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살때 우리집이 부산 동구였다. 국회의원 노무현의 지역구민 이었던셈... 

내가 중학교때 던가, 엄마가 하루는 장보러 나가는데 동네 정발 장군 동상이 있는 로타리에 
대낮에 잠바때기 옷을 입고, 혼자 쓸쓸히 로타리 공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선거에서 떨어진지 얼마 안되었을 텐데.. 그 참 혼자서 그리 대낮에 쓸쓸히 있는 모습 보니
안되었더라고 그러셨다..
그리고 지역구민 만난다고 친척집에 와서 사람들이 만낫는데 과일도 손으로 집어 먹고
얘기하니까 참으로 소탈하더라고 다들 그랬더란다.
벌써 20년 전의 얘기지만 노무현씨를 생각하면 그런 소소한 얘기들이 먼저 생각난다.    

청문회의 스타였다고 하지만..
국민학생인 내게는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정도였다..
(새도둑위원회 아차 죄송합니다. 했던건 아직도 기억나지만)
요몇일 TV에서 보여주는 걸보면서 아 저래서 스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더 들뿐..
(한보 회장 아저씨 한테 정권에는 34억 주면서, 당신네 공장에서 일하다가 죽은 사람 한테는 8천만원 줄건지 9천만원 줄건지로 몇달을 끌어야 합니까? 그게 기업인의 윤리입니까 대답하십시오 증인.. => 지금도 한국타이어 몇명 죽어도 제대로 감사는 이루어 지지 않고 있고.. 맘대로 자르고.. 여전히 그의 말이 울림이 있는건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어서겠지..) 

처음엔 자살설을 접했을 떄 .. 왜 하필이면 지금? 이라는 생각이 들었더란다.
영일대군의 오른팔에 대해서 의혹이 나오고 있고, 천신일 수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지금. 하필이면 지금.. 서거가 방송되자마자 뜨는 '박연차 게이트 수사 중지' 그럼 천신일 덮고 가겠다는 얘기? 

뭘로 딜을 했을까?
자살이 솔직히 안믿긴다. 뭔가 외부로 드러난것 이외의 것이 있을거 같긴한데.. 타살설은 그게 사실이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다. 그것마저 사실이라면 너무 끔찍하니까.. 뭔가로 딜을 제시하면서 압박했을거 같은데.. 그게 뭘까.. 금품수수의혹이나 가족 측근들에 대한 싹쓸이 소환이나 그런 외부에 드러난 것들 만으로 심지가 곧은 사람이 그랬을 거라곤 생각하고 싶지 않은게다.  그냥 단순하게 말이다.

그리고 6.29네..   
발인날짜가 6월 29일이다..6월 10일 이한열 시청앞 노제에 이어..3천억 챙기셨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때야 3천억을 꿀꺽 하기도 전이지만) 특별담화 발표한날..22년 후의 그날에 또다른 전 대통령의 발인이 있겠구나..   

파란만장
뜻을 찾아보니 파도의 길이가 만 장이 된다고 해서 파란만장이란다. 그의 삶의 궤적도 파란만장 하지만..그의 죽음과 그 죽음 후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죽음 이라는 파도가 또한 만장의 여울을 일으켜서 가라앉지 말기를. 그 파도가 계속 이어져서 저 철벽같은 끔찍한 바위들을 부셔버리는 파도가 되기를..

엄마랑 신랑의 눈물..
방에서 애기들이랑 있으려니 밖에서 9시 뉴스가 한창이다. 물가지러 부엌에 나가는데 혼자서 tv를 보고 있던 신랑 얼굴에 눈물자욱이 있다. 엄마도 tv 보고는 좀 울었다고 하신다. 수영장 매점에서 옆자리 앉은 아줌마들도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을 보면서 너무 짠하다고..나도 마음은 참 그랬는데 꼬맹이 둘을 데리고 그 녀석들을 품에 안고 밥팽겨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고 하다보니 또 그 먹먹한 마음은 무뎌진다. 신랑은 tv 를 끄고 나더니 집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몸을 움직여 쌓인먼지를 떨어내고 어지러이 널린 물건들을 말끔히 정리한다. 엄마는 울고 났더니 머리가 아파서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하고.. 밤에 애들을 다 재워놓고 잠시 덕수궁앞에 갔다올까 생각하다 젖먹이 깨면싶어 그만두었다. 뭐 신랑이 있으니 울음소리 들으면 분유타먹일 텐데.내가 잠시 없어도 애기가 아빠가 옆에 와줄때까지 우는 시간이 조금길어질 뿐인데도 말이지. 촛불시위가 한창일때도 애기가 뱃속에 있으니까 하고 집 베란다에만 촛불 여러개를 내 놓았는데.. 지금도 이런 씁쓸한 마음이 들다가도 애들 얼굴이 눈에 보이면 그 마음 보다도 애들 입에 밥숟가락 들일 일에 그런 마음은 뒤켠으로 밀려난다.
난 안울었다.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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