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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 - Robin Hoo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언제나 그렇듯 가진 자들이 문제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이들의 희생에 아랑곳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의적의 탄생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 역시 더욱 커보인다. 의적이든 민주주의든 결국 하나다. 모두 가난하고 힘든 서민들을 위한 것들이란 점이다. 그리고 특정세력만이 아닌 모든 이들을 위한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기에 역사의 희생을 거의 담당하고, 그에 대한 열매는 가장 적게 향유하는 자들, 그들을 위해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
[로빈 후드], 영화는 과거의 먼 시간 여행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십자군 전쟁과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그리고 그의 동생이자 다음 왕인 존 왕, 그리고 필립 왕 등 무수히 반가운 역사적 인물들이 나온다. 여기에 로빈 후드라는 영웅적인 의적까지 말이다. 과거의 먼 시간은 현대인들에겐 큰 낭만적인 시대다. 감독, 리틀리 스콧은 그런 낭만적인 시대 속에서 현대적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신선한 작업을 한다. 과거 속에서의 현대성 찾가, 어쩌면 역사에서의 인간의 고민은 시공간을 초월하나 보다.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고민과 내용을 갖고 그 시대를 살아가나 보다. 왕의 폭력과 그에 대항하는 국민, 이런 이분법적 구도가 12세기에도 현재와 같은 모양새를 공유하면서 영화에서 진행되고 있다.
분명하지 않은 역사의 시간과 상대한 느낌이었다. 역사적으로 귀족들과 서민들에 의해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는 굴욕을 당한 영국의 왕인 존 왕의 시대에 로빈 후드가 활약한다는 설정은 역사의 진위를 떠나 인상적이다. 이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약자를 위해 목숨을 건 어느 의적이 영화에서 결국 큰 결과물을 선물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정에 대한 댓가를 치루지 않고 어떻게서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무모하고 무가치한 왕의 작태가 모든 원인의 시작이란 점이다. 인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강요하는 그의 모습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있어왔다. 그것이 왕의 신분으로만 국한된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이든 총리이든, 독재자는 다양한 직함과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그다지 크게 볼 필요도 없이 회사든 조그만 마을이든 이런 불손한 지배자들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있어 왔다.
그래서 의적이 영웅으로 되는 것인가 보다. 의적, 이 단어 자체는 역설적이다. 도적이라는 존재는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반사회적 집단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상징성을 지닌 존재라도 시대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고, 사회적 인식도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도 없다. 한국에서 홍길동이나 장길산, 그리고 임꺽정 등 도적이란 지배계층의 폄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새로이 조명받고 억울하게 살아간 많은 이들에 의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존재들이 바로 의적이다. 도적이지만 그들이 의로운 존재로 추앙받는 것은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로빈 후드도 이런 범주일 것이다. 도적이 되고 싶은 이들은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현실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진다. 결코 폄하할 수 없지만 과거의 모든 도적들이 그렇듯 태생부터 도적인 것은 없다. 태생부터 누군 귀족이나 왕이 아니듯 말이다. 역사적 무게 앞에서 나약해진 수많은 인간들을 보면, 인간에게 과연 선택의 여지는 남아 있는지 의심도 된다.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그들은 사회에서 가장 냉대받는 방식을 선택했을 뿐이다. 비록 도적들이 잘 했다고 할 수 없지만 무조건적인 비판은 위험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을 몰아세운 것은 분명 당시 사회의 이익 대다수를 독점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더욱 타인에게 사회적 짊을 지도록 강요한 기득권 세력임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도적이 의적이 된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를 차지한다. 도둑질하고 공격하는 대상이 바로 사회적 권력을 독점하고 악용하는 그들이며, 그들에게서 빼앗은 이익을,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사용한단 점이다. 의적은 사회적 여론을 대변하며, 공익을 우선시하며, 민초들의 솔직한 심경을 대변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방식에선 다르지만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의회의 의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그들의 의견표현에 귀담지 않은 권력자들이 바로 사회적 문젯거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화 [로빈 후드]의 시작에서 주인공 로빈 후드가 의적이 되고자 하는 분위기는 처음부터 없었다. 소위 이런저런 사연으로 존 왕에 대항했고, 그는 자신들의 동료와 함께 산속으로 가서 의적, 아니 현대적 표현으론 반정부 세력이 된다. 그런 상황의 반전 속에 그는 사회적 문제를 느끼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병폐와 지도자의 탐욕과 무능에 의해 붕괴되는 사회를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신이 그것을 직접 체험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존 왕에 대항하는 존재가 되며, 또한 민중의 편에 서게 된다. 귀족도 아닌 한 사나이가 국민 전체의 의견을 몸으로 표현하는 그의 모습은 한 개인의 성장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지 않는다면 결코 건강한 삶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그 자체의 구성을 통해 앞으로 2부와 3부 등의 연작 시리즈로 기획된 것임을 보여준다. 로빈 후드의 인생과 활약을 통해 오늘날을 살고 있는 민주주의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부당한 권력에 대한 도전이 왜 필요한가를 분명히 보여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특히 한국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