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king Dead 4시즌 보기 시작했다. 

미숑 외에 캐롤도 특별한 전사. 워리어. 1-2시즌, 특히 1시즌에서는 

조용하고 여성적인 기혼 중년여성이었다. 남편이 폭력적이고 폭력적 남편에게 길들여진 아내. 

그런데 그 남편이 죽음. 


그리고 그녀의 해방이 시작됨. 1시즌에선 저랬던 캐롤이 

시간이 흐르면서 아래의 방향으로 변모함. 





The Walking Dead가 칭송 받는 면모들 중에 이것도 있을 거 같다. 

스테레오타입의 전복. 캐롤의 경우도, 조용하고 친절하고 다감하고 여성적이고 체구 작고 예쁜 남부 백인 여성. 이 전형에 충실한 인물에서 시작하게 하고 


그런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와 얼마나 다른 인물일 수도 있나 보여주기. 

캐롤이 그녀에게 아들 뻘이랄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한참 어린 대릴에게 추파에 근접하는 말과 행동을, 그런데 동지애 혹은 전우애 이런 것의 표현으로 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참 이상하게도 후자 방향으로 성공적이다. 내가 전쟁은커녕 군대도 모르면서 "전우애" 따위를 칭송의 맥락에서 말할 수는 없겠긴 하지만 


가장 여성적인 여자에게도

이 사회에서 남성성의 이상으로 꼽히는 미덕들이 아무렇지 않게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 





"undoing gender" 아니면 젠더의 감옥에서 벗어나기의 한 예로 

캐롤을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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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v물, 책들의 제목 중에서 어떤 것들이 좋은 제목이냐. 

이게 주제였을 때 대나 스티븐스가 최애로 꼽은 것이 이것이었다. 제임스 M. 케인 원작이고 

레이먼드 챈들러가 각본을 썼으며 빌리 와일더가 연출한. 필름 느와르의 시초 격이기도 하고 고전인. 


Library of America에서 나온 두 권짜리 챈들러 전집에서 

이 영화 각본 깊이 감탄하며 읽은 기억 있다. 오래 전의 일. 이 제목이 좋은 제목인 이유는 단 두 단어로 간결하며 의미가 이중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나 스티븐스는 설명했다. 보험업계에서 쓰는 전문용어 "이중배상"의 의미와 함께 두 사람이 공모하는 범죄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이 설명은 사실 엄밀하게는 맞는 설명 아닐 거 같다. "이중배상" 부분이야 당연히 맞지만 "이중 범죄"같은 의미가 되기엔 indemnity가 그렇게 의미가 확장될 수 없을 거라서. 아니면 그녀 설명이 맞는 것일지 확인을 나중 해봐야....). 




"double meaning"을 그 자체로 좋은 것으로 칭송하는 그녀 얘길 듣다가 

한국식의 이상한 이중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명확하게 그 구절 자체가 품는 이중 의미가 아니고 

맥락에 따라 반어법이 될 수 있어서 갖게 되는 이중 의미도 아닌 


말해진 내용을 기준으로는 말해지지 않은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지만 (내용만으론 연결 불가지만) 

그 발화에 참여하는 사람은 말해진 내용과 말해지지 않은 내용 둘 다를 알게 되는 (혹은, 알아야 하는) 이중의미. 


"오늘 날씨가 좋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전달되어야 하는 더 중요한 의미는 "오늘은 네가 너의 집으로 얼른 가야 할 거 같다"인 때의 이중 의미. 


(예가 좋지 않은가? 별로 혹은 전혀 와닿지 않는가....) 

어느 날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모니터와 모니터 앞의 책을 바삐 오가던 나는 

내가 망가진 이유의 8할은 저, 바로 저 유형 이중 의미의 깊고 끈적한 늪에서 

어쩌면 거의 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앞에서 뒤에서 

이중 의미인 말들이 언제나 날아오는 곳 어딘가에서 살다가 마지막 순간 요행 빠져 나온 느낌이었다. 


만약 이게 당신에게도 아주 낯설지는 않은 경험이라면 

이것도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주제로 널리 탐구할 가치가 있는 문제인지 모른다. 

어쩌면 일본보다 더,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사정. 이것도 여기서 작동하는 거 같고 

그리고 언어 능력의 (전사회적) 지체. 쉬운 표현만을 말로 하고 정작 말로 정교하고 깊이있게 해야 마땅한 

얘기를 수화처럼 (바디 랭귀지, 눈빛, 손짓발짓, 기타...) 하기. 이것도 작동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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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발행되는 온라인 잡지 Aeon에 실렸던 

<공간의 시학> 다시 읽기 주제의 글("Intimate Spaces"가 제목이었다)은 

바슐라르가 그의 미천했던 출발에서 어떻게 그 위대했던 여정을 살 수 있었나 말하면서 


"그의 성취는 그의 "intellectual tenacity" 덕분이었다" 같은 문장을 쓴다. 

intellectual tenacity. 이 구절이 순간 깊이 새겨짐. 한편 바슐라르를 아는 사람이면 

이건 쓸 수 없는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내하기, 버티기, 이런 건 바슐라르의 정신에 

할 수 없는 말이지 않나. 그 유연하고 유희적인 정신에게? 


그런데 그보다는 

무시, 몰이해, 저평가 같은 것이 

자신의 지적 과제... 아니면 더 사소하게 들릴 지적 "관심"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치게 하지 않았던 게 바슐라르다....... 같은 뜻으로 들리기도 해서 

그 뜻으로 이해하기로 함. 바슐라르의 intellectual tenacity. 그의 (그의 정신의) 주인은 그 자신이었다. 같은 뜻으로. 




얼마 전 들었던 culture gabfest 에피에서 스티븐 멧캐프는 

N+1 매거진에 실린, 랩퍼가 되고자 했던 백인 소년에 대한 에세이를 추천했다. 

에세이 필자는 그 소년을 (그 자신 10대 시절) 지인의 지인으로 알기 시작했다가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알게 되는데

재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재능이 넘치는 것도 아니었던 그 소년은 


예술 지향인 인간들이 

대략 빠르면 17세에서 늦으면 35세 사이에 (그들이 아주 멍청하지 않고 최소의 현실 감각이 있다면) 하게 되는 자각, "나는 나 자신의 열등한 버전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자각을 거부했다. 

어떤 조롱을 받고 어떤 실패를 하든 

그에게 그 자신의 온전한 버전은 언제나 무사히 건재했다. 

그리고 세월이 가는데 ......... 세월이 가면서 그는, 조금씩 천천히 

그의 능력, 그의 수준에서 그가 갈 수 없는 곳이라 사람들이 말하던 "next, next level"을 성취하기 시작했다. 


............ 멧캐프의 요약에 따르면 에세이 내용이 대략 이렇다. 

(실제 에세이를 찾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 다 읽지 않았다. 조금 긴 편). 

멧캐프가 말하는 걸 들을 때 이상하게 감동적이고 맞아 이런 얘기의 중요한 진실이 있지... 같은 심정이더니 

지금 적어놓고 보니까 


가장 흔해빠진 자기계발서 주장의 재탕처럼 들린다. 


"글쓰기는 한편 기적이다. 공들여 쓴다면 반드시 너의 능력을 초과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이건 아도르노 영어 번역을 다수 했던 로버트 훌롯-켄터의 말인데, "tenacity"를 아는 바슐라르와 위의 청년들은 바로 그 "기적"을 (그것도) 알았던 것일 것이다. 흐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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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2-12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그림은 tenacity를 나타낸다고 생각하셔서 골라주신건가요?
저는 시지프의 신화가 먼저 떠올라서요. next, next level이면 좋은데 ‘원점으로‘ again, again... 이랄까요.
개가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의 소매끝을 물고 안놔주는 장면, 저는 tenacity 하는 단어를 보면 그 장면부터 떠올리는걸 보면 아마도 옛날 언젠가 영어 선생님께서 그렇게 예를 들어 설명하셨는가봐요 ^^

몰리 2018-02-12 09:14   좋아요 0 | URL
구글 이미지에서 ˝tenacity˝를 검색했더니 (포스팅할 때 짤방 찾으면서 늘 이 방법으로 ㅎㅎ) 나온 이미지 중에 저것이 있었는데, 이건 내가 찾는 주제 이미지가 아닌데

했다가 좀 더 생각하니
이게 맞다고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돌의 무게 아래 깔리는 게 아니라 나의 힘으로 막고 있기.
바슐라르의 버티기에도 그런 요소가 없었던 게 아니다....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유연하고 유희적이지만 동시에 강인한 사람. 자신의 이상적 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랩퍼 청년에게도 같은 강인함이 있었던 거란 생각이 들고요. tenacious, tenacity 이 단어들도 어감이 나름 오묘해요. tenebrous 같은 단어와 공유하는 ten(tene) 때문에 어둠(검음)이 암시되기도 하고

검은 강철, 휘더라도 부러지지 않는. 그런 느낌 품고 있지 않나 해요.
 




오늘 오후엔 

외신들 올림픽 보도 보다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스포츠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엔 스포츠보다 더 관심이 없는데 (여기서 스포츠란 그러니까, 올림픽을 제외하고..........) 

개회식을 보고 나니 기사들도 보고 싶어져서. 


미묘하게 한국을 비하하는 뉘앙스로 쓴다고 판단되는 기사들이 있던데 

(예: 김연아를 "a celebrated South Korean skater"로 표현. 이것 어떻습니까? 내겐 빨간 불 ㅎㅎㅎㅎ 켜지던 구절. 동계 올림픽 보도를 하면서 김연아를 김연아라 부르지 않음? 너에게 이유가 있다...) 


그래서 부들거리다 잡념들이 들기도 했다. 


객관적이며 동시에 우호적인. 이런 태도가 

개인들 사이에서도 (말로는 너무 쉬워도) 어려운 일이지만 

언론들의 보도에서도 마찬가지. 객관적이며 동시에 우호적이려면 특별한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 

대부분의 경우엔 그 에너지가 없으며 


그래서, 심지어 아무 악의가 없을 때에도 (아무 가치 판단이 없을 때에도) 

상대를 절하하는 방향으로 가고 만다고. 


그러니 만약 악의가 충만하다면? 혹은 가치 판단이 명확히 작용하고 있다면? (일본을 한국보다 우월한 나라로 보기 같은). 



*짤방은 Slate의 기사 "펜스는 벌써 평창 올림픽에서 the biggest jerk가 되었는가?"에 쓰인 이미지. 

이 기사 독자 코멘트에 웃긴 게 꽤 있다. 펜스와 트럼프를 비교하는 일이 그 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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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도 겨울 산책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A Winter Walk" 제목의 에세이를 썼다고 하는데

(찾아 보니, 소로우 특유의 고풍스럽고 거창한 단어들과 유장한 문장들.  

읽으려면 특별한 에너지와 인내가 필요한....) 정말 추운 겨울, 새벽에 산책할 때

특별한 무엇이 있다. 영하 10도 이하여야 한다. 눈이 쌓여 있으면 더 좋지만 아니어도 좋고 

공기가 맑아야 한다. 얼굴은 어는 느낌이지만 얼굴 빼고 어디도 춥지 않게 입고 나가야 한다. 


오늘 새벽 산책하면서 

그래 이 맛이야. 아 너무 좋다. 계속 감탄하고 

겨울이면 이 정도 한파가 한번에 적어도 2주씩 몇 번 와야 하는 거 아니냐 같은 생각도 했다. 

산책 경로에 서울 서부 내려다보이는 지점들이 있는데 공기가 맑고 하늘도 맑으니 켜진 불들이 영롱하게 반짝였다. 

흐린 날이나 미세먼지 많은 날엔 뿌옇다. 공기오염된 런던이나 델리. 혹은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바라보는 안개 낀 이스탄불. 그런 풍경. 


아주 차가운 공기로 호흡할 때 

특별히 더 정신이 맑아지고 생각이 정리되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나쁜 생각을 극복하고... 이런 일이 

분명 더 잘 일어나는 거 같다. 어쨌든 오늘은 그랬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 앞으로 쭈욱, 전사로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지금.. ㅎㅎㅎㅎㅎ 

맥주 마시고 있음. 이럴 줄이야. 

올해 내내 술을 마시지 않는 건 어떨까. 같은 망상을 

월초에 해보았었지. 그러고 보니 벌써 1월 23일이네. "월초"를 "정초"를 말해도 되는 때가 되었네. 

무섭지 않습니까. 세월의 속도. "어영부영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라던가, 이 말. 

내가 저 심정이 되는 게 혹시 내일 모레는 아니겠지........ 같은 "얼마 남지 않았음"의 실감을 수시로 한다. 

아 그래서, 오늘은 맥주를 조금 마시며 포스팅을 하지만 그것이 끝나면 일단 서재 활동은 잠시 쉬기로 하겠다고 

적어 둡니다. 세월의 이 엄청난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서재 활동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이래놓고 

모두가 숲으로 돌아갔다며 

곧 복귀하는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오늘은 막 다다다 다다다다다다다 다다다 포스팅을 하고 

내일부터 



(........................................... 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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