 짜듯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충성 고객과 몇몇 대형 게임들로 근근히 유지하고 있던 데이터 어스는 결국 잘나가는 새 플랫폼회사와 통합라는 이름으로 폐쇄하기에 이르는데 데이터 어스에 기반한 모든 게임 앱들은 그쪽우로 이식되어 통폐합하기로 결정된다. 그러나 디지언트들의 게놈 엔진을 설계한 뉴로 불래스터는 데이타어스 통합 이전에 이미 망한 회사라 새 플랫폼에 이식할 수 없게 된다. 하루 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상황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네이버에 블로그를 차려 놓고 콘텐츠를 관리하던 사용자가 하루 아침에 네이버가 망하면 블로그까지 쫄딱 망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 내 경우 드림위즈 때 파놓은 이메일 계정이 드림위즈 통폐합으로 서버를 잃은 경험이 있는데 다행히 인수한 네이트가 메일 계정을 유지해 줘서 근근히 1세대 메일계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경헙들은 나만 해당되는 건 아닐것이다. 플랫폼이 없어지면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소프트웨어는 새로운 플랫폼에 이식해야 하는데 니 경우 처럼 이미 엔진 회사가 망해버렸다면 그야 말로 하루 아침에 길바닥에 나앉는 거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다행히 해커들이 만든 복제판 풀랫폼에서 기거할 수는 있지만 인적 없는 텅빈 그곳에서 몇 안되는 수의 디지언트들은 새로운 자극을 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로 삶의 질이 크게 낮아지고 유기되는 디지언트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점점 즐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자신이 일시 정지되는 동안 시간이 흐르면 그 시간에 대한 상실을 슬픔으로 인식할 줄 아는 디지언트들을 이러한 폐허 속에 사느니 차라리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일시정지시키라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남은 디지언트 소유자들은 디지언트의 양욱의 부담이 매니아 수준을 넘어 사회적으로 이해 불가이 가정 생활이 파탄날 지경에 이른다.

이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섹스로봇 회사의 제안. 그리고 새 타입의 무뚝뚝한 디지언트를 훈련시키기 위해 트래이너들에게 친밀성을 높이는 항정신성 약물 주입을 요구하는 회사의 취업 제안. 이 두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의식이 있는 디지언트들을 섹스 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훈련시키킬 것인지 혹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 스스로가 약물투여라는 비인간적인 수단으로 전락할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이다. 디지언트들은 자기들이 쓸모가 있으려면 스스로 모든 법적 책임과 의무와 자유를 갖는 법인등록을 하여 성인으로서의 지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섹스 로봇 회사의 제의를 주인 맘대로 거절할 수 없다. 디지탈 애완동물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애나와 이를 미친짓이라고 여기는 애나의 남편은 그렇다 쳐도 자신의 두 디지언트들에게 법인 등록을 함으로써 스스로 책임과 의무에 벗어나고 한 발 더 나아가 섹스 산업에서의 직업을 스스로 판단케 하고 애나를 구하려는 데릭은 그러한 배반이 다시 애나를 화나게 하여 친구인 둘 사이를 더욱 멀어지게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비록 아바타 없이는 형체조차 없지만 조금씩 의식이 께어나고 자아를 표현하고 슬픔과 기쁨을 느끼고 자기 주장을 할 줄 아는 객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딜레마들이 서로 얽힌 상황을 너무나도 지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었다. 키보드 몇 스트록으로 일시에 그동안 쌓은 모든 추억, 기쁨과 슬픔, 함께 했던 모든 기억을 얼려 버리고 시체도 남지 않는 영원한 유기 방기 상태에서 죽음도 삶도 아닌 어떤 상태로 남겨졌다가 휘발되듯 잊혀지고 사라질 이 존재들이 소프트웨어라서 아바타 없이는 물적인 형체가 아니어서 쉽게 잊혀질 수 있을까. 그 기억, 그 시간, 그것들에게 쏟았던 내 애정을 사랑한다면 그렇게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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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07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드 창 책 읽고 싶은데...김겨울이 추천해서 더 읽고 싶은데...계속 이러고만 있네요 ...ㅋ

CREBBP 2019-01-14 17:42   좋아요 0 | URL
정말 추천해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보다도 저는 개인적으로 더 좋았어요. 잔잔한 전개가..

2019-01-07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9-01-14 17:43   좋아요 0 | URL
기대해보겠습니다 ^^
 

시중에 건강 서적이 많이 나와 있는데 나의 불만은 이거다. 우선 첫째로 이게 좋다 저게 좋다 이게 나쁘다 자게 나쁘다 하는 종류의 대중서들에는 근거 없는 낭설이나 일화를 바탕으로 과장된 차료법을 소개하눈 경우가 많다. 이런 책들은 그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책들도 많고 의사한테 가서 책에 그렇게 써 있던데요?하고 말하면 혼나고 오기 일수다. 그렇지 않고 좀 더 상세한 내용이 나온 책은 전문적 내용이 많아 못알아먹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굉장히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으면서도 신뢰가 간다.

소화관이라는 게 우리가 하루 종일 먹고 싸는 일상 속에서 가장 자주 가까이 의식하는 입에서부터 시작해서 항문까지의 모든 통로로 볼 때 단지 장이라는 건 대장 소장 위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단 먹을 게 입에 들어가면 침샘에서 분비되는 침과 혀의 작용부터 소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고 당연히 편도와 식도 위로 이어지는 소화의 전과정이 꼼꼼하게 설명된다. 침이 고이는 것만 해도 그렇다. 침이 혓바닥에서 나오는가 입천장에서 나오는가 궁금했었는데 찾아볼 생각을 못했었다. 혓바닥 밑에 아랫 송곳니 뒤쪽 두 곳과 어금니 근처 양 볼의 안쪽 사이드 양쪽 이렇게 네 개의 구멍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건 정말 대단한 발견이다. 늘 침이 고이는 게 입전체에서 땀처럼 나오는 게 아니라 샘물처럼 어떤 구멍에서 조금씩 분비되는 것이었다니 신기하다. 편도에는 공기와 음식을 통해 그리고 이빨 사이에서 기생하는 박테리아 세균들에 맞서 면역 세포가 활발히 싸우는 관문이라고 한다. 조금만 피곤해도 목이 붓고 아픈 이유가 바로 편도의 지나친 면역 기능 때문인 것 같다는 추론이 가능한데 환절기잉 수록 양치를 자주하라는 건강 가이드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편도에서 전쟁을 하느라 과도하게 작용하게 되면 목에 염증이 생기고 기침 재채기 비염등의 중상으로 나타나는 거 같다.만성 염증에 시달리게 되면 면역 세포가 쉴 틈이 없는데,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면역 세포에 좋지 않다. 네 살, 일곱 살 혹은 쉰 살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편도를 제거하는 것은 과민한 면역 체계에도 이롭다. 편도 제거는 찬반양론이 있지만 면역 잣업은 혀뿌리돌기와 인두에서도 진다.

그 밖에도 입안에서의 일은 ‘침구멍이 뮤신 그물을 발사해 치아를 보호하고 진통제를 분비함으로써 과민한 통증을 막아준다. 발데이어 편도고리가 낯선 입자들을 검문하고 면역 세포 병사에게 방어훈련을 시킨다. 이 모든 일이 다 낯선 입자들이 목을 타고 우리의 내부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체 구조와 역할을 이해함으로써 건강에 대한 실딜작 정조를 얻는 것이 유용하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게 하니까. 뿐만 아니라 알아두면 편한 정보도 많다 가령 식도는 위의 오른쪽 꼭지와 연결되므로 가스가 차는데 가 위의 오른쪽 꼭지와 연결되기 때문에 위에 찬 가스가 옆으로 난 구멍을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땐 마중물을 넣듯 먼저 약간의 공기를 삼키면 식도 구멍이 가스 근처로 살짝 밀리며 ‘꺼억’ 소리와 함께 가스가 밖으로 올라온다. 누워서 트림을 할때는 왼쪽으로 누우면 더 수월하다고. 또한 식도는 구불구불하게 힘줄을 통해 척추와 연결되어 있다. 꼿꼿하게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면 식도가 세로로 늘어난다. 그러면 식도가 좁아져 위아래 구멍을 쉽게 막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과식을생겼는데 똑바로 앉으면 식도가 좁아지며 길게 펴지기 때문에 과식 후 신물이 올라오면 구부정하게 앉는 것보다 똑바로 앉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겠다.

위는 한쪽이 다른 쪽보다 월등히 길어서 휘어진 모양인데 물과 고형음식의 통로가 다르다. 물은 위의 오른쪽 좁은 면을 지나 소장으로 통하는 문에 빠르게 도달하는 반면, 음식물은 위의 왼쪽 넓은 면으로 떨어짐으로써 잘게 쪼개야 하는 것과 빨리 내보내도 되는 것을 노련하게 분리한다.


대장과 소장에서 흡수된 모든 수확물은 혈액을 따라 간으로 운송되고 거기서 검사를 받은 후 대순환계로 전달되는데 이 순환과정을 따르지 않는 놈이 있으니 바로 지방이다. 지방은 간을 거치지 않도 림프관을 통해 바로 심장으로 간단다. 왜 심장병 예방으로 나쁜 기름을 조심하라고 마르고 닳도록 얘기들을 해대는지 이제야 알겠다.대장 끄트머리에 있는 직장의 혈관 역시 해독 작용을 하는 간을 통하지 않고 곧장 대순환계로 간다. 그래서 좌약은 먹는 약보다 약 성분이 아주 적지만 대신 빠르게 효력을 낼 수 있다. 먹는 약은 약 성분이 높게 조제되는데, 약 성분이 효력을 낼 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간이 많은 부분을 해독해버리기 때문이다. 간을 보호하려면 해열제로 좌약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할 거 같다.


장 파트에서는 장의 운동 뿐만 아니라 박테리아의 역할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박테리아 부분은 지난 번에 읽은 책 《10퍼센트 인간》과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서 본 내용이지만 훨씬 간결하고 귀엽고 재밌게 소개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복습하는 의미에서 재미있게 읽었다. 식물성 단백질에 대한 궁금증도 조금은 풀렸다. 영양표를 살펴보면 쌀이나 곡류에도 단백질이 포험되어 있지만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건 한두가지 특정 아미노산이 부족하기 때문니라 여러 곡류을 골고루 먹으면 해결된다고 한다. 잡곡밥이 왜 좋은지 문제도 해결된 듯 싶가 ( 아래 밑줄 인용문 참조). 과일이 좋다 나쁘다 말들이 많은데 과당은 좋을 게 없는 듯하다. 독일인응 기준으로 한 책이라 우리나라에도 해당되는 지 모르겠지만 과당이 너무 많이 섭취되면 장으로 보내지고 거기 사는 나쁜 박테리아가 먹는데 과당이라는 게 이미 다 쪼개진 분자라 소화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데다가 불내증까지 있으면 먹은 게 다 대장으로 가서 불편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세라토닌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트립토판은 소화될 때 과당을 끌어안기 때문에(잘 이해는 안가지만 아무튼) 과당을 많이 섭취하면 트립토판이 부족해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래는 모두 밑줄)


살모넬라는 열에 약하다. 75도에서 10분만 끓여도 살모넬라를 모두 제거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잘 익혀 먹는 닭고기가 아니라 냉동 닭을 해동시킨 싱크대에서 씻은 채소가 불행을 낳는다.


알레르기의 기원
소장이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지 않으면 단백질은 알갱이 형태로 남는데, ... 분해되지 못한 알갱이가 지방 방울에 갇혀 림프관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주의력 깊은 면역 세포에게 발각된다. 면역 세포는, 예를 들어 땅콩 알갱이를 림프액에서 발견하면, 당연히 이 낯선 존재를 공격한다.


#매력적인 장여핼


우리 몸에 맞는 세로토닌의 95퍼센트를 장 세포가 생산한다. 세로토닌은 힘들게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의 짐을 가볍게 덜어주며, 중요한 신호분자로서 일한다. 그런 신호분자 생산에 변화가 있으면, 뇌에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그러면 삶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갑자기 심한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이럴 땐 장만 치료를 받으면 된다. 어쩌면 머리는 아무 잘못이 없을 것이다!

식물성 단백질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적기 때문에 종종 ‘불완전 단백질’이라 불리기도 한다. 어떤 식물성 단백질에는 (단백질로 합성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의) 필수 아미노산이 겨우 한 가지만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그 한 가지 아미노산을 제외한 나머지 아미노산 분자들은 그냥 소변으로 배출되거나 어찌어찌하여 재활용된다. 콩에는 메티오닌methionine 아미노산이 부족하고, 쌀과 밀(그래서 밀 고기에도)에는 라이신lysine이 부족하고, 옥수수에는 심지어 동시에 두 가지, 라이신과 트립토판tryptophane이 부족하다!.. 콩에는 메티오닌이 부족하지만 그 대신 라이신이 아주 많다. 밀가루로 만든 토르티야에 맛있는 콩으로 속을 채우면 우리에게 필요한 아미노산을 모두 섭취할 수 있다. 계란과 치즈를 먹는 세미채식주의라면 불완전 단백질을 넉넉히 보완할 수 있다. 콩과 쌀, 치즈와 스파게티, 참깨 소와 빵, 토스트와 땅콩버터 등 어느 나라에서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수백 년째 불완전 단백질이 보완되도록 식사를 해왔다. 꼭 한 끼 식사에서 보완하지 않아도 된다.

-알라딘 eBook <매력적인 장腸 여행 : 제2의 뇌, 장에 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기울리아 엔더스 저) 중에서

상처가 났을 때는 이런 메커니즘이 도움이 된다. 염증이 박테리아들을 쓸어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테리아들이 장 점막에 머무는 한 그들이 가진 신호물질은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점막에 머물지 않는 나쁜 박테리아가 있을 때, 그리고 기름진 음식물을 많이 먹었을 때는 너무 많은 신호물질이 피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몸은 신호를 받고 가벼운 염증 모드에 돌입한다...

박테리아의 신호물질이 간이나 지방 조직에 머물며 이곳에 지방이 쌓이도록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박테리아 염증 신호물질이 갑상선에도 효력을 미친다는 점이다. 갑상선의 일을 방해하여 갑상선호르몬 생산에 지장을 주고, 그 결과 지방 연소가 더 느려진다...

심한 염증은 몸을 쇠약하게 하고 마르게 하지만 무증상 염증은 뚱뚱하게 만든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박테리아만 무증상 염증을 일으키는 게 아니다. 호르몬 불균형, 에스트로겐 과다, 비타민D 결핍, 글루텐 함량이 높은 음식물도 무증상 염증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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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서울대 공대를 나와 삼성전자에서 일하다다 전업작가로 직업을 바꾸고《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썼다. 이 책은 자신의 인생관과 작가로서의 가치관을 자본론의 관점에서 가볍게 꺼내려간 에세이집이다. 사실 작가가 이 챡에거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월급받을 때보다 경재적으로는 훨씬 못미치지만 대신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그러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위햐서만 쓰고 있으미 행복하다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재미있는 일화라고 써놓은 세부 사정은 실제로 전업 작가로서 먹고 살기가 얼마나 팍팍한 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소비에는 소유형 소비와 체험형 소비가 있다고 한다. 엥겔 지수가 빈부의 차이를 말해준다는 것도 옛말, 우리는 좋은 식당과 맛있는 맛집들을 찾아 다니며 풍요롭게 먹는 미식가들에게 엥겔지수로 빈부를 측정할 수 없다. 저자 역시 할부로 해외 여행 가고 호텔에서 파는 빙수 먹으러 가서 강제적 발렛 파킹비를 생각한다. 서점에서 인기 없는 사회과학 서적을 쓰고 있지만 그동안 원숭이자본론을 비롯해서 여러 책들이 서점에서 네임 밸류를 얻고 방송과 강의 등을 활동으로 많이 알려져 꽤 이름 있는 저자임에도 수입이 충분치 않은 것을 보면 전업 작가로서 가족을 꾸리고 생활하려면 오랜 시간동안 조금씩 알려지고 책도 꾸준히 내야 할 것 같다.

가벼운 내용이긴 하지만 원숭이자본론에서 자세히 썼겠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와 인간의 삶을 해석하는 그의 고유한 견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므로 대략 어떤 책인 지 알고 보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경희대에서 마르크스 자본론 관련 2학점짜리 교양 강좌를 맡도 있는데 신입생이 국정원에 신고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니 헌법으로 종교와 사상의 자유가 명시된 대한민국에서 자본론을 국가 전복적 공산주의와 연결시켜 노동과 인권을 탄압했던 구시대의 유물은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크게 재활했던 듯 싶다.

5.18이 국가 전복을 꾀하는 불온 세력의 폭력적 사태라고 믿어졌던 예를 보면 국민 대다수가 누군가의 의도로 특정한 관점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가는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국민의 시선을 향하게 한다. 나는 그게 국가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임승수는 이 책에서 남이 보여주는 의도에 맞춰 사리를 판단하는 사람은 진정한 자유인이라 할 수 없고 사실상 정신적 노예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민주화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대다수 국가가 정권 유지를 위해 자신들이 가진 시선으로 세계를 보도록 유도한다고 생각한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외부로부터 주어진 특정한 ‘관점’을 잣대로 삼아 사물·현상·사건을 가치판단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가장 한 가운데 있는 관점이 바로 돈이다.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길거리 요요 공연을 하는 학생들이 수상을 했는데 상금을 얼마 받았느냐로 공연의 가치가 매겨진다는 사실을 토로하는 내용이 있다. 자본론을 이야기 하면서 화폐로 환산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반문한다. ‘그렇다면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시간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예컨대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다. 되레 적지 않은 화폐가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모는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그 시간을 기꺼이 감내한다. 오히려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그 시간을 통해 행복과 보람, 감동을 느낀다. ‘

저자가 말하는 행복한 시간이란 돈과 바꾸지 않은 시간이다. 취업난과 취업난의 공포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사실 어떻게 다가올 지 의문스럽지만 막상 회사라는 조직은 자본론에 의하면 회사에서 고용한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에서 ‘착취‘한 만큼의 이윤으로 기업이 굴러가고 자본주의가 풍요로와지는 것이므로 노동 시간은 내가 행복한 시간이 아니라 고용주에게 팔아버린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몰랐던 세계에서 일을 배우고 시스템이 돌아가는 동작 과정을 이해하고 어떤 일의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데서 누리는 행복은 없나? 사실 이런 이야기는 빠져 있다. 본인이 적성에 안맞는 과를 가고 적성에 안맞는 일을 하다가 글쓰는 전업작가로 전환을 했을 뿐인데 이것이 자본이 주가 되는 사회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한 불행한 인간에서 자기 주도적 작가로서의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전환한 전형적 예로 잘못 일반화할 수 없다.

전업 작가가 되면 작가로서의 경험이 글의 소재나 소재의 일부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로서 명성을 가졌던 그러지 못했든 상관없이 작가가 아닌 일보다는 작가로서 더 적성에 맞을 것이고 그것은 반대로 작가가 아닌 일은 작가 일보다 더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이것은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며 작가가 책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흔히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로서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재미는 있었지만) 책의 의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행복한불량품입니다


아내가 자기 자식 돌봐주고 밥그릇 닦아주면 마누라 집에서 논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내가 가사도우미로 남의 자식 봐주고 남의 밥그릇 닦아주면 마누라가 일한다고 말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차이를 만드는 기준은 ‘돈’이다. 아내가 자기 자식 봐주면 돈이 생기지 않지만, 남의 집 가사도우미를 하면 돈이 생기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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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이병욱 2019-01-13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인문사회 관련 글을 잘 읽었습니다 이 땅의 우리는 좋든 싫든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 탓에 갖가지 병폐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 어려움의 정점에 선 전업작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될 시간이었습니다
 



SF나 판타지 소설은 휴고, 네뷸러, 로커스 수상작(혹은 수상후보작)이라는 명함을 달지 않고는 국내에서 번역되기 힘들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같이 한 때의 대중적 성공을 기반으로 아무리 허접한 작품을 내놔도 잘나가는 이상한 시장에서 저자의 명성만으로 작품을 선택하기엔 신뢰가 떨어진다. 하도 내용이 복잡해서 정리하기 쉽지 않겠지만, 수상작이라는 권위를 빌려 소개한다면 앞서 말한, 휴고 네뷸러, 로커스 수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이다. SF계의 최고 문학상으로 꼽히는 이 세개의 상을 그 해에 모두 석권했으니, 그 해에 장편을 낸 다른 작품들은 지못미.

그런데, 특이한 점은 작가의 명성과 심사자들의 타입이 다른 여러 작품상을 동시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굿리즈나 아마존 평을 보면 별점 테러가 많는 점이다.  별점 테러에 대한 반박 댓글도 엄청 많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재미가 쥐뿔도 없고 말도 안되는 설정이다 라는 게 별점 테러리스트들의  이유이고, 반박 댓글가 하는 말은 그건 멍청해 이해를 못하는 너를 탓해야지 왜 책을 탓하냐, 니가 휴고 수상작을 이렇게 폄하할 권리가 있는거냐는 거다. 나는 양쪽 입장 다 이해가 갔다.  책의 호불호는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과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초딩의 지식을 가지고 애초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자신의 입장에서 별1도 아깝다. 그렇다고 내가 초딩보다 더 나은 과학적 지식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아는 것만 연결시켜도 충분히 새롭고 멋졌다는 인상이다.) 우주 과학 박사이면서 미래학자로서 이미 많은 현상들의 예측한 바 있는 지식으로 무장한 데이비드 브린이 소설 속에 끼워넣은 먼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이해할 과학적 기반이 상식으로 갖춰지지 않았다면 이 책은 정말로 무용지물이 된다.

황당하게도, 맨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독자가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돌고래 우주인(?)이다. 스트리커호라는 거대한 우주선이 물로 가득찬 어떤 행성 키스럽에 불시착해 있는데, 이들에게 닥친 어려움이 단지 망가진 우주선 뿐이라면 다행인 상황이다. 돌고래 150명, 인간 일곱 명, 침팬지 한 명이 스트리커호의 탑승 인원이다. 지구생명체를 위협하는 외계인들이 이  행성 위쪽에서 서로 이 지구인들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고, 우주선의 안쪽에서는 유전자 변형 돌고래 우주인들과 몇몇의 인간, 그리고 침팬치들이 위기를 헤처나가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선장은 돌고래고 돌고래 선장은 돌고래 선원들과 돌고래 연구원들을 총지휘한다.

그럼 몇 안되는 인간과 한 마리 아니 한 명의 인격을 갖춘 침팬지는 무엇일까? 침팬지는 이 우주선에서 가장 저명한 연구원이고 인간들은 돌고래와 침팬지를 감독하는 한 레벨 위의 생명체로 돌고래의 주인종족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명체의 기능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이 미래 사회에 지능과 인격을 지닌 사피엔스들은 다른 동물 종들을 보호족으로 선택하여 유전자조작으로 인격과 지능 자아 영혼 기타 등등의 인간과 유사한 정신적 활동을 가능하게 개조하고 그들을 자신의 보호종으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교육시키는 대가로 그들에게 봉사받는다  이 봉사의 기간은 은하계 표준으로는 몇만년간이다. 그동안 인격체가 된 이 새로운 종들은 자신의 종들을 번영시키고 자신의 마더종족들을 섬긴다. 인간이 자기들의 후손 종족으로 선택한 종이 침팬지와 돌고래인데 침팬지는 이미 인간과 융화해서 같은 환경에서 서로 구분 없이 잘 살고 있고 돌고래는 아직도  인간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이 있는 종족이다.



하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애초에 돌고래가 우주에 가게 되었을까. 그들의 유전자 조작 기술과 인공 신체 기술은 매우 발달해서 이런 것 쯤 일도 아니지만 읽는 내내 이건 좀 무리수다, 어떻게 물속에서 사는 돌고래가 아무리 유전자조작을 한들 물리적 생김새가 다른데 어떻게 우주선을 조작해서 우주로 나가고, 게다가 망가진 선체를 수리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돌고래를 개량해서 인간이 가진 지능을 심어주기까지 했는데 그깟 팔과 손 쯤 기계로 얼마든지 작동 가능하게 설정했고 (이해는 잘 가지 않지만) 인간과 상호 의사 교환이 가능한 시스템을 정교하게 갖추어 놓았다. 가령 우주선은 거대한 물탱크로 되어 있지만 인간과 돌고래 모두가 모여 의사 소통하는 언어와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물론 인간 역시 물 속에서 공기에서만큼 자유롭게 활동하고 얘기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이들에게 닥친 문제는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스트리트호가 키스럽 행성에 꼻아박혀 망가졌다는 거다. 다행히도 키스럽 행성은 주로 물행성이면서  금속이 도처에 자라고 있어서 자연에서 금속을 채집하고 제련까지(물속에서?) 하는 듯하고 어떻게든 우주선을 수선해서 귀환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두번째는 스트리크호가 키스럽 행성이 불시착하기 전 은하에서 엄청난 규모의 고대 우주 선단을 발견했는데 여기에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은하계의 모든 호전적인 종족들이 이들이 선단에서 발견한 정보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이 지구 생명체들을 차지하기 위해 불꽃을 튀기며 대기권 밖에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주선 내의 반란이다. 이 일은 둘째 문제와도 관계가 있는데 선장이 내린 결정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부선장과 일부 돌고래들이 고대 선단에서 가져온 정보를 외계인들에게 주어버리고 대신 안전 귀환을 약속받겠다는 생각으로 선장을 해치고 우주선의 지휘권을 강탈하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선장의 계획은 무엇이기에 이런 어려운 시기에 반란까지 생기는 걸까. 우주선을 수리하는 와중에 탐험대는 외계동족들 중 지구인에 우호적인 종족의 거대한 우주선이 침몰해 있는 걸 발견했는데 이 우주선에 스트리커호를 숨기고 위장을 해서 빠져나가자는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인간 선원의 자발적 희생적 유인작전이 돤여하고 우주에서 여러 종족들이 전투를 벌이는 급박한 사정을 틈틈이 보여준다. 발달된 문명을 가진 은하인들에게 지구인은 미개인이나 다름없다. 다른 모든 지능을 가진 은하 종족인들은 문명을 이룰 지능을 스스로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시조 종족으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외계인들의 사피엔스적 지능은 자연발생적으로 진화에 의해 생겨나는 게 아니라 문명 종족이 생물체를 선택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그들을 지능화 문명화 시켜 노예처럼 이용하고 계약이 끝난 하위 종족은 덕립하여 문명을 이루고 자신도 다른 생물체를 문명화시키는 방식으로 우주 종족들의 문명화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최초의 문명을 이룬, 인간으로 축소하면 아담과 이브 같은 시조 종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오래 전에 멸종했지만 종교적으로 전 은하계 종족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대상이다. 그런데 시조 종족과는 상관없이 나홀로 진화해서 보호종족까지 거느리고 있는 ‘미개한’ 지구인들이 고대 유령 선단에서 가져한 유물이 이 시조 종족과 관련이 있기에 모든 은하인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혈안이되어 있던 것이다.



책을 읽는 재미는 고유한 모양과 특성을 가진 다채로운 생물체들이 주인 종족의 필요에 의해 유전적으로 개량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윤리적 철학적 문제를 돌이켜보게 한 점, 이들이 불시착한 키구럽이라는 행성에서 발견한 새로운 지적 생명체와 이들을 다루는 인간적 시점과 외계의 시점 돌고래와 인간의 교류에서 착안한 지적 진화에서 생기는 서로 다른 종 사이의 성적 끌림 등 아주 많은 자잘한 요소들이다. 물 속에서 잘견한 이상한 식물들과 금속섬이라고 불리우는 지표의 이상한 특성이 알고 보니 광물 채집에 이용하기 위해 무리하게 유전자 조작되어 고통받는 한 지적 생명체의 후손이더라는 것과 같은 깜짝 놀랄만한 반전 역시 곳곳에 숨어 있다.

#스타타이드라이징 #데이비드브린

˝키스럽의 생물체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칼슘이 아니라 다른 금속들이었다. 생물체가 모든 금속을 빨아들이는 생체 필터 역할을 해 바닷물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사방에 금속과 금속 산화물이 온갖 다채로운 색으로 빛났다. 등뼈가 번쩍이는 물고기며 은빛 씨주머니가 달린 해초 따위의 모든 생물체가 다른 행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엽상체의 녹색과는 너무도 다른 색을 띠었다.

토시오는 계기판을 통해 순수한 주석 덩어리와 크롬 성분의 물고기 알 한 무더기, 여러 가지 순도의 청동으로 된 산호군을 발견했지만.˝

“5백년에 불과한 유전자 개량 작업으로 인류가 1백만 년 동안 발전시켜 온 모든 것을 돌고래에게 줄 수는 없었다. 신돌고래들은 여전히 소리와 몸짓으로 감정 대부분을 표현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돌고래를 보며 늘 뭔가 재미있어 싱글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지만(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이제 돌고래들은 다른 표정도 지을 수 있었다. 근심 어린 표정까지도. 토시오가 볼 때, 지금 히카히의 표정은 돌고래가 근심을 나타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표정 같았다.”

옛 지구에는 몇 세기 전 〈무서운 아이들〉 소동이 일어났던 곳을 구경하기 위해 은하 여행자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인류가 주인 종족의 보호 없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공공연하게 내기를 걸곤 했다.

물론 모든 종족에게는 주인 종족이 있었다. 우주를 여행하는 다른 종족의 도움 없이 우주여행 기술을 습득한 종족은 전무했다. 침팬지와 돌고래도 인간으로부터 우주여행 기술을 배웠다. 신비에 싸인 최초의 종족인 시조들 이래, 말을 하고 우주선을 조종하는 종족이라면 모두 다른 선배 종족의 도움으로 그 정도의 문명에 도달했다. 또한 그 오랜 기간 동안 계속 존속해 온 종족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시조들이 꽃피운 문명은 모두 도서관에 담겨 계속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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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Deux ex Machina)는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라는 뜻인데, 즉 그동안 벌려놓은 수많은 갈등 해결과 결말이 개연성을 가지고 주인공들에 의해 직접 해결되는 게 아니라 난데없이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온 신이 해결한다는 냉소적 의미로 해석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가장 먼저 쓰였는데, 여전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에서도 차용되고 있다. 십여년 전 쯤 진중권이 심형래의 디워를 까다 까다 언급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현대 액션물들 대다수는 위기를 모면하는 효과로 부분적으로라도 데우스엑스 마키나를 활용하지 않고는 존재 기반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싶다.) 무슨 영화 평에 수천년 전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언급하나 싶어 원본을 찾아보니 이렇다.

“사건의 해결은 플롯(이야기) 그 자체에 의하여 이루어져야지, 메데이아나, 또는 일리아스에서 (희랍군의) 출항에 관련한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계장치에 의존해서는 안됨이 명백하다(아리스토텔레스 시학 1454b[1]). “


또한, 희극시인 안티파네스 역시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작품을 총체적으로 구성할 능력이 없는 시인들의 궁여지책에 불과하다.[2]고 했다.

브레히트도 냉소적인 면에 있어서는 진중권 삘이 나는 당대의 예술가가 아니였을 듯 싶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비교불가능한 큰 차이가 있다. 진중권은 말(비평)만 하고 예술을 하지는 않지만, 브레히트는 직접 창작활동 자체로서 시대와 예술을 조롱하고 비판했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직접 사용하므로서 그것의 사용 의도를  조롱하고 비판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브레히트는 마르크스주의자로 지목되어 그의 모든 저술의 출판이 금지당했었다.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망명해야 했던 다수의 좌파 작가 중 하나였을 뿐인데 말이다.

원래는 영국의 극작가 존 게이John Gay의 「거지 오페라The Beggar’s Opera」를 개작한 것인데, 몇 번의 개작을 통해 탄생한 「서푼짜리 오페라」는 인물 간의 관계와 극의 진행의 세부 사항은 거지 오페라와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또한 오페라가 아닌 〈음악과 노래가 있는 연극〉이라는 형식으로 창작되었다. 즉, 이야기의 전체 스토리는 존 게이, 극 중 음악의 가사는 자작시와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 비용(Francois Villon)의 시, 그리고 음악은 클래식 오페라 작곡가가 아닌 실용 음악가 쿠르트 바일의 음악 이런 것들의 조합으로 탄생했다.

소설도 아니고, 일반 연극 대본도 아니고, 더욱이 음악이 있는 연극의 대본인데, 이 책의 독자는 극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본을 읽는다. 연출과 연극 배우와 무대와 조명과 그리고 음악 이 모든 것의 효과가 내는 극적인 분위기를 전적으로 상상력에만 의지해야 하므로, 실제 극이 올랐을 때 느끼는 감동을 비슷하게 느끼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특히 시에 붙인 음악이 주는 효과는 텍스트에만 익숙한 독자가 어찌할 수 없는 요소다.

다행히도, 독일에서 상영된 듯 보이는 제법 큰 규모의 연극 녹화 동영상과 1930년대 만들어진 영화 동영상을 찾아서, 그토록 궁금했던 가사의 음들과 노래 실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확실히 음악과 연결되니 작품을 이해하고 느끼는 폭이 훨씬 풍부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기존의 오페라와도 형식이 조금 다르고, 연극과도 조금 다른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연극에서도 브레히트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관습과 전통을 깨고 낯선 것들을 시도한다. 작가 해설에 의하면 그 중 하나가 노래의 역할이다. 기존 연극에서 노래는 인물의 개성을 강화하고, 심리적 정황을 묘사하고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기여한다면,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새로운 극의 형태를 서사극이라고 했던 모양)의 기능은 극적 사건을 중단하고 정황을 설명하거나 해설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후렴구와 민중시 같은 사실적이고도 풍자적 묘사의 가사는 짧은 극중 대사들이 담을 수 없는 당대의 상황과 모순, 갈등을 설명한다.

대사집 만으로도 전체 내용을 따라가기에는 큰 무리가 없고, 딱딱하다는 독일인에 대한 편견이 불식될 수 있을 만큼 풍자적인 내용이다. ‘런던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거지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 피첨 부부와 그의 딸 폴리, 런던에서 가장 잔인한 갱스터의 두목 맥, 런던에서 가장 엄격하고 무섭다는 경시청장 브라운, 그의 딸 루시, 피첨 부부에게 고용된 거지들, 맥에게 고용된 갱스터들, 창녀들이 등장하는 액션 코미디,  로맨스를 두루 갖춘 극이다. 맥과 폴리 루시의 삼각관계, 피첨과 거지 사이의 약탈관계, 범죄자 맥과 경시청장 브라운의 결탁 관계에 창녀와 기둥서방 사이의 약탈과 폭력과 순애보까지 깨알같이 표현하는 이 새로운 (실용)음악 연극이 당대에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노래에 의하면 강도, 강간, 살인을 서슴지 않은 맥은 창녀들은 물론이고 지체높은 ‘아가씨’로 묘사되는 폴리와 루시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데 본인이 감옥에 갇혀도 그를 두고 경쟁할만큼 경쟁력있는 남성일 뿐만 아니라, 브라운 경장 역시 그의 투옥을 마음아파 하고 헌신적(?)으로 그를 돕는다. 하지만 창녀들의 배신으로 두 번째 감옥에 들어가게 되자, 더는 사형 집행을 미룰 수 없게 된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가 얼마나 악인인지 알기에 뭐 주인공이긴 하지만 공개 처형되는 것도 즐거움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브레히트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연극은 현실과 다르기에 연극이지 않은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이 때 등장하는 게 데우스 엑스 마키나다. 난데 없이 개입한 신은 다름아닌 여왕이다. 여왕의 메신저는 맥의 처형을 중단시키고 뜻하지 않은 귀족 작위까지 받게 된다.  얼마나 기교적이고 날카로운 조롱인가.

현실에서 사회적인 불공정함이나 부당함을 해결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러니 현실과 같은 극을 만들다 보면, 불공정함과 부당함에 무게를 실어 스토리를 진행시켜 봤자, 결국 우리가 사는 삶과 다름없지 않은가. 이를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있는 건 현실에 없다. 마술적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가능한 그 이야기가 현실이 아닌 극과 소설 속일 때 뿐이란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브레히트는 그것이 예술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현실의 삶에서 말을 타고 오는 구원자는 없다. 가난한 이가 구원되는 일도 없다.

지 않겠어!


[1]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천병희 옮김, 문예출판사, 1998.  [2]에서 재인용

[2] 필록테테스 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준석, 서양고전학연구 26, 2006.12, 41-55 (15 pages)


가난한 이들에게 자기 것을 나누는 것, 왜 아니겠어?    
모두들 선하면 하느님 나라가 멀지 않으리.    
누군들 하느님의 광명 속에 살고 싶지 않겠어?    
선한 인간이 되는 것?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별에서    
식량은 빠듯하고 인간은 야비하지.    
누군들 평화 속에 조화롭게 살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 그렇질 않아.    

폴리와 피첨 부인  유감이지만 그 말이 맞아요.    
세상은 가난하고, 사람들은 악해요.    
피첨  유감스럽게도 내 말이 맞지.    
세상은 가난하고, 사람들은 악해.    
누군들 지상에서 파라다이스를 꿈꾸지 않겠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 그걸 허락하나?    
아니, 상황은 그걸 허락하지 않아.    
너를 몹시 걱정하던 네 형제.    
고기가 부족해지면    
바로 네 얼굴을 밟아 버리지.    
그래, 성실하게 사는 것,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너를 걱정하던 네 부인    
네 사랑이 충분하지 않으면    
바로 네 얼굴을 밟아 버리지.    
그래, 감사하며 사는 것.
누가 그러고 싶지 않겠어?    
하지만 너를 걱정하던 네 아이    
노년에 빵이 부족해지면    
바로 네 얼굴을 밟아 버리지.    
그래, 인간적인 것.
누가 그러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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