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andcat > '박스 할머니' 생태보고서

'박스 할머니' 생태보고서

‘박스 할머니’는 21세기 현대문명이 낳은 새 인류이다.
물건을 포장하는 보자기는 박스(Box)로 진화했지만, 손주들을 길러내 다음세대로 과거를 이어주던 공동체의 어머니, 할머니는 이제 박스를 주워 팔아 남루한 말년을 연장하는 박스 할머니가 되었다.

일회용 문명의 그늘길에서

박스 할머니의 발길에 터부는 없다. 무엇이든지-시체든 마약이든 사춘기 소녀가 입었던 팬티든- 포장할 수 있는 박스 역시 터부가 없긴 마찬가지다. 굳이 따지자면, 박스가 생긴 이래 새롭게 출현한 족속이 바로 박스 할머니이겠다.
한 세대의 가사노동과 새로운 인적자본을 생산하고 일할 수 있을 만한 노동자로 길러내는 여자와 그럴싸하게 보이거나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필요했던 박스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맹렬히 소비되고 이내 버려진다. 이런 측면에서 둘은 운명공동체이다. 또한 이제는 늙고 힘 없어 가족의 외곽으로 밀려나는 존재라는 점, 소임을 다한 소비재로서 헌신짝처럼 도심 밖으로 팽개쳐진다는 점이 공통분모랄 수 있겠다.

박스 할머니는 상품이 시장에 진열되고 난 저녁이나 새벽에 주로 출몰하며, 경기가 어려울 때는 갑자기 개체수가 늘거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빈번히 출현하기도 한다. 주로 하는 일은 lkg에 60원을 쳐준다는 종이박스를 모아 고물상이나 재활용센터 같은 곳에 파는데, 한 달 동안 거르지 않고 돌아다녀도 채 5만 원이 되지 않으니 정작 무얼 먹고 생존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이들은 ‘자기 영역’이라는 불문율을 공유하고 있어, 이를테면 서울시 은평구 갈현2동의 대형슈퍼를 도는 할머니는 로데오거리를 점령하고 있는 가게들의 박스를 넘보지 않는다는 식이다. 아침이면 밤새 도시인들이 꺼내놓은 음식물 찌꺼기를 비둘기들이 쪼아 먹는다. 박스 할머니는 가게마다 소비주의 문화가, 산업사회가, 불필요한 포장문화가 꺼내놓은 온갖 종류의 박스들과 돈이 될 만한 종이 부스러기들을 줍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박스들은 대부분 재생률이 높기는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나무를 원료로 한다. 할머니 얼굴의 주름은 곧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증거하고, 거대한 박스를 싣고 손수레를, 또는 쇼핑카트를, 유모차를 끌고 가는 박스 할머니는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몇 가지 상황과 구조를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박스와 할머니는 서로 밀어내거나 잡아당기는 질료로써 사회적으로 서로 흡사한 덩어리감(존재감)을 지닌다. 수수께끼처럼 자기만의 규칙에 따라 주기적으로 골목을 일삼아 누비는 세상의 박스와 할머니는 어느 때 불현듯 겹쳐 놓인다. 그리고 그들을 발견하는 이로 하여금 자신과 마주한 척박한 현실과 대질시키는 동시에 순식간에 오늘의 세태를 그대로 집약한다. 

재활용 문화의 최전선에 선 이중적 존재

박스 할머니가 알려주는 오늘의 한국에 관한 첫 번째 데이터는 종이 재활용에 관한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종이 재활용 국가 중의 하나이다. 잘 정비된 쓰레기 분리 배출정책이 시행되는 나라의 시민들답게 신문을 비롯한 우유곽과 각종 고지들은 전국에서 모여 종이공장으로 재생의 길을 떠난다.

우리나라 종이 재활용률은 66퍼센트나 되는데 산업 수요가 수거된 폐지의 규모를 넘어서는 탓에 외국산 고지마저 수입되고 있다. 폐지를 재활용한 재활용 펄프는 버진펄프(재생된 적이 없는 펄프)를 쓸 때보다 세 배 이상 가격이 싸다.

2003년 한 해 한국 제지산업이 재활용한 폐지는 총 794만1596톤에 달한다. 이들 폐지 가운데 박스 할머니의 주요 수집품인 골판지 폐지는 423만9817톤 이상이다. 박스 할머니는 일회용 문명의 가장 말단에 존재하지만, 재활용 문명의 최전선에 선 이중적 존재인 것이다.

일하는 빈민

미성년 자녀를 혼자서 양육하는 한부모 가정의 여성 가구주와 혼자 사는 고령의 여성 노인들은 빈곤에 처할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으로, 이들은 우리 사회의 ‘신빈곤’(new poverty)을 대표하는 집단에 속한다. 오늘날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노출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빈곤층으로 유입되면서 ‘일하는 빈민’(working poor)이라고 하는 새로운 빈민층을 형성한 시대, 즉 일자리를 갖고 있지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새로운 빈곤층이 빈곤층의 절반에 이르는 시대다(『위기의 노동』, 최장집 編, 2005). 

더군다나 요즘같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위기인 경우에는 가족 구성원 누구라도 가정의 경제를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하는 형편이 된다. 박스 할머니를 빈곤이 일상화된 현대를 사는 고령의 노동자로, 일하는 빈민층에도 끼지 못한 주변부 노동자로 부를 수 있을까?

노동부가 운영중인 고용정보시스템 워크넷에 따르면 지난 6월 60대 이상 노인들의 구직경쟁률은 32.6대 1로, 60대 취업 건수 중 단순노무직이 60대의 85.89퍼센트(1만4677명), 50대의 74.94퍼센트(4만239명)를 차지해 열악한 고용의 질을 반영했다. 또 50대의 주당 근로시간은 57시간 2분으로 20대(51시간 15분)보다 6시간 가까이 길며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길다. 60대 이상은 52시간 47분을 기록했다.

나이 들수록 먹고살기도 힘들어질 뿐더러 노동시간도 더 긴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박스 할머니들의 주당 노동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들이 생존하기 위한 노동의 시간은 얼마여야 하는가?
 
늙은 사회의 초상

한국은 지난 2000년에 이미 고령인구 비율이 7퍼센트를 넘어 '고령화사회(Aging Society)에 진입했다. 오는 2019년에는 아예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며 더 나아가 2030년경이면 노인인구가 천만 명을 넘는(전 인구의 5분의 1)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노인과 컴퓨터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컴퓨터는 업그레이드가 되겠지만 백 세 시대, 이 땅의 노인문제는 진작에 윤곽을 드러낸 사회문제이다. 실버산업에 뛰어들고 노후를 걱정하다 못해 간접투자 방식의 펀드에 몰리는 세태에도 불구하고 대책 없는 노인 실업과 노인 복지정책은 오늘도 이 땅의 할머니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박스 할머니는 산업사회의 소비주의 문화와 불필요한 포장문화의 포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전반적 노인문제와 빈곤의 문제 또한 동시에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끊임없이 박스를 접고 쌓아가는 골목길의 박스 할머니는 몸으로 길의 길이를 재며 기어가는 오체투지처럼 샅샅이 길을 훑는다. 힘에 부치지만 제 몸의 몇 배는 됨직한 박스더미를 온몸으로 끌고 간다. 할 수만 있다면 끌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더, 더 높이 박스를 쌓아 올리고 싶은 할머니의 손수레는 거대한 심연이다. 거대한 심연을 끌고, 박스 할머니 걸어간다.

*월간 <함께사는길> 1월호 게재


 사진 / 이성수 기자 yegam@kfem.or.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