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김용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광개토태왕릉비’라는 하나의 실재하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 시대 광개토태왕의 업적과 고구려 및 외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알아본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추리소설과 같다.

우리는 저자와 함께 탐정이 되어 힌트인 ‘광개토태왕릉비’를 가지고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광개토태왕이 살던 시대로 돌아가 역사의 무대를 누빌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모든 문장을 해독할 수 있는 한문학자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역사 분야에서 제대로 된 추론을 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저자가 가진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비문에 대한 논리적 접근을 통해 저자가 대표로 탐정이 되어 수사를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문장이 있지만, 이것은 비문을 만든 고구려입장에서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거짓이다.’

저자는 탐정이 되는 하나의 방법으로 비문을 만들게 한 장수왕의 입장이 되어 봄으로써 현실 인식을 새롭게 한다.

일본이 비문을 고쳐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지만, 400년 고구려가 속국인 신라를 도와주러 갔던 것과 달리, 백제를 지배했다면서 369년 백제가 고구려에 대패했을 때 백제를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많이 접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재미를 위해 허구를 너무 많이 섞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 제대로 된 가치판단을 하기 어렵다.

그리고 제대로 된 가치판단이 없으면 결국 우리는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못하게 된다.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라는 흔한 말이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여태까지 많은 책들이 보여주었던 ‘국수주의’ 또는 ‘자문화 중심주의’, ‘사대주의’또는 ‘신화화’라는 왜곡된 시각에서 벗어나 그 시대 국제 정세와 고구려의 내적상황에 의해 그의 업적을 재평가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이 없다면, 제대로 된 미래 설계도 할 수 없다.

여태까지의 역사책은 모든 역사의 흐름을 담는 것이 항상 당연하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듯 방대한 역사를 줄줄이 써놓은 책이 많았다.

그리고 짧게 파편화 되어 늘어선 사실들을 독자에게 역사니 배울 필요가 있으며 읽으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런 입문서나 통서가 독자의 삶에 깊은 성찰을 주기는 힘들 것이다. 책을 삶에 적용하려면 좁고 깊은 방법 또한 필요하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해 심층 깊이 파고들어 그 사실을 따지는 것을 통해서 한 가지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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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성별을 생각하며 읽기보다 책 자체에 중심을 더 두는 편이다.

그러나 일단 한 책이 좋아지고 그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내가 여성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특별히 여성작가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이 가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추리 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 영어권 소설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 '여성'이라는 이름보다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내가 외친 말은 '역시, 노통브는 천재야!'였다. (이름을 먼저 쓰고 성을 나중에 쓰는 서양어법으로 미루어 볼 때 '아멜리'라고 말하는 게 옳겠지만 나는 '노통브'라는 성이 그녀의 신비하고 거친 상상력에 더 잘 어울리는 어감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부르길 더 좋아한다.)

하지만 사실 내가 그녀의 책을 많이 읽은 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작 작가로서 매해 가을마다 책을 낸다는 노통브는 펴낸 책만 해도 벌써 스무 권이 넘는다.

나는 그 중 '살인자의 건강법, 앙테크리스타, 시간의 옷' 그리고 이 책 '적의 화장법'을 읽었다.

그 중 '살인자의 건강법'을 제외하고는 모두 200쪽을 넘지 않을 정도로 얇은 책이다.

그러나 그 책들은 우리 삶을 꿰뚫는 주옥같은 문장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읽다보면 접은 부분 덕분에 책이 불어나곤 했고, 이 책 역시 그랬다.

적의 화장법. 제목만 들으면 아름다운 여성들이 나오는 이야기일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에 아름다운 여성은 단 한 명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입씨름을 열심히 하는 남자 둘이 전면에 나선다. 그렇다. 이 책에서 화장을 하는 사람은 남자다.

공항 대합실. '제롬 앙귀스트'는 비즈니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말쑥한 신사로 비행기가 연착되어 공항에서 발이 묶인 상태다.

그리고 그 곳에서 기묘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기묘한 남자의 이름은 '텍스토르 텍셀' 그는 ‘제롬 앙귀스트’를 따라다니며 자신의 말을 들어 줄 것을 종용한다.

이 책은 거의 대화체로 되어있다. 글을 쓰다보면 대화로만 상황을 표현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종종 느끼게 된다.

인물은 말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도 설명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상황을 묘사하고 주인공의 표정을 말하는 것을 통해 독자에게 현재 상황을 인식시키고, 복선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 사건을 이야기하는 세련된 방법이라고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을 때 장황한 묘사를 보면 '또 이거야?'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지나친 묘사는 독서의 속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자칫 이야기의 흐름과 흥미를 잃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화로만 전달할 수 없는 사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은 묘사나 설명이라는 다른 수사법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에서 노통브의 천재성은 대화를 통해 나타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거의 대화체로 되어있다. 독자는 거의 모든 정보를 대화를 통해 얻어 낸다. 이것은 '시간의 옷'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의 옷'에서 말씨름이 서로에 대한 주장에 그치고 복선의 의미가 약했다면, 이 책에서는 대화의 곳곳에 복선이라는 장치가 숨겨져 있다.

반전이 두 번이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줄거리는 말하지 않겠지만(미리 알고 싶으신 분은 34쪽을 차근차근 읽어 보시길 권한다.), 선생님들이 '문제 속에 답이 있다!'고 강조하듯이 이 책은 '대화 속에 답이 있다!'.

역자인 성귀수 씨의 표현에 따르면 '황당함> 역겨움> 섬뜩함> 충격'의 순으로 번역하는 동안 정신상태가 변화했다고 한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감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충격 뒤에는 인간에 대한 묘~한 믿음도 싹텄다.

나는 기본적으로 성악설을 믿지만, 성선설에도 작게 손을 들고 싶은 이유는 인간이 선함 또한 가지고 있어서 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나는 마더 테레사와 잭 더 리퍼의 인격에 같은 양의 선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악이 90% 정도라고 하면, 선은 10% 정도 되지 않을까?

반전에 대한 힌트를 하나 더 주자면, 제목의 화장(化粧)의 의미가 화장보다 위장(僞裝)에 가깝다는 것을 주지하며 읽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읽고 책을 본다고 해서 작가가 생각한 반전을 먼저 찾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속상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통브는 천재니까!

나는 천재가 아니라고 모두 살리에르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리는 천재들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그 재능을 자신에게 이롭게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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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
미즈노 케이야 지음, 김문정 옮김 / 나무한그루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주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제가 할 수 없는 것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위의 글은 '그건, 사랑이었네'에 나오는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신은 하나님이 아니고, 인도의 신 가네샤다.

이 시는 다만 책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준다고 생각해 넣어보았다.

책을 읽을 때 종종 전혀 연관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책들이 서로 닮아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 일상 생활에서 배울 점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술김에 불려나온, 팔이 네 개 달린 안미츠의 대가. 코끼리를 닮은 인도의 신 가네샤.

꿈을 이루고 싶은 주인공을 도와주기위해 가네샤는 매일매일 문제를 낸다.

구두를 닦아라, 복팔분을 해라, 공짜로 얻어라, 결심한 일응 계속 실천하기 위한 환경을 만든다 등.

이쯤 되면 책을 읽지 않고 제목만 들어도 책을 다 읽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목차를 구태여 정리해 둘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나중에 독자가 내용 정리하기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단점이 있다. (넣어 주시길 부탁드려요~! -_ㅜ)

하지만 사실 책의 뒤편에 '가네샤 명언집'과 '위인 색인'을 부록으로 넣어 확인하기에 무척 편리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책을 한 눈에 파악하기 쉬운 것은 목차다.

가끔 잘 써진 목차를 보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들 때가 있다. ^ ㅅ ^ ~*(목차 잘 쓴 책에 상을 주는 '목차상'이 만들어 지면 훌륭한 목차들이 더 많이 나오게 되지 않을까! -_-; 근데 이것마저 상을 주면 상을 남발하는 꼴이 될 듯 하기도... )



1. 성공하고 싶다.

사실 주인공이 그리 못난 사람은 아니다.

그가 말하듯이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고 인정도 받았다.

오히려 그처럼 되지 못한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선망의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카사카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고층빌딩 맨션에서 상대적 박탈감으로 괴로워한다.(신자유주의의 폐해다!)

잡지나 TV에 자주 나오는 '가와시마'라는 사업가의 생일파티에서 그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그리고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고 변하고 싶다고 외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예~전에 변하겠다며 떠난 인도여행에서 사온 코끼리 조각상에게 뺨을 맞대고 비비대며 고민을 이야기한다.

바보 같은 행동이지만 결국 그 덕에 가네샤를 만난다.

가네샤는 그를 바꿔줄테니 자기 말에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모든 희망을 가져간다는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채근한다.



2. 성공을 위한 선택.

어쩌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하면서도 믿고 있는 것이 '불확실한 미래'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도전하고 싶어한다.

이율배반적이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둘 중 하나의 선택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가네샤는 성공하고 싶다는 주인공에게 그렇다면 두 번째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가네샤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곧 고객이며 그 고객을 만족시켰을 때 성공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말이다.

세부 사항의 대전제인 이 말은 경제학부를 졸업한 작가의 세계관을 느끼게 해주어 재미있으면서도, 한 편으론 '일본인의 내면이란 이런 것인가?'하고 놀라기도 했다.



3. 성공의 주인공이 돼라.

소설 책을 읽을 때 나는 곧잘 주인공의 이름을 잊어버리곤 한다.

왜일까?

그건 바로 내가 주인공 입장에서 책을 읽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름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 이야기가 좀 더 친근하게 여겨진다.

책을 읽으며 나는 주인공이 되었다.

가네샤에게 안미츠를 바치기도 하고,

그의 말에 따라 하나 하나 과제를 이루어가며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이건 나중에 꼭 실천해 봐야지. 이건 하고 있던 거니 다행이네.'하고 수시로 3인칭 시점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3인칭 시점이 되었을 때의 나는 안도의 숨을 내뱉을 때가 많았다.

'그래. 이건 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이것도.'

그러나 이 책에 있는 것들을 실천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소위 '승자 독식'으로 불리워지는 성공한 사람의 축에 들 수 있을까?

역시 잘 모르겠다. 인간의 미래는 불완전 하니까.

그리고 높은 곳에 홀로 서서 웃는 것이 내게 성공은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성공을 원한다.

1등만이 의미있다는 '승자 독식'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자신을 병들게 만드는 무서운 경제학 논리일 뿐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제대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구나!'하는 정도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야 가네샤도 말한다.

"성공만이 인생이 아니고 이상적인 것을 포기하는 것도 인생이 아니야. ... 세상을 즐겨, 맘껏!"

한 번뿐인 인생.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후회를 남기는 건 곤란하지 않겠는가?

뭐 물론 그러다가 나처럼 면접 보러 가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나도 한 때 내 인생을 안타깝게 여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와서 경험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에 감사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후회하지 않으려 버둥댄 나에게 잔잔한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도 이것을 느끼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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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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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차 선로에 사람 밀어 떨어뜨리기.

섬뜩한 제목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마음에 와 닿는 제목이기도 하다.

책의 중간중간에 저자는 이 질문을 대입해 봄으로써 정의의 바로미터로 사용한다.

기차가 선로를 달리고 있다.

운전 기사는 바로 독자 자신.

기차는 시속 100킬로미터로 질주하고있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브레이크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대로 진행한다면 인부 다섯 명이 철로에 있는 사람이 모두 죽는다.

하지만 반대편 비상 철로에는 인부가 한 명 밖에 없다.

,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이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며 또 다른 가정을 말해준다.

열차를 기다리는 덩치가 산만한 남자를 선로로 밀어 5명의 인부에게 위험을 알려줄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말이다.

이제 독자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과연 어떤 것이 정의인가?

저자는 이 문제를 연이어 나오는 철학 사상을 가지고 차례차례 풀어간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이마누엘 칸트, 존 롤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서양 철학자를 모두 토론의 장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저자는 과연 뭐가 좋은 가에 대한 답은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

아니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저자는 한 가지 사상이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 하고

다만 이러 이러한 내용이 있다고 말해줄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는가는 오로지 독자에게 달려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게 저자는 어느 편의 손도 들어주지 않은 채로 책의 마지막까지 간다.

처음에는 왜 이 사람은 자기 주장을 하지 않지?

학자라면 자신의 주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책을 3분의 1을 읽었을 때쯤엔 나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고찰하는 것도 괜찮지!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2. 그래도 정의는 있다.

책을 거의 다 읽어 갈 무렵에도 나는 이 책을 그저 여러 정의에 대한 생각들을 담은 책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책은 저자가 주장하는 정의의 개념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결국 자신의 생각을 넣은 것이다.

저자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360-361p)

그리고 그 이유를 마지막 이야기로 선택했다.

나는 이 책의 의미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버드대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의 교수가 정치 철학을 이용하여 정의를 이야기 하는 일은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연구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연구이기에 의미 깊다.

오늘날에는 천재 한 명이 기업을 먹여 살리고,

상위 몇 퍼센트가 나라를 바꾼다고 하는 둥 엘리트주의에 빠져있으면서도

지식인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머리를 쓰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일들은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동체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존재하기에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고, 기대하고 싶다.

앞으로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는 정의를 일깨워줄 지식인들이 많이 나와주길 바라본다.

3. 목적으로서의 사람.

저자인 마이클 샐던 교수님의 정의는 이마누엘 칸트와 무척 닮아있었다.

사람을 수단으로 보지 말고 목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칸트.

친구를 죽이러 온 살인자에게도 선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그는

꽉 막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있었던 사실이지만 살인자가 오해하게 만드는 호도성 진실을 언급함으로써

도덕법을 지키면서도 친구를 숨겨줄 수 있는 묘안을 제시한다.

칸트는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전체 도덕의 틀을 포기하게 된다고 말하며 도덕법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호도성 진실마저 꺼내놓지 않고 대놓고 세상을 우롱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잘못을 하고 호도성 진실’을 사용하여 변명만 늘어 놓는 것은 잘못이지만,

칸트가 말한 호도성 진실’은 도덕법에 대한 존중의 의미이기에 더 가슴아프다.

도덕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권리를 주고 있는 건 아닌가!

도덕법은 지켜져야 하는가?

공공의 이익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여 흩어져도 상관없는 것인가?

나는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책이 묻는다. ... 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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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1년만 미쳐라
강상구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10년 10월
평점 :
판매중지


1년을 미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여행에 미치거나, 먹기에 미치거나, 악플에 미치거나, 공부에 미치거나, 수집에 미치거나.
 
그리고 흔히 일 중독이라 하는 일에 미치는 사람들도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가끔 발견되곤 한다.  
 
제목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은 사회에 첫 발을 디딘 사람들에게 1년만 ‘일에’ 미치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성과에 대해서 말해준다. 
 
저자는 노력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을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 내리고 계속해서 배워나가는 사람들은 뛰는 사람이나, 달리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 방법을 통해 ‘서 있는 사람들’이 재도약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고 하면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은 ‘미쳐야 할 것을 찾고 그 일에 매진하는 일’이라고 밝힌다.  
 
그렇다고 자신의 말대로 한다고 모두가 다 그렇게 된다는 무조건적 낙관론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늦었다고 말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니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하면 된다고 말이다.
 
이 책도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그러나 저자는 처음부터 열심히 뛰지 않으면 간격이 벌어져 나중에는 절대로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 생긴다고 심장을 콕콕 찌른다.
 
모든 마라토너가 열심히 뛰므로 처음에 천천히 뛰다가 나중에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작전은 성공하기 힘들다.
 
그리고 결국 간격이 벌어져 절대로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이 백 번 옳다. 굳이 최고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면 결승점에 언제 도달하는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항 중 하나이다.  
 
책에서는 ‘서 있는 사람’이 1년을 투자해 인생 마라톤에서 상위권 그룹에 편입될 수 있는 길을 알려준다.
 
나도 아직 1년 동안 실천한 사항이 아니기에 과연 그렇게 되었다고 말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천재를 만드는 것도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거늘, 어찌 나와 같은 평재들에게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만큼 올라 갔을 때 행복함을 느끼는가!' 아닐까.
 


모두 1등이 되려고만 하지 15등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1등 앞에는‘불행한’이라는 형용사가 붙고, 15등 앞에는‘행복한’이라는 형용사가 붙으면 나는 몇 등을 선택하게 될까?
 
솔직히 나는 1등 옆에 ‘행복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이 내용 중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잊지 않으면서 1년만 미쳐라.’라고 말하고 있다.
 
윗글을 읽으며 ‘행복한 15등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굳이 미칠 필요있나?’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미친다는 것은 그만큼 최선을 다 한다는 의미와 상통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사람에게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행복감으로 변화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러므로 1년간 미치도록 노력해보는 것은 어떤 일을 하고 있던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만약 앞으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1년을 행복하게 미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며 읽어 보기를 권한다.
 
 
 
 
이제 아래에 책에서 알려준 1년을 잘 보내는 방법 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모두 다 소개하면 책을 읽을 사람이 없을 것이고, 한 가지만 소개하면 정이 없으니 두 가지로 한다. ㅎㅎㅎ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자신의 기준에 맞는 행복한 인재가 되시길!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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