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그타임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5
E. L. 닥터로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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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잎과 가지가 달린 나무도 그걸 받치는 메인 몸통과 뿌리를 찾을 수 있듯이, 관련도 없어 보이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들은 산재하여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다가 축을 주위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크게는 두 개의 축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에벌린을 둘러싼 삼각관계와 살인 사건, 또 하나는 콜하우스 워커의 자동차 똥 투척 사건이다. 백만장자 랜들 쏘가 자신의 아내 에벌린 네스빗과의 16세 때의 일을 빌미로 스탠포드 화이트를 총으로 쏴 죽인 살인 사건은 백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까지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세기의 스캔들이지만 콜하우스 워커의 자동차 파손에서 시작된 테러극은 가상의 이야기로 보인다. 


이렇게 소설 속에서는 가상의 인물과 실제 인물들이 섞여 있고 실제 이야기와 실제 이야기가 가상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소설인지 찾아보기 전에는 구분하기 힘들다. 이 두 개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실존했던 세기의 마술사 해리 후디니의 이야기가 점점이 박혀 있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콜하우스 워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특별 주문 제작한 가죽 지붕을 씌운 세심하게 잘 관리된 포드 모델 T 뒷좌석에 지역 소방서 직원들이 똥을 사서 얹어놓고 통행세를 요구하는 행패를 부린 이유는 그 멋진 차의 주인인 콜하우스 워커가 ‘니그로’이기 때문이 아니라 니그로가 니그로답지 않아서다. 그는 옷을 잘 차려 입었고 예의바르고 정중했으며 교육받았고 교양있게 말했다. 그들은 그의 차를 지나가지 못하게 길을 막고 통행세를 요구했으며 그 아름다운 차 뒷좌석에 똥을 갖다 넣았다. 이렇게 시작된 콜하우스 워커의 테러적 복수극이 전체 스토리의 가장 큰 줄기인데 이렇게만 보면 무슨 액션 혹은 스릴러 극을 연상시키지만 실제로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이들 사건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20세기 초의 인간군상들이고, 쉼없이 가속화되던 미국 사회 신문에 뉴스에 등장했던 역사적 인물들이 직조해 내는 거대한 역사의 조각들이다.


니그로도 없었다. 이민자도 없었다. 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는 당대 중산층 백인들의 행복하고 안락한 삶 속에서,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반대쪽 편의 삶과 고통이 안중에도 없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과거 시제의 이 말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이 가족에게 이민자들과 흑인들이 가족의 삶 깊숙히 스며들게 되며 어떤 변활 겪게 됨을 암시한다. 이것은 인식의 변화다.


‘단란’했던 가족의 변화는 로버트 피어리를 따라 북극 탐험을 떠난 몇달간의 아버지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가부장적 권위와 그럭저럭 중산층의 부를 유지시키는 성공 궤도의 사업을 운영하는 가장은 처가 식구들을 부양하고 처남의 월급을 주는 성실한 남편으로, 수줍고 순종적이고 예쁜, 전통적 역할에 충실한 아내와 쌍을 이루어 모범적 가정의 질서를 유지해왔다. 가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전통적 여성인 어머니의 가치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발견된다. 그의 부재기간 사업상의 위기를 해결하고 능동적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에는 전통적 가치관에 따라 집안에 묶여 남편의 시각으로만 보던 사회를 스스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 그 기간동안 자립 변화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고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이제껏 보이지 않던 것들에 눈뜨기 시작한다. 뜰에서 우연히 발견한 버려진(산채로 묻힌) 신생아와 아기의 엄마 새라를 가정에 들이고 돌보기 시작한 어머니는 당대 중산층의 눈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이지도 않던 흑인을 가정 속에 편입시킨 혁명적 결정일이 된다. 이 일은 이들 가정에서 변화와 진보의 물결을 어머니를 통해 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북극 탐험에 얼고 지친 몸과 마음으로 귀국한 아버지는 갈색 아기와 새라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머니의 결정을 존중한다. 


어느날 부터인가 콜하우스 워커 주니어가 새라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새라와 콜하우스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끈질기게 매주 새라를 찾아오던 콜하우스를 새라는 얼굴 한 번 안비치고 그대로 돌려보내기를 계속한다는 것. 그러나 다른 흑인들과는 달리 양복을 잘 차려입고 특별주문한 가죽 루푸가 달린 포드 모델 T를 타고 와서 정중하고 예절바르게 행동하는 이들 가족은 어느 날 그를 집으로 들여 차를 대접하고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가다. 그들의 거실에서 래그타임을 연주하자 우울과 대인 기피로 윗방에 숨어 지내던 새라는 음악을 매개로 점차 마음을 열고 콜하우스를 받아들여 약혼하고 결혼 날짜를 잡는다. 그토록 우울하고 어두웠던 새라는 아름답고 행복에 겨운 꽃같이 아름다운 소녀로 변신한다. 결혼을 앞둔 어느날 콜하우스에게 자동차 똥 투척과 동반된 파괴 사건이 일어나고 콜하우스는 그 특유의 예의 바른 태도로 경찰에 호소하지만 조롱과 무시만 돌려받고 차는 점점 더 파괴되어간다. 콜하우스는 자신의 자동차를 변상받을 때까지 결혼할 수 없음을 알려오고, 때마침 부통령 방문에 이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했던 새라는 경찰의 오해로 폭력을 당해 죽게 된다. 


내러이터가 누구인지 불분명한데 가족을 설명할 때의 기준이 소년을 중심으로 어머니 아버지 외할아버지 외삼촌이 이름없이 언급되므로 화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분명치 않은 화자의 시점은 이 가정의 구성원들 개개인들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환하고 빛나는 세계를 온전히 구성하는 듯한 이 중산층 백인들의 사회와, 어둡고 우울한 유색인 및 이민자들 사회의 가교 역할을 하는 듯한 사람은 어머니 뿐만이 아니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월급만 축내는 줄로 알고 있던 외삼촌은 처음에 소개된 에벌린 네스벳을 짝사랑하며 쫓아다니다가 훗날 콜하우스 워커의 테러 지원을 하는데 그가 죽은 후 아버지의 부재 중 회사에 큰 성과를 남겼음이 드러난다. 결국 외삼촌은 가상과 실제 사이를 연결하고 정의를 쫓아 온몸을 불태우다 ‘의롭게’ 죽는더. 아버지의 부재 중 그가 회사에서 개발한 일련의 무기들이 아버지의 부 뿐만 아니라 미국의 세계 대전에 복무했음은 그의 추후 행적과 비교할 때 아이로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 백인의 눈에 외삼촌이 도운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지만 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 나오는 와습들은 이름이 없는 주인공 가족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위키에 이름을 넣으면 행적이 나오는 실제 인물들이다. 전설의 마술사 탈출가 해리 후디니, 건축가 스탠포드 화이트, 모델 영화배우 애블린 네스빗, 스탠포드 화이트를 죽인 백만장자이자 애블린의 남푠 해리 켄달 쏘, JP 모건, 포드 자동차 회장 해리 포드,무정부주의자 사회 운동가 옘마 골드만 등이 그렇다. 이민자 타테와 소방서 직원들 세라 콜하우스 등은 가상인물이지만 실제 똑같은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름을 날리지 못했을 인물이다. 


역사적 사건들은 허구의 프레임 속에서 장르적 경계를 허물어 확장하고 그를 통해 20세기 초반 미국이라는 나라의 면면을 노출한다. 역사란 단지 전쟁과 제도와 대형 사건들로만 구성되지 않으며 그 역사 속의 개인이 역사와 함께 주고 받는 영향들의 복잡한 네트웍이다. 저자는 가상의 맥락에서 역사적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들을 교차시킨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 자유와 평화는 미국이 추구하는 이상이지만 그 자유와 평화는 백인 중산층이 독점할 자유이고 평화였던 게 시대의 비극이었다. 




콜하우스 워커는 자신의 슬픔을 전쟁을 위한 촉매로 썼다.세라를 잃은 슬픔 그녀와 누렸을 행복한 삶에 대한 아쉬움은 고대 전사들이 복수를 다짐하는 의식으로 굳어졌다.247


이민자들은 대부분 이탈리아나 동유럽 출신이었다. (..) 이민자들은 더러웠고 문맹이었다. 몸에서는 생선 마늘 냄새가났다. 상처에서는 고름이 흘렀다. 이민자들은 자존심이라 건 없었고 무보수나 다름없는 삯을 줘도 일했다. 이민자들은 도둑질을 했다. 술을 마셨다. 자기 딸을 강간했다. 별 것 아닌 일로 서로를 죽였다. 이민자들을 가장 멸시하는 자들 중에 아일랜드인 2세들이 있었다. 이들의 아버지들 역시 예전에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다.25


그런 여러 경험에도 불구하고 후디니에게는 우리가 정치적 의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 생겨나지 않았다. 후디니는 자신이 왜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지 합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후디니는 자신의 삶이 보통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혁명적으로 살았는지를 평생토록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후디니는 유대인이었다. 진짜 이름은 에리히 바이스였다 45



결혼 관습과 매춘 관습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도 없습니까 부끄러운 줄 아시오. 63



진실은 여성들은 투표할 수 없으며 원하는 상대와 사랑을 할 수 없고 정신과 영혼을 개발할 수 없고 영적인 모험을 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옘마 골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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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 내 인생의 X값을 찾아줄 감동의 수학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3
최영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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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은 보편적 진술을 찾는 학문이다. 어느 곳에서는 작동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은 보편적이지 않다. 어느 시대에는 사실이지만 다른 시대에는 사실이 아닐때 보편적이지 않다. 항상 언제나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것 그게 수학이고, 수학의 아름다움이란 이토록 바스러지기 쉬운 사회에서 변하지 않는 성질들을 기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은 또한 인간의 능력 내에서 이해되는 것들에 대한 진술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불변하는 것이란 인간의 눈으로 귀로, 뇌로 불변하는 것으로 아는 것 것들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수학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인지 능력이 닿지 않는 저 너머에 있을 수 있는 예외적 상황에 그 모든을 적용하여 단언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이라는 표현은 무한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다루기 어렵다. 아무리 보편적인 개념이라도 ‘모든’ 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순간 인간의 인지 범위를 벗어난다. 이 ‘모든’을 ‘임의의’라는 말로 바꾸면 난제를 해결된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불변의 진리가 되려면, 지구가 둥글고, 그래서 지구에, 땅에 직선을 계속 그으면 시작한 선과 만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보편적 기초 수학에  여전히 파워를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지구 스케일의 문제가 일상적 스케일의 문제에서는 크게 대두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때 수학은 철학이자 종교였다.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해석하고 묘사하는 방법으로서의 한 측면과 플라톤의 이데아 처럼 영혼을 고결하게 하는 종교이자 하나의 진리라는 한 측면에서 접근했다. 

“피타고라스는 숫자의 논리적 속성을 통해 어떤 현상에 담긴 깊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또한 숫자 자체에 완벽한 구조를 통해 영원하고 불변하는 존재를 경험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이 더 높은 세계를 지영은 문학의 된다고 생각했다  “

피타고라스 학파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이 중세에 이르러서 사그러들은 이유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모순되는 진리가 수학의 고결함이 종교화 이상화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신을 복원하려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 수학의 발전은 그리스 시대에서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후퇴해왔다. 저자는 르네상스 시대에 수학의 재발견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낸다. 

하지만 데카르트 이후 수학의 실용적인 방향으로의 전환은 수학을 자연과학의 아버지 또는 반대로 자연과학의 시녀로,  논리를 전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하게 했으며, 그리스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데아라는 목적적 개념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이 수학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까닭을 생각해본다. 숫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와 미라는 게 무엇일까, 피타고라스가 만물의 근원이라는 결론을 내린 숫자는 우리에게 투쟁이 과열화된 사회상을 의미한다. 나는 왜 수를 종교화 하였는지 공곰히 생각해보았다. 하나 둘 셋 수를 세다 보면 무한이라는 개념과 맞닥뜨린다. 무한은 하나 둘 셋 처럼 뚜렷하고 명확한 추상은 없지만, 그것이 밤을 새도 평생을 세어도 끝나지 않은 영원에 가 닿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인간은 유한하며, 인간의 수 역시 유한하며, 일상에서 만나는 숫자들은 유한의 숫자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무한을 만날까. 이 책에 답이 있다. 집합론의 창시자 칸토어는 ‘두 집합 사이의 일대일 대응 관계가 성립하면 두 집합의 농도 즉, 원소의 갯수의 크기는 같다고 정의함으로써 자연수 집합의 농도와 그의 부분인 짝수 집합의 농도가 같음’을 일대일로 대응 시켜 보여주었다. 

저자는 하루살이와 인간의 삶을 비교하면서, '인간에게 하루살이의 인생은 단 하루겠지만 하루살이는 그 하루 동안 짝을 만나 새끼를 낳으며 인간의 100년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며,  마찬가지로 1초 안의 시간의 농도와 1조년 안의 시간의 농도가 갖고, 1조년 시간의 농도와 1조 1조 년 동안의 시간이 농도가 갖고... 이런 식으로 1초 안에서 무한한 시간을 느낄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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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인포그래픽 - 당신이 알아야할 맥주의 모든 것!
Michael Larson 지음, 박혜진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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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양의 정보를 습득할 때는 글자만으로 채워진 텍스트 북을 읽는 것보다 정보를 잘 정리해서 그래프와 각종 시각적 효과를 일으키는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인포그래픽을 보는 훨씬 효율적이다. 텍스트는 감정이 들어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좋은 도구이지만 두툼하게 쌓여있는 사실들을 나열하기에는 따분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인포그래픽스라고 하면 유엔이나 한국 통계청 같은 곳에서 조사한 온갖 통계 정보를 온갖 색상과 그림으로 표현하여 한 눈에 세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은 맥주 인포그래픽스다. 맥주에 대한 인포그래픽스라니, 마시는 술의 일종으로 생각해볼 때 맥주라면, 제조과정과 브랜드에 필요한 몇몇가지 사실 말고는 대개 술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당연히 텍스트로 짜여진 스토리텔링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맥주와 인포그래픽스라니, 우리가 마시는 맥주는 얼마나 많은 사실들이 있기에 인포그래픽스로 책 한권을 완성할 수 있는 걸까 ? 


이렇게 생각하는 건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마시는 맥주가 아주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리만큼 획일적으로 맛없는 맛을 내는 소수의 브랜드 맥주 뿐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최악을 자랑하는 아이템들이 종종 있는데 영국의 국격은 맛없는 음식이 결정하는 것처럼, 한국이라면 맛없는 맥주, 저 서구권의 관광객들이 마셔보고는 '말오줌 맛'나는 맥주라고 평하는 맹탕 맥주가 한국임을 말해준다. 오죽하면 북한 대동각 맥주보다도 맛없다고 할까. 그래도 요즘은 홈플이나 이마트 가면 세계 각국의 맥주가 아주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고, 간혹 직접 만든 생맥주를 판매하는 맥주집들도 볼 수가 있어서 조금 맥주맛의 안목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폭탄주 재료로서는 크게 손색이 없는 듯 아직까지는, 딱히 무슨 맥주라고 지칭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맛없는 맥주들이 주류를 이룬다.


술 중에서는 맥주를 좋아해서 이것 저것 사서 마셔보곤 하지만, 슈퍼마켓 매대에 놓인 해외 수입 맥주에 기재된 세계 각국의 글자들은 도통 읽을 수가 없으니 알고 있는 브랜드의 맥주 몇몇 개를 제외하고는 주사위 던지듯 무작위로 골라, 집에와서 하나씩 마셔보며 담에 이거 사자, 저거 사자 말만 해놓고, 그 다음번엔 또다시 무엇이 맛있었는지 잊어버리기가 보통인 내게, 맥주 주기율표라는 아이디어는 놀라왔다.



 어떤 종류의 화학책이라고 하더라도, 그 책을 펼치면 맨 앞장에 주기율표가 나와있는 것처럼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표지 다음으로 만날 수 있는 장면은 이 주기율표다. 전세계 맥주를 유래에 따라 90개로 분류했으며, 이 분류에 쓰인 약자의 원이름은 실제르 해당 지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우리나라는 제외) 그 이름에 걸맞는 레서피가 통용되거나 혹은 법적인 규제를 받는 맥주의 이름이다. 가령 Ss는 스위트 스타우트로, 주기율표의 번호 대신 해당 맥주에 대한 인포그래픽스와 설명이 있는 페이지가 함께 기재된다. 색상은 유래 지역으로, 하늘색은 영국 아일랜드에서 유래한 에일,  주황색은 유럽대륙에서 유래한 에일, 연두색은 유럽대륙에서 유래한 라거, 붉은색은 미국에서 유래한 맥주를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야 유통되는 대부분의 맥주가 라거 계통이라 에일이라고 하면 뭔가 굉장히 이국적으로 느껴지지만, 영국과 아일랜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예일 계통의 맥주가 유통된다. 라거와 에일의 근본적인 차이는 호모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에일에 쓰이는 세레비지에 효모는 알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에스테르를 부산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맥주에서 여러가지 과일향이 난다. 높은 온도에서 발효되며 거품이 많아 향을 가두는 역할을 한다. 반면 1400년대에 독일에서는 직설적이고 단순한 맛을 내는 라거 효모를 발견했는데, 에일을 만드는 곡물 효모와는 달리 낮은 온도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하면 발효하고, 더 낮은 온도에서 2차 발효해야 탄산의 톡 쏘는 맛을 만볼 수 있다. 이 라거를 만드는 효모는 최근 유전자 연구를 통해 남아메리카의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자라는 야생효모와 에일효모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서구가 '아메리카 발견'이라 부르는 아메리카 침략 시기가 시기상으로 조금 잘 안맞는 면이 있어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참조 : 브런치 비어스토리 https://brunch.co.kr/@beerstory/6)



민망하긴 하지만 고백을 하자면, 나도 '수제 맥주'를 만들어본 적이 있다. 그글 '수제 맥주'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한국에서도 수제맥주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카페도 많고, 재료를 파는 곳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은 술을 잘 마실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지만, 술에 관심이 많아 맥주를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필요한 장비들이 너무 많아 뜸을 들이고 있던 중, 어떤 이벤트의 2등 상품이 툴키트가 걸린 행사가 있었다. 나는 조선호텔 숙박권인 1등이 되지 않게 공을 들여서 응모를 했고 2등을 해서 그걸 받았는데, 2차 발효를 너무 짧게 한 탓에 맹숭맹숭한 맥주를 마시며 저 많은 걸 어떻게 다 버리나 걱정하다가, 게으른 덕에 1달 후에 다시 마셔보고 나서 그제서야 탄산이 충분히 발효되어 제대로 된 수제 맥주를 마셨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태어나서 가장 맛있는 라거였다. 물론 거품이 풍부하고 쌉싸금한 스타우트나 복잡한 향이 들어있는 에일을 더 좋아하지만, 이 툴키트의 원액이 취한 호프의 배합 비율과 맥아의 변주가 이제껏 마시던 술 맛과는 다른 맛을 만들어 냈던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원액 말고 직접 맥아즙과 호프를 섞어 진짜 수제로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로, 잊고 지내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맥주는 무엇이 그 다양함을 결정할까. 맥주의 맛을 결정하는 재료는 물, 맥아, 홉, 효모 이렇게 네 가지다. 최종 목적지인 술은 살아있는 미생물인 효모가 당을 먹고 싸는 똥이다. 우리가 똥을 싸면 미생물이 분해하여 이렇게 저렇게 토양에 흡수되고 식물의 양분이 되는 것처럼, 미생물의 똥은 우리가 먹어 이성을 억제시키고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 당이 보리에서 나오는데 보리를 효모가 먹을만한 당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몰트를 제조하는 공정으로, 뭐 물에 불려 싹을 튀워 다시 건조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은 지역과 온도 습도 같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며 역시 맥주의 맛을 결정한다. 호프는 맥아즙의 단 맛을 중화시킬 목적으로 추가되는데, 쓴맛과 보존기간 등을 결정한다. 홉은 맥아를 끓이는 단계에서 들어가지만, 맥주에 따라 이후에 넣는 것도 있다. 역시 종류만도 수십만 가지이고 다양한 홉을 통해 각종 과일 향, 꽃향, 나무향 또는 향신료의 향을 낸다. 물은 하이트가 천연 암반수니 어쩌니 하고 광고하고 있지만 물에 대해서는 내 생각인데, 오염되지만 않은 물이라면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다. 기본적으로는 이 네가지의 변주를 통해 종류만으로도 90가지로 분류가 가능한 다양한 맥주를 만들 수 있다. 효모 이야기는 앞에서 했으므로, 나머지 맥아는 맥주를 만드는 보리를 말하며, 이것 역시 원산지와 품종에 따라서 맥주의 맛을 크게 좌우한다. 


잔 종류만도 이렇게나 많고 이 많은 종류의 잔들은 각 어떤 맥주를 담을지 그 용도가 각기 다르다. 풀루트 같은 잔은 어쩌다 맘먹고 사봐도 깨먹기만 할 뿐 집에 남아나는 것이 없으니, 이런 것들이 있구나 이런것들을 담는구나 하고 끄덕끄덕.


90 종류의 맥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위 사진처럼 2쪽에 걸쳐져 매우 체계적으로 정돈되어 있다. 유래와, 색, 도수, 쓴맛의 정도, 어울리는 잔, 그리고 그 맥주를 잔에 담은 사진이 간략하게 첫페이지에 나와있고, 해당 맥주의 대표적 브랜드 세 개가 사진 옆에 나와있다.  대표적으로 '코를 찌르는 허브 향이 나는' 페일 에일의 대표 브랜드는 런던 프라이드, 올드 브루어리 페일에일, 더블 배럴 에일 이렇게 세 가지이다. 영국에서는 생맥주로 서빙되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병으로만 판매되는 술들이 많다. 

두번째 페이지는 원자구조처럼 생긴 그림인데, 맨 가장자리 동심원은 맛과 향에 대해, 두번째 동심원에는 제조회사와 지역이, 맨 안쪽에는 해당 맥주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나타낸다. 백과사전식의 인포그래픽스를 한 번에 다 읽어버리기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대충 읽고, 홈플에서 1만원에 3개짜리 맥주를 골라와서 하나씩 찾아 보면서 알아가는 재미를 기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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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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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람의 감정을 만져주는 것일까? 소설이 만들어 놓은 서사 속에서 인물이 겪는 감정은 나의 감정과 경계가 흐려지면서, 내가 그동안 해명해내지 못했던 온갖 감정들 심지어 감정들이라고조차 느끼지 못했던 무형의 마음에 들어와 살살 만지고 다독이고 주물러 형태와 질감을 부여했다. 그리하여,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아무것도 아닌 상념과 어두운 바다 속 같이 알 수 없고, 떠다니는 안개처럼 흐릿하기만 한 마음의 본질이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고독함이나 그런 두리 뭉실한 단어, 혹은 그 조차도 아니어서 형체없이 부스러지고 가루가 되어 초미세먼지 입자처럼 멀리는 가지 않은채 맑은 날조차도 풍경을 흐릿게 만들던 그 마음의 진정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하여 비로소 슬퍼했어야 할 기억에 작은 눈시울의 애도를 보내고, 탄식했어야 할 사건의 실체를 바라보게 하고, 온당하게 화냈어야 했을 기억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사는 것이 때로 좀비처럼 느껴질 때, 어떤 힘에 의해 점령 당해 그저 그렇고 그런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를, 미드 <웨스트필드>의 AI 호스트들처럼 각본대로 매일 죽고 다시 태어나는 똑같은 인생을, 예정되고 계획된 일을 그 예정대로 계획대로 감정을 흉태내고 있을 지 모른다는 막연하고 허망하지만, 어쩌면 그로써, 이 무위의 날들을 설명함으로써 흩어지고 멀어지는 정체없는 마음 부스러기들을 판타지의 저편 먼 곳으로 자유롭게 날려보내며, 무위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 그리고 이 문장을 완성시키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처럼 쉽게 자신을 붙들고 떠나지 못했던 또 다른 한 조각의 마음을 포기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 이 책은 나에게 마음에 형체를 부여하였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의 미소 p24)


이성간의 나의 우정은 대부분 연애 같은 양상의 조짐이 보였을 때, 끝이 함께 보였다. 그래서 이성에게는 연애 같은 우정도 우정같은 연애도 존재하지 않았다. 연애가 되고 싶었지만 우정이라도 가지고 싶어 거리를 두었으나 연애는 커녕 우정 마저 품을 수 없었던 스무살 짝사랑이 아니었더라도, 이성은 우정이라고 말할 만큼 충분히 가까울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하면 일상 속에서 만나 가까이 지냈던 많은 아는 이성 사람들에게 섭섭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우정은, 적어도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벽을 허물고 나를 보여주고, 허물어진 틈 새로 새어나오는 것들을 안아준 우정이라면 언제나 동성과의 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팀 플레이를 잘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단짝이 있었고, 연애같은 우정을 나눴다. 싸우고 삐지고, 누가 먼너 말 거나를 지켜보다 서로를 잃을 두려움에 서로에게 해명도 없이 사과도 없이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어색하게 다시 시작했던 관계들은, 떼거리 속의 하나라는 팀플레이 속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계기 그게 뭔지도 모를 이상한 힘에 의해 금이 가거나 멀어지게 되면 그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고 거리를 메꿀 완충장치가 전무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씬짜오 씬짜오 p91)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떠난 사람 같다. 매몰찬 인간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남겨진 쪽이었다. 외로운 인간이다. 멀어지는 계기는 아주 작은 말과 행동들을 단서로 오래된 층위의 가느다란 매듭을 따라 끝도 없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길을 잃는 일이다. 지치는 일이다. 어쨌든 멀어지게 되어 있고, 어쨌든 헤어지게 되어 있고, 어쨌든 망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누가 먼저 떠났건,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둘은 서로를 떠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추축해볼 수는 있다. <한지와 영주>는 어차피 서로를 떠나게 되어 있는 관계였다. 그들을 가깝게 만든 건 서로가 한 번도 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라, 처음으로 대한 이질적이면서도 경외스러운 생소한 인종이라는 다름이다. 이 다름 때문에 영주는 한지에게, 자신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옮길 수 없는 한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한지지만 넓은 아량의 이면에 누구나 갖고 있을 어둠을 숨긴 한지 역시 영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둘이 가까와진 건, 둘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둘이 헤어진 것도 둘이 살아온 환경과 인종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일탈에서의 소중한 만남과 추억 그 이상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도 없는 둘은, 아직 그렇게 사이가 틀어지기 이전까지 2주간의 여유가 있었다. 관계가 관계를 완전히 망쳐버려 서로가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던 또다른 어느 날 귀국을 앞둔 몇일 전에도 기회가 있었다. 영주는 한지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걸 알았고, 그가 울고 있는 걸 알았고, 그래서 그 때에도 기회가 있었다. 까닭과 이유를 캐묻고 마음을 드러내고, 자신이 꾸던 둘이 함께 하는 그 아름다운 백일몽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하는 동안, 무슨 말이든 그렇게 끝내지는 않을 수도 있을 단 한마디로도 할 수도 있었을 한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고, 그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그랬다면 그들은 어쩌면 훗날 계속 편지를, 이메일과 SNS를 주고받으며 평생 친구로 남았을 수도 있다. 그들은 조금 편지를 보내다가 서로의 삶에서의 위상이 점점 줄어들고 희미해져 잊혀졌을 수도 있다. 매우 희박하지만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둘 중 하나가 자신의 나라와 다른 모든 관계와 위치를 포기하고 그 둘 중 하나의 나라에 와서 사랑하고 살고 싸우며 지지고 볶다가 혹은 싸워 헤어지거나 혹은 무덤덤히 가족이 되어 그 완성(?)적 형태의 속된 사랑을 이루고 살다가 훗날 죽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선택지들의 끝은 둘이 함께 걸으며 우정과 사랑사이의 어떤 감정 속에서 느끼던 그 다름을 기반으로 다져진 관계와는 다른 양상으로 돌아갔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여기 살린 모든 이야기는 소중한 관계의 과정과 그 끝을 다룬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만남과 그 속에서 생긴 소중한 관계와 그 관계의 끝으로 생명력이 더해진다. 엄마가 순애 언니를 먼저 떠났을까? 순애 엄마가 언니를 먼저 떠났을까. 한 때 순애 언니도 부모가 다 살아있었을 때가,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였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행동과는 관계없이, 대가 없이 조건 없이 사랑해줄 부모는 떠났고, 혼자 남겨져 있던 순애에게, 동생이 생겼다. 예전에 식모라고 부르던 그저 밥한술이라도 덜고자 남의 집에 가정부로 어린 소녀들을 보내던 시기가 있었다. 식모는 아니지만 남들이 학교 다닐 나이에 옷 수선집을 하는 친척집에 맡겨져, 재봉을 돌리던 순애, 열한살 엄마보다 더 체구가 작은 열여섯 소녀가 주인집 열한 살 딸이 즉 화자의 엄마와의 관계는 어떤 연애 장면 보다도 아름답다. 인간의 본성이 관계에 바탕을 둘 때 이토록 맑고 투명할 수 있음을 생각케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런 순수한 시선을 나누면서 관계의 애틋함을 느낀다. 엄마에겐 언니가 생겼고, 순애에겐 동생이 생겼다. 엄마는 순애를, 개의 시선으로 본다. 이 장면을 읽으며 눈물이 나왔다. 함부로 새개씨니 개놈이니 하면서 개를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 순애가 어릴 때 키우던 개가, 버림받고 외톨이인 순애를 세상 누구보다도 애정어린 시선으로 누구보다 귀하게 보았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밥을 먹는 척 하던 개가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아간 듯 사라진 이야기를 듣고, 회상하는 장면이다. 


곰 (개 이름)의 이야기를 들을 때 엄마는 곰이 되어서 곰에게 이야기하는 이모(화자의 이모 = 순애)의 모습을 봤다. 곰아. 밥 먹어. 그 말을 하고 엉엉 우는 이모의 모습을 바라봤다. 곰의 마음으로 이모를 바라보면 이모는 세상 누구보다 귀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 후로도 죽은 개의 마음으로 이모를 바라보곤 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를 읽고 나서도 더 잃을 것이 남아 있던 이모의 모습을.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p100)


누군가를 향한 나의 마음은 반향되어 나를 향한 그의 마음으로 되돌아오고, 연애처럼 애틋한 우정은 영원할 것처럼 빛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언젠가는 뜨거운 태양도 언젠가 수십억년 후에는 초신성과 적색거성이 되고 백색왜성으로 스러질 것인데, 매일매일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것처럼 삼일을 견뎌내지 못하는 의지력을 가진 나약한 인간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의지와 바람과는 상관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떠나고 떠나 보내고, 마음에 담았다고 퍼내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덜 상처받고 무뎌지는 법을 배운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동반 여행을 하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 받으면서, 그 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씬짜오 씬짜오 - p116)


나는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에 마른 흐느낌이 나왔다. 아이들이 소리 내 울다가 들숨이 부족해 쉬는 숨 같은 거 말이다. 그 때는 뭘 모르지 않았나... 그 때는 뭘 모르지 않았나... 이 대목에서. 그 몰랐던 시절의 열린 빗장과, 빗장 바깥에서 만든 관계들, 빗장 속에서 형성되었으나 이제는 빗장 바깥에 있는 관계들, 빗장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을만큼 먼지 쌓인 빗장 안에서 정말로 정말로 누구를 곰처럼 소중히 여겼던 시간들. 그리고 할머니도 생각났다. 길고 한많은 생을 살았지만 한 번도 빗장을 걸어 닫지 았았던 분, 하지만 쇠약한 몸과 늙음, 그 축복받은 장수가, 할머니가 주신 분에 차고도 넘치게 받았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어느 새 겨우 자신의 빗장 밖에서밖에 그분을 만나지 못하던 나날들을 한탄한다. 나는 왜 그랬을까. 한 때는 '전화도 편지도 불통인 중국 기간제 교사로 간 미진이처럼 할머니를 그토록 소중하게 아꼈었는데, 나는 빗장을 걸 필요가 전혀 없는 내 할머니에게 애기처럼 매달리지도 젖을 주물거리지도 언 손과 발을 따뜻하고 물컹물컹한 배속에 올려놓거나 품속으로 기어들지도 않게 되었다. 내 할머니가 쇠약해지는 동안 점점 그렇게 되었다.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이미 이별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줌마가 준 마음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히 돌보았을까 (씬짜오 씬짜오 p92). 


소중하게 붙잡고는 있지만, 그것은 기억일 뿐 더는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관계. 어차피 틀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까닭들. 그래서 아마도 쇼코의 미소는 서늘했을 것이다. 둘은 다시 만났지만, 그리하여 그간 쌓인 오해를 풀고, 할아버지가 남긴 유품을 읽고 다소간은 소중하게 붙잡았던 과거의 기억을 붙잡고 다시 채우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의 시간은 그 때 서로 몰랐던 그 우울한 비밀들과 할아버지와 공유했던 관계 속에서 생성된 특별한 것이기에 다시 만난 관계에서 생기는 새로운 관계는 고교시절에 간직한 것들과는 다른 양상을 띤 소중한 것들은 빗장 속에 걸어둔 채, 그 바깥에서 잃지 않고 상처받지 않을 것들로만 윤을 내는 서늘한 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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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함께 하는 나의 삶?  정도로 번역해야 할까. 얼마전 아주 짧으면서 인상적인 단편 하나를 만났다. 영어로 읽었고, 모르는 단어도 꽤 있었지만, 그 단어들의 여울이 주는 파도가 강렬하면서도 스산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100년의 고독 같은 중남미 작가의 작품은 고독의 심연이 주는 여운을 일평생 흔적처럼 지니게 된다. 시적인 작품이어서 찾아보니 원래 옥타비오 파즈 이 양반이 외교관이기도 했는데, 작가로서 주로 몰두한 것은 시였던 것 같다. 시인이 소설을 쓰면 긴 시처럼 읽힌다. 국내에 나온 번역서에는 이 작품이 포함된 작품들은 없는 것 같고, 주로 시론집 평론집 비평집 등인 것 같다. 


그 중, <우리집에 온 파도>는 바로 이 작품을 어린이용 그림책으로 각색한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책이 없어 미리보기로 살짝 앞부분만 읽어봤는데, 그림도 내용도 원작을 아주 잘 살렸는데, 이 책을 읽어본 친구가 그러는데 원래 작품과는 결론은 다르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파도가 내 집에 온다. 그 파도가 집에 와서 얼마나 집을 환하고 생기있게 해 주었는지, 온갖 형태로 모양을 바꾸면서 애무하고 속삭이고 노래하며 마음에 파고들던 파도는 햇빛마저도 더 오랫동안 집에 머물게 만든다. 새로운 만남, 새로운 관계, 새로운 취미,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랑과 애정, 애착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리우고, 결국은 파멸로 향해가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으로 읽힐 수 있다. 


영문 번역은 누가 했는지 떠도는 글이라 잘 모르겠는데, 어떤 라틴 아메리카 작가는 자신의 글을 영어로 번역된 걸 읽을 때 감명을 받는다고 했다고 한다. 구글에 영어로 번역된 pdf 스캔본이 돌아다닌다.


Her presence changed my life. The house of dark corridors and dusty furniture was filled with air with sun, with green and blue reflections, a numerous and happy populace of reverberations and echoes. How many waves one wave is, and how it create a beach or rock or jetty out of wall , a chest, a forehead that it crowns with foam! Even the abandoned corners, the abject corners  of  dust  and  debris  were  touched  by  her  light hands. Everything began to laugh and everywhere white teeth shone. The sun entered the old rooms with pleasure and stayed for hours when it should have left the other houses, the district, the city, the country. And some nights, very late, the scandalized stars would watch it sneak out of my house.


(그녀의 존재는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어두운 복도와 먼지 쌓인 가구들의 집은 햇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녹색과 파란색의 반사, 수많은 행복한 반향과 메아리로 가득차 있었다. 하나의 파도는 얼마나 많은 파도인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벽, 가슴, 이마를 거품이 일게 만드는가! 버려진 구석, 먼지와 파편의 처량한 구석까지도 그녀의 가벼운 손에 닿았다. 모든 것이 웃기 시작했고 모든 곳에서 하얀 치아가 빛났다. 태양은 기쁨으로 옛 방에 들어가, 다른 집, 지구, 도시, 나라로 가야 했을 때 몇 시간 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아주 늦은 밤, 그 스캔들로 얼룩진 별들은 그것이 우리 집에서 몰래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 번역 파파고)


 If I embraced her, she would swell with pride, incredibly tall like the liquid stalk of a poplar, and soon thinness would flower into fountains of white feathers, into a plume of laughs that fell over my head and back and covered me with whiteness. Or she would stretch out in front of me, infinite as the horizon, until I too became horizon and silence. Full and sinuous, she would envelop me like music or some giant lips. Her presence was a going and coming of caresses, of murmurs, of kisses. Pluming into her waters, I would be drenched to the socks and then, in the wink of an eye, find myself high above, at a dizzying height, mysteriously suspended, to fall like a stone, and feel myself gently deposited on dry land  like a feather. 


내가 그녀를 안을 때 그녀는 자랑스럽게 부풀어 오르고, 포플러의 액체 줄기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커지다가 곧 가늘어져서는 하얀 깃털의 샘으로 꽃을 피우고, 내 머리와 등을 넘어져 나를 하얗게 덮는 웃음의 기세로 변할 것이다. 아니면 그녀는 내 앞에서 무한히 뻗어서, 내가 수평선이 되어 침묵할 때까지. 그녀는 음악이나 거대한 입술처럼 나를 감싸주곤 했다. 그녀의 참석은 애무와 속삭임, 입맞춤의 오락가락했다. 그녀의 물에 몸을 담그면, 나는 양말에 흠뻑 젖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현기증날 정도로 높은 곳에서, 불가사의하게 멈춰진 채, 돌처럼 떨어져, 그리고 깃털처럼 마른 땅에 부드럽게 내 자신을 느낀다.


모든 것의 양면성의 진실은 시간이 말해주던가. 이랬던 파도가...


At unexpected hours she roared, moaned, twisted. Her groans woke the neighbors. Upon hearing her, the sea wind would scratch at the door of the house or rave in a loud voice on the roof. Cloudy days irritated her; she broke furniture, said foul words, covered me with insults and gray and greenish foam. She spat, cried, swore, prophesied. Subject to the moon, the stars, the influence of the light of other worlds, she changed her moods and appearance in a way that I thought fantastic, but was as fatal as the tide.


이렇게 된다. 파파고는 이렇게 번역했다. 이번엔 고칠 것도 없네


(예상치 못한 시간에 그녀는 울부짖고, 신음하고, 뒤틀렸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이웃들을 깨웠다. 그녀의 말을 듣고, 바닷바람은 집 문을 긁거나 지붕 위에서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곤 했다. 흐린 날들이 그녀를 짜증나게 했다. 그녀는 가구를 부수고 욕설을 했고, 나를 모욕하고 회색과 녹색의 거품으로 덮었다. 그녀는 침을 뱉고, 울고, 욕을 하고, 예언을 했다. 달과 별, 다른 세상의 빛에 영향을 받아, 그녀는 내가 환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조류만큼이나 치명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기분과 외모를 바꾸었다. 번역- 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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