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마르 니체 서한 전집 중 4권. 전집도 엄청나고 그 중 4권도 엄청난 책. 

가격도 (특히 가격이.. 는 아니지만) 엄청난 책. 그런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가격은, 내가 가난해서지 적당한 가격일 듯. 40유로) 지금 내 눈에는 지나치게, 

과하게, 꼼꼼하고 잘 만든(?) 책으로 보인다. 니체 서한 선집 영어판에서는 전혀 포함되지 않은, 이것은 엽서로 보낸 것인가 편지로 보낸 것인가, 이 편지는 답장으로 쓰여졌는가 아닌가, 답장으로 쓰여졌다면 답장 대상 편지는 언제 쓰여진 (혹은, 받은) 것인가. 답장 대상 편지는 보존됐는가 아닌가. 이에 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편지 전부에 번호를 붙이고 번호 다음 수신인과 수신인의 수신처도 표시. "58. 바젤의 프란츠 오버벡에게" 이렇게. 무진장 꼼꼼한 프랑스 인들. 


도서관 책인데 

거의 영구 대출한 셈치고 옆에 두고 조금씩 본다. 

하루 2-3편. 잘 만든 책이라, 그냥 그 존재가 자체로 주는 진정 효과도 있다. 





1880년 10월 31일 프란츠 오버벡에게 보낸 편지. 

"나의 약함을 나의 강함과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이어서, Ma solitude est inouïe. 


inouï. 이상하게 생긴 이 단어는 처음 보는 단어였고 

사전을 찾아보니 "놀라운" "상상을 초월하는" "들어본 바 없는" 등의 뜻이라 나왔다. 

영어로라면 extraordinary, incredible, unprecedented, 이런 단어들이 뜻으로 제시될 단어. 


불어를 배우면서 (배우느라) 읽고 있는 처지임에도 

불어와 니체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같은 생각 계속 드는데 

(니체가 이렇게 말할 리 없지, 이렇게 말하는 니체는 ridiculous하다) 그럼에도 

이 문장에서 inouï, 이 단어는 (생전 처음 보는 단어든 아니든) 아주 꼭 맞는 단어처럼 느껴졌고 

나는, "내 고독은 전대미문이다" "내 고독은 유례 없다" "내 고독은 엄청나다" 등등 우리말로 해본다면 

"고독"과는 억지로 만나는 게 될 뒤의 단어들이, 불어의 이 단어 경우엔 전혀 아니라고 결정했다. 


한국어는 정신을, 정신의 체험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 이렇게 말할 기회로 보이는 무엇이든 놓치지 않는 듯. 

흐으. 흐으으으으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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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확인한 수치. 

차라리 너의 눈을 믿으라고들도 하던데 

우리집의 내 눈 척도인 (창으로 보이는 신촌의 고층) 건물이 지금 꽤 보이는 편이라 

어젠 아예 안 보였던 걸 생각하면 조금 낮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수치는 어제보다 높음. 


<불의 정신분석>에서 많이 인용되는 대목 중 이런 것이 있다. 

부엌의 불이 그에게 주었던 특별한 음식에 대하여, 평소 먹던 음식으로는 투정을 부렸지만 

불이 불의 힘으로 "잉여의 즐거움"을 부여했던, 특별한 날의 맛있었던 음식에 대하여. 


"내가 반듯하게 행동하는 날이면, 할머니는 와플 아이언을 꺼냈다. 네모난 아이언이, 글라디올러스처럼 타던 잔가지 불꽃 위에 올려졌고, 가지들이 바스락거리며 부서졌다. 곧 와플이 내 앞치마 안에 던져지면, 그건 내 입술보다 손가락에 더 뜨거웠다. 그렇다, 그러면 나는 불을, 불의 황금을, 불의 냄새와 불의 바스락거림까지, 뜨거운 와플이 내 이 아래에서 바스라질 때,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정은 언제나 마찬가지다. 어떤 잉여의 즐거움 -- 디저트처럼 -- 을 통해 불은 자신이 인간의 친구임을 보여준다. 불은 단지 음식을 익히기만 하는 게 아니다. 불은 음식을 바삭하게 한다. 불은 팬케익에 황금빛 껍질을 준다. 불은, 인간의 축제에 물질적 형식을 준다. 우리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그 어떤 시대에든, 미식의 가치가 영양의 가치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졌으며, 인간이 그의 지성을 발견한 건 슬픔이 아니라 기쁨에서였다. 잉여의 정복이 우리에게, 필요의 정복보다 더 큰 영적 흥분을 준다. 필요가 아니라 욕망이 인간을 창조한다." 


필요의 정복보다 잉여의 정복이 더 큰 만족, 흥분을 주는 건 

생각하기 그리고 말하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지 않나. 아기 시절의 슈로딩어가 

막내 이모와 저녁 먹고 "세상 전부"를 얘기했던 일. We talked all about the world. 이모에게 구술로 

기록할 가치가 있었던 (밥만큼, 밥보다 충만감을 준)그 날 저녁의 대화. 이런 체험이 우리에게는, 아주 드물지 않나. 

나로 말하면 가족 중 누군가와 그래본 일은 없는 것이다. 세상 전부를 얘기할 뻔한, 얘기할 수도 있었던 적(순간)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속'의 체험으로는 없고, 그 비슷한 건 나중 친구들 사이에서. 


'그래서 하려던 말이 뭔데?'

'할 말만 하세요.' '복잡하게 말할 것 없고.' 

혹은 "3줄 요약." 특히 "3줄 요약"이 우리에게는 강력한 밈이 될 수 있지만 

영어권에서 그럴 수 없을 것임을 상상하면, "잉여의 정복"이란 우리에게 ㅋㅋㅋ 허락되지 않은;; 

우리가 즐기지 못하는 사치. 


정확하고 아름답게 말한다는 건 

"잉여의 정복"이 소중하게 여겨질 때 일어나는 일. 

영어 쓰는 지식인들의 언어와 한국의 지식인들 언어를 비교할 때 

드러날 여러 차이 중 이것도 있을 것이다. 영어 쓰는 지식인들의 언어엔 

반드시 "잉여의 정복"이 있다는 것. 그런가 하면 우리의 언어에서는 심지어 "필요의 정복"도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 잉여의 정복 없이는 필요의 정복도 어려운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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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부터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오늘이 최고 수치인 듯. 

놀랍다. 진짜 '리터럴리' 지옥 체험 아닌가. 


미세먼지 극심했던 어느 날엔 

나가야만 했던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니 바로 눈꼽, 눈썹에 먼지 고드름. ㄷㄷㄷㄷ  

과장이지만 과장이 아니었던 그 날의 그 먼지. 


*신년토론 본다. 

토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 ㅋㅋㅋㅋㅋㅋㅋ 

위대한은 아니지만 햐튼 좋은 일이잖아요. 너무 늦었잖아요. ; 좋은 일은 늦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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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로 생각하고 적어두고 싶은 것이

적어도 일단 (10)까지 갈만큼은 있는 듯. 이것도 써야지 

조금 있다 뉴스룸도 봐야지. 바쁘다. 바빠. 뉴스룸을 보면서 쓸 수도. 아니면 뉴스룸을 보고 나서?


아래 포스트에 쓴 보리스 씨. 

그의 (비범한, 비범하게 유창하고 정확한) 영어 들으면서, 언어의 어떤 유창함은 반드시 

지적 전통, 정신적 전통 안에서만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러알못이면서 ㅋㅋㅋㅋㅋ 그래 러시아와 

한국의 차이가 있을 거야. 러시아는 어떤 면에서 강하고 넓고 깊은 정신적 전통이 있을 것임에 분명해. 예민한 

정신이 성장기를 그 곳에서 보낸다면, 좋은 자극을 통해 성장으로 이끌. 한국은..... 없다고! 


20세기의 전반까지 미국도 (미국이) 유럽을 향한 문화적 열등감이 깊었음을, 사실 지금도 아주 없는 건 아님을 생각하면 (파운드 같은 사람이, 서구 전통만이 아니라 세계 전통의 모든 성취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 절박하게 느끼고 공부, 열공했던 일. 손택같은 이들의 유로필리아), 어쩌면 우린 한번도 그런 열정에 사로잡힌 적도 없지 않나 싶어지기도. '사대주의'라는 말이 갖는 힘이, 필요했던 배움을 막기도 하지 않았을까. 


(정유라 덴마크 은신처에 

창문에 블라인드 내리고 이불로도 가리고 있는데

그렇게 은신하고 있다고 보도하는 와중, 블라인드 들치고 바깥 내다보는 고양이 등장! 배신한 고양이. 존귀 고양이.....) 


공유되는 강력한 정신적 유산이 없을 때 

지성, 정신.. 이것이 수단이 되지 않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것이 한국의 "정신 없음"의 하나의 이유 아닐까 함. 


*더 쓰려던 생각인데 

오늘 저녁은 뉴스룸에 집중하고 내일 이어서. (10)까지 

그 얘기 그만 해! (뮤트. 할 수 있다면). 그러시더라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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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Review of Books 최근 업로드 (12월 30일) 주제는 

성탄절, 연말연시를 소련에서는 어떻게 보냈나. 평소 진행자들 대신 

LARB 편집장이 출연해 진행했는데 (사진), 이름이 Boris Dalyuk인 그는 91년 소연방 해체 직전 미국으로 이민했다고. 저 사진이 언제 사진인지 모르지만, 최근이라면 나보다 꽤 어린 (30대 중반?) 나이겠으나 그의 얘길 들어보고 조금 검색해 본 바 저 나이 아닌 것 같고 이민하던 당시 10대 후반-20대 초반이었을 듯. (이 정도 나이에 가족과 이민하면, 이민 1세대인가?) UCLA에서 슬라브어문학과 박사 학위. 이후 여러 대학에서 가르쳤고 문학 번역가이기도 하며 지금 LARB 편집장. 게스트는 역시 러시아 이민자이며 그의 친한 친구라는 UCLA 슬라브어문학과 박사과정 여학생. 사샤. 


들으면서 놀란 게 

사샤는 영어로 못할 말이 없고 유창하지만 억양이 강하고 

유창하더라도 막힘이 없다의 유창함이지,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아닌 반면 

보리스 씨, 이 분은 영어를 외국어로 배운 사람이 얼마나 영어를 잘할 수 있나, 영어가 외국어여도

끝장의 궁극의 최상의 완벽한 무결의 도저한 (하여튼 최상급) 영어를 할 수 있나 내내 보여/들려 주더라는 것. 

영어를 외국어로 배운 사람이 직접 대화에서 쓰기엔 굉장히 어려운 표현이나 문장들이 아무 노력 없이 나오고 

그것들이 전부, 느슨하지 않고 정확하다. 영어가 모어인 사려깊은 지식인들의 말. 그 정도 수준에서. 


우와 (우왕) 이 분 ㅈㄴ 혹은 ㅈㄹ 똑똑한 분이네. 오우. @.@ 

감탄하다가 나는 왜 한국인으로 보리스 씨 같은 분은 드물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학교에서 보낸 삶'인데다 이것저것 부지런히 찾아서 보고 듣기도 하므로 영어 아주 잘하는 한국인들을 꽤 본 편인데, 보리스 씨처럼 (그만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아직 없는 것이다. 보리스가 말하는 문장 모두에 그의 정신(영혼)이 있는데, 영어를 쓰면서 그럴 수 있는 한국인은 누가 있을까. 아니 한국어를 쓰면서 그럴 수 있는 한국인은 누가 있을까. 왜 한국에서 똑똑하다는 사람들의 다수가, 정신(영혼) 없이 말할까. 영어 능력자들의 경우, 왜 그들의 언어가 (한국어나 영어나, 이상하게도) 기계적으로 들릴까. 



*음 이어 폭주했던 잡념의 기록은 내일 하도록 하겠. ;;; 

**1939년에 소련에서 나온 요리책이 있다고 한다. 제목을 영어로 번역하면 Book of Tasty and Healthy Food 정도가 되는 이 책은, 소련(러시아)에서 국민 요리책. 최신판이 16년에 나옴. 39년부터 16년까지 무수히 신판을 찍고 무수히 팔린 책. 소련(러시아)의 주부는 모두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음. 이 책은 소비에트 프로퍼갠더의 노골적 매체기도 해서, 스탈린이 죽자 그때까지 그 책 곳곳에 삽입되었던 스탈린 강령이 빠짐. 다른 강령으로 채워짐. : 이런 얘기를 사샤가 한다. 아 정말, 소련. 인류. 하 정말........ 그참 신기하고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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