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 알래스카와 참사람들에 대한 기억
이레이그루크 지음, 김훈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올해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온도는 영하 15도였고 체감 온도는 그보다 더 낮았다. 더욱이 엄청난 폭설로 인해 차가 다니지 못했고, 지하철은 만원 사례였다. 눈을 치우고 치워도 끝 없이 쏟아지는 눈발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거리를 돌아다니면 곳곳에 녹지 않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치웠다 할지라도 검은 먼지가 묻은 눈은 자칫 공사중인 파편마냥 산처럼 쌓아져 있었다. 볼이 얼얼하고, 손끝이 저릴 정도로 시렸던 날씨를 체감하며 절로 알레스카의 이누피아트 족의 생활이 생각났다.

추운 날씨에 몸을 웅크리며 있었더니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갑자기 왼쪽 어깨가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처음엔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했는데, 어제는 잘 때 고개를 가눌수가 없어 조금만 움직여도 눈물이 핑 돌았다. 옆에서 엄마가 1시간 가까이 주무르고 나서 까무룩히 잠이 들었다. 겨울에 춥다고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다보니 몸이 경직되서 근육통을 일으키다보니 새삼 이레이그루크가 쓴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이누피아트 족의 사람들이 생각났다.

움직이는 것조차 아파 엎드리지 못하고 앉아서 보다가 누워서 보다가 천천히 보기는 했지만 너무 아파 이레이그루크가 쓴 이누피아트 족의 생활 속에 푸욱 빠져 들지는 못했다. 서울의 한파가 매서웠던 것 보다 훨씬 더 추운 알래스카의 겨울은 아홉 달이나 계속 된다고 한다. 한 겨울이면 24시간 내내 밤이 계속되며, 태양이 지평선 위로 고개를 들지 못한다고 한다. 거센 바람이 자주 벌어 밖에 나갈  엄두도 낼 수 없는 날이며 그들은 이트랄리크라고 부르는데 '살점이 떨어져나갈 만큼 혹독한 추위'라고 하니 상상도 못할 추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에스키모인이라고 부르는 에스키모는 사실 서양에서 부르는 말이다. 원래 이름은 이누피아트 족. 날짜 변경선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해안에서 태어난 저자 이에이그루크의 성장기와 더불어 알래스카에 사는 이누피아트 족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전통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들 중의 하나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우리 친척들 대부분은 설사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해도 기껏해야 초등학교 과정에서 배운 게 전부였다. 초등학교를 다녔다 해도 사오 학년 과정 이상을 다닌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보다 더 나이 든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몸이 튼튼한 남자아이들은 사냥하고 덫을 놓고 물고기를 낚고 개썰매를 끄는 일을 거들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관례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 p. 114

 미국의 역사에 관심도 많지만 그들이 미국을 세우기 이전, 원주민들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나는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가 서양인의 시선이 아닌 원주민인 이레이그루크의 시선을 통해 느껴보고 싶었다. '에스키모'라는 말도 나는 원래 원주민의 이름이 그렇게 불려진지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서야 서양인이 그들을 보고 지은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40년대에 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원래 인디언들을 미국인들의 삶에 동화시킬 목적으로 설계된 인디언 사무국의 교육 시스템은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정체성과 지식의 모든 흔적을 아주 효과적으로 말살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이제는 미국들의 삶에 어떤 위협을 가하지 않는데도 선교사들은 원주민 아이들을 전통의 뿌리와 단절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아이들을 자기네 문화로부터 분리시키고 과거의 생활 방식으로부터도 단절시켜 옛 세계와 새 세계 사이의 어느 지점인가에 고립시키자는 것이었다.

 

1890년대 말부터 20세기가 한참 지날 때까지 원주민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기네 모국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었으며, 심지어는 학교 밖에서조차도 쓰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생략) 그러는 한편 수업을 진행할 때는 원주민들의 역사, 유서 깊은 음악과 미술과 참에 관한 내용은 의도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 p.116

새롭게 개척된 땅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나라의 주권이 개입되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바꿔 놓는다. 다른 나라의 식민지를 개척하듯 미국 또한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문화를 단절시켰다. 미국의 연방 정부나 주정부에게 빼앗길 위기해 처 있을 때, 저자가 신문기사를 보고 놀라 동분서주한 기록들이 함께 담겨져 있어 더욱더 실감나게 그들의 삶을 알 수 있었다. 함께 나누고, 협동하면서도 극강의 추위 속에서 살아가는 강인하면서도 지혜로운 이누피아트 족의 지혜와 순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성장기를 통해 양부모님과 형제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좀 더 세밀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어떻게 커왔고, 어떤 것을 배웠으며 알래스카에 살아가는 원주민이 아무것도 모르고 땅을 빼앗길 무렵 그는 원주민의 대표로 나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내용과 함께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도구나, 집, 그들의 사진과 함께 주정부를 통해 어떻게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사진을 함께 볼 수 있었다면 더욱더 알찬 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락천사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1-1 추락천사 1
로렌 케이트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십대를 겨냥한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소위 대박을 터트리면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많은 쏟아냈다. 작년, 내가 <트와일라잇> 볼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호응하리라 생각을 못했지만 <뉴문><이클립스><브레이킹 던> 이 하나씩 출간 된 이후 부터는 수 많은 번역물들이 <트와일라잇>에 버금가는 매력적인 뱀파이어와의 사랑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이제 뱀파이어에 이어 천사까지 인용되어 우리를 유혹한다.

뱀파이어 열풍일때 나도 그 대열에 끼어 작품을 구사하겠다고 생각하며 비스무리하게 만들어 똑같은 판타지 로맨스를 만들면 누가 보겠는가? 한창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불때  자신에 걸맞는 질적인 컨텐츠가 아니라 드라마의 이미지를 차용해 그대로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또 복사하며 메꿔나갔다. 또다른 발전을 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미지를 차용하다보니 이야기에는 힘이 없고, 인물에도 타당성 없는 바람불면 휙 날라갈 이미지만 남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로렌 케이트의 <추락천사> 역시 같은 전처를 밟고 있다. 음산한 분위기의 표지에 매료되어 책을 폈지만 처음 느낌은 벨라와 에드워드가 학교에서 처음 만난 것처럼 루스와 다니엘도 학교에서 처음 눈길로 마주 대한다. 서로에 대한 이끌림, 두근거리는 가슴은 하나의 불꽃이 되어 자꾸 다니엘을 보게 되지만 그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트와일라잇>이 빠른 템포로 두 사람의 사랑이 스며들었다면 <추락천사>는 클로즈업된 화면이 아니라 멀리 풍경을 담는 시선으로 그들을 담는다. 닿을듯, 닿지 않는 음산함과 기숙사 학교의 답답함이 매개되어 루스와 다니엘의 '이끌림'은 달콤한 십대의 사랑의 전주곡이라기 보다는 그저 상대방을 쳐다보고 있는 짝사랑에 가깝다.

이야기를 끌어감에 있어서 촘촘하게 배경을 설명하거나,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닌 느릿한 화면으로 보여진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무렵에 가서 뎅강 편집된 이야기를 잘라 붙인 것처럼 뒷 부분에서 사건이 터지고 이야기를 수습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루스와 다니엘이 서로 쳐다보다가 눈싸움만 실컷하고 그들 주변의 사람들이 해가 가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초반의 시작은 완급 조절을 하지 못해 느리다 못해 힘겹게 가는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부분이 못내 아쉬워 나는 표지를 보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 책은 총 4부작이며, 디즈니사에서 영화화할 예정이다. 어제 채널을 돌리다보니 케이블에서 <트와일라잇>을 하길래 잠시 보았지만 영화보다는 원작이 훨씬 더 좋았다. 추락천사에서는 제발 희멀건하게 분장을 하거나 어설프게 찍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1권의 아쉬움을 2권에서는 빠른 템포로 루스와 다니엘의 러브 스토리가 좀 더 진척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12월 31과 1일의 경계선에 선 그 시각, 나는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도 쉬이 눈이 감기지 않아 다시 불을 켜고 노트와 펜을 꺼내 들었다. 2010년 한 해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2009년과는 다르게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다. 사각사각 노트에 촘촘하게 글을 메우고서야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곤하게 자는데 '딩동'하는 문자음이 크게 들려왔다. 확인을 안하면 2분마다 울리는 설정을 해 놓았더니 이른 아침 알람이 되어 나를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확인을 해보니 친구에게 온 메세지였다. 한 해의 덕담이 가득 담긴 메세지를 보며 나도 눌러지지 않는 버튼을 손으로 꾹.꾹. 눌리며 메세지를 보냈다. 연말의 끝과 새해에 많은 문자 메세지들을 받으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덕담을 보내주시는 나의 인연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올해는 시기마다 번번히 '핀트'를 놓치는 무심하고 덤덤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 바지런하게 지인들과 좋은 인연을 가꾸어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파스텔 톤의 물감이 한방울 툭, 번지는 것처럼 살다보면 오랫동안 이어져 오는 '인연'들을 만난다. 첫 날 노(老)작가의 인연을 만나며 붓글씨로 쓴 '인연'의 글귀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또 다른 책인 작가 피천득의 <인연> 또한 생각이 나는 만큼 '인연'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다가온다. 이런 노(老)작가가 아니고서야 쉽게 이름붙일 제목이 아닌 것이다. 밤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별처럼 수 많은 사람 중에 그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로 매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작가 최인호는 말한다.

해방둥이인 그는 중학교 때 변호사인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형과 누이, 동생과 함께 살던 가난한 시절을 추억한다. 대학 때 캠퍼스에서 아내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달콤한 신혼생활을 추억하는가 하면 가난했던 날을 기억한다. 가족들간의 얽힌 추억과 자신을 형성하고 인연을 이어온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고해성사하듯 신에게 기도드리는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세월이 흘러 낡아져서 버려하는 물건임에도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 얽혀져 있어 버리지 못한다는 그의 말에 나 또한 절로 끄덕거렸다. 나 또한 한번 손에 쥔, 물건들은 왠만해서는 버리지 못하고 챙겨두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왜 새 것을 두고 헌 것을 고집하냐고 하지만, 그 속에 닳고 달은 내 지문과 추억담이 섞여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물건'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물건도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요즘 나의 식으로 말하자면, 책도 하나의 인연으로 얽혀져 나에게 다가온다. 하루에도 수십만권의 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선택 되거나 선택 받아져 오는 것 또한 보이지 않은 실타래로 묶인 하나의 인연이었다.

   
  밀러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명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서 되쏠 수 있을 때 별들은 비로소 반짝이는 존재가 되는 것. - 머리글 중에서  
   

 

새해에 들어서 그런지,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시간 속에서는 스쳐간 인연들과, 현재 나를 지탱해주고 사랑주는 인연들과, 앞으로 만나야 할 인연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폴폴 내리는 요즘, 인연이란 무릇, 눈을 밟는 것처럼 마음의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고 지나온 시간들을 함께 공유하는 사이를 말하는 것일지도. 103년만에 내리는 폭설 속에 상념만 많아져서 큰일이다. 새해에 공기 안 좋은 서울을 덮어 버리듯, 새하얀 세상으로 변해버린 눈길속에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나 추억과 인연들을 만나고 생각한다. 앞으로 만날 수 많은 인연들과의 좋은 조우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스쳐간 바람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인연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간절히 읊조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문 -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
마크 코타 바즈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요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극장가를 장식하고 있다. 최근에 봤던 <로드>가 그렇고 트와일라잇 시리즈 두번째인 <뉴문>과 <셜록홈즈>등 원작을 넘어선 커다란 스크린만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언젠봐도 그렇지만 책이 원작이라면 영화를 보기 이전에,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다. 물론 반대로 영화를 먼저보고 책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원작을 먼저 보는 편이다. 그런데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예외였다. 영화가 나오기 전에 출간된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에드워드와 벨라의 사랑이야기에 흠뻑 빠진 나머지 나만의 상상의 세계로 빠져버렸다. 책의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처럼 나도 나만의 에드워드를 머릿속에 새겨넣었다.이후 영화가 나왔고, 영화 속에 나오는 에드워드와 벨라의 모습은 내가 상상하던 그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소설의 매력은 독자가 머릿속에 그려놓을 수 있는 상상력을 부여하지만, 영화는 이미지로서 보여지는 상상력을 파괴한다. 오히려 상상력을 실존적인 물체로 만들어서 큰 스크린에 담아 놓지만, 나는 내가 그렸던 에드워드와 벨라의 로맨틱한 모습을 깨고 싶지 않아서 영화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j는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을 나중에 사서 읽었는데 영화가 더 재미있다고 했으니 각자 스타일에 따라, 매체에 따라 주는 즐거움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뉴문: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인 2탄 뉴문의 화보이자 영화의 제작현장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로버트 패틴슨,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팬이라면 읽어볼만 하지만 원작에서의 에드워드와 벨라를 그렸던 이들에게는 비추다. 우선, 이 책은 뉴문을 읽은 독자가 아닌 뉴문을 본 관객만이 느낄 수 있는 영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제작 현장의 긴박한 상황이나 스테프니 메이어의 원작을 영화에 맞게 구성해 관객들을 기대감을 어떻게 영상으로 담을까 하는 고충이 담겨져 있다. 에드워드를 연기했던 로버트 패틴슨이 느꼈던 에드워드 컬렌의 모습,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그린 벨라의 감정선이 각각의 장면에서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캐치할 수 있는 현장보고서인 셈이다.

오래 전 모 배우를 좋아해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메이킹북>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도 곧 잘, 그 책을 들여다보며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배우의 감정이나 촬영기법,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충을 느낀다. 영화를 다시보면 그들이 생각하는 핵심 포인트가 있어 새롭게 보였다. 이 책 역시, 서점가에 불어닥친 뱀파이어의 열풍을 <트와일라잇>에 이어 <뉴문>까지 끌어오며 판타지적인 것을 CG를 통해 구현해내는 모습을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저런 기법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진 독자라면 <뉴문: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배우를 좋아하는 팬에게도 이 책은 보너스 트랙 이지만 영화를 보지 않는 독자에게는 재미를 느끼기 이전에 영화를 먼저 보는 것이 더 이득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랜트 - 연쇄살인범 랜트를 추억하며
척 팔라닉 지음, 황보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척 팔라닉의 <랜트>를 읽으면서도 자꾸 '렌트'라고 쓰게 된다. 언젠가 티비에서 렌트 공연을 광고한 것이 주효했는지 각인되어 자꾸 렌트라고 쓰니 작가 선생님이 울고 가시겠다. 다시 정정한다. 그의 책은 늘 만날 때마다 표지로든, 내용으로든 생각치 못했던 것들을 만난 것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전작 <질식>을 읽으면서 그 느낌을 받았는데, <랜트> 역시 척 팔라닉이라는 작품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확연히 갈릴 작품이다.

어떤 소설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의 소설은 다분히 '컬트'적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고등학교 때 읽다가 도저히 읽지 못했던 책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향수>가 생각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책을 한 권 잡으면 끝까지 읽어내려던 고집이 있어 힘겹게 <향수>를 읽어 내려갔지만 도저히 그르누이의 음습함에 질식이 될 것 같아 책을 덮어 버렸다. 그때 만약 <랜트>를 읽었더라면 더하면 더했지 <향수> 보다는 파장이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작 <질식>에 비해 <랜트>는 재미도 읽고, 읽힘새도 좋다. <질식>에서는 척 팔라닉이라는 저자의 투박함이 느껴졌다면 <랜트>는 위트도 있고, 이야기를 트루는 맛도 느껴진다. B급 영화같은 음습함과 컬트적인 것이 조합되어 비릿하면서도 자꾸 옆눈으로 흠칫거리며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랜트>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면담을 통해 증언하는 '구술기록의 형식'을 띄고 있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함께한 경험을 말하면서도 그들의 '기억'에 의해 말을 하기 때문에 서로 엇갈리도 한다. 한 사람의 면담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내용을 따라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테이프가 A면과 B면이 섞인 것 같은 혼잡함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릿하고 역한 상황에도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얻는 것이 있으니 도무지 안 볼 재간이 없었다. 올해 가장 화두 되었던 단어 중에서는 '신종플루'라는 네글자가 2009년을 화려하게 장식할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었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속에서 사람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언젠가 비염이 있어 살짝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사람들의 싸한 표정을 생각하노라면 아직도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모두 다른 누군가에게 다른 이름을 붙였지요. 그래서 버스터는 '랜트'였고 '버디'였어요. 체스터는 '쳇'이자 '대드'였고요. 또 아이린은 '맘'이고 '린'이었지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방법은 그 사람에게 자기만의 이름을 지어 붙이는 거예요. 그 사람을 자기 것으로 딱지를 붙이는 거지요. - p.37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의 득실거리는 바이러스의 공포와 현실에서 보여지는 음습함이 현재를 이어 미래 속에서 보여진다. '랜트가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그렇게 자랄 수 밖에 없는 것은 부모 때문이 아닌가?'라는 물음은 결국 돌고 도는 원처럼 원점이다. 다양한 시각으로 랜트라는 한 인물을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종교, 정부,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접촉, 불별을 다루면서 사람이 접촉하는 것들의 극단적인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시간여행, 전염병에 대한 인구 조작, 근친상간등 역사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네디 넬슨: 내가 결국 하려는 말은 이거예요. 만약에 랜트가 누군가의 오랜, 고약한 계획으로 나온 산물인 게 그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면요? 랜트는 늘 이러지 않았던 가요? "우리가 내일 맞을 미래는 우리가 어제 맞은 미래와는 같지 않을 것이다"라고요. 그 모든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 p.394

셀 수 없는 많은 인물이 나오는 만큼 <랜트>는 다채로운 소설로서 보여지는 작품이다. 페이지 그대로 읽어나갔지만 한 인물이 말하는 대답을 따라 차례차례 정리하며 분석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 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랜트를 분석해 나간다면 연쇄 살인범 랜트 뿐만 아니라 랜트를 기점으로 다양한 시각과 미래를 바라볼 수 책이다. 네디 넬슨이 말하고자 하는 랜트의 모습과 우리 미래의 예언이 어쩐지 소설속에서만 존재하는 미래라고 말하기에는 보여지는 현상이 지금의 우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