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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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아흥흥. 왜 이런 앓는 소리를 내는 지 궁금하시죠?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저와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아니면 할 수 없구요. (오늘은 어째 좀 심기가 불편합니다;; ) 사실 이 두 권의 책을 다 읽은 것은 어젯밤입니다. 광분해서 바로 리뷰를 올리려다 책을 읽은 후의 그 분기(?)를 좀 여과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떠올라 저도 한 번 그렇게 해보기로 결심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그런데 리뷰를 적어야지, 라고 마음 먹고 이 책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 분노의 소용돌이가 제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오드리 니페네거, [시간 여행자의 아내]로 유명한 바로 그 분이십니다. 괜찮다는 입소문이 굉장했는지, 예전과는 다른 표지로 다시 출간되기도 했었죠.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만, 영화가 소설의 세세한 부분을 그리 잘 살리지는 못했을 거라는 미심쩍음과, 소설을 읽으면서 얻은 애틋함과 아련함을 영화로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영화는 부러 보지 않았습니다. 그 작품의 전개가 다소 지루하다는 분도 계셨으나, 전개 과정에서 느낀 지루함을 모두 해소시킬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결말 부분은  그야말로 소위 '대박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괜찮았거든요. 

그런 그녀의 다음 작품이니 어찌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일 뿐, 그녀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라는 문구는 그런 저의 호기심과 기대에 불을 붙인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 이야기였는데 말이죠..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시간 여행자의 아내] 의 후광효과를 보기위해 출간된 것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정말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매우 재미가 없.었.습.니.다. 대물림된 쌍둥이 자매, 그녀들의 관계에 대해 지루할 정도로 질질 묘사하고, 죽은 후 유령이 된 쌍둥이 자매의 이모는 자신의 존재를 조카들과 연인에게 알리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게다가 이 캐릭터들 대체 뭡니까. 쌍둥이 동생 발렌티나는 매일 언니 줄리아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며 징징대고, 줄리아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이모의 연인이었던 남자 로버트는 발렌티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가 죽은 연인의 영혼을 알아챈 후 다시 제자리에,  강박증에 걸린 남자 마틴까지 '이 인간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라고 분노의 함성이 버럭 나올 정도로 매력젹이지 못한 캐릭터들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체 마틴은 왜 필요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작가 자신조차도 쌍둥이들과 관련된 로맨스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 구멍을 메꾸기 위해 이 마틴을 이용한 걸까요? 강박증을 벗어나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 암스테르담으로 간 것도 저에게는 그리 감동적이지 못했습니다만. 

그러나 정말 허망한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것은 결말입니다. 사랑이야기요? 그녀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죽은 이모의 사랑은 계속됩니다. 계속되기 위해 조카의 몸을 빼앗는걸요. 이건 감동적인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어처구니 없는 호러소설이랍니다.  

저는 어지간해서는 작품에 대해 나쁜 소리를 잘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나쁜 소리를 해도 부드럽게 돌려 말하는 사람이랍니다. 그런데 이 책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요. 아마도 올해 최악의 소설 넘버원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좋아한 독자라면 이 책도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다' 라니, 뉴욕타임스는 대체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솟은 걸까요. 떽! 한 가지 맞긴 맞습니다. 어떤 예상도 불허하는 놀라운 결말? 당연하죠. 어느 누가 그런 결말을 예측하겠습니까. 행복한 사랑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요. 아웅. 뒷맛이 매우 나쁩니다. 다른 재미있는 책으로 이 찝찝함을 빨리 없애버려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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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괜찮니 - 사랑 그 뒤를 걷는 자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
최예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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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나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할 지, 잘 모르겠어. 그 사람은 이런 내가 지겹지 않을까. 그 사람을 정말 좋아하기는 하는 건지, 내 마음 나도 갈피가 안 잡힌다.'...예전에 제가 했던 고민을, 이 친구는 어쩌자고 그렇게 똑같이 하고 있는 걸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고민은 별 다르지 않나 봅니다. 상대방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지,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맞는지, 옆에 있는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 지. 사랑 하나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면 좋을텐데 그게 그렇지가 않아서 더 속상하기도 해요. 그렇죠?
 
이런 책을 쓰는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통달한 사람 같아요. 그것도 아니면 사랑의 경험이 많은 걸까요?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야기 속의 그 문구들에 어쩌면 그렇게 공감이 되던지, 마치 제 마음 속에 이 사람이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조금 두렵기도 했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 그 자체에 대해서일까요. 아무리 예쁘고 설레던 사랑도, 슬프고 애잔하기만 했던 감정들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른 형태로 변화한다는 것 자체가 왠지 좀 아깝더라구요. 그 변화된 형태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겠지만 '시간이 흐른다, 처음과는 같을 수 없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 속에 물결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사랑'에 매달리고 아껴두고 싶고 그런 거겠죠.
 
예전 한밤에 가수 이소라씨가 라디오 DJ를 할 때가 있었어요. 코너 중에 '그 남자 그 여자'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소라씨가 여자 목소리를, 대체로 제가 좋아했던 남자 가수들이 멋진 목소리로 그 남자 역할을 맡았더랬지요. 공부하다가, 책을 읽다가 듣던 그 사랑의 이야기들이 어찌나 제 감성을 두드리던지. 책으로 나온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를 읽은 것이 시작이었어요, 사랑에 대한 에세이를 읽은 것.
 
하지만 이제는 이런 사랑을 다룬 에세이는 그만 읽어도 되지 싶습니다. 제가 조금 커버린 걸까요? 아무리 예쁜 사랑이어도, 안타깝고 슬픈 사랑이어도 모두 다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에 대해 터무니없이 동경하거나, 무턱대고 두려워하거나 그러고 싶지 않아요. 어차피 만들어진 이야기, 그 속에 빠져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읽었던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이제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밤 제 감성을 두드렸던 이소라씨와 많은 멋진 남자 가수들의 목소리,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만은 소중히 간직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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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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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은 유독 길고 추웠다. 겨울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나로서는 제법 혹독한 시간을 헤쳐나온 셈이다. 그 추위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아서, 한겨울에나 입을 법한 (멋쟁이들은 한겨울에도 입지 않는다는) 내복을 꼭 붙잡고 놓지 못하게 했다. 그 긴 겨울의 어느 날,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던 동생이 이런 말을 했더랬다. '지금이 소빙하기래' 근거는 없다. 아마 동생도 길고 깊은 겨울이 계속되는 것에 염증을 느꼈을 것이고 어째서 겨울이 끝나지 않는지 궁금해 한 번쯤 검색해 본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나는, '아아, 그렇구나. 소빙하기구나' 라고 쉽게 인정했다. 그리고 '언젠가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겠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전 세계에서 자연으로 인해 사람이 겪는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 먼 곳의 일로만 여겼던 지진을 이제는 우리나라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며 한 번씩 찾아오는 태풍으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평소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화산재가 바람에 실려 많은 나라에 피해를 주기도 하고, 밀어닥친 쓰나미에 수십 만명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자연재해 뿐만 아니라 병은 또 어떤가. 작년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신종플루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걸린다는 암까지. 인간을 멸종시킬 수 있는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싱커]는 그런 지구의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21세기 중엽, 외계 행성에서의 삶을 생각한 사람들은 실험차 거대 지하도시 '시안'과 열대우림을 완벽하게 재현한 '신아마존'을 만들어냈다. 2060년,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많은 영토가 사라졌고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 2063년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인류는 몰살 지경에 이른다. 초국적 제약회사인 바이오옥토퍼스는 백신을 개발하지만 바이러스는 계속 변이하고 지상에 찾아온 빙하기로 시안은 봉쇄된다. 바이오옥토퍼스의 회장 파에타는 시안 시민들에게 장수 유전자를 제공하고 시안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진짜 하늘을 본 적 없는 아이들. 머리에 칩을 주입해서 그 칩으로 대부분의 생활이 이루어진다. 학교 수업조차 머리 속에서 삼차원 인터페이스를 불러내 이루어지는 현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편리하고 완벽한 시안의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조차 시안에 정착할 수 없어 부적절한 취급을 당하는 난민은 존재하고, 계급 간 차별이 발생한다. 집중력을 높이는 약을 구하기 위해 난민촌으로 내려간 미마는 우연히 '싱커'라는 게임을 손에 넣는다. 뇌파 동조를 통해 지금은 폐쇄된 신아마존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 미마와 친구 부건, 다흡이 싱커를 즐기게 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싱커에 접속하게 되고, 아이들은 차츰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세계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자연과 호흡하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이 작품은 SF 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주어진 상황에 순응해 그저 살아가기만 하던 아이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 일어서는 이야기. 교실에 몸만 있을 뿐 수업은 가상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시안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스크린 증후군', '접촉 공포'까지 유발시키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 혼자 뿐일까. 올바른 인간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점점 허약해지며 인위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폐쇄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시안 시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싱커에 접속한 아이들은 지상 세계를 궁금해하고, 한 번 본 태양빛을 잊지 못하며, 새로운 시안을 건설하기 위해 꿈을 품게 된다.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추천서의 한 문구가 밝힌 것처럼 사실 [싱커]가 우리가 전혀 몰랐던,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으로의 회귀와 마음의 여유, 이미 작년 흥행한 영화 <아바타> 가 우리에게 던져준 메세지가 아니던가. 하지만 [싱커]의 주인공들이 영화 <아바타>에서와 같은 성인이 아니라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밝고 진취적인 미래를 꿈꾸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구성면에서 각각을 잇는 끈이 조금 허술하고, 예측 가능한 결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약간 허전한 느낌이 들지만 싱커에 접속해 반려수와 교감한다는 설정에는 감동을 느꼈다. 씨네 21의 김도훈 기자가 충무로 영화쟁이들의 손에 이 작품을 어떻게든 쑤셔넣는다면, 이 작품을 스크린에서 보게 될 날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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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코끼리의 등>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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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고운 아내, 건강한 두 아이와 살아가던 한 남자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폐암 말기, 남은 기간은 길어야 6개월. 최근들어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기계로 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무용담 삼아 자랑하려 했던 것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 앞에서 남자는 괴롭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도 느껴지는 극심한 외로움. 고민하던 그는 결국 연명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삶을 자신의 시간을 정리하는 데 쓰기로 결심했다. 그가 관계했던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전부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유서를 보내기로 결심한 남자. 그의 유서는 고등학교 때의 첫사랑, 절교한 친구, 배신한 사업 파트너, 의절한 형, 사랑하는 가족과 숨겨왔던 애인에게까지 전해진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약간의 강박증이 있는 터라 조금만 아파도 쉽게 겁을 먹는 경향이 있다. '병'이라는, 그 길고 긴 고통의 터널을 감당해낼 수 있을 지 두려워서일까, 아니면 단지 죽는 것이 무서워서일까. 그도 아니면 내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될 이 세상을 질투해서일까. TV 드라마의 주인공의 운명을 쉽게 결정해버리는 요소로 '병'이 자주 등장한 것이, 나의 그런 걱정과 잡념을 부채질한 것일 수도 있겠다.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해 처음 자각하게 된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계속되어온 그 질문에 대한 결론은, 세세한 과정이야 다르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삶을 정리하는 소재 자체만 보면 진부하기는 하더라도 가슴 뭉클한 뭔가가 있다. 하지만 이 남자,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척 뻔뻔스럽다. 사업 파트너를 배신한 것이야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죽음을 눈 앞에 둔 순간까지 아내에게는 잔인하다. 아내를 사랑하네,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네 읊으면서도 그동안 몰래 관계를 지속해온 애인이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어 슬퍼할까 봐 그 존재를 아내에게 밝힌다. 더구나 '뭐 해줄 것 없어?'라고 물은 대답에 '당신의 뼈를 갖고 싶어요' 라고 대답하는, 평생 함께 있고 싶다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까지 한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이라는 되도 않는 철면피 문구를 나열하면서. 어째 이리 생각이 없을 수 있는 지, 슬프고 안타까운 소설임에도 별안간 버럭하게 만들었다. 

남자가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은 당연히 안타깝다. 혼자 죽을 자리를 찾아 떠나는 코끼리가 되기보다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고 싶었던 죽음을 향한 여정. 잊고 살았던 가족의 소중함, 일에서 얻을 수 있었던 열정, 기억 저편에 묻어놓았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절교한 친구에 대한 애틋한 감정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권리였다. 내가 누구였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살아왔나를 알 수 있었던 그는, 어쩌면 갑작스레 세상을 뜬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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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코끼리의 등>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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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야기한다. 연애는 시작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그 시간이 제일 좋은 때라고. 만나기 전의 설레임, 손만 잡아도 터질 듯 두근거리는 가슴, 생각만해도 구름 위로 가볍게 안착해버릴 수 있는 몽롱함까지. 하지만 그 좋은 때는 아쉽게도 얼마 되지 않는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같이 있는 것이 당연해지면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그것을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인지라. 애인이 있음에도, 그리고 여전히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되뇌이면서도 새로운 자극을 찾아 눈을 돌리게 될 수도 있...지 않다!! 

주인공 안토니아가 걱정하는 것 또한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권태기를 맞이한 커플의 위기로 애인 루카스가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상대를 찾아 떠날까 두려워하는 가엾은 안토니아. 루카스가 전애인과 함께 있는 것을 보면서 질투의 불길을 활활 태우면서도 자신이 속좁은 여자로 비쳐질까 전전긍긍한다. 루카스가 질리면 안되니까. 사랑한다는 문자 대신 식빵 한 봉지 사오라는 문자만 달랑 보내는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언젠가 이 권태기도 끝날 것이라 믿는 안토니아. 그런 그녀에게 루카스의 전 애인 자비네의 관계는 너무나 큰 위기다. 

내 눈에 루카스는 지상 최대 둔남이든지, 일부러 안토니아의 성질을 긁는 최강 악독한 남자로 보였다. 현재의 애인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전 애인과 환경운동을 한답시고 돌아다니고, 현재 애인이 외로워하고 슬퍼하는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면서도 전 애인이 부르면 일이라고 냉큼 달려가고, 그러면서도 안토니아가 잘 생긴 게이 커플과 같이 있으니 금새 질투나 하는 루카스. 내 눈에 안토니아의 질투와 외로워하는 마음은 당연하게 보이건만 그게 왜 루카스의 눈에는 안 보이는 걸까. 이 책을 읽은 다른 남자들도 안토니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무척 궁금하다. 

루카스의 마음을 다시 사랑으로 불태우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하는 안토니아의 모습이 마냥 우습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건 왜인지.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 브리짓처럼 사랑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토니아. 결국 사랑을 얻었지만 그 길은 너무나 멀고 험했으니.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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