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메이커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5
존 그리샴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책상자를 받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한 권 한 권을 차례로 꺼내 각각의 책을 베고 누워보는 것이었다. 두께가, 지하철에서 보기 위해 들고다닐만큼 친절하지 않음에 잠시 놀랐기 때문이다. 존 그리샴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덥석! 그야말로 무모하게 그의 책 열 권을 낼름 사들인 데는 50% 세일이 크게 작용했다. (구입한 지 약 두 세달 됐다;;) 책 장정이 훌륭하다, 꽂아놓으면 폼난다는 유혹의 말도 작용했지만 무언가를 살 때 열 번은 더 따져보고 재보는 내가 말 그대로 냅다 질러버린 것은, 그래도 어렸을 때 본 영화 <타임 투 킬>에서 비롯된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기쁘다. 그 누군가가 가진 것이라곤 튼튼한 몸과 믿을 것은 자신 뿐이었다면 더욱더.  얼마 전에 본 영화 <국가대표>가 그랬다. 주위에서는 그 누구도 그들이 스키점프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고, 부족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연습은 주위의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선수들이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도 아무도 메달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멋지게 비상했을 때의 그 느낌이란!  [레인메이커]는 한 마디로 <국가대표>같은 이야기였다. 

루디 베일러는 내가 책을 펼쳤을 때부터 늘 위기에 빠져 있었다. 변호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에 매진해도 모자랄 시기에 여자친구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은 기억은 거의 없는 판에 너무나 가난해서 파산신청까지 했다. 여기까지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겠다. 겨우 얻은 일자리는 그 회사가 합병되면서 무산되고, 도시를 훑은 끝에 간신히 의탁하게 된 변호사 회사에서는 정식 직원으로 등록도 안 되고 일거리만 넘겨주게 생겼다. 그러다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변호사 밑에서 윤리나 도덕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게 되는 것에 절망하다가, 결국은 '덱'이라는 사람과 손잡고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마련한다. 정말 믿을 것은 자기 몸과 머릿속에 든 법률지식, 얼마 전에 딴 변호사 자격증 밖에 없는 것이다. 몇 개의 산을 넘어온 거야, 대체. 

그런 루디가 꽉 붙잡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보험금 지급이 되지 않아 백혈병에 걸렸어도 골수이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아들을 둔 도트 블랙이 그레이트 베너핏 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한 사건. 저쪽은 루디가 상상도 못할 대군단이었고, 이쪽에는 루디와 덱 뿐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하지만 루디는 발품을 팔고 끝없이 조사하고 연습하며 그레이트 베너핏과의 싸움을 준비해간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지만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마지막이 마련되어 있다. 

루디는 처음과 끝이 다른 인물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페이지를 넘길수록, 사건이 진행되고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갈수록 느낌이 달라지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첫 등장에서 루디는 추락하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었다. 파산신청을 할 때 덜컹, 실직했을 때 또 덜컹. 약간은 한심하고 약간은 불쌍하게 여겨졌던 루디가 우직하고 인간적인 변호사로 변해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변호사란 자신의 경제적 조건에 관계없이 의뢰인에게 최선의 충고를 해줄 의무가 있다-는 문장을 보고 '요녀석!' 했다. 크아! 

보험회사를 변호하는 변호사들은 커다란 회사에서 몇 년 간의 경력을 쌓은 능력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루디를 변변치않은, 대학을 졸업하고 갓 변호사 자격증을 딴 햇병아리로 보았다. 루디가 그들에게 강력한 펀치를 먹일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물론 난 했다. 책이니까! ) 대리만족이 가슴 속을 마구 휘저으며 급기야는 머리 밖까지 뚫고 올라갔다. 

총 분량이 790페이지다, 790!  8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 중 군더더기는 별로 없다. 문장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며 가끔 웃음도 터뜨려주고 책 속에 푸욱 빠지게 한다. 작가가 변호사 출신인만큼 법률 지식을 설명한 부분도 꼼꼼하고, 재판 과정의 묘사도 세심하다. 번역의 힘도 컸을 듯 하다. 800페이지 책의 번역이 엉성하다면 그건 고문이었을테니까. 

별 다섯 개로는 모자라다는 말씀! '완전' 재미있다는 이야기! 나머지 베스트 컬렉션을 읽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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