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아이들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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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꿈자리가 사나웠다. 긴장이 모두 풀려버린 휴일 밤, 다시 일주일을 시작하기 위해 약간의 긴장 상태로 돌아가면 그렇지 않아도 잠이 잘 안 오는데, 밤에 이 책을 읽은 것이 화근이었다. 일요일밤에 오지 않던 잠은 한층 더 나를 외면했고 까막까막 잠든 꿈 속에서조차 나는 편안하지 못했다. 어떻게 감히 편안하길 바랄 수 있으랴. 한밤중이 아니라 햇살이 밝은 낮에 읽어도 먹구름을 불러올 책이었는데. 잊고 있던 책을 급한 마음에 집어든 것이 잘못이라고, 조금 더 이 책을 빨리 챙길 걸 그랬다고, 그것도 아니면 아예 여유를 두고 다음 날 환한 대낮부터 읽었어야 했다고 몇 번이나 후회를 했는지 모르겠다. 결국, 당연한 이치로, 아침부터 눈꺼풀은 무겁고 뱃속도 더부룩하며 몸이 슬슬 아파올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작품을 접한 건 어느 일요일 낮, 영화를 소개해주는 한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일본의 상큼이 츠마부키 사토시와 꽃중년을 대표하는 에구치 요스케가 화면에 잡힌 것을, 그 날의 내가 우연히 눈에 담았다. '저 사람들이 저런 영화도 찍었어?'라는 단순한 호기심에 TV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그러나 곧, 불유쾌한 기분으로 그 앞을 떠나고 만다. 그런 영화를, 그런 이야기를 활자로 접하려니 더욱 힘이 들었다. 영상을 볼 때처럼 눈도 감을 수 없고 귀도 막을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다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도 했다.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난 작가 양석일은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여행한 후 극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그 곳 아이들의 실태를 목격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인 '스트리트 칠드런' 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결국 이기적이고 잔혹하며 무자비한 어른들의 기록인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효도'라고 불렀다. 어린 딸을 팔아서, 팔린 그 딸이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도 알고 있으면서, 고작 냉장고와 텔레비전을 사고 주위의 부러움을 얻기 위해 딸을 팔면서, 그것을 '효도'라고 불렀다. 그들은 같은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인신매매해 매춘을 시키는 충과도, 아이들을 통해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타이로 몰려드는 사람들과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고통은 매춘에서 끝나지 않는다. 팔린 아이들은 또 다시 비싼 값에 장기를 내놓고, 어째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지 깨닫지도 못한 채 수술대 위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그런 역겨운 사람들 속에 NGO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고자 노력하고, 매춘 현장을 붙잡아 정부의 도움을 받기 원하지만 정부와 경찰은 그저 묵인할 뿐이다. 실종되는 아이 몇 천 명, 매춘 하는 아이 또 몇 만 명. 도움의 손길은 많지 않고 집회 도중 살해 당하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저지하고자 하는 악행은 그늘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NGO단체의 활동은,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일본인 자원봉사자 게이코의 마지막 대사에는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현실을 외면할 수는 있지만, 자신으로부터는 영원히 도망칠 수 없다는 말.  작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쓴다고 해서 현실이 금방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다' 는 것, 그렇기에 어떤 방향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둠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수위 높은 묘사는 읽어내리기에 무척 버거웠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욱 냉혹하리라. 부족하게도 나는,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그저 그들이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마련되기를 마음속으로나마 빌어볼 뿐이다.


 

 아버지가 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알겠지? 이 년 전에 야이룬 언니도 가족을 위해서 돈 벌러 갔단다. 야이룬이 번 돈 덕분에 이렇게 냉장고도 텔레비전도 살 수 있었어. 마을사람들도 모두 부러워하지. 효성 지극한 딸이 있으니 행복하다고 말이야. 너도 언니처럼 할 때가 온 거야. 알겠지?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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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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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일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에서조차 가슴이 떨리고 마음이 불안하다. 금방이라도 큰 일이 일어날 듯, 혹여라도 안타까운 순간을 내 이 두 눈으로 보게 될까 두려워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가볍지 않다. 평소라면 멀리했을 문장들의 반복,  바람에 몸을 싣고 날아가는 풍선의 공기가 빠진 것처럼 아무 뜻도 없이 허망하게 나열된 우리말의 추상적인 인상이, 이 책에서만큼은 과연 그러할만 하다, 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깊고 깊은 세자의 고독이 스며있기 때문일까. 오랜 기다림의 세월동안 이도저도 하지 못한 채 스산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한없이 마음을 다잡았을 그. 소현은 곧 조선이었고 조선은 곧 그, 소현이었다. 

인조의 장자이자 세자. 병자호란을 겪고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그. 소현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학질로 인한 병사라고 나와 있으나, 오랜 세월을 청나라에서 지낸 그를 정치적인 전략에 의해 암살했다는 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무엇이 조선과 그를, 아비와 아들 사이를 갈라놓게 만들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아들을 생각할 때도 내가 몸이 아팠다. 베어내지 못하는 살이 붙어 있는 자리에서 아팠다. 내가 너를 생각하면 몸이 더욱 아팠다. 불로 지진 침을 맞아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며 아들을 볼모로 보낸 아비의 마음을 토로한 인조가 세자를 역적의 무리로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은 정치에서 배제할 수 없는 더러움인가, 인조 자신의 허약함인가. 그도 아니면 명을 섬기고 청을 배척해야 마땅한 세자의 신분으로 청의 좋은 것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꾀한 세자에 대한 배신감인가. 역사는 그 무엇도 말해주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다행히(?) 안타까운 그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청에 끌려가 제약된 생활을 해야했던 그가 느꼈던 고독과 아비의 진심에 대한 슬픔, 또 한 명의 아비인 자신이 원손에 대해 느껴야 하는 괴로움과 약한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조선 백성들의 애환과 삶이 담겨 있다. 한 마리 노루에 비유되었던 어쩔 수 없는 스스로의 약함. 때를 기다리고 기다려 언젠가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다시 그 길을 거슬러 올라와 모든 것을 갚아주겠다는 다짐. 눈 앞에서 이루어지는 청나라 조정의 권력 다툼 속에서 앞길을 가늠해야 했던 고민. 그런 소현의 주변 사람들의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다. 

약자의 나라에서 태어난 죄만으로 노예로 끌려와 역관이 된 만상.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도 아니고 자존심도 아니며 오직 오래 살아남는 것 뿐이다. 종실의 여식으로 태어났으나 대학사의 둘째 여인이 된 흔. 차마 죽을 수 없어 살아남은 그녀에게 사랑은 사치였으나 그 사랑이 그녀를 살게 했으며 세자의 영광을 꿈꾸게 만들었다. 세자의 사람이고자 했던 석경. 한많은 여인 흔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 자신의 심약함으로 운명의 굴레에서 발을 빼지 못했으나 마지막까지 세자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했던 그 또한 조선의 비극으로 태어난 인물일 것이다. 그리고 세자의 곁에서 함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던 봉림대군. 그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래도 덜 힘들었다 생각하는 세자 옆에서 봉림은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인가. 그가 조선의 왕이 될 것이라 차마 생각은 해보았던가. 

역사소설을 읽고 나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남는 것은 수많은 의문 뿐이다. 아무것도 명확해지지 않고 언제나 제자리걸음 뿐인 사실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이라 일컬어졌던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높으신 분들이었던가, 노비의 생활이나 그들의 생활이나 그리 큰 차이 없이 충분히 고통스러운 삶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또 해결될 수도 없다는 무거운 사실이 돌처럼 마음을 내리누른다. 이제야 겨우, 벚꽃이 우수수지는 이 계절의 그림이, 소현세자의 한숨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은, 그의 고독과 허망함에 닮아 있기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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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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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저희반에는 J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그저 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였다는 정도로만 해둘까요. 또래 친구들보다 나이도 두 살 정도 많고 이해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 누구보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예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아이에요, J는. 6교시가 끝나면 꼭 저에게 와서 '안녕히 계세요' 꾸벅 인사하고 가는 모습에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도 정말 귀엽다, 예쁘다고 칭찬하셨고 수업 시간에 만든 과자며 케이크는 꼭 저에게 가져와 선물로 주고 가곤 했지요. 그래서 반 친구들도 J를 귀여워하며 잘 어울렸고 장난도 곧잘 치곤 했답니다. J가 그렇게 생활할 수 있게 되기까지, J의 밝은 천성도 한 몫 했겠지만 결코 그 가족들의 노력과 눈물을 배제할 수는 없겠죠. 

뇌성마비인 유유는 85퍼센트의 장해를 지닌 장애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간질 발작을 일으키며 먹는 일도 입이 아닌 위로 호스를 연결해서 해결해야 하죠. 뛰거나 춤을 추는 것은 커녕 침대에서 미끄러져 떨어져도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늘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걱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입니다. 유유의 아버지 마리우스 세라는 그런 유유를 데리고 가능한 한 많이 여행을 다니자, 라고 결심합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유유도 보고 느낄 것이라 믿는 거에요. 여행 중에 찾아온 발작, 위급한 상황,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아이의 사망과 일상에서 불쑥불쑥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이 한 권의 책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유유 가족들의 생활이 눈물로만 얼룩졌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유이스(유유의 이름) 는 나의 둘째 아이다', '우리 부부와 딸아이는 유이스가 15퍼센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고통스러운 자극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온다' 와 같은 문구들을 통해 아빠 마리우스 세라가 아들 유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가족들이 유유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유를 위해 집을 개조하고, 여행을 다니죠. 그리고 아빠는 자신이 오랫동안 바란 꿈을 이 책을 통해 이룬 것 같습니다. 

아빠의 꿈은 유유가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어요. 어느 날 조카 아이가 멋지고 우아하게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서 '내 아이는 저렇게 못할 거야 ' 라는 생각에 눈물을 떨구었던 아빠는, 비록 사진으로나마 그의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죠. 책의 내용이 어떻더라도 마지막에 유유가 힘차게 달리고 있는 사진만으로도 무한한 말들과 감동이 전달될 것이라 믿어요. 

역자 후기를 읽는 동안 가슴이 쿵 울리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유유가 2009년 7월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가족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유유의 죽음을 한없이 슬퍼하기보다는 유유가 그들에게 주었던 기쁨과 환희의 순간에 감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유유의 아팠던 모습보다도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겠죠.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사랑과 기쁨을 선사한 아이. 그 유유가 지금도 책 속에서 멋지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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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라바 - 전장의 포화 속에서 승리보다 값진 사랑을 보여준 강아지 라바 이야기
제이 코펠만.멜린다 로스 지음, 정미나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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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을 붙잡고 있기 힘든 순간들이 분명 찾아오지 않는가.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어, 내 기분이 왜 이러는 지 짐작도 되지 않아' 같은 순간들. 내 마음 나도 몰라-같은 그런 시간들 속에서 씩씩하고 굳세게 자신을 지켜내는 일 또한 분명 쉽지 않다. 그런데 전쟁 속에서, 움직이는 것들에 순간적으로 반응해 총을 쏴야 하고, 적군이라는 느낌이 들면 주저없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는 그 곳에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일은 분명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이라크에서 발견된 강아지 라바에 대한 이야기다. '라바 독스'라 불리는 제3해병연대 제1대대 대원들이 팔루자 북동부의 버려진 주택 안에서 발견한 강아지. 전쟁터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 무엇에도 애정을 두어서는 안 되지만, 라바는 점차 부대원들과 이 책의 저자 제이 코펠만의 가슴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군용식량을 먹고 탈이 나기도 하고, 군화를 이빨로 물어뜯어놓고, 잠자는 대원들의 이불 속을 파고드는 따뜻한 생명체 라바. 라바는 어느 새 군인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희망을 일깨워주는 상징이 되었고, 급기야 제이 코펠만의 마음 속에 이 자그마한 강아지를 살리고 싶다, 그냥 둘 수 없다는 바람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시작되는 라바의 이라크 탈출 대작전!!

전쟁터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 외에 중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 비록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그들이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바람은 당연한 것일 게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온전한 '나'로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적군을 죽여 공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스함을 가슴 속 깊은 곳에 새기는 일이 아닐까. 라바의 목숨을 구한 것은 분명 라바 독스 부대원들과 제이 코펠만이다. 하지만 라바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을 그들에게 전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마음이 전쟁터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했다. 생명의 따스함,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랑과 연민. 어쩌면 전쟁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당연시 될 그런 감정들이 군인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었다는 것 자체가, 라바가 일으킨 기적이 아니었을까. 

현재 라바는 이라크에서 탈출해 미국에서 제이 코펠만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강아지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행한 작전. 생명이 어째서 소중한 것인지, 그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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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 이타카
하지은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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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만화 같은 책'이라고 하겠다. 중간중간 보이는 삽화 때문인지, 아니면 소설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재 때문인지 처음 책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레이스 달린 드레스를 입고 오싹한 모습으로, 하지만 처연하게 해골을 껴안고 있는 소녀는 이렇게 묻고 있는 듯 하다. '당신은 그에게 어떤 소원을 빌겠습니까' 라고.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당신은 과연 진정으로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냐고. 세상에는 공짜로 이루어지는 일이 별로 없음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기에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나 소원이 뭐냐고 묻는다고 해도 선뜻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욕심은 나지 않을까. 

롤랑 거리 6번가에는 7층짜리 저택이 있다. 저택의 주인인 보이드씨는 무엇을 먹는 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그 집의 7층에 기거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방에서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3층에 살고 있는 라벨은 어딘가 오묘한 분위기의 청년으로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아무도 모르게. 

1층 걸작의 방에는 박제사인 스타프씨가 산다. 동물 박제를 주로 하는 그의 집에서는 항상 이상한 냄새가 감돌고, 그 자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일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완성된 박제본을 내심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마라 공작. 마치 잠을 자는 듯한 소녀의 시체를 박제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박제하는 스타프씨. 2층 시인의 방에는 가난한 시인 청년 단트가 살고 있다.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 얼른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자신에게 시를 들려달라며 접근해오는 사람은 매춘부 뿐이다. 

3층 연인의 방에는 아돌프와 마리 부부가 산다. 아름다운 외모로 많은 귀족부인들에게 개인 하인이 되어달라며 러브콜을 받는 아돌프이지만 그는 아내 마리를 '특별한 방법'으로 돌보는 데 집중할 뿐이다. 원래 귀족이었던 마리와 그녀의 하인이었던 아돌프의 애절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오싹한 러브스토리가 그들의 방을 에워싼다. 4층 방에 기거하고 있는 경찰 루서의 아버지. 최근 보이드씨의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루서는 아버지와 자신, 그리고 자신의 오랜 친구를 둘러싼 비밀을 알아버렸다. 그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아버지가 빈 특별한 소원. 

5층 방에는 오드리 부인이 산다. 매주 금요일 아침이면 라벨과 아침을 먹는 오드리 부인. 직감적으로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올 것을 알고 자식들의 집을 순례하지만 그녀의 가슴 속에 묻어둔 소원은 오직 단 한 가지다. 그리고 라벨에게 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원을 빈 6층 방의 주스트씨.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세련되고 멋있는 의사지만, 젊은 시절 아내의 병을 치료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 속이 병든, 불쌍하지만 끔찍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라벨에게 빌었던 소원, 그리고 라벨을 위해 한 행동은 무엇일까. 

기묘하고도 독특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3층 방의 라벨이다.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런 능력이 생긴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단, 빌 수 있는 소원은 한 가지. 그리고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누구나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해지는 것은 라벨과 박제사의 손에 의해 되살아난 소녀 루이제, 그리고 하얀 얼굴에 빨간 입술을 한 마라 공작,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배경이 되는 저택의 주인 보이드씨의 정체였다. 

7편 모두 환상동화의 분위기를 띄고 있다. 마치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읽는 듯 해서 나도 모르게 작가가 정말 우리나라 사람이 맞는지 몇 번이나 확인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만화라면 이 책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조금은 더 쉬웠을 것이다. 복장, 얼굴, 배경그림 등으로 내용의 부족함을 어느 정도 덮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약간의 삽화만 곁들였을 뿐,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이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안타까우면서도 슬픈 세상을 창조해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오묘한 분위기의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갑다. 다만, 취향의 편중은 피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나야 이런 신기한, 이상한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 하지만 작가가 자신만의 빛깔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이런 작품을 계속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작가도 자신이 좋아하는 말 그대로 될 수 있지 않을까.

 

숨으려는 듯 혹은 더 도드라지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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