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브로드 1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아버지는그 도시를 '강가의 대저택'이라고 불렀다. 도시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찰스턴을 말한다. 그곳 출신인 아버지는 도시를 늘 자랑스러워했다. 찰스턴은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도시였다. 거리들은 좁지만 매혹적이었고 걷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주곤 했다. 그 도시는 아버지 삶의 이야깃거리였고 조용한 강박이었으며 생애의 강렬한 사랑이었다 - p.6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남동부에 있는 도시 찰스턴을 배경으로 한 <사우스 브로드>를 읽는 순간, 아 하고 감탄을 할 만큼 이야기가 매력적이다. 날실과 씨실이 잘 엮어지듯 찰스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올지는 몰랐다. 사실, 팻 콘로이라는 작가가 쓴 작품에 눈길을 끌기 보다는 미국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라는 점이 더 시선이 갔다. 미국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전형적인 미국인의 삶과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작품을 이전까지 만나보지 못한 터라 '오호!'하는 탄성을 외치며 책을 읽었다.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 킹이 찰스턴에서 태어나 토박이로서 보여지는 삶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나 또한 서울에서 살고 있고, 내가 살았던 곳과 떨어져 산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서울 토박이라는 말 보다는 '고향'에 가까운 삶의 토박이들이 부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관문적인 중심도시가 아닌 레오가 살고 있는 찰스턴 같은 도시 같은 곳처럼.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도시, 찰스턴은 남북전쟁의 발단이 된 도시였던 만큼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이 큰 도시였다. 계급적인 편견과 종교간의 갈등은 미국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갈등의 차를 잘 보여준다.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레오는 많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자신에게 보호막이 되었던 자랑스러웠던 형의 죽음이 그를 아프게 했고, 행복했던 유년시절을 걷어냈을 만큼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시간이 흘러 그가 인종과 계층에 관계없이 사귄 벗들과의 만남이 큰 역할을 했다. 유년시절을 함께 보내고 성장한 친구들의 이야기는 1권에서 빠른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이야기의 주축이 점점 더 방향을 옮겨갔다. 특히 레오의 이야기와 더불어 레오의 부모님 재스퍼와 린지의 사랑이야기가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왔다.

물이 흐르듯 시간의 흐름따라 거슬러간 이야기는 퍼즐이 맞춰지듯 이어나가는 점이 점점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번역된 문장이 아름답거나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지만 이야기의 구조와 짜임새는 참 좋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불현듯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 장면이 떠올랐다. 왜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도 모르겠어.'라고 읊조리듯 이야기 하겠지만 어쩐지 찰스턴을 배경으로 한 일대기를 그린 모습은 여지 없이 그 영화를 떠올리고 말았다. 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계층간의 갈등은 물론 그들이 즐겨읽은 문학까지 세세함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런 세세함에 나는 반했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찰스턴이라는 도시를 가보고 싶었다. 찰스턴이라는 도시에서 레오를 둘러싼 성장기는 그 속에서 우정과 사랑과 결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혹은 '어른'이 거쳐야 될 일들이 벌어지는 모습에서 나는 인간이란 결국 같은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세계 어디서든, 시간의 흐름이 바뀌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같은 것이라고.

어렸을 때는 '희망'을 노래하고 바랬다면, 지금은 무엇이든 완벽한 것은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부터 '영원'하다는 말을 믿지 않았을 때부터. 어른이 된다는 건, 성장한다는 건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때로는 즐거움을 느끼다, 때로는 사색에 빠지기도 했던 책이었다. 콘로이의 작품을 처음 읽었지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울 만큼 멋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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