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 - 영화광 가네시로 가즈키의 열혈 액션 드라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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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쿄쿄. 누구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벽을 통과해서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그 날 그 날을 보내는 것에만도 지쳐서 요런 생각을 할 때가 적어지긴 할테지만요. 초능력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 영화 <엑스맨>이라든가, 미드 <히어로즈> 를 좋아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막 신나거든요. 이 책 [SP]에 등장하는 이노우에도 남다른 능력이 있답니다. 

이노우에의 직업은 SP입니다. 국내외 VIP를 보호하는 특수경찰로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해서 요인을 지켜내야 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움직이는 벽'이라고 불릴만큼 아주 위험한 상황도 발생하죠. 어린 시절 겪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게 발달한 이노우에는 일을 할 때 겉으로는 멍~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주위를 싱크로해서 정보를 수집한답니다. 이 책에는 그런 이노우에와 이노우에가 속한 제4계의 대원들의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독특해요. 일반적인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집이거든요. 사실 전 [SP]를 드라마 <SP>로 먼저 알았습니다. 이 책은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가 직접 쓴 시나리오로 화제가 되었으며, 그 다음에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전편을 다 본 것은 아니었지만 V6의 멤버인 오카다 준이치가 이노우에 역을 맡았다는 것은, 케이블에서 드라마가 방영될 때 알게 되었어요. 그 때 오카다 군이 멋지게 몸을 날렸던 한 장면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시나리오집은 처음 읽어보지만 오히려 상황을 그려보는 데는 더 좋은 것 같아요. '오쿠보의 한 싸구려 아파트 방-밤' 의 식으로 장소와 시간대가 설정되어 있고, '이노우에, 야스하라, 요시다' 식으로 지금 누가 이야기하고 있는지 쉽게 알아챌 수 있거든요. 가끔 책을 읽다보면 사람 이름이나, 지금 대체 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잖아요. 이 책은 그런 부담(?)이 조금은 줄어든다고 할까요. 게다가 작가의 각주가 아주 친절하게 덧붙여져 있어서 마치 그가 옆에서 '이건 이렇고, 그건 그래'라고 설명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4계의 대원들 모두 개성적이지만 저는 특히 계장 역을 맡은 오가타 소이치로와 이시다 미쓰오 역을 맡은 배우가 궁금합니다. 오가타 역은 쓰쓰미 신치이가 맡았다니 의심할 나위없이 멋지겠지만, 우직한 남자로 그려진 이시다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작가가 영화광인만큼 군데군데 자신이 어떤 영화에서 장면들을 생각해낸 것인지 적어놓기도 했는데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더 반가우실 거에요. 전체적으로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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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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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대하지 않은 책이 뜻밖의 재미를 가져다 줄 때, 그 기쁨은 더욱 크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와 '본격 미스터리 대상'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과 마지막까지 1위를 다퉜다는 말에 혹하긴 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고 밀실살인에 큰 흥미도 없는 터라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욕을 실컷 들어먹을 그런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옷!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완전 재미있다! 얼마나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잠자기 전에 책을 들지 말라'는 진부한 표현으로밖에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잠들기 전 아주 조금만 읽으려고 했는데,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손가락이 계속 책장을 넘겼기 때문에 내 눈은 그저 읽었을 뿐. 히히. 작가 이시모치 아사미는 '본격 추리'로 데뷔를 했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서의 지표를 확실히 굳히고 있다고 한다. '본격 미스터리'가 무엇인지 나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벌어진 사건을 결말 부분에서 깔끔하게 해결하는 것을 말한단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은 조금 남다르다. 범인인 후시미 료스케가 니이야마 가즈히로를 살해하는 장면이 먼저 묘사되고 니이야마의 닫힌 방문을 둘러싸고 추리대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후시미의 두뇌대결의 맞수는 우스이 유카. 동창회였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였지만 그 중 명석한 두뇌를 자랑하는 유카가 니이야마가 오랫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 때부터 후시미와 유카의 심리대결이 펼쳐지는데 두근두근할 정도로 흥미롭다. 

문장 하나하나에 어떤 단서와 후시미의 실수가 숨겨져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어떤 것도 쉽게 지나칠 수 없으며, 범인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어 긴장감이 한층 고조된다. 언제 어떻게 트릭이 밝혀질 지 모르고, 또 진술에 구멍이 있어서는 안되므로 머리를 써가며 신중하게 대답하려는 후시미의 긴장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후시미는 왜 니이야마를 죽이려고 했는지, 후시미와 유카의 묘한 관계는 왜 이런 공기를 띄는지, 후시미가 니이야마의 시체를 방에 계속 가두는 이유는 무엇인지 갖가지 수수께끼를 생각하는 재미가 대단하다. 

완전 재미있지만 별 반 개를 뺀 이유는 첫째, 후시미의 범행동기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설자는 '그런 동기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 무섭다' 고 했지만.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 중에는 범행의 이유가 이해되는 것들도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작품에서 후시미의 동기는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음음. 둘째로는 결말 부분이 약간 아쉽다고 할까, '이 둘은 뭐니!'라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그래서 별 반 개 제외. 그런 것만 제외하면 별로 꼬투리 잡을 것이 없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는 도서( 작품 서두에 범행이 묘사되어, 독자나 시청자에게 범인의 정체나 범행 수단이 밝혀지는 것)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최근 읽은 책들 중에 가장 후속편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인 [네가 바라는 죽는 법] 에도 우스이 유카가 등장한다고 하니 그녀의 지성에 반한 사람이라면 조금 기다려도 손해볼 것은 없을 듯. 나도 기다려야지. 그래도 좀 빨리 나와줬으면. 벌써부터 안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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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글리 - 못생긴 나에게 안녕을 어글리 시리즈 1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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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했던 인형놀이가 생각난다. 예쁜이 바비인형은 멋진 남자친구 칼(이었던가;;)과 늘 러브러브 모드를 유지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모형밥을 챙격먹고 놀다가 또 모형밥을 먹고 또 놀다가 또또 모형밥을 먹고 결국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와 내 친구들이 뭘 알았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우리는 언젠가 바비인형처럼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던 듯 하다. 매끄러운 피부, 쌍커풀 진 커다란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에 S라인 몸매까지! 자라면서 절대 바비인형이 될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은 나와 또 마찬가지로 그들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리라는 걸 깨달았을 나의 친구들은 그럭저럭 소소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가끔 이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눈이 조금 더 컸으면 좋았을 텐데', '돈을 모아서 코를 좀 높여볼까' '난 얼굴이 너무 각졌어!' 같은. 나와 내 무리들의 푸념은 그러나 그렇게 끝난다. 나의 경우는, 글쎄, 늘 그렇듯 겁이 많아서라고 해두자. 아픈 건 싫으므로. 수술할 돈으로 더 많은 책을 사고 싶고, 많은 돈을 들인 수술이 잘못될까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아서라고도 해두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을 실눈을 뜨고 보는 것은 아니다. 예뻐지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 다른 사람들이 내 외모를 칭찬해줬으면 좋겠고, 길거리를 다닐 때 시선을 받으며 우쭐거리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씩 해봤을 상상이다. 위험한 것은 '미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닐까. 사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요즘 미인들의 모습에서 개성을 찾기란 쉽지 않으며 커다란 눈, 매끈한 피부, 오똑한 코, S라인 몸매를 강조하는 풍토는 얼짱, 몸짱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아름다움을 소중히 하는 것. 괜찮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각의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개성을 무시하고 일관된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는 사회가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어쩌면 먼 미래 사회는 똑같은 아름다움을 강조할 지도 모른다. 이 작품 [어글리]에서는 사람들이 열여섯 생일만 되면 의무적인 성형수술을 받고 모두가 예쁜이 생활을 시작한다. 보드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고 화재가 나서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도 생명을 지켜줄 번지 재킷이 있다. 지금보다 더 간편하게,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남과 다르지 않은 미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될까. 그 예쁜이들이 아무 분쟁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생각까지 성형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남보다 모험정신이 강하고 자유의지가 분명한 주인공 탤리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미래 사회, 의무적인 성형수술, 성형미인을 거부하고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 '스모크' 등 이 책을 지탱하는 흥미로운 소재는 많다. 하지만 책 속으로 몰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본격적인 사건에 이르기까지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번역상 매끄럽지 못한 문장들도 눈에 뜨인다.
-선로는 아래쪽에서 질주하다가 언덕 둘레에서 느린 호를 그리고, 부서져 가는 다리로 강을 건너갔다.(p171)-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이 외에도 한 번에 와닿지 않는 문장들 덕분에 미래 사회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한 권이라 생각했지만 탤리의 이야기는 아직도 두 권이 더 남아있다. 2부 [프리티]와 3부[스페셜]. 탤리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할 수 있을지, 그녀와 데이비드의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똑같은 모습,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해오는 모습을 상상하면 조금은 오싹할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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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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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하기 위해 찾아든 오두막. 에도에서 유행하는 백 가지 괴담이나 소개하자며 어행사(승려 차림으로 액막이 부적을 팔며 돌아다니는 걸식인의 한 부류) 마타이치가 은근한 목소리로 운을 띄운다. 곧이어 산묘회(인형사) 오긴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의 언니가 고양이 요괴에 홀렸었다며 말을 받고, 초로의 상인으로 변장한 신탁자 지헤이가 팥을 이는 요괴 아즈키아라이의 고용주였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가운데 역시 비를 피하고자 오두막에 들른 승려 한 사람. 어찌 된 일인지 식은땀을 흘리고 얼굴빛이 변하며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언젠가 백 가지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어낼 생각을 갖고 있던 곰곰궁리 모모스케가 유심히 지켜본다. 

[항설백물어].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이 책은 '우리 비가 오고 쉬이 움직일 수 없으니 어디 무서운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볼까' 같은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괴담집 [회본백물어] 에 등장하는 '아즈키아라이, 하쿠조스, 마이쿠비, 시바에몬 너구리, 시오노 초지, 야나기온나, 가타비라가쓰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팥을 이는 귀신, 사람으로 변장한 여우, 죽어서도 계속되는 머리 셋의 싸움, 사람으로 변장한 너구리, 사람의 뱃속을 드나드는 말, 버드나무의 저주, 길가에 버려진 썩어가는 시신 등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된 비틀림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은 넷. 앞서 소개한 어행사 마타이치, 산묘회 오긴, 약간 늙은 지헤이와 도중에 그들 일행에 동참하게 된 모모스케다. 그들은 언뜻 보면 능력있는 주술사고 매력적인 여인이며 자애로운 늙은이 같지만 사실은 뛰어난 모사꾼들이다. 모모스케는 약간 순진한 매력이 있는 젊은이라고 해두자. 조금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싶은 지역에 나타나 '그것은 요괴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짓' 임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다. 능글능글하면서도 언변이 뛰어나고 맡은 일은 확실히 해치우는 마타이치나, 요염하면서도 정이 느껴지는 오긴, 어쩐지 귀여울 것 같은 지헤이와 어벙한 모모스케는 확실히 매력적인 등장인물임에 틀림없다.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책을 펼친 사람은 이것이 단순한 요괴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일곱 가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그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는 삽화와 부연설명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첫 등장부터 비가 오고 고양이 요괴가 등장하니 '단연 이것은 [샤바케] 와 비슷한 요괴 이야기!'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서운 요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의 행덕, 그 사람이 가진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어두운 늪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은폐하고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이치, '인과응보'로 보답(?)하는 일곱 편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우리나라 이야기도 그렇지만 일본의 시대물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 좋아한다. 으스스하면서도 기묘한, 그럼에도 매혹적이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 우리나라의 '<전설의 고향> 과는 다른 매력이다. 미미 여사의 에도시대물도 재미있었지만 '교고쿠 월드'란 말을 만들어낸 파워작가답게 이 책 또한 굉장하다.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런 여름밤에 읽기에 딱인 작품이다. 

이 책 외에도 그의 형제들인 [속항설백물어] [후항설백물어] [전항설백물어] 가 있다.  과연 백 가지 이야기를 언제, 그리고 다 채울 수 있으려나. 원서로 읽으려면 머리 아프겠지만 그래도 뒤져봐야겠다. (전에 산 원서나 읽어! 퍽!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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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별 2009-08-1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다보니 책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_+ 음양사 같은 분위기인가요?!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분홍쟁이 2009-08-11 16:04   좋아요 0 | URL
네, 음양사랑 분위기가 약간 비슷해요 ^^
 
레인메이커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5
존 그리샴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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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자를 받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한 권 한 권을 차례로 꺼내 각각의 책을 베고 누워보는 것이었다. 두께가, 지하철에서 보기 위해 들고다닐만큼 친절하지 않음에 잠시 놀랐기 때문이다. 존 그리샴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덥석! 그야말로 무모하게 그의 책 열 권을 낼름 사들인 데는 50% 세일이 크게 작용했다. (구입한 지 약 두 세달 됐다;;) 책 장정이 훌륭하다, 꽂아놓으면 폼난다는 유혹의 말도 작용했지만 무언가를 살 때 열 번은 더 따져보고 재보는 내가 말 그대로 냅다 질러버린 것은, 그래도 어렸을 때 본 영화 <타임 투 킬>에서 비롯된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기쁘다. 그 누군가가 가진 것이라곤 튼튼한 몸과 믿을 것은 자신 뿐이었다면 더욱더.  얼마 전에 본 영화 <국가대표>가 그랬다. 주위에서는 그 누구도 그들이 스키점프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고, 부족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연습은 주위의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선수들이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도 아무도 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멋지게 비상했을 때의 그 느낌이란!  [레인메이커]는 한 마디로 <국가대표>같은 이야기였다. 

루디 베일러는 내가 책을 펼쳤을 때부터 늘 위기에 빠져 있었다. 변호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에 매진해도 모자랄 시기에 여자친구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은 기억은 거의 없는 판에 너무나 가난해서 파산신청까지 했다. 여기까지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겠다. 겨우 얻은 일자리는 그 회사가 합병되면서 무산되고, 도시를 훑은 끝에 간신히 의탁하게 된 변호사 회사에서는 정식 직원으로 등록도 안 되고 일거리만 넘겨주게 생겼다. 그러다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변호사 밑에서 윤리나 도덕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게 되는 것에 절망하다가, 결국은 '덱'이라는 사람과 손잡고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마련한다. 정말 믿을 것은 자기 몸과 머릿속에 든 법률지식, 얼마 전에 딴 변호사 자격증 밖에 없는 것이다. 몇 개의 산을 넘어온 거야, 대체. 

그런 루디가 꽉 붙잡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보험금 지급이 되지 않아 백혈병에 걸렸어도 골수이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아들을 둔 도트 블랙이 그레이트 베너핏 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한 사건. 저쪽은 루디가 상상도 못할 대군단이었고, 이쪽에는 루디와 덱 뿐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하지만 루디는 발품을 팔고 끝없이 조사하고 연습하며 그레이트 베너핏과의 싸움을 준비해간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지만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마지막이 마련되어 있다. 

루디는 처음과 끝이 다른 인물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페이지를 넘길수록, 사건이 진행되고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갈수록 느낌이 달라지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첫 등장에서 루디는 추락하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파산신청을 할 때 덜컹, 실직했을 때 또 덜컹. 약간은 한심하고 약간은 불쌍하게 여겨졌던 루디가 우직하고 인간적인 변호사로 변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변호사란 자신의 경제적 조건에 관계없이 의뢰인에게 최선의 충고를 해줄 의무가 있다-는 문장을 보고 '요녀석!' 했다. 크아! 

보험회사를 변호하는 변호사들은 커다란 회사에서 몇 년 간의 경력을 쌓은 능력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루디를 변변치않은, 대학을 졸업하고 갓 변호사 자격증을 딴 햇병아리로 보았다. 루디가 그들에게 강력한 펀치를 먹일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물론 난 했다. 책이니까! ) 대리만족이 가슴 속을 마구 휘저으며 급기야는 머리 밖까지 뚫고 올라갔다. 

총 분량이 790페이지다, 790!  8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 중 군더더기는 별로 없다. 문장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며 가끔 웃음도 터뜨려주고 책 속에 푸욱 빠지게 한다. 작가가 변호사 출신인만큼 법률 지식을 설명한 부분도 꼼꼼하고, 재판 과정의 묘사도 세심하다. 번역의 힘도 컸을 듯 하다. 800페이지 책의 번역이 엉성하다면 그건 고문이었을테니까. 

별 다섯 개로는 모자라다는 말씀! '완전' 재미있다는 이야기! 나머지 베스트 컬렉션을 읽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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