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피스트
헬레네 플루드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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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스트(심리치료사]로 일하는 사라. 어느 날 새벽 남편 시구르가 친구들과의 만남을 위해 집을 나섰는데 그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그는 사라가 내담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녀의 휴대폰에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이미 친구들과 만난 것처럼 이야기하고, 어떤 한 친구의 모습을 묘사까지 하는 내용의 메시지. 세세한 부분까지 잘 기억하는 사라는, 건축가로 일하는 시구르의 도면통이 한때 벽에 걸려 있지 않다가 돌연 모습을 드러낸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서 느껴지는 침입자의 기운. 경찰은 그녀의 행동을 망상증 정도로 치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집에 은밀히 설치된 감시카메라에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찍혀 있다!

 

'기억은 변한다.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다' 라는 문장에서부터 이 작품에 대한 혼란이 시작된다. 정말 사라가 기억하는 것처럼 시구르는 새벽에 집을 나섰는가. 사라만 들었던 시구르의 음성 메시지-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시구르가 거짓말을 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 충동적으로 삭제해버린 그 음성 메시지는 실제로 존재했나, 사라가 떠올린 그 기억에 혼란이나 착오는 없는 것인가.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범인은 시구르다!'라고 생각했다. 경찰과 사라가 모두 시구르라고 생각한 시체는 그와 외모가 닮은 것일 뿐 진짜 시구르는 아니고, 시구르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거나 금전적인 이유로 자신은 죽은 척, 결국에는 사라를 해치려고 하는 음모구나-라고 나름의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헹, 코웃음까지 치면서. 그런데 오, 의외의 반전! 훨씬 더 깊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던 그 반전을 알고나니 수수께끼가 풀려 속이 시원하다기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슬픔을 느껴진다.

 

작품은 사라와 시구르의 과거의 행적이 드문드문 삽입되면서 진행되는데 읽는 동안에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던 그 부분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가갈수록 애달프게 다가왔다. 시구르가 어떤 사람이었든, 무슨 일을 했든, 그들은 부부였고 서로를 사랑했다. 시구르가 살아있었다면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사라가 '헤이, 러브'라 속삭이는 그의 음성을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되었다고 자각하는 순간의 아픔은, 마치 내 것처럼 느껴졌다.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어디까지,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가.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릴러인만큼 길고 자세하게 리뷰를 쓸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요즘은 액션과 스릴이 넘치는 스릴러보다 요렇게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하는 심리스릴러가 대세인 듯 한데, 이 작품 역시 그 분위기를 흠뻑 즐기며 읽어내려갔다. 북유럽 스릴러 특유의 서늘한 맛이 좋았던 작품.

 

아니, 그런데 왜! 유부남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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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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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을 연구하는 간바야시 다카히로와 시인인 그의 여동생 간바야시 미와코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각각 다른 친척에게 맡겨진 뒤 다시 만나 같이 살게 된 것이 불과 5년. 너무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 때문일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허락하지만 그 앞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은 불보듯 뻔한 일. 그런 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는지 미와코는 인기 작가인 호다카 마코토와 연인 사이가 되어 이제 그와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호다카의 매니저인 스루가 나오유키와 미와코의 담당편집자이자 신랑 신부를 이어 준 유키자사 가오리, 간바야시 다카히로와 미와코, 호다카가 그의 자택에 모여 대화를 나누던 중, 정원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를 보고 흠칫 놀라는 호다카와 스루가. 그녀는 호다카가 언젠가 자신과 결혼해 줄 것이라 믿고 품었던 아이마저 낙태한 옛 연인 나미오카 준코였다. 스루가가 호다카를 만나야겠다는 그녀를 설득해 간신히 돌려보내고 일행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한다.

 

식사 도중 준코로부터 전화를 받은 스루가는 불안한 예감에 휩싸이고 호다카의 정원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준코를 발견한다. 호다카와 함께 준코의 시신을 그녀의 맨션으로 옮기고, 남몰래 그녀를 향한 사랑과 호다카에 대한 미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스루가. 그들을 미행한 유키자사 가오리가 그 모습을 훔쳐보다 스루가에게 발각된다. 한편 간바야시 다카히로는 미와코와 함께 묵게 된 호텔 룸에서 정체불명의 협박범으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를 받는다. 마침내 밝아온 결혼식 당일. 힘차게 행진해야 하는 신랑 호다카가 독이 든 캡슐을 먹고 사망하고 이에 용의자로 몰린 간바야시 다카히로와 유키자사 가오리, 스루가 나오유키. 다시 가가 교이치로의 활약이 시작된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의 다섯 번째 도서인 [내가 그를 죽였다]. 천하의 바람둥이에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데다, 곧 결혼하게 될 미와코마저 사업적으로 이용할 생각에 골몰해 있던 호다카지만, 그렇다고 그의 목숨을 앗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가가 형사가 수사를 진행해나가는 원동력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아무리 파렴치한 사람이더라도, 아무리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더라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철칙.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원칙도 소중한 사람이 연관되어버리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간바야시 다카히로에게는 미와코가, 스루가 나오유키에게는 나미오카 준코가 그런 존재였다. 유키자사 가오리의 경우에는, 그 소중한 대상이 '자아'였던 듯.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처럼 이 작품도 범인을 특정지어주지 않는다. 사건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 호다카가 먹은 독이 든 캡슐인데, 이 캡슐의 행방을 놓고 역시나 골치 아픈 추리가 계속된다. 이 캡슐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 누구에게 호다카를 독살할 기회가 있었는지. 열린 결말, 범인을 알려주지 않는 추리소설 정말 싫어하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은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에 비해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다-라고는 해도 역시 혼자의 힘으로 추리하는 건 실패.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나서야 그제야 납득했다. 아아, 하고.

 

세 사람의 시선으로 서술되는 추리소설. 비록 이번 편에서 가가의 출현이 다소 적었던 데다, 나의 범인 색출은 또 실패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늘 재미있다. 어딘가 유치하고 말이 되지 않는 듯 하면서도 끌려들어가는 이 매력. 역시 추리소설의 제왕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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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에비
J .P. 포마레 지음, 이순미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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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소녀 에비. 분명 무언가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만은 분명한데 그 일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직 자신의 진짜 이름인 케이트만 기억할 뿐. 그런 에비의 곁을 지키는 짐은 일단 그녀의 삼촌이라 소개되어 있지만, 삼촌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수상쩍다. 자신과 동행하지 않고서는 외출도 하지 못하게 하고, 정체불명의 약을 먹이며, 인터넷을 통제하고, 이제는 그녀의 방에 CCTV마저 설치한다. '그들'에게 발각되어서는 안된다며, 주위를 살피는 짐. 대체 케이트는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이전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케이트는 어린 시절 엄마를 잃고 럭비 스타였던 아빠와 둘이 생활하던 소녀였다. 같이 수영을 다니던 톰과 사랑에 빠져 친구인 윌로우마저 멀리하던 케이트. 톰이 찍는 카메라 렌즈 안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유를 느끼지만 시간이 흐르고 톰의 질투가 심해지면서 점점 그에게서 마음이 떠난다.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것은 알았지만 금지된 사랑에 발을 들이고 만 케이트는 톰에게 이별을 말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가고, 그의 노트북에서 톰과 자신의 섹스 동영상, 은밀한 부위가 찍힌 사진 등을 발견, 경악한다.

 

기억을 잃은 소녀와 그녀를 감금한 남자. 이런 구도라면 분명히 이 남자는 나쁜 사람이다. 케이트의 기억을 조작하고, 그녀가 저지르지 않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위장하려는 남자. 혹시라도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워 그녀를 납치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상쩍은 주위 사람. 케이트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웃마저 짐에게 회유당한 듯 하다. 이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 케이트는 결국 탈출을 감행하지만 무엇도 수월하지 않고, 마침내 진실이 드러난다.

 

반전이라고 하는 결말이 밝혀지기 전까지 자아내는 긴장감은 작가의 첫 장편 데뷔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반전이 반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문장도 있었고, 톰이 벌인 일을 알고나자 마지막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엄청 열심히 고지를 향해 달려갔는데 너무 쉽게 맥이 빠져버린 듯한 느낌. 결말만 조금 단단했다면 더 멋진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약간 아쉽지만, 데뷔작인만큼 다음 작품을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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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하지 않으면 늦어버린다 - 죽음을 앞둔 28인의 마지막 편지
이청 지음, 이재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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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인간은 언제 참회하고 싶어 할까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던 저자. 그는 임종 유언을 수집하기로 결정하고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유언을 모집하기 위해 <뉴욕타임스> 지면에 조그마한 광고를 낸다.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할 수 없었다면 자신에게 맡겨달라던 광고를 본 사람들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 중에는 대학교수, 택시 운전사, 대기업 총수, 에이즈 환자, 가정 주부, 심지어 맨해튼에 오랫동안 은둔한 할리우드 배우까지 있었다. 이 책은 그런 그들이 저자에게 보낸 유언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말이었기 때문일까. 나에게는 한통 한통의 편지가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소설처럼,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서 유독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연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부모님의 뜻대로만 살았던 피아니스트>의 유언이었다. 폐암 말기로 죽음을 앞둔 그녀는 대만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흠뻑 빠져 산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다섯 살 때 대만 전국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이후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쓴 그녀를 위해 그녀의 부모는 프랑스로 이민을 결심했고, 갖은 고생 끝에 그녀를 키워냈다. 그런 그녀가 프랑스에서 만난 리옹이라는 남자. 그들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하지만 피아니스트의 부모님의 반대로 결국 헤어지고 만다. 프랑스를 떠나 대만에서 강의도 하고 개인 레슨을 하며 생활하던 그녀는, 부모님의 강요로 원치 않은 결혼을 하고, 그 결혼은 물론 실패로 끝난다. 이혼 후 캘리포니아에서 새 삶을 시작한 그녀. 하지만 또 한 번 부모님의 뜻에 따라 재혼을 결심하고, 그 결혼조차 남편의 바람으로 끝을 맺는다. 그 동안의 세월동안 그녀의 생일이면 한 번도 잊지 않고 장미를 배달해주었던 리옹.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는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설령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해도 리옹과 함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한 일이 결국에는 더욱 그 분들을 괴롭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면서. 이 글을 읽으면서 절대 아이들의 삶을 내 삶과 혼동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선택도, 책임도 온전히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자고.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의 편지도 있었다. 불화와 반목으로 얼룩진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지켜보면서 여성과의 관계에 불안함을 느낀 것이 성 소수자의 길을 걷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밝힌 그는, 에이즈 말기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편지로나마 알 수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 그의 유언.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유언을 보관해 줄 저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성 소수자는 괴물이 아니에요. 우리의 성적 취향은 단지 관계의 일부분일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죄가 아니잖아요. 누구나 사랑을 원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요.

마치 태양과 식물의 관계 같은 거예요. 태양이 만물을 비출 때 식물을 구분하던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거든요. 인간의 편견은 서로 다른 꼬리표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를 갈라놔요. 인간은 꼬리표가 필요 없어요. 사랑과 관용은 꼬리표라는 의미를 알지 못하거든요. 태양이 작은 풀과 장미를 영원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예요.

p131

편지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고백한 이들은 대부분 담담했다. 곧 세상을 떠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원망과 증오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자신이 저질렀던 일에 대한 회개 같은 것이었다. 여기에 적힌 글들을 읽으니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충만한 삶인지 생각하게 된다. 순간의 이익에 눈 멀지 않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할 것. 더 늦기 전에 가슴 속에 간직한 그 말을 꼭 건넬 것. 그 어떤 명사의 강연보다 감동있고 울림 깊은, 명언이 넘쳐흐르는 인상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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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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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 미스터리에 찬호께이의 강력추천이라니 너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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