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포스팅에 쓰려고 이 분 이미지 검색 하다가 

그의 개인 서재인지 아니면 초대받은 타인의 공간인지 모르겠으나 

개인 서재처럼 책들이 꽂힌 서가들 사이에 서서 찍은 사진 발견했었다. 지금 그 사진 찾다가 못 찾고 

이 사진으로 대신.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 말하는 방법" (이 제목 맞나?) 움베르토 에코. 자기 서가의 책들을 보고 "이 책들을 다 읽으신 겁니까?" 질문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답하는가. 이런 얘기 듣고 난 다음엔 저자들이 서가에서 찍은 사진 보고 "그는 이 책들을 얼마나 읽었을까?" 같은 생각 든 적 없는 거 같다. 그런데 슬로터다이크의 그 사진은 거의 보자마자 


이 분 이 책들 다 읽었을 거 같다. ㅇㅇ 

ㄹㅇ (..... 뒤에 숨은 서가가 있고 거기 책들도 다 읽었을 것임).

(박스로 내놓은 책들이 있고 그 책들도 다 읽었을 것임). 안 읽은 책이 설령 있다 한들 

거의 다 읽었으면 안 읽은 책은 안 읽어도 되는 책. 




책을 무시무시하게 많이 읽은 사람들은 흔히 오히려 예민하지는 않은 거 같은데 

(예민함을 서서히 잃어가지 않나 한다, 무시무시의 지경으로 가면 갈수록) 슬로터다이크는 극히 예민하기도 하다. 

이런 면모 가진 철학자는 내겐 슬로터다이크가 처음이다. 사실 철학사에서 희귀할 거 같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과 닿아 있을 거 같음. 이 시대라서 나온 예민함. 


"In Place of a Preface" 이 제목 인터뷰에서, "boredom" 주제로 말할 때. 

내가 발번역으로 대강 옮겨 오면 이렇다: 


슬로터다이크: 인터뷰에서 내가 진짜로 싫어하는 게 뭐냐 묻는다면, 공식 발표처럼 들리는 공허한 말들을 교환하는 거라고 답하겠다. 공허한 말들을 나는 혐오한다. 내게는 "boredom"에 대한 아이같은 공포가 있다. 학문 담론 시장에서 나오는 표준적 언설들이 내 기준엔 이 세상에서 가장 지겨운 말들이다. 오해가 없도록 덧붙이자면, 세상엔 좋은 종류의 지겨움도 있다. 우리를 침착하게 하고 우리를 통합하는 힘으로서의 지겨움도 있다. 그런 지겨움에 우리는 우리가 유치원 시절 선생님에게 그랬듯이 우리 존재를 의탁할 수 있다. 어떤 풍경이 갖는 절묘한 지겨움.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해방과 함께 하는 지겨움. 산들이 품고 있는, 고양감의 지겨움. 위대한 서사문학이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할 때 갖게 되는 지겨움. 


사악한 지겨움은 허풍스럽고 공허한 말들로 진리는 자기 편에 있다는 듯 행세하는 이들에게서 발생한다. 이 지겨움은 이미 악명이 높고 그 악명만큼 치명적이다. 당신은 당신 상대와 몇 마디를 교환한다. 대화가 시작하기 전 당신에게 상대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세네 문장이 오고 간 다음, 당신은 삶의 의욕 모두가 사라지는 피로감을 느낀다. 당신 생명력의 배터리가 단 수초만에 방전된 느낌이 여기 있다. 당신은 그 순식간의 방전 앞에서 멍하다. 


나는 이 유형의 지겨움을 결사적으로 피해 다닌다. 그 지겨움이 끼여드는 한, 말하기의 즐거움은 사라진다. 나의 의견을 표현하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내가 본 대로의 세상을 말할 수 있다는 감각이 주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아니 진정, 삶의 즐거움 전부가 사라진다. 사악한 지겨움의 강도가 높아질 때, 언어가 붕괴한다. 갑자기 말들이, 정확한 순서대로 나오기를 거부한다. 간신히 명사는 꺼내 놓지만 그 명사가 요구하는 동사가 뒤따르지 못한다. 그 무엇도 말하고 싶지 않다는, 나를 압도하는 끔찍한 감정이 덮친다. 이 감정은, 아무 할 말이 남아 있지 않다는 유쾌한 느낌과 결코 혼동될 수 없다. 나의 상대가, 전적으로 진부한 질문들을 내게 던질 때, 나는 내가 위험 구역에 들어섰음을 감지한다. 이런 질문들은 인간을 우매화한다. 이 질문들엔 서브텍스트가 있다: 자 너도 그만 항복해라, 너도 그만 우리의 비참에 동참해라! (.....) 



번역은 안되지만 

옮겨 보면서 몇 번 실제로 다시 웃기도 했고 다시 감탄하게도 된다. 

특히 저 마지막 문장. 인간을 우매화하는 진부한 말들, 진부한 질문들에는 

"자 이제 그만 너도 항복하고 우리의 비참 속에 같이 빠지자"는 초청이 있다..... 이 말.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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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무에서 유가 나왔다는 것. 

존재의 문제. 철학과 물리학의 접경 지대. 

철학은 너무 중요해서 철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존 휠러 인터뷰 찾아보았는데 이 클립, 7분 지점에서 저런 말씀 하신다. 

특히 마지막 문장. Philosophy is too important to be left to the philosophers.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특히 물리학자들이, 철학에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로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해왔던 거 같긴 하지만 오늘 아침 들으면서는 (......) 그냥 몰표. 이런 말을 하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해도 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클립이 업로드 되었을 때 

메릴랜드인지 델라웨어인지에서 60대의 존 휠러라는 남자가 피살되어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견되고 

그게 연방정부를 향한 어떤 메시지가 담긴 살인이었고 ..... 이런 사건이 있었나 보았다. 댓글들이 ㅎㅎㅎㅎ 

60대 피살당한 존 휠러 얘기들을 하고 있음. "사람들아 야 이 바보들아. 다른 사람이야! 이 분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였다. 양자 우주론의 아버지시다." 이러는 댓글 나오고. 이런 미친 스레드는 

처음 본다는 댓글도 나오고. 




여름 동안 오래 산책하기가 힘들었는데 

10월 시작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산책하기가 훨씬 즐겁고 쉬워져서 좋다. 

아침에 늦게까지 어둡다는 것. 시원하다는 것.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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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교향곡 4부작의 4부에서 

아론 콥랜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영국은 수세기에 걸쳐 "음악이 없는 나라 land without music"라 불리었지만 

미국은 음악이 "아직" 없는 나라... 미국적 음악을 만든 미국 작곡가들은 

20세기에 나오게 되는데 그 중 누구보다 아론 콥랜드. 


말년에 그는 

뉴욕시에서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은둔자처럼 살 수 있는 시골에 집을 지었고 

실제로 그 집에서 은둔자처럼 살았다. 모더니즘 양식이 어느 정도 보이는 집이고 

초라한 집은 아니지만 그가 평생 그의 삶에서 보여준 절제, 검박함이 드러나는 집이다. 

(.....) 저런 설명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조금 찾아보니 그가 살았던 집이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이나 보았다. 





아슈케나지와 그의 스위스 집이 

나오는 다큐가 있었는데 아슈케나지의 집은 

............ 아 저기서 그처럼 피아노 칠 수 있으면서 산다면 

매일 초월의 체험이겠. 매일 현세를 떠나 저 너머로. 아니 현세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의 집도 넓은 창이 있었고 창밖은 그 그림같은 스위스 산들의 풍경이었다. 


뉴욕주 시골에 지었다는 콥랜드의 집은 

그에 비해 현실적인 집이라 느껴지긴 한다. 





이제는 이런 용도로도 쓰인다는 Copland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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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소나타 연주 중에서 이 분의 연주 좋았다. 

다른 연주들은, 다들 다르긴 하지만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야? 였다가 

이 분 연주에서는, 그의 이 다름은 그만의 개성일 거 같고 

개성 정도 아니고 천재성일 거 같다.......... 느낌 든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면 그가 남긴 이런 말들 볼 수 있다. 

"(피아니스트는 해석자고) 해석자는 실행자다.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충실하게 실행해야 한다. 

이미 작품에 있는 게 아닌 그 무엇도 보태어선 안된다. 만일 그에게 재능이 있다면, 그는 작품의 

진실을 우리에게 보게 한다. 해석자는 작품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작품 속으로 용해되어야 한다." 


그는 소규모 공연을 좋아했나 보았다. 그 점에 대해 그가 남긴 말은: 

"트럭에 피아노를 싣고 시골길로 떠나야 해. 새로운 풍경이 보일 때까지 오래 운전해 가는 거지. 

교회 건물이 있는 예쁜 곳이 나타나면 거기서 멈추어. 트럭의 피아노를 내려놓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해. 공연을 해. 공연에 와 준 고마운 사람들에겐 꽃을 주어 보답해야 해. 그리고 다시 떠나는 거야."  


쇼스타코비치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리히터는 경이로운 현상이다. 그의 재능 앞에서 우리는 비틀거린다. 우리의 영혼이 사로잡힌다. 

음악 예술에 속하는 현상들 모두를 그는 이해한다." 




미친 드립력 소유자인 로버트 그린버그 교수가 

리스트의 초인적 일정 콘서트 투어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 얘기 한 적 있다. 

"자 그럼 콘서트 투어라 우리가 부르고 있으니 그 시절 리스트가 

옆구리에 Team Liszt라 적힌 대형 버스 군단과 등짝에 Team Liszt 찍힌 옷 입은 스탭 동원하고 

자기는 리무진 타고 이동 중엔 숙면하면서 했을 거 같니? 

'

마차 타고 다녔던 거야! 덜컹덜컹. 길은 좋았을 거 같아? 피아노나 사람이나 남아나기 힘든 길이었어!" 


Team Liszt. 21세기식 콘서트 투어. 

상상하면서 혼자 비틀비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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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표지에 쓰인 저 이미지, 굉장히 유명한 사진이라고 한다. 

오른쪽 남자는 마르셀 뒤샹이고 왼쪽의 누드 여자는 당시 20세였던 Eve Babitz. 

이브 바비츠는 60년대 LA의 "잇걸"이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짐 모리슨, 그리고 그 외 락스타, 예술가, 작가, 배우들과 숱한 염문을 뿌렸다. 고 하는데 


나는 어제 처음 들은 얘기. 

그녀의 아버지는 20세기 폭스사 소속 바이얼리니스트였고 어머니는 예술가("an artist" 이렇게만 소개하면 대개는 (취미 이상은 아니었던) 화가, 혹은 사진가 아닌가)였다. 그들은 LA의 여러 예술가들과 절친한 사이였고 그 예술가들 중엔 스트라빈스키도 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브 바비츠의 대부가 되었다. 짐 모리슨의 LA woman에서 LA woman이 그녀였다. LA를 지배한 파티걸이었음에도 그녀는 진지하고 성실한 작가이기도 했고 60년대 LA에 보내는 찬사라 요약될 그녀의 작품들은 당시엔 조셉 헬러, 이후엔 브렛 이스턴 엘리스 등 본격작가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고 

작가로서 그녀 삶은 결국 불발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이제 와서 '촉발'할 수도. 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그녀 선집들이 나오는 중인가 보았다. 


저렇게 젊었던 (젊고 예뻤던) 시절. 

지금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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