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레이디가가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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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의 도가니탕으로 시작했으나 환상특급적으로 마무리된 이야기들]

 

책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출판사 북스피어 대표님의 작명센스에 대해 이번에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북스피어에서 출간되는 책은 또 무슨 시리즈인가를 먼저 살펴보게 되는데요, 아니나다를까! 미치오 슈스케의 [N]에는 <레이디 가가 시리즈>라는 이름이 붙어 있네요. '헉, 뭔 레이디 가가??!!'하며 책날개를 정독했더니 아무래도 레이디 가가의 팬이셨을 것 같은 마음이 잔뜩 담겨 있더라고요. '무대를 씹어 먹을 듯한 포즈, 초자연적인 의상, 의혹의 도가니탕, 욕을 먹는 그 모든 퍼포먼스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가창력, 환상특급적 피날레의 레이디 가가'라는데 대체 이 시리즈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감히 감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 시리즈도 딱 10권만 출간하고 그만두시겠다는데, 과연??!!

 

이 <레이디 가가> 시리즈의 포문을 연 작품은 미치오 슈스케의 [N] 입니다.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작품집으로, 읽는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고 감상이 바뀌는 설정을 목표로 했다고 해요. 어느 장으로 시작해서 어느 장으로 넘어갈지, 어느 장을 제일 마지막으로 읽을지 등 모든 것이 독자의 손에 달린 작품. 작가는 독자들이 순서대로 읽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일부 작품들을 거꾸로 배치하는 트릭(?)까지 준비해 두었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첫 장을 선택하는 데 조금 망설여졌어요. 살짝 선택장애가 있는 저로서는 '그냥 맨 처음부터 읽다가 거꾸로 된 장이 나오면 그 때는 책을 돌려서 읽지 뭐' 했는데, 또 그러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 첫 장을 고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저의 선택은!!

 

본 작품으로 들어가기 전 여섯 편의 이야기의 프리뷰에 해당하는 부분이 실려 있습니다. 독자는 그 부분을 읽고 어느 장을 선택할 지 결정할 수 있어요. 저는 결국 <웃지 않는 소녀의 죽음>을 시작으로 <떨어지지 않는 마구와 새>, <잠들지 않는 형사와 개>, <이름 없는 독과 꽃>, <날지 못하는 수벌의 거짓말> ,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로 끝을 맺었습니다. 첫 장을 고르는 데만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 그 후부터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마음 가는 내용을 따라갔어요.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이야기, 결말을 예상하지 못해 안타까웠던 이야기, 결국에는 후회와 희망을 노래하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습니다.

 

전 저의 선택이 참 탁월했던 것 같아요. 각 장에는 '구름 틈새로 내려온 다섯 줄기 빛이 천천히 퍼져 다섯 장의 꽃잎으로 변해' 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바다에 피어난 빛의 꽃. 저마다 그 빛의 꽃을 발견한 후 누군가는 놀라움을, 누군가는 회한을, 누군가는 기도를 바치는 장면마다에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각각의 삶은 모두 다르고, 인생에는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희망이나 기대를 바라게 되는 마음을 이 빛의 꽃으로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요. 제가 마지막으로 읽은 <사라지지 않는 유리 별>과 내용이나 메시지가 특히나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어쩐지 운명처럼 다가오기도 했답니다.

 

기존의 연작단편집과 크게 다른 점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고른 작품들마다 신기하게도 앞에 나왔던 인물이 뒤에 다시 등장하고, 그의 과거와 현재가 맞물려서 저는 딱 시간 순서에 맞는 흐름이었다고 느꼈어요. 저와 다른 순서로 읽은 분들은 이런 시간의 흐름이 역으로 진행된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작품들을 한편 한편 읽어나갈수록 미치오 슈스케가 만들어낸 이 세계가 돌고 도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어요. 어떤 현상을, 혹은 어떤 생명을 가운데에 두고 마치 그 공간이 구심점인 양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죠. 말로는 콕 집어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입니다.

 

출판사 대표님은 바로 이런 점을 노렸던 걸까요. 처음에는 의혹의 도가니탕으로 시작한 작품집이었지만 환상특급적 피날레를 장식한 이야기들. 작가도 작가지만, 다음 <레이디 가가> 시리즈는 무엇일지 정말 너무나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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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헤르만 헤세 A Year of Quotes 시리즈 2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유영미 옮김 / 니케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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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님을 통해 빠져들게 된 헤세의 세계. 현재 [데미안]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요, 이제는 저만의 ‘헤세‘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글과 그림을 한번에 만나는 행운을 누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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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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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으로 처음 만나고 [속죄]로 완전 사랑하게 된 작가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 제목은 처음 들어요??!! 어지간하면 이언 매큐언 작품은 전부 소장 중인데, 놓칠 수 없습니다! 또 열심히 탐독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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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 수확자 시리즈 1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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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소재로 재미와 철학적 사색 모두를 얻을 수 있는 작품]

 

지금 당신이 사는 세상에는 굶주림과, 질병, 전쟁은 물론 죽음까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실수'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도 나흘 정도면 재생 센터에서 완벽한 몸으로 다시 눈뜰 수 있죠. 이 유토피아를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은 슈퍼컴퓨터인 선더헤드. '그들'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몇 번이고 젊은 몸으로 회춘해서 영원과도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을 조절하기 위해 생명을 끝낼 의무를 가진 '그들', 수확자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평범하다는 것에 지루함을 느낀다는 사춘기 소녀 시트라와 소년 로언은 수확자 패러데이의 선택을 받아 수확자 수습생이 됩니다. 패러데이는,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엄격한 사람, 수확자의 임무에 있어 윤리와 도덕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두 사람을 수습생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이면을 볼 수 있다는 것, 죽음을 앞둔 이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패러데이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이는, 말 그대로 타인의 목숨을 거둬들이는 것을 광적으로 기뻐하는 사람, 고더드입니다. 특히 그는 한꺼번에 대량의 사람을 거두는 것으로 유명하고, 그런 그를 비판하는 수확자들도 있지만 찬양하는 이들의 수도 무시할 수 없어서 수확령은 점점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시트라와 로언에게 닥친 시련, 그 시련을 뛰어넘어 서로를 살리고자 하는 시도, 점차 무르익어 가는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 등 대중소설로서의 재미도 충분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수확자들의 철학입니다. 곳곳에 삽입된 수확자들-패러데이, 퀴리, 고더드 등-의 <수확 일기>를 통해 그들의 고뇌와 욕망을 엿볼 수 있어요.


나는 일시적으로 신체 일부를 잃거나,

일시적으로 목숨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는 기벽을 여럿 목격했다.

사람들은 맨홀에 빠지고, 떨어지는 물체에 맞고, 빠르게 움직이는 차도에 넘어진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웃어 버린다..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도 그 사람은 만화 속의 코요테와 마찬가지로

하루 이틀만 지나면 멀쩡해진 몸으로 돌아오니까.

 

불사성(不死性)은 우리 모두를 만화로 바꿔 놓았다.

-수확자 퀴리의 <수확 일기> 중에서, p226


자꾸 곱씹어보게 되는 <수확 일기>들. 타인에게 죽음을 전달할 권리를 갖는 것이 마땅한가에 대한 고민은 물론 수확자로서의 중압감, 그로 인해 꾸게 되는 악몽 등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그 일이 결코 우쭐해할만 것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고더드처럼 수확자로서의 일을 최대한 즐겨야 한다는 감상을 남긴 이도 있지만요.


내가 인류에게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은 평화나 안락이나 즐거움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할 때마다 우리 모두의 내면도 조금씩 죽기만을 빈다.

공감의 고통만이 우리를 인간으로 유지시킬 터이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잃어버린다면

어떤 신도 우리를 도울 수 없다.

-수확자 패러데이의 <수확 일기> 중에서, p449


죽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소멸된 것은 죽음 그 자체만이 아니었어요.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 정해진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는 열정, 타인의 고통에 함께 마음 아파하는 공감 능력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서 그런 생에 대한 열정과 공감 능력을 제외한다면 우리가 기계와 다를 것이 뭐가 있을까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수확자 제도에 이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수확자들과 그들이 하는 일에는 개입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선더헤드. 이번 [수확자]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선더헤드는 시트라에게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선더헤드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시트라를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긴장감이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게 된 로언의 행보가 특히 기대됩니다. 고뇌 없이는 걸어갈 수 없는, 걸어가서는 안 되는 수확자의 길. 그 길을 선더헤드가 응원하게 될지, 방해하게 될지 어서 2권으로 달려가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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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여인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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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인 작가가 전기물을 쓴다는 것

크리스티앙 보뱅은 저에게 [작은 파티 드레스]를 통해 깊은 감동을 안겨 준 작가입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데 가슴이 먹먹해지고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 그런 것인지는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전기물을 썼다니,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전기물이라고 하면 한 인간을 소개하고 그려나가는, 다소 딱딱한 문체를 떠올렸거든요. 그런 문체와 보뱅이 어울리기는 할까 싶었는데 보뱅은 역시 자신만의 색으로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여성을 그려냈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자신만의 문체로요. 그렇게 보뱅을 통해 만난 '에밀리 디킨슨'은 신비로우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여성으로 다가옵니다. 

 

책을 읽기 전 알게 된 '에밀리 디킨슨'은

 

저는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이름만 들어봤지 그의 작품은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어요. 보뱅의 글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해 알게 된 계기는 <옮긴이의 말>에 적힌 문장 덕분입니다. '세상의 소음과 영예를 병적으로 회피하며 글쓰기 안에 은둔했던 여인, 무수한 상(喪)을 겪으며 죽음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비밀스러운 영감에 차 있었던 여인, 자신의 집 울타리를 삶의 경계로 삶아, 정원을 가꾸고 가족의 빵을 굽고 심신이 쇠약해 가는 어머니를 돌보고 수많은 편지를 쓰면서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시가 되게 했던 여인'. 그 중에서도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발표할 생각도 없는 글들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썼고, 그것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인 '영원'을 우리에게 가리켜 보인 여인'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작가들은 글을 쓰면 응당 발표하고 싶어지는 게 아니었나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던가요? 어떻게 발표할 생각도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는 지 그녀의 생각이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보뱅이 그려낸 '에밀리 디킨슨'

 

사실 보뱅이 그린 '에밀리 디킨슨'은 마치 안개 속에 서 있는 듯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보뱅의 글을 읽어본 독자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이 전기물에서조차 작가의 표현은 서정적이고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살짝 가닥을 잡은 것은 엄격한 아버지와 심약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는 것, 너무나 영민하여 보통의 아이들과는 달랐다는 것, 그럼에도 언제나 가족을 보살피고 걱정했다는 것, 이모와 조카들과의 서신을 통해 마음을 달랬다는 것, 그녀에게는 죽음이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라 소멸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 

 

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야심을 드러내며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할 때 

그녀는 그 무엇도 되지 않고 이름 없이 죽겠다는

당당한 꿈을 꾼다.

겸손이 그녀의 오만이며

소멸이 그녀의 승리이다.

p33

 

이름없이 죽겠다는 당당한 꿈. 누구나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세상 속에서 그런 생각을 먹은 당찬 여인의 모습이 더 크게 다가오는 듯 해요.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낸 천재적인 작가. 보뱅은 그녀의 은둔의 이유에조차 찬사를 보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보뱅의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꿈 속을 거니는 듯한 몽롱함을 선사하면서 에밀리 디킨슨을 만날 수 있는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해줍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가 훨씬 전에 사라진 이에 대해 쓴다는 것

 

이 시적 전기물을 쓸 당시 보뱅의 상태는 어떠했을까요? 그는 자신이 곧 이 세상에서 소멸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이제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의 목소리로 한참 전에 소멸된 인간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신비하고 애달픈 기분이 들게 합니다. 어쩐지 보뱅의 사후, 그를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애도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저만의 착각일까요?  

 

에밀리 디킨슨에게 바치는 애정과 경의로 가득찬 [흰옷을 입은 여인].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보뱅의 글을 읽었다면 훨씬 빠져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보뱅의 마음을 알게 된 지금 그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진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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