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유고상은 AI와 로봇에 대한 소재가 봇물을 이루었다. 제목만으로도 그렇다. 'OObot'이 제목에 들어가는 봇 소재 SF가 장편을 제외하고, 중편, 중단편, 단편 모두에서 후보작에 올랐으며 그 중 두 편은 수상작이다. 


마샤 웰스의 <All systems red>는 현재 <The Murderbot Diaries> 시리즈로 3편까지 나와 있으며, 마지막 편인 4편은 10월중 출간 예정이다. 곧 굿리즈와 아마존 등에서 좋은 반응이어서 곧 번역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중편인데다가, 영문판 이북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직접 원서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단 1편만 읽고 멈출 수가 없는 게 문제다. 














1편 <All Systems Red>는 SecUnit이라고 불리는 로봇이 어떤 행성에서 인간을 구하는 게 전체적인 스토리이다. 스토리상으로는 그닥 특별한 점은 없지만, 이 보안유닛의 행동이 굉장히 유니크하고 귀엽다. 더욱이 로봇의 시선으로 1인칭 화자가 진행하는 스토리이기에 인간이 만든 봇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 책의 매력이다. 특이할 것 없어 보이는 보안유닛은 알고 보면 유기적 부분과 기계적 부분이 섞여 있는 반로봇반인간 상태로, 의식이 있다는 설정이다. 감정을 느낀다는 설정이다. (상세한 이야기는 리뷰를 통해). 2편에 가서는 더욱 진지해지는데, 기계적으로 지워진 기억을 찾기 위해 안전한 '주인'을 떠나 뇌의 유기적 티슈에 얽혀져 남겨진 기억을 단서로 과거를 찾아 행성을 여행하는 부분으로, 이번에는 인간이 아닌 기계와 교감한다. 2편은 아직 1/5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1편에서 축적된 배경과 캐릭터와 쌓은 친분으로 더욱 사랑스러워진 murderbot의 행동이 더욱 흥미롭다. 



편이 Novella와 Novellete로 나뉘는데, Novella는 헐렁헐렁하게 편집하면 책 한권으로도 엮을 수 있을만한 분량이고, Novellete는 도저히 그거 하나로 책 한 권 냈다가는 욕만 디지게 먹을만큼 짧은 중편, 즉 단편과 중편의 중간정도 분량이다. 수잔 팔머의 <Secretes life of bots>는 Clarkesworld Magazine September 호에 실린 작품으로 해당 매가진의 온라인 판을 통해 인터넷에서 바로 읽을 수 있고, 팟캐스트로 오디오북까지 제공된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난 다용도 로봇은 자기가 비활성화된 동안 엄청난 시간이 흘렀으며, 그 엄청난 시간 속에서 봇들의 세계 역시 완전히 달라진 것을 알게 된다. 봇들은 전문화되었고, 자신에게는 보도 듣도 못한 봇넷이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수많은 봇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수세대만에 깨어나서 겨우 해충 퇴치 역할을 부여받은 봇9은 다른 봇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들이 탄 우주선과 승무원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 우주선과 충돌해 모두 파괴될 위험에 있음을 알게 되고 독자적 행동을 하는 내용이다. 


단편 부분에서 AI와 로봇 분야의 후보에 오른 작품은 Vina Jie-Min Prasad의 <Fandom for robot>이다. Uncanny Magazine Sep/Oct 2017에 실렸고, 역시 온라인 판에서 직접 읽을 수 있다. 이 잡지도 팟 캐스트를 통해 오디오북을 제공하는데, 이 작품은 오디오북으로는 제공되지 않는 듯하다. 내용은 50년대 제작된 지능형 로봇 로봇트론이 투박하고 오래된 지능형 로봇이라는 이유로 폐기되지 않고 살아남아 로봇 박물관에서 지각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쇼를 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던 중,  어떤 소녀의 질문에 답하지 못한 일본 애니를 조사하다가 그 애니에 빠져 팬픽도 쓰고, 인간과 교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챕터에서, 과학소설들이 지능과 의식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로봇에게 지능은 있지만 의식은 없다는 것이다. AI와 관련된 모든 영화와 과학 소설의 기본 플롯이 의식을 갖게 되는 마법적인 순간을 갖게 되고, 이후 인간과 로봇은 사랑(혹은 우정)에 빠지거나 로봇이 인간을 모두 죽이거나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틀을 휴고상의 세 후보작 및 수상작들은 극복했을까? 우선 <murderbot>을 보면, 이 SecUnit은 분명 의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굉장히 민감한 상태의 감정에 처하고, 그것을 표정으로 나타나는 것을 숨기지도 못한다. 이 소설에서의 '매직'이라면 2편에서 밝혀지는 것인데 단순 기계가 아니라 construct라 불리는 유기체와 기계의 합성체라는 사실이다. 결국 인간 생체적 신호를 처리하는 두뇌를 모방해 의식과 감정과 관련된 처리를 맡긴다는 것 같은데, 이 때문에 이 murderbot에게 더욱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두번째 소설에서는 단순 기계들로서, 네트웍을 통해 지식을 교환하는데, 거대한 선체를 가진 우주선 자체가 마스터 로봇이고, 그 마스터 로봇이 모든 로봇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설정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대하는 모든 기계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듯 인공지능 모듈을 심고 네트웍 연결을 통해 빅데이터와 연결하기에,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유사한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의식의 측면과 인간과의 관계 측면에서는, 하라리의 일반화에 반은 들어맞지만 반은 그렇지 않다. 봇들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데, 만일 우주선과 승무원을 구하는 일이 승무원들의 명령을 위반하는 일과 상호 모순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도 알고리즘이 처리할 수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의식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팬덤 오브더 로봇은 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과학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짧은 소설 속에 인간과 기계에 대한 교감을 담았다는 면에서 하라리의 귀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로봇이 팬픽을 쓰는 이유는 의식의 결과라기 보다는 머신 러닝의 결과라고 보는 게 더 합당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서만 볼 수 있는 오타쿠적 행위를 통해 기계와 인간이 교감하는 것은 시사하는 게 크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가졌다는 그 '대단한' 의식이란 게 결국 무엇이냐라는 문제로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Best Novel

  • The Stone Sky, by N.K. Jemisin (Orbit)
  • The Collapsing Empire, by John Scalzi (Tor)
  • Provenance, by Ann Leckie (Orbit)
  • Six Wakes, by Mur Lafferty (Orbit)
  • Raven Stratagem, by Yoon Ha Lee (Solaris)
  • New York 2140, by Kim Stanley Robinson (Orbit)

Best Novella

  • All Systems Red, by Martha Wells (Tor.com Publishing)
  • “And Then There Were (N-One),” by Sarah Pinsker (Uncanny, March/April 2017)
  • Down Among the Sticks and Bones, by Seanan McGuire (Tor.Com Publishing)
  • Binti: Home, by Nnedi Okorafor (Tor.com Publishing)
  • The Black Tides of Heaven, by JY Yang (Tor.com Publishing)
  • River of Teeth, by Sarah Gailey (Tor.com Publishing)

Best Novelette

  • “The Secret Life of Bots,” by Suzanne Palmer (Clarkesworld, September 2017)
  • “Wind Will Rove,” by Sarah Pinsker (Asimov’s, September/October 2017)
  • “A Series of Steaks,” by Vina Jie-Min Prasad (Clarkesworld, January 2017)
  • “Extracurricular Activities,” by Yoon Ha Lee (Tor.com, February 15, 2017)
  • “Children of Thorns, Children of Water,” by Aliette de Bodard (Uncanny, July-August 2017)
  • “Small Changes Over Long Periods of Time,” by K.M. Szpara (Uncanny, May/June 2017)

Best Short Story

  • “Welcome to your Authentic Indian Experience™,” by Rebecca Roanhorse (Apex, August 2017)
  • Fandom for Robots,” by Vina Jie-Min Prasad (Uncanny, September/October 2017)
  • “The Martian Obelisk,” by Linda Nagata (Tor.com, July 19, 2017)
  • “Sun, Moon, Dust” by Ursula Vernon, (Uncanny, May/June 2017)
  • “Carnival Nine,” by Caroline M. Yoachim (Beneath Ceaseless Skies, May 2017)
  • “Clearly Lettered in a Mostly Steady Hand,” by Fran Wilde (Uncanny, September 2017)

출처(http://www.thehugoawards.org/hugo-history/2018-hugo-a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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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9-13 15:58   좋아요 0 | URL
대적하는건 한 물 간 SF 적 공상인 거 같고요(하라리 선생도 동의) 보다는 인공지능을 독점하는 자의 윤리에 좌지우지할 위험성이 있겠죠 ^^
 
베어타운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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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드릭 배크먼의 소설을 꽤 많이 읽었다. 읽은 책의 개수 만큼 광팬이라 할 수는 없는데, 알고 보니 국내 출간된 저자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거의 전 작에 걸쳐서 배크맨의 고유한 문체가 약간 닭살돋는다고나 할까, 취향에는 조금 안맞는 다고도 할 수 있는 문체적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러한 특징은 결국 읽을 때나 또 읽고 나서 인간에 대한 따스함과 연결되기에 대체로 만족감을 느낀 것 같다.


이번 책은 다른 책과는 조금 달리 주제 자체가 무겁고 어두운 내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닭살스러운 문체의 유지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조금은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던 전작들에 비해 몇가지 큰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사회적 민감성과 범위가 전례없이 넓고 크고 진지해졌다. 크게 보면 작은 마을의 폐쇄적인 스포츠 문화와 십대의 강간이라는 큰 주제로 요약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너무 많은 생략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


베어타운이라는 문화의 폐쇄성은 눈으로 뒤덮힌 그림처럼 아름다운 꽝꽝 얼어붙은 북구의 시골마을이라는 우리의 편견적 환상을 가차없이 무너뜨린다. 북구의 작은 마을에서 연상되는 웰빙 라이프 역시 상상속의 판타지였음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토록 잘 사회안전망이 잘 구축되고 정비된(되었다고 하는) 그곳의 사회 곳곳에서 자본의 규칙이 배제될 리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공장에 나가 일을 하고, 마을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하키팀을 응원한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 스케이트를 함께 배우는 아이들은 하키에 모든 걸 건다. 이 마을에서 하키는 가난하고 고립된 작은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위안이자, 자존심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볼 때 이 마을에서 하키는 폭력이기도 하다. 하키를 하던 여자 아이들은 십대가 지나면 플레이를 하는 대신 응원을 하고, 하키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괴짜로 취급받기도 한다. 마을의 권력은 하키팀을 후원하는 사람들에 집중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은 하키팀의 관점에서 해결된다.


마을 사람들이 거의 모두 무대에 등장할 정도로 많은 등장 인물이 자신만의 고유의 번민과 사연을 가지고 등장하는데 이 때문에 인물들이 헷갈려 가독성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의 크고 작은 사연들은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동력이 된다. 분명 커다란 주제와 몇몇 두드러진 등장 인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개별 인물들의 사연들은 그저 주변의 백그라운드 형성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하키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 얽혀 있으며, 한결같이 마을의 하키팀의 흥망성쇠에 운명이 걸쳐져 있다.


탕탕탕 이 반복적인 구절이 자주 거슬렸고, 너무 많은 인물의 등장과 사소한 사건들의 나열로 인해 중간에 좀 흥미를 잃었었으나, 만족스런 결말이 전체적인 독서를 대만족 상태로 결론내도록 이끌었다. 강간을 당하고도, 그 대상이 마을의 가장 유망하고 가장 인기있고 가장 부유한 집안의 하키 선수라는 점 때문에, 무차별한 폭격인 2차 피해를 당하는 소녀가 안타깝지만, 끝내 마을을 떠나지 않고 복수를 결심한 소녀의 행동을 아슬아슬하고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던 마음이 통쾌한 복수와 한 두 사람에서 시작한 진실 밝히기가 이후 마을 사람들의 작은 변화로 이어지던 모습이 참으로 따뜻하고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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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두 권 따로 출간되었는데, 종이책은 품절이고, 이북은 알라딘에서는 두권 세트(2만2천원)와 2편(1만1천원)만 팔고 있다. 이북은 PDF 파일이라 폰이나 리더기로는 읽기 불편하고 창문짝 만한 PC 스크린으로 즐겁게 읽었다. 가족이 차를 몰고 유라시아와 남미 여행을 1년간 하는 과정을 사진과 함께 적은 여행기이다. 1편은 유라시아, 2편은 남미다.






1편 유라시아



넓디 넓은 유라시아 동쪽 끝 우리나라는 반도에 자리잡고 있지만 남북으로 갈라져 통행이 금지된 덕에 섬 아닌 섬나라다.  육로 이동은 좁은 남쪽 땅덩어리에서 동서로 300km 남북으로 400km가 최대 범위다. 유럽에서 캠핑카와 차로 자유롭게 타국을 여행하는 게 보편화된 것처럼 통일이 되면 차를 몰고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이 일도 아닐텐데 내가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올지 내 아들이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올지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 참으로 궁금하다. 이제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과 실향민의 세대도 끝나가고 다음 세대에는 더욱 절실함은 사라질테고 남북 대치 국면을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므로 통일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지척에 있으니 서로 자유롭게 왕래라도 하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렇게 섬 아닌 섬에 살지만 잘 살펴보면 차로 대륙 횡단을 하는 방법이 있다. 동해시에서 배를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차를 싣고 간 다음 거기에서 유럽까지 러시아와 몽골, 중앙아시아를 경유하는 방법이다. 저자 이름이 가수 조용필과 같은데, 조용필은 랜드로버에 본인 포함 가족 3인과 캠핑장바들을 배에 싣고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건너가 시베리아 ㅡ 몽고 ㅡ 중앙 아시아 ㅡ 러시아 ㅡ 발트 3국 ㅡ 동유럽 북유럽 ㅡ 서유럽 대충 이런 순으로 여행했다. 4월말에 시작한 여행이 70일동안 2만1천 km를 달려 모스크바에 도착했고 이후 영국을 끝으로 유럽을 돌았을 때가 7,8월. 그동안 타이어는 최소 6차례 이상 교환 서스펜션이니 뭐니 하는 부품들도 차례로 고장나고 중앙 아시아에서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깡패 경찰들에게 부당하게 돈을 뜯꼈고 바르셀로나에서는 아예 주차한 동안 차 내의 소지품을 거의 다 도난 당해 엄청난 피해를 보기도 했다. 



가장 아슬아슬했던 건 키르기스탄인가 하는 곳에서 가족들이 먼저 도보로 국경을 통과한 후 운전자에게 자동차용 서류를 요구해서 생이별을 해야 했던 순간이다. 뭐 휴대폰 같은 게 있으니까 어떻게든 연락이야 되었겠지만 한 사람은 차와 함께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나갔기 때문에 다시 들어오지 못해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니 이게 무슨 아찔한 순간인가. 2015년 4월 19일에 출발할 때 그의 블로그 회원은 손에 꼽혔으나 이 책에는 소개되지 않고 다음권에 계속되는 남미 북미 여행을 끝냈던 같은 해 10월 19일에는 4천명으로 늘어 있었다. 블로그 독자들은 저자가 한국인으로서는 거의 처음 시도하는 자기 차로 직접 운전하는 여정을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었을 것이므로 빠르게 입소문을 탔을 것이리라. 


사진 위주라 비슷한 여행을 꿈꾸거나 대리만족이라도 얻으려는 독자에게는 종이책을 추천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2016년 출간인데도 품절중이시다. 여행서는 정보 업데이트가 안되면 정보가 무가치해지니 다시 찍을 때는 신중해야 하지만 이 책은 사실 여흥 정보책이라기 보다는 여정을 따라 사진과 경험을 쓴 글이기에 그럴 염려는 안해도 될거 같은데 말이다. 차로 하는 다른 여행 책자가 더 많이 나왔을 수도 있겠다.


내용상으로 보면 사실 유럽 부분은 널리고 널린 다른 여행서들과 크게 차별화된 점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행의 초반부에 해당하는 동해에서 중앙 아시아 몽골 여정은 다르다.  고화질 짱짱 티브이에서 많은 준비와 현지 도우미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찍어 내보내는 정제된 여행 프로그램은 많이 접하지만 이 책에서 주는 것은 개인이 직접 부딛치고 얻은 값진 개인 자동차 여행이라는 경험과 정보다. 50차선에 몽골 초원을 달리거나 고원 터널이라는 곳이 포장도 안되어 있고 경사로 웅덩이에 구불구불하고 조명도 없는 곳을 지날 때의 아짤함을 그리고 해발 4천미터에서 차가 고장나고 고산증에 걸리고 하는 경험들은 유럽뿐만 아니라 동유럽이나 러시아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극오지의 경험이다. 




2편 남미


4개월의 유라시아 여행을 마치고 10월 런던 틸베리 항에서 브라질로 차를 선적, 운임, 관세, 수수료, 벌금, 컨테이너 사용료, 등을 합해 예상의 서너배가 넘는 천만원 넘는 비용을 지불(중고로 차를 하나 사는 편이 나을 것 같음..) 후, 모로코와 쿠바 여행후 브라질 리우에 차를 찾으러 갔는데, 통관문제로 3주나 발이 묶인다. 차를 몰고 리우를 떠난 날은 12월 22일. 이 때부터 남미 중미의 도시와 유적지 및 자연풍광을 거쳐 1년여를 총 9만킬로미터를 차를 몰고 여행을 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까지는 다른 남미 나라들에 비하면 그나마 치안이라던가, 공무원의 부패나, 도로 사정 같은 게 그나마 덜 나쁜 듯했다. 자연 풍광도 아름답고.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내용이 여기저기 들른 곳에 대한 자연에 대한 감상과 이 주를 이룬다.


칠레에서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가는데 출국사무소가 없어서 되돌아간다. 차도 슬슬 고장나기 시작이다. 페루의 해발 3,800 티티카카 호숫가 언덕 고산 도시 푸노에서는 차가 고산병에 걸려 ,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에콰도르 지붕열차를 타려고 먼 길을 돌아갔는데 매일 출발한다는 블로그 및 여행 서적 정보와 달리 매주 수요일 한차례로 축소되었다. 여행가려면 블로그나 서적을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된다. 나도 전에 말레이지아에서 몰라카 가는 차를 타려고 새로 산 여행서를 참조해서 찾아간 곳이 엉뚱한 곳이어서 반나절을 낭비한 적이 있는데,  여행와서 반나절이면 호텔과 여정을 생각할 때 무지무지하게 비싸게 지불한 그곳에서의 시간을 낭비한 셈이다. 



타이어 교환시 막내 아들이 크게 다칠뻔 하게 할 뻔 했던 차가 드디어 콜롬비아 첩첩산중에서 멈춘다. 겨우 마을까지와서 정비소 찾았으나, 안된다고 해서, 수십km 떨어진 큰 마을에서 견인해갔으나 거기서도 불가능, 하루종일 정비소를 뒤졌으나 실패하고 몇일만에 다른 견인차로 세번째로 큰 도시 칼리까지 가서 수리를 알아본다. 문제는 이 메이커 차가 이 나라에 귀하다는 것이다. 여행포기해야 할 상황까지 이르렀으나 그 와중에 국내의 많은 분들에게서 연락을 받고 힘을 얻어  5일만에 보고타로 가서 가까스로 수리에 성공한다. 실시간 블로그와 익명의 이웃의 힘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렇게 천신만고끝에 하는 여행이지만, 천만다행인 건 에콰도르 지진을 피했다는 것이다. 후에 묵었던 호텔 인근 산이 다 무너져 내렸다. 다치거나 갇히지 않아 다행이다. 이제까지도 중남미에서 개고생을 했지만 진짜로 개고생 길이라고 불리는, 길이 없는 구간, 다리엔 갭을 통과해야 콜롬비아에서 육로로 파나마로 이동할 수 있다. 더 위험한 이유는 게릴라 반군의 주된 활동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결국 컨테이너에 싣고 파나마로 보낸다. 선박회사는 개인과 거래 하지 않아 많은 비용, 복잡한 절차, 검색 등이 필요한 에이전시를 이용하게 된다. 차를 파나마로 보내고 났더니 이번엔 파나마로 입국하기 위해 공항 발권에서부터 말썽이다. 파나마에서 출국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결국엔 쓰지 않을 티켓을 사람 수대로(4인 가족) 구입하는 일도 생겼다. 



앉을 곳도 없는 파나마 세관에서 차량 임시 반입 허가서 한장을 받기 위해 75분 벌서고 있는 건, 애교에 불과하다.  몇일 있을 나라에서 6개월짜리 자동차 보험을 가입해야 했고, 이틀동안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13개의 스탬프와 서류를 받고 엄청난 수수료 지불 후 겨우 세관에서 에서 차를 인수하게 된다. 개고생길을 포기한 것에 대한 대가다. 



중남미가 전체적으로 다 치안이 나쁘지만 멕시코는 경찰 마저도 위험하며, 산적 떼강도 권총강도가 온갖군데서 출몰하니 조심하라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얘기를 듣는걸 보니, 멕시코 여행도 아웃이다. 세관원들은 외국인이 봉이다. 20일후 출국하는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180일 입국 필증을 찍고는 180일어치의 출국세 요구하는 센스. 듣던 중 반가운 소식 하나. 지나가다가 우연히 랜드로버 서비스 센터에 들렀다가 대접 받고 광고까지 찍는다. 한국서 올만큼 차가 튼튼하다는 것과, 서비스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는 광고 내용까지 보태서. 그래서 광고비는 받았는지 모르겠다. 선물은 받았다고 하던데.


과테말라에서는 담당자 퇴근해서 입국 통관이 안돼 보세 구역(? 면세구역 말하는 듯)에 텐트를 치고 자는 일도 생긴다. 이런 남미에 있다가 미국으로 간 일행은 쾌적함에 한 숨 돌리지만, 워싱턴에서 무장 경찰에게 포위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일대 교통은 마비되고 건물 위의 총들이 차량을 겨누는 상황까지 마주친다. 차는 견인되고 워싱턴 시내 진입은 금지되었다는 딱지와 함께 되찾는다. 주차장 찾는 모습에 수상한 차량으로 몰려 생긴 일이다. 그러고보니 그 위험한 나라들에서도 총을 겨눈 사람은 없었는데, 미국이란 나라가 가장 무섭다. 


미국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한국. 450일 만에 집으로. 인천세관은 15개월동안 거친 세관중 가장 친절한 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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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9-11 10:28   좋아요 2 | URL
저도 가족 1인이랑 블라디보스톡 출발 바이칼 호수까지 가는 계획을 세웠는데, 차량 고장 얘기에 찌글어져있어요

카알벨루치 2018-09-1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대단한 분들이네요! 제 지인중에도 이탈리아 관광갔다가 지갑이랑 폰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구요 맥도날드에서~치안과 위생수준이 엉망이라고 하던데~ㅎ

CREBBP 2018-09-11 10:29   좋아요 1 | URL
유럽의 주요 관광지들에서 개인 여행중 돈 안잊어버린 사람을 거의 못본 것 같아요 ㅋㅋ
 
한권으로 읽는 의학 콘서트
이문필.강선주 외 지음, 박민철 감수 / 빅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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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약 70~80년간의 평균 수명이 보장된 건 불과 200년 사이의 일이다. 평균수명은 19세기 중반까지 30년대였다고 한다. 평균 수명의 연장은 한 세대 한세대 거쳐 서서히 진행되었기에 예수탄생이나, 철, 종이 화약 인쇄술 같은 것의 발명과 같이 인류사의 대박 사건으로 손에 꼽힐 수는 없었으나, 전체 인류 문화사를 통틀어볼 때, 이처럼 의료가 개인이 생명을 노후까지 보장하는 때가 없었으니, 이렇게 되기까지 인류사에 있어서 의학은 어떻게 발전 혹은 변화하여 왔는지 여러가지 궁금할 때가 많다.  


요즘은 어린 영아 시기부터 생명과학과 관련된 지식들을 접하기에, 19세기까지 의사들도 몰랐던 기본적인 위생 개념과 의학지식을 언어를 습득하듯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알고 태어난 듯 당연히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 심장박동, 혈액 순환, 위연동운동과 위액,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이런 것의 작동원리와 존재를 알기 시작한 것은 수천년의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단 200년 전부터의 일이다. 그 전까지 몸의 동작은 보이지 않는 '신의 섭리'였다. 과학 혁명의 시대에 수많은 의료인이 혁명적 아이디어를 보태던 18세기, 19세기까지도, 일반인에게 의사는 마차나 기차를 타고, 자신이 가진 의료백에 있는 보잘것 없는 기구와 진통제를 비롯한 몇몇 약 중 하나로 처방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지식이 공유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이 책을 통해 긴 인류 인류 문명의 의료 행위의 세계사를 살펴보니, 최근 100~200년 이전의 의료는 그저 스스로 '의사'라고 칭한 사람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점에서 19세기 이후 혈액순환원리발견, 신경기능의 발견, 뢴트겐의 X 선 발명, 종균법과 면역학, 현미경의 발명과 세포의학, 파스퇴르의 백신 개발 등 연이어 발생한 의학계의 사건들은 혁명적이다. 그 중에서도, 통계를 의학에 접목하여 의학통계의 아버지로 불린다는 피에르 루이스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의학적 실험은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하므로, 과학실험과는 달리 마구 실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록과 분석을 통해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수치적 통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이 피에르 루이스이다.  질병 표본을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꾸준히 조사해야 하며 효과는 수치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이런 주장으로 이전까지 의사 맘대로 아무 제약 없이 독약도 사용가능했던 치료 방법이 근본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그전까지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던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사혈요법의 무익성을 알린 것도 그가 통계를 통해 그 사실을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문명이 발생한 곳에 전쟁과 질병이 있었고, 삶을 구하는 행위가 의료행위였으므로, 생물학 구조와 지식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간의 몸은 블랙박스였을 터다. 기독교 전파 이전, 고대 이집트, 히브리, 인도 메소포타미아, 중국 그리스 로마에이르기까지 의학은 신앙적 성격이 융합되긴 했으나, 나름대로 과학적 가설하에 인체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긴 시간동안 축적된 경험으로 약초와 침술 사혈 등이 임상적 효과를 보고 있었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의학의 맥이 끊긴건, 기독교가 인간의 정신 뿐만 아니라 지식, 사회, 제도 등 모든 것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과학과 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세의 암흑기에 마녀사냥과 주문 등으로 병을 대할 때 고대 의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건 아랍과 페르시아 쪽이다. 알다시피, 성경은 정신병의 원인을 마귀로 설명한다. 그래서 의료 행위는 마귀를 쫒는 의식이었고, 여기에는 온갖 고문, 화형과 교수형도 포함되었다. 20세기까지도 성경에 여성은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고통받아야 하기 때문에 출산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마취제를 사용하는 것을 종교계가 반대했다고. 종교가 어디 도움이 되었다는 소리를 어느 역사서에서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제목이 '한권으로 읽는 의학콘서트'로 되어 있는데, 독자로서 부제를 붙여보면 '세계사 속의 의료인' 혹은 '의료위인전의 세계사' 쯤으로 붙여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즉 이 책은 세계사 전체를 훑으며 방대한 양의 의료계의 주요 인물들을 소개한다. 너무 많은 의료인이 등장해서 의료인 사전 비슷한 느낌도 든다.  그렇다고 사전식으로 주요 정보만 압축해서 보여주는 건 아니고,  마치 어린이 위인전처럼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자랐고, 저서가 무엇무엇이 있고, 누구의 제자였고 이런 깨알같은 정보가 촘촘히 박혀져 있다. 


따라서, 잘 정리된 의료과학적의 역사를 기대했던 전문인들에게는 두서가 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텐데, 일반인에게는 따라가기 힘든 전문적 내용만 나오는 것 보다는 이런 의료인들의 삶에 있어 크게 의료부분과 관계가 없을 수도 있는 부수적인 이야기가 읽기를 용이하게 해줄 수도 있다 하겠다. 맥락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여러 인물들을 짧게 정리한 위인전처럼 시대별로 엮은 듯한 느낌이 아쉬웠다. 


편집 면에서는 20명 저자들의 소개가 전혀 없어, 정보의 신뢰성에 의문을 줄 소지가 있다는 점과, 레퍼런스가 전혀 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무슨 논문도 아닌데 문단 마다 레퍼런스를 미주에 표시해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읽으면서 의심이 가거나 흥미로운 부분이 생기면 어디서 더 정보를 찾을 수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도록,  또한 내가 알고 있던 부분과 다른 거나 이상하다 싶은 부분이라도 생기면 그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과학서적이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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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문학동네 2015년 봄호에 처음 발표한 소설인데, K 시리즈의 단행본으로 영역본과 함께 나온 이후, 한승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상작품인 <한정희와 나>와 함께 실렸고, 이후 이기호 소설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비로소 이기호의 단편들이 한꺼번에 묶여 나왔다. 나는 한승원문학상수상작품집 <한정희와 나>에 실린 작품을 읽었고, 이기호의 작품들이 모두 그렇지만, 이 단편이 특히 인상적이어서 기록을 남긴다. 


집 바로 앞에서 허름한 텐트를 치고 거기서 먹고 자면서  1인 시위를 하는 권순찬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여름에 시작한 일이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도 해결될 기미가 없고, 춥고 불편한 권순찬을 걱정하는 ‘착한’ 마을 사람들은 그의 일을 해결해주기 위해 십시일반한다. 알고 보니 권순찬의 사연은 이렇다. 얼마전 죽은 양어머니가 사채를 갚아달라며 주고 간 계좌로 뒤늦게 700만원을 넣고 나니, 이미 어머니가 입금을 한 상태여서 중복 입금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채업자는 연락 두절이고, 수소문한 끝에 주민등록상의 주소로 찾아온 곳이 사채업자 대신 그 사람의 어머니가 살고있는 지방 소도시의 아파트로, 화자 역시 이곳에 살고 있다.


사채업자의 행방을 모르는 권순찬은 사채업자의 어머니가 사는 그 아파트 앞에서 텐트를 치고, 잘못입금된 돈 700만원을 돌려달라며 시위를 시작한다. 7월에 시작하여 8월이 지나고 찬바람에 보일러를 때야 하는 계절이 되도록 권순찬이 찾고 있는 사채업자는 나타나지 않고, 영문도 모른 채 근근히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채업자의 어머니는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오며 가며 딱한 사정을 듣고 전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스티로폼이랑 박스 같이 도시 야영에 필요한 것들을 주워다 주고, 혼자 사는 분의 빈 방에 거처를 마련해 주기도 하고, 또 파트타임 청소 일자리까지 주선해주는 등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지만, 사채업자는 나타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권순찬이  추운 겨울에 어떻게 될까봐 걱정이 가득한 마을 사람들은 올해의 불우이웃돕기 성금 대신 돈을 걷어 그에게 건네며, 사채업자의 어머니가 주는 돈이라 생각하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남의 돈을 두번이나 받고 연락 두절된 사채업자와 그의 어머니에게는 큰 잘못은 없어보인다. 사채업자로서는 통장에 돈이 두 번 들어왔으니까, 이게 웬 떡이냐 했을 텐데,  권순찬의 어머니가 이미 죽은 마당에 연락처를 찾기 어려워 되돌려 주기 어려웠을 거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또 그건 그쪽 사정이고 확인도 않고 송금한 권순찬 잘못 역시 없어 보이지는 않지만, 이중 입금된 돈을 되돌려 받으려고 몇달간 노숙을 하는 신세는 처량하다. 


건강 때문에 사채를 쓰고, 그걸 못갚아 오랫동안 만나지 않던 양아들을 찾아가 부탁했다가 결국 자기 손으로 갚고 자신은 자살한 권순찬의 양어머니도 참으로 시대가 감추고 싶은, 암울한 뒷골목 풍경아닌가. 사채업자 어머니의 이름으로 건네는 마을 사람들의 돈을 눈물 겨운 친절로 받아들이고 감사를 드리고 떠났다면 모두에게 행복한, 오래도록 기억될 훈훈한 일화가 되었을 사건이다. 하지만, 착하고 순박한 권순찬이, 착한 마을 사람들의 호의로 잃어버린 돈을 쥐어주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 그런 훈훈 장면은 연출되지 않는다. 


애시당초, 그들의 그 착한 모금 운동의 모티브가, 사채업자를 만나 직접 해결하고자 했던 권순찬의 목적과는 달랐었다는 걸, 그 글이 안써져서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내고, 애꿎은 술에게 화풀이를 했던 (화자인) 교수 양반도, 권순찬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려고 했던 착한 마을 사람들도 알지 못했다. 


선함, 착함 이런 것은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불편함을 씻어버리고픈 행위일 수 있다. 교수가 권순찬의 멱살을 움켜쥔 이유는 그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아파트 근처에서 노숙하는 일을 겨울이 될 때까지 봐야 하며, 이렇게 훈훈(하다고 생각했던)한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겨우 술을 끊고 글을 쓸만한 상태가 되었다가 다시 그 막막했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원인이, 이 먼지같은 남자가 내 인생 내 삶의 언저리에서 눈에 보이게 알짱거리는 채로 추운 겨울을 맞게 될 것에 대한 불편함인 것이다.  그는 애초에 청소 안한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먼지처럼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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