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브 2
모리 에토 지음, 오유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다이빙? 모리 에토의 작가의 <다이브>를 읽고 있으니 베이징 올림픽에서 봤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박태환 선수의 시합을 보려고 티비를 틀다가 보게된 모습은, 수영처럼 긴 레이스의 시합도 아닌 짧은 순간에서의 낙하였다. 1.4초 동안 다이빙 대에 올라선 소년들의 이야기는 마치 자신들의 인생에서 '다이빙'을 떼놓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만큼이나 읽고 나니 마음에 훈풍이 불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요이치, 사부키, 도모키 세녀석의 다부진 노력은 누가 올림픽 티켓을 따느냐보다는 그 순간 얼마나 최선을 다해 다이브를 했냐는 것이다.



" 하지만 그건 다이빙만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일이든 다 그래요. 시부키 형은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욌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루하루 늘 누군가에게 채점당하면서 살아요. 풀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심사 위원들이 있고, 그렇게 하면 앞으로 잘 살 수 있다는 모범 답지가 있다고요.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어쨌듯 난 그런 것들을 다이빙으로 뛰어넘고 싶어서 시합에서 이긴다든가, 만점을 받는다든가, 그런 게 아니예요. 언젠가 나만의 순간, 최고의 순간, 모든 걸 뛰어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을 갖고 뛰는 거예요." - p. 156

세 녀석들을 보고 있으니 지금은 쉬고 있지만, 작년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점이 하나 있었다. 처음 배울 때 호기심과 재미를 넘어서면 어느 순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때가 있다. 이제는 운동에 대한 재미가 아니라 땀방울을 흘리며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순간,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나는 계속 '제자리걸음'으로 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똑같은 출발선이라 할지라고 운동을 하다보면 누군가는 몸이 유연해서 그 동작을 잘 따라하지만 누군가는 뒤처진다. 감각이라 해야 할지, 타고난 것이라 해야 할지....아쉽게도 나는 몸치에 가까워서 다른 이들이 몇 번만 하면 익히는 동작을 한 달이상 반복했던 적도 있었고 극복을 못한 동작도 있었다. 그래서 뛰어난 세녀석의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몹시 부러움의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운동을 했을 때 선생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땀은 절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흘리는 땀방울에 따라 실력이 바뀌는 것처럼 요이치와 시부키의 우월한 유전자에 비해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꾸준히 연습한 도모키의 모습이 절로 연상되었다.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것, 누군가가 노력하지 않는 그 시간에 자신을 던지는 무언가. 그건 아마도 우리가 부르는 '열정'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것이 비단 운동선수 뿐만 아니라 삶에 모든 것이 그렇게 비춰지듯 다른이들과 경쟁하는 것과 더불어 나 자신과의 싸움일 것이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몸을 쓰고, 다듬고 다듬어서 하게 만드는 것. 자신의 의지이면서 한계가 아닐까.

요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을 갖고 있던 요즘 모리 에토의 <다이브>를 읽으면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찾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나의 한계에 부딪혀 있다.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나만의 한계를 도전하면서 부딪치고, 싸워야 하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음에도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온 몸에 열이나도 끝까지 시합에 임했던 요이치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아픈 허리에도 불구하고 다이빙을 놓지 않았던 사부키의 모습이,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다이아몬드 눈동자를 가진 도모키가 4회전 반을 넘어선 것처럼 나또한 놓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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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1
모리 에토 지음, 오유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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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이빙? 모리 에토의 작가의 <다이브>를 읽고 있으니 베이징 올림픽에서 봤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박태환 선수의 시합을 보려고 티비를 틀다가 보게된 모습은, 수영처럼 긴 레이스의 시합도 아닌 짧은 순간에서의 낙하였다. 1.4초 동안 다이빙 대에 올라선 소년들의 이야기는 마치 자신들의 인생에서 '다이빙'을 떼놓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만큼이나 읽고 나니 마음에 훈풍이 불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요이치, 사부키, 도모키 세녀석의 다부진 노력은 누가 올림픽 티켓을 따느냐보다는 그 순간 얼마나 최선을 다해 다이브를 했냐는 것이다.


" 하지만 그건 다이빙만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일이든 다 그래요. 시부키 형은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욌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루하루 늘 누군가에게 채점당하면서 살아요. 풀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심사 위원들이 있고, 그렇게 하면 앞으로 잘 살 수 있다는 모범 답지가 있다고요.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어쨌듯 난 그런 것들을 다이빙으로 뛰어넘고 싶어서 시합에서 이긴다든가, 만점을 받는다든가, 그런 게 아니예요. 언젠가 나만의 순간, 최고의 순간, 모든 걸 뛰어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을 갖고 뛰는 거예요." - p. 156

세 녀석들을 보고 있으니 지금은 쉬고 있지만, 작년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점이 하나 있었다. 처음 배울 때 호기심과 재미를 넘어서면 어느 순간,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때가 있다. 이제는 운동에 대한 재미가 아니라 땀방울을 흘리며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순간,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나는 계속 '제자리걸음'으로 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이었다.

똑같은 출발선이라 할지라고 운동을 하다보면 누군가는 몸이 유연해서 그 동작을 잘 따라하지만 누군가는 뒤처진다. 감각이라 해야 할지, 타고난 것이라 해야 할지....아쉽게도 나는 몸치에 가까워서 다른 이들이 몇 번만 하면 익히는 동작을 한 달이상 반복했던 적도 있었고 극복을 못한 동작도 있었다. 그래서 뛰어난 세녀석의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몹시 부러움의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운동을 했을 때 선생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땀은 절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흘리는 땀방울에 따라 실력이 바뀌는 것처럼 요이치와 시부키의 우월한 유전자에 비해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꾸준히 연습한 도모키의 모습이 절로 연상되었다.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것, 누군가가 노력하지 않는 그 시간에 자신을 던지는 무언가. 그건 아마도 우리가 부르는 '열정'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것이 비단 운동선수 뿐만 아니라 삶에 모든 것이 그렇게 비춰지듯 다른이들과 경쟁하는 것과 더불어 나 자신과의 싸움일 것이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몸을 쓰고, 다듬고 다듬어서 하게 만드는 것. 자신의 의지이면서 한계가 아닐까.

요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을 갖고 있던 요즘 모리 에토의 <다이브>를 읽으면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찾게 되었다. 나는 지금 나의 한계에 부딪혀 있다. 누군가 도와줄 수 없는 나만의 한계를 도전하면서 부딪치고, 싸워야 하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음에도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온 몸에 열이나도 끝까지 시합에 임했던 요이치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아픈 허리에도 불구하고 다이빙을 놓지 않았던 사부키의 모습이,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다이아몬드 눈동자를 가진 도모키가 4회전 반을 넘어선 것처럼 나또한 놓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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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2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아버지는그 도시를 '강가의 대저택'이라고 불렀다. 도시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을 말한다. 그곳 출신인 아버지는 도시를 늘 자랑스러워했다. 찰스턴은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도시였다. 거리들은 좁지만 매혹적이었고 걷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주곤 했다. 그 도시는 아버지 삶의 이야깃거리였고 조용한 강박이었으며 생애의 강렬한 사랑이었다 - p.6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남동부에 있는 도시 찰스턴을 배경으로 한 <사우스 브로드>를 읽는 순간, 아 하고 감탄을 할 만큼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날실과 씨실이 잘 엮어지듯 찰스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올지는 몰랐다. 사실, 팻 콘로이라는 작가가 쓴 작품에 눈길을 끌기 보다는 미국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라는 점이 더 시선이 갔다. 미국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전형적인 미국인의 삶과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작품을 이전까지 만나보지 못한 터라 '오호!'하는 탄성을 외치며 책을 읽었다.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 킹이 찰스턴에서 태어나 토박이로서 보여지는 삶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나 또한 서울에서 살고 있고, 내가 살았던 곳과 떨어져 산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서울 토박이라는 말 보다는 '고향'에 가까운 삶의 토박이들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관문적인 중심도시가 아닌 레오가 살고 있는 찰스턴 같은 도시 같은 곳처럼.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도시, 찰스턴은 남북전쟁의 발단이 된 도시였던 만큼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이 큰 도시였다. 계급적인 편견과 종교간의 갈등은 미국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갈등의 차를 잘 보여준다.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레오는 많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자신에게 보호막이 되었던 자랑스러웠던 형의 죽음이 그를 아프게 했고,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걷어냈을 만큼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시간이 흘러 그가 인종과 계층에 관계없이 사귄 벗들과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내고 성장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1권에서 빠른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이야기의 주축이 점점 더 방향을 옮겨갔다. 특히 레오의 이야기와 더불어 레오의 부모님 재스퍼와 린지의 사랑이야기가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왔다.

물이 흐르듯 시간의 흐름따라 거슬러간 이야기는 퍼즐이 맞춰지듯 이어나가는 점이 점점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번역된 문장이 아름답거나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이야기의 구조와 짜임새는 참 좋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불현듯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 장면이 떠올랐다. 왜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도 모르겠어.'라고 읊조리듯 이야기 하겠지만 어쩐지 찰스턴을 배경으로 한 일대기를 그린 모습은 여지 없이 그 영화를 떠올리고 말았다. 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계층간의 갈등은 물론 그들이 즐겨읽은 문학까지 세세함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런 세세함에 나는 반했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찰스턴이라는 도시를 가보고 싶었다. 찰스턴이라는 도시에서 레오를 둘러싼 성장기는 그 속에서 우정과 사랑과 결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혹은 '어른'이 거쳐야 될 일들이 벌어지는 모습에서 나는 인간이란 결국 같은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세계 어디서든, 시간의 흐름이 바뀌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같은 것이라고.

어렸을 때는 '희망'을 노래하고 바랬다면, 지금은 무엇이든 완벽한 것은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부터 '영원'하다는 말을 믿지 않았을 때부터. 어른이 된다는 건, 성장한다는 건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때로는 즐거움을 느끼다, 때로는 사색에 빠지기도 했던 책이었다. 콘로이의 작품을 처음 읽었지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 만큼 멋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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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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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버지는그 도시를 '강가의 대저택'이라고 불렀다. 도시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을 말한다. 그곳 출신인 아버지는 도시를 늘 자랑스러워했다. 찰스턴은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도시였다. 거리들은 좁지만 매혹적이었고 걷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주곤 했다. 그 도시는 아버지 삶의 이야깃거리였고 조용한 강박이었으며 생애의 강렬한 사랑이었다 - p.6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남동부에 있는 도시 찰스턴을 배경으로 한 <사우스 브로드>를 읽는 순간, 아 하고 감탄을 할 만큼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날실과 씨실이 잘 엮어지듯 찰스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올지는 몰랐다. 사실, 팻 콘로이라는 작가가 쓴 작품에 눈길을 끌기 보다는 미국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라는 점이 더 시선이 갔다. 미국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전형적인 미국인의 삶과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작품을 이전까지 만나보지 못한 터라 '오호!'하는 탄성을 외치며 책을 읽었다.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 킹이 찰스턴에서 태어나 토박이로서 보여지는 삶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나 또한 서울에서 살고 있고, 내가 살았던 곳과 떨어져 산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서울 토박이라는 말 보다는 '고향'에 가까운 삶의 토박이들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관문적인 중심도시가 아닌 레오가 살고 있는 찰스턴 같은 도시 같은 곳처럼.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도시, 찰스턴은 남북전쟁의 발단이 된 도시였던 만큼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이 큰 도시였다. 계급적인 편견과 종교간의 갈등은 미국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갈등의 차를 잘 보여준다.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레오는 많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자신에게 보호막이 되었던 자랑스러웠던 형의 죽음이 그를 아프게 했고,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걷어냈을 만큼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시간이 흘러 그가 인종과 계층에 관계없이 사귄 벗들과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내고 성장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1권에서 빠른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이야기의 주축이 점점 더 방향을 옮겨갔다. 특히 레오의 이야기와 더불어 레오의 부모님 재스퍼와 린지의 사랑이야기가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왔다.

물이 흐르듯 시간의 흐름따라 거슬러간 이야기는 퍼즐이 맞춰지듯 이어나가는 점이 점점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번역된 문장이 아름답거나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이야기의 구조와 짜임새는 참 좋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불현듯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 장면이 떠올랐다. 왜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도 모르겠어.'라고 읊조리듯 이야기 하겠지만 어쩐지 찰스턴을 배경으로 한 일대기를 그린 모습은 여지 없이 그 영화를 떠올리고 말았다. 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계층간의 갈등은 물론 그들이 즐겨읽은 문학까지 세세함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런 세세함에 나는 반했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찰스턴이라는 도시를 가보고 싶었다. 찰스턴이라는 도시에서 레오를 둘러싼 성장기는 그 속에서 우정과 사랑과 결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혹은 '어른'이 거쳐야 될 일들이 벌어지는 모습에서 나는 인간이란 결국 같은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세계 어디서든, 시간의 흐름이 바뀌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같은 것이라고.

어렸을 때는 '희망'을 노래하고 바랬다면, 지금은 무엇이든 완벽한 것은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부터 '영원'하다는 말을 믿지 않았을 때부터. 어른이 된다는 건, 성장한다는 건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때로는 즐거움을 느끼다, 때로는 사색에 빠지기도 했던 책이었다. 콘로이의 작품을 처음 읽었지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 만큼 멋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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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워크 - 원죄의 심장,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실종>에 두번째로 만나게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은 벨벳의 부드러운 느낌은 여전하지만 베스트 드라이버처럼 길을 자유자재로 핸들을 움직이며 달려 나간다. 그의 소설은 기존의 스릴러 보다 더 고급스럽게 이야기를 끌고나간다. 처음엔 조금만 읽어야지 했던 것이 잠시 책을 놓고 밥을 먹을 때도,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블러드 워크>의 이야기가 생각나 눈을 뗄 수 없었다. 결국 새벽 4시까지 마지막 장을 다 읽고서야 잠이 들었다. 갈 수록 사건의 과녁 속으로 파고드는 중심 선에 선 그의 이야기는 잡는 순간 놓을 수 없다. 테리처럼 끝까지 파헤치는 수 밖에.

009년에 <블러드 워크>의 원작 소설을 만나게 되었지만 2002년 클린드 이스트우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영화를 먼저 본 팬이라면 아, 이 영화! 라고 외칠지도 모르겠다. 우선 영화를 보지 않고 책을 먼저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스터와 스틸사진을 보며 내가 생각하던 테리 메케일렙의 모습과는 매치가 되지 않았다. 아쉬움과 실망감을 뒤로하며 클린드 이스트 우드의 감독이 찍은 영화를 보며 영화와 원작의 차이와 같은 점을 알아보고 싶었다.

전직 FBI요원 테리 메케일렙은 심장 이식 수술을 받고 쉬던 중 그래시엘라 리버스라는 여자가 배(더 팔로잉 시)로 찾아 온다. 늘 그렇듯, 동생을 죽인 살인범을 찾아달라는 이야기에 테리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만, 살인범에 의해 죽은 여자의 심장이 자신이 받은 심장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사건의 중심에 발을 들여 놓는다.

심장 이식 수술 때문에 FBI를 그만두었지만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말하듯 자신의 영역을 찾아 나선다. 싸움을 할 때도 룰이 있듯이 사건의 자료들을 찾아 나서는 그는 전직 FBI 요원이라는 핸디캡을 갖지만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해 나간다. 담당 형사인 어랭고와 줄을 땡기고, 늘릴 수 있는 영역싸움이 펼쳐지지만 예전의 동료들을 이용해 자료들을 선점한다. 사건에 대한 감과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단서들은 하나씩 밝혀지고 범인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자신이 받은 심장이 누군가의 살인사건에 의해 생겨나고 그 수해자가 나라면 나 또한 사건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까. 글로리라 토레스라는 여자의 심장을 받은 테리 메케일렙은 친척은 아니지만 이미 심장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었고, 그 누구보다 절박한 심정으로 살인범을 찾았을 것이다. 절차를 밟아가는 테리의 모습과 예리하게 증거를 포착하고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은 치밀함이 인상깊게 나가온다.

다만, 글로리 사건과 제임스 코델 사건의 이야기가 후반부에 도널드 캐년 사건이 결합된 이야기가 덫붙여지면서 힘이 약해져 아쉬움을 주었지만 사건을 해결하면서 고뇌하는 모습은 일상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인공 테리 메케일렙이라는 사람은 FBI에서 냉철하면서 따뜻한 심장을 갖고 있는 요원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므흣해졌다.

역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이다, 라고 할 만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탄탄한 스토리가 일품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작품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냉철함도 좋지만 체온이 감도는 이야기는 끝까지 감동을 주었다. 역시!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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