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1인용 식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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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혼자 먹는 밥은 나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 혼자 먹는 밥은 이상하게도 괜찮다.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하다. 혼자 있으면 반찬을 대충 꺼내놓고 내 밥만 차리면 되니까. 국에 밥을 말아 김치 하나로 먹든, 마른반찬 몇 가지와 국 하나만 놓고 먹든 TV를 보며, 혹은 라디오를 들으며 먹는 밥은 좋다. 그런데도 밖에서 혼자 먹는 밥에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식당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만 향해있는 것 같고, 내가 뭘 먹나 유심히 쳐다보는 것 같고, 왜 쟤는 혼자 밥을 먹나 궁금해할 것만 같다. 그래서 굳이 밖에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쉽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샌드위치를 주로 이용하기도 했었다.  

윤고은의 소설집 [1인용 식탁]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식탁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세 명도, 두 명도 못앉고 오직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그런 식탁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표제작인 <1인용 식탁>은 혼자 밥을 먹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어찌된 일인지 점심 시간에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버린 주인공. 첫날은 그러려니 하며 넘겼지만 점심 시간에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는 동료 하나 없다. 결국 몇 개월을 혼자만의 식탁을 맞이해야 했던 그녀는 간단한 분식에서부터 패밀리 레스토랑, 고기집에 이르기까지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게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학원에 등록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혼자 밥 먹는 순간이 오면 외로웠던 것 같다. 밥을 앞에 놓고 외롭다니, 하루 세 끼를 챙겨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복에 겨워 하는 소리라고 욕을 내뱉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서 '밥'은 더 이상 '밥'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밥을 먹으며 공통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고민도 풀어놓으며 관계를 다지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같은 찌개를 먹고 같은 반찬을 먹으며 친밀한 감정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심리를 날카롭게 표현한다. '1인용 식탁'이라는 상상력에 깜짝 놀라고 그 학원에 등록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1인용 식탁>만 내 취향과 맞았을 뿐 다른 작품들은 불편하기도 하고 잘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피어난 온갖 세계들. 아직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맨 마지막에 실린 <홍도야 울지 마라> 정도가 앞으로의 그녀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 지 살짝 궁금하게 만든 정도랄까.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좋아하는 나이기에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으니 염두에 두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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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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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벽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들고 나 혼자 깨어 라디오를 친구삼아 공부하고 있던 시각. 동네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도서대여점에서 이 책을 빌렸었다. 글쎄, 그 때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 당시의 나는 '노희경'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했고, 이 책에 대한 정보라고는 탤런트 나문희가 출연한 드라마의 원작소설이라는 정도였으며, 소설책보다는 교과서와 문제집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아까운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어쩌면 숨 쉴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놓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부하다 잘 안 되면, 쉬고 싶을 때 조금은 책을 읽어도 괜찮겠지-하는 마음. 결국 펜을 내려놓고 잠깐만 읽어야지 하며 집어들었던 책 때문에, 나는 그 날 밤을 꼴딱 새고 엉엉 울며 퉁퉁 부은 눈으로 잠자리에 들고 만다. 

가족들에게 늘 헌신적인 엄마.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보살피고 무뚝뚝한 남편 뒷바라지에 자기 일로 바빠 엄마 마음 하나 헤아릴 시간 없는 자식들 등만 보며 살아온 엄마의 단 하나의 꿈은, 이제 조금 있으면 타게 될 곗돈으로 온전한 집을 완성하는 것이다. 아프다고 해도, 친근한 의사한테 찾아가겠다고 해도 퉁만 놓는 남편에게도 그러려니, 불륜으로 속앓이를 하는 딸아이에게 냉담한 대접을 받아도 그러려니,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아들이 짜증을 내도 그러려니 하며 무던히 살아온 세월이었다. 단 하나 걱정이라고 한다면 사람노릇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박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불쌍한 동생이랄까. 그런 그녀가, 늘 공기처럼 가족들 뒤를 지켜주던 그녀가 아프단다. 얼마 못 산단다. 

고통 속에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도 엄마는 온통 가족들 생각 뿐이다. 된장찌개 하나 제대로 못 끓이는 우리딸 연수가 앞으로 해야 할 집안일이 걱정스럽고, 아버지의 기대로 늘 힘들어하는 아들 정수가 잘못될까 걱정스럽고,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한평생 같이 살아온 남편은 어떻게 될까 염려되고, 내가 죽으면 제대로 돌봐주지 못할 시어머니가 걱정스럽다. 그래서 그녀는 조용히 읊조린다. '어머니, 정신 드실 때 혀라도 깨물어, 나 따라와. 아범이랑 애들 고생시키지 말고, 나 따라와. 기다릴게'

아내가, 엄마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가족들은 덜컥 겁이 난다. 아프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던 일이 후회되고, 자신의 일만으로도 버거워 별다른 대화도 못했던 시간들이 아깝고, 공부가 무슨 벼슬이라고 짜증내고 함부로 행동한 일이 부끄럽다. 도박빚 청산하고 택시기사라도 하라고 마련해 준 돈도 또 다시 날려버려 번듯한 사람노릇 하는 것 보여주지 못한 게 한스러워서 그들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그녀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그녀가 좋아하는 호두과자를 산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했던 일산 집을, 그리도 무뚝뚝했던 남편이 오직 그녀만을 위해 그 집단장을 시작했다. 

헤어짐을 앞에 두고서야 사랑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일은 언제나 안타깝다. 그 대상이 엄마일 경우에는 더더욱. 가장 소중하고 애틋한 존재임에도 우리는 왜 많은 시간을 그 존재를 잊고 살게 되는 걸까. 항상 곁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하는 공기처럼, 엄마도 언제나 우리들을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아웅다웅 티격태격 하면서도 무슨 일 생기면 항상 가족이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속절없는 믿음. 그 믿음을 핑계로 엄마를 외롭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화 <친정엄마> 속의 엄마와 소설 속 엄마, 그리고 아주 오래 전 보았던 탤런트 나문희의 연기가 겹쳐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내 아이를, 내 식구를 나보다 더 먼저 생각할 수 있을까. 내 몸 아픈데도 다른 사람들을 더 걱정할 수 있을까. 내 나이 때 엄마는 이미 나와 내 동생까지 보셨다는데,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고 두렵기만 하다. 내가 겁내는 그 일을 우리 엄마와 세상의 엄마들은 해내셨다. 그리고 지금도 해내고 계신다. 우리 엄마, 그리고 세상의 많은 엄마들에게 부디 우리가 효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를. 그리하여 먼 훗날 우리가 이별하게 될 때는 조금만 후회할 수 있기를 기도하자.


   지금, 방황하는 사람들, 그대들의 방황은 정녕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어머니가 살아 있는 그 시기 안에서 부디 방황을 멈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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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1인용 식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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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개념이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본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리 기분좋은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분위기, 은근한 방어와 고립의 냄새가 난다. 나와 친근하지 않은 그 무엇들을 우리는 '바깥'이라 부르고 있지 않던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는 바깥보다는 안쪽에 속하는 것에 안도를 느낄 때가 많았던 것도 같다. 그곳이 어디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안쪽'이 주는 느낌은 '바깥'보다는 편안한 듯 보이니까. 하지만. 정말 '안쪽'이 '바깥'보다 더 편안한 것인가. 그 곳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장차 목수가 꿈인 전직 신문사 기자, 늦어도 쉰 살쯤에는 수도권 바깥에 번듯한 작업장 열고 부끄러움 없이 자신을 목수라 소개하고 싶다는 저자가 소개한 26가지 빛깔의 이야기는 그 '바깥'의 의미를 정의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이라는 의미지만 안과 밖의 경계가 허술한 공간을 의미한다고 했다. 경계의 경계(警戒) 가 삼엄하지 않고 안과 바깥이 평화롭게 바뀌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며, 아예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마당을 바란다고도 한다. 어쩐지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바깥'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이미 경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목만 '바깥'일 뿐,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곳에서 힘을 다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안에서 그 사람들, 혹은 공간은 그 자신들에게 있어 '바깥'이 아닌 '안쪽'이다. 그 삶에서는 그들이 주인공인 것이다. 허리우드 클래식을 운영하는 김은주 사장, 떠돌이 영화감독 신지승, 인디밴드 타바코쥬스, 나쁜 소리에는 조심하고 좋은 소리엔 열심히 살면 된다는 천하대신 할머니,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 아름다운 넘버3 산악계의 휴머니스트 한왕용, 성 베네딕도 요셉수도원, 군무 발레리나 안지원, 다큐 감독 최기순, 최근덕 성균관장까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어디에서 이런 사람들을 다 찾아냈을까.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삶의 빛을 내뿜고 있는 그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또 좋아한다는 것이다. 물질과 상관없이, 간혹 남의 시선이 신경이 쓰이기는 해도 '그저 좋아 하는 일'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을 두드린다. 한 학생으로부터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다는 말을 들었다는 그. 기죽지 말로 꼴리는 대로(책에 나온 표현임) 살라는 뜻을 담아 정한 셋넷학교의 교훈에 알 수 없이 이끌린다.


   뚜벅뚜벅 당당하게, 사뿐사뿐 유연하게-p139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인간의 정신은 점점 쇠락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여유없는 생활, 앞만보고 달려가야 '남'에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책에 등장하는 그들은 말할 수 있다. 자신들의 삶에 다른 주인공은 없다고. 오직 자신 뿐이라고. 

갑자기 숨쉬기가 편안해진 듯 마음이 넉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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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을 걷는 소년
나디파 모하메드 지음, 문영혜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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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아무도 없는 사막에 자신의 발자국만을 남기며 걸어간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는 있을까. 지금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인지는 알고 있을까. 옷이라고는 하의밖에 걸친 것이 없는 소년의 가녀린 몸이 금방이라도 모래 위로 쓰러질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다. 소년의 이름은 자마. 코브라의 일종인 블랙맘마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자마는 세상의 네 귀퉁이를 모두 볼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사막의 도시 아덴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며 친구들과 그 거리를 뛰어다녔으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의 죽음. 서로를 사랑했으나 생활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던 아버지를 찾아 이제 자마가 길을 떠난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점령한 땅을 지나고 온갖 어려움을 무릅쓴 채 아버지를 찾기 위해. 그리고 그 때부터 어린 자마의 진정한 삶이 눈을 떴다. 

이 책은 저자인 나디파 모하메드가 자신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해서 쓴 이야기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린 자마의 인생은 보기에도 그리 평탄하지 않다. 동생의 죽음, 아버지의 방황,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했음에도 가계가 나아지지 않아 늘 일을 해야 했던 어머니, 친척으로부터 받은 천대와 멸시, 어머니의 죽음, 시작되는 모험. 말이 좋아 모험일 뿐이지 목숨을 건 여정이었다. 그 고단한 시간들을 이겨내고 자마는 사랑하는 아내의 품으로 돌아갔으며 이제 그 이야기를 아들인 나디파 모하메드에게 들려준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조션 자마의 용기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먹을 때보다 굶을 때가 더 많고, 누구의 보호도 없이 하루하루 생명을 위협당하며 살아야 하는 생활.  그럼에도 '인생이 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는 문구처럼 겸허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 끝내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자마는, 과연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와 빛나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지만, 이 작품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막연하게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나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같은 분위기와 감동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 기대치에는 못미쳤다고 할까. 아무래도 작가의 아버지라는,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인지 어쩐지 전기나 자서전 같다는 생각에 소설로서 다가오는 격정과 울림이 적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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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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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소설이다. 마지막 여자의 독백(이라고 할지, 편지라고 할지) 부분을 읽고 난 후 맨 처음 든 생각은 '이게 뭐야!'였다. 잔인하게 일가족을 살해한 사람의 동기가, 여러 사람을 인터뷰한 인물의 목적이 고작 그 때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간이란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잔혹해질 수 있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행태에 내 이해심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트릭이 생각보다 싱거웠던 것인지, 또 그런 것도 아니라면 그 동안 읽어왔던 추리소설들의 소재와 전개가 너무 뛰어나서 상대적으로 이 작가의 이 작품이 대단치 않게 느껴지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리뷰를 올려야지 하며 며칠을 곱씹는 동안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누군가를 해친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살아가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때로는 즐거워도, 가끔은 피할 수 없는 숙제 같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늘상 즐겁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일까. 지금 이 순간 이 사람과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어차피 이 사람은 남이라는, 그런 어두운 생각이 불시에 고개를 들기도 한다. 나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어떤 한 부분을 보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평가할 때, 우리는 상처받는다. 물론 그들이 평가한 한 때의 그 모습도 나의 일부이겠지만 누구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얼굴이 달라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한결같기를 원하고 한결같기를 요구한다. 사람의 마음 속이 얼마나 복잡하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한 집에서 일가족 네 명이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엘리트 남편과 아름답고 우아한 아내, 귀엽고 예쁜 두 아이의 가정이 어느 날 사라졌다. 범인은 잡히지 않고 단서조차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가 그 사건을 소재로 주위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그들 가족을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는 동네 아주머니, 우아한 부인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질투의 감정 또한 가지고 있었을 동년배의 부인, 엘리트였던 남편을 상냥하지만 때로는 기회주의자로 기억하는 회사 동료와 옛날 연인, 부인을 적대시했던 대학 동창 등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이 가족에 대해 기술한다. 때로는 동경을, 때로는 질투를, 때로는 폄하의 눈을 가지고.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생각한 것은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말이었다. 친구들끼리 놀다보면 갑자기 감정이 틀어져 '이 바보, 멍청이, 돼지!!' 등등의 깜찍한(?) 말을 내뱉던 때가 있지 않던가. 그럴 때 친구를 더 약올리기 위해, 혹은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그럼 너는 부처님해,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니까 난 부처님이야'라는 말을 했던 적은 없었나. 

인터뷰이들은 각자가 객관적인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들이 바라본 네 명의 가족은 자신들의 감정을 그대로 투영한 존재들이었다. 그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친하게 지냈지만 나는 결코 저 사람같은 미모나 재력은 가질 수 없다는 괴로움, 때문에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쪽에서 그 사람을 안중에도 없다고 생각한 왜곡된 기억들이 인터뷰이들이 진술하는 내용에 의해 오히려 그들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결코 하나가 아니고, 아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표지의 문구가 이해되는 내용들이다. 

 인터뷰와는 별개로 한 사람의 진술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한 여성의 고백은 사건과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녀의 과거에 연민을 갖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한 행동으로 한 가족을 몰살시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번 이야기에서 그 점이 조금 아쉽다. 

우행록-어리석은 행동을 기록했다는 이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국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잃지 않을 것, 모든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왜곡된 마음을 가지지도 말고, 남의 것만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타인의 행동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너그러움을 갖는 것. 우리가 누구를 감히 평가할 것인가. 자신이 남긴 발자취조차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면서. 

하지만 책 속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을 우행록이라고 보기에는, 우리는 매일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고, 그저 안타까운 일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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