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말하지 않으면 늦어버린다 - 죽음을 앞둔 28인의 마지막 편지
이청 지음, 이재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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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대학에서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인간은 언제 참회하고 싶어 할까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던 저자. 그는 임종 유언을 수집하기로 결정하고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유언을 모집하기 위해 <뉴욕타임스> 지면에 조그마한 광고를 낸다.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할 수 없었다면 자신에게 맡겨달라던 광고를 본 사람들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 중에는 대학교수, 택시 운전사, 대기업 총수, 에이즈 환자, 가정 주부, 심지어 맨해튼에 오랫동안 은둔한 할리우드 배우까지 있었다. 이 책은 그런 그들이 저자에게 보낸 유언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말이었기 때문일까. 나에게는 한통 한통의 편지가 한 편의 시처럼, 한 편의 소설처럼, 뛰어난 문학작품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서 유독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연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부모님의 뜻대로만 살았던 피아니스트>의 유언이었다. 폐암 말기로 죽음을 앞둔 그녀는 대만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흠뻑 빠져 산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다섯 살 때 대만 전국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이후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쓴 그녀를 위해 그녀의 부모는 프랑스로 이민을 결심했고, 갖은 고생 끝에 그녀를 키워냈다. 그런 그녀가 프랑스에서 만난 리옹이라는 남자. 그들은 서로를 깊이 사랑했고 결혼을 약속하지만 피아니스트의 부모님의 반대로 결국 헤어지고 만다. 프랑스를 떠나 대만에서 강의도 하고 개인 레슨을 하며 생활하던 그녀는, 부모님의 강요로 원치 않은 결혼을 하고, 그 결혼은 물론 실패로 끝난다. 이혼 후 캘리포니아에서 새 삶을 시작한 그녀. 하지만 또 한 번 부모님의 뜻에 따라 재혼을 결심하고, 그 결혼조차 남편의 바람으로 끝을 맺는다. 그 동안의 세월동안 그녀의 생일이면 한 번도 잊지 않고 장미를 배달해주었던 리옹.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는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설령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해도 리옹과 함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한 일이 결국에는 더욱 그 분들을 괴롭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면서. 이 글을 읽으면서 절대 아이들의 삶을 내 삶과 혼동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했다. 선택도, 책임도 온전히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자고.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의 편지도 있었다. 불화와 반목으로 얼룩진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지켜보면서 여성과의 관계에 불안함을 느낀 것이 성 소수자의 길을 걷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밝힌 그는, 에이즈 말기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편지로나마 알 수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 그의 유언.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유언을 보관해 줄 저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성 소수자는 괴물이 아니에요. 우리의 성적 취향은 단지 관계의 일부분일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이죠. 그것은 죄가 아니잖아요. 누구나 사랑을 원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요.

마치 태양과 식물의 관계 같은 거예요. 태양이 만물을 비출 때 식물을 구분하던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거든요. 인간의 편견은 서로 다른 꼬리표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를 갈라놔요. 인간은 꼬리표가 필요 없어요. 사랑과 관용은 꼬리표라는 의미를 알지 못하거든요. 태양이 작은 풀과 장미를 영원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예요.

p131

편지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고백한 이들은 대부분 담담했다. 곧 세상을 떠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원망과 증오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자신이 저질렀던 일에 대한 회개 같은 것이었다. 여기에 적힌 글들을 읽으니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충만한 삶인지 생각하게 된다. 순간의 이익에 눈 멀지 않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할 것. 더 늦기 전에 가슴 속에 간직한 그 말을 꼭 건넬 것. 그 어떤 명사의 강연보다 감동있고 울림 깊은, 명언이 넘쳐흐르는 인상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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