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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평점 :
이 책에 대한 첫 이미지는, 저자 유병재씨에게는 미안하게도, –이런 책도 나오는구나-였습니다. 사실 전 이 책이 어렸을 때 읽었던 최불암 아저씨 시리즈 같은 그런 유머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직도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 싶어 놀라웠습니다. 조금 더 미안하게도 전 ‘유병재’라는 사람도 몰랐어요. 코미디 방송을 잘 보지 않거든요. 좋아하지도 않고요. 짝꿍은 코미디 프로를 종종 보기는 하지만 전 옆에 그냥 같이 앉아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하는 편이에요. 전 재미도, 웃음도 얻을 수가 없더라고요. 헉, 설마 유병재씨는 그런 코미디 프로에 등장하지 않는 방송인이었던가요.
제목인 ‘블랙코미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저 단순히 웃기기 위한 농담집이 아니었습니다. 재미없으면 그만 읽어야지, 대충 휘리릭 넘겨나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 읽을수록 궁금해집니다. 자꾸 자꾸 읽고 싶어져요. 한 챕터 읽고 나면 또 한 챕터 더 읽게 되고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다 결국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고 말았습니다. 아기와의 소중한 낮잠시간을 할애해서 말이죠.
모두 네 개의 큰 주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장은 블랙코미디, 2장은 분노수첩, 3장은 어느 날 고궁을 나서며, 4장은 인스타 인증샷용 페이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설명이라 썼지만 별명이라 읽힐 네 개의 주제들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장 블랙코미디
.......내가 생각하는 블랙코미디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는 코미디이다. 요즘 말로 쉽게 바꾸면 ‘웃픈’ 농담쯤 되려나.
제2장 분노수첩
......용기가 부족해 삼켰던 분노들을 글로 써보았다. 기백은 없고 불만만 많은 인간은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제3장 어느 날 고궁을 나서며
......내 분노의 원인들은 결국 나였다. 결국 나도 같은 인간이다, 하는 반성에서 기인했다.
제4장 인스타 인증샷용 페이지
......중2로 돌아가 이 책을 본다 해도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 중 인상깊었던 두 어개.
아들딸
대한민국에서 아들딸로 살기 힘든 이유
: 딸 같아서 성희롱하고 아들 같아서 갑질함
연예인 걱정
사람들은 걱정 안 해줘도 되는 연예인은 걱정해주고
걱정이 필요한 연예인에겐 악플을 달아 더 걱정스럽게 만드는 게 아닐까.
갑질
나는 굽실대지 않는 사람을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갑질은 내가 하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인상적인 글들이 참 많았어요. 옮기기에는 좀 긴 듯 하여 옮기지 못한 글들이 상당합니다. ‘울지 마’라는 위로, 상처와 카리스마, 기레기, 냉탕과 열탕사이 등 은근히 감동을 주면서 촌철살인의 글들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다른 챕터의 글들도 좋았지만 제2장인 분노수첩의 글들이 저에게는 좀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던 것 같아요.
작가는 앞에서 용기가 부족해 삼켰던 분노를 글로 써보았다고 했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번 세상을 향해 낳은 글들에는 책임이 생기니까요. 이 책의 글들을 읽고 얻게 될 독자들의 반응, 가까운 사람들의 또 다른 충고나 조언까지 작가가 감당해내야 할 텐데 보통 용기로는 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평소 우리가 느꼈던 감정들, 말로 표현해내지 못했던 생각들을 툭툭 내뱉듯 던지는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책입니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농담집이에요. 유병재라는 ‘작가’를 기억해두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