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군대의 장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1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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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만 책을 골랐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책. 죽음, 군대, 장군, 제목에 쓰인 세 단어가 모두 나의 흥미를 전혀 끌지 못하는 책이었다. '이런' 제목인데도 굳이 이 책이 끌렸던 건, 이 책을 읽은 어떤 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고 싶어졌다'고 한 말 때문이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출간 한 달밖에 안 된 신간인데! 단 한 권의 만남으로 그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면 역시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받아보고서야 알바니아 출신 작가의 책임을 알았다. 책 뒤표지에는 이런 문구.

 

우리는 『죽은 군대의 장군』을 통해 알바니아에 고귀한 문학적 전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발칸반도의 '문학 대사' 이스마일 카다레, 그의 문학의 서막을 연 첫 장편소설.

 

'알바니아'라는 나라 이름 때문에 나는 '책탑'을 이룬 신간 중에서도 이 책을 좀 더 일찍 집어들게 되었다. 얼른 읽고 동생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알바니아라는 나라를 알게 된 건, 2003년이었다. 당시 중국에 있던 나는 알바니아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여러 통 받았고, 나 또한 발신인에는 중국 주소를, 수신인에는 알바니아 주소를 적어 넣은 편지를 꽤 여러 통 보냈다. 알바니아는 내 동생이 일 년 가까이 머물렀던 곳이다. 나는 '알바니아' 하면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과 나는 짐작도 못할 어떤 풍경 속에서 지냈을 동생이 떠오른다. 내가 머물렀던 어떤 곳들 못지 않게 내 안에 친근함으로 자리한 나라, 알바니아.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알바니아 소설이다! 읽기도 전부터, 나는 이 책에 정을 주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어느 '죽은 군대의 장군' 이야기이다. 내용을 알고 보니 딱 그 주인공을 묘사한 제목이지만, 내용을 알기 전에는 의아하기만 했던 제목. 죽은 군대의 장군이라니, 자기 군대를 모조리 적진에 버리고 홀로 도망친 장군 이야기라도 되는 걸까? 라고 잠깐 생각도.

 

지금 나는 죽은 자들로 이루어진 한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비닐 가방이 군복을 대신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테두리는 검고 흰 줄이 두 개 쳐진, 올림피아 사에서 특수 제작한 푸른 가방. 처음에는 관 몇 개가 전부였지만 차츰 중대와 대대가 형성되었고, 이제는 연대와 사단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비닐 가방에 든 일단의 군대가…… _ 156~157쪽

 

장군은 지금 이십 년 전, 전쟁의 포화 속에 목숨을 잃고 타국에 묻힌 자국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알바니아에 와 있다. 그러니까 '비닐 가방에 든 일단의 군대'는 그가 발굴해 내어 수습한 병사들의 유골이다. '올림피아 사에서 특수 제작한 푸른 가방' 속에 담긴 유골. 그리고 이 책은 장군이 '관 몇 개'에서부터 '일단의 군대'를 형성하기까지 유해를 수습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분위기는 대체로 무겁고 어둡지만, 무엇이 전조등처럼 끊임없이 이 책의 책장을 비추어 멈추지 않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달리도록 한다. 그 '무엇'은 나는 살면서 몇 번 떠올려보지 못했던,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낯선 땅 이곳저곳에 묻힌 우리 군인들의 유해이기도 했고, 이 책에 등장한, 곧 자국 대령의 손에 목숨을 잃을 한 탈영병의 일기장이기도 했고, 유해 발굴 작업을 마무리 짓기 직전에 맞닥뜨린 최대의 고비이기도 했으며, 이 책을 지배한 두 계절, 가을과 겨울의 스산함이기도 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비극적인 문학의 혈맥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작가에 대한 평을 읽고 조금쯤은 유쾌한 글을 기대하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는 '유머러스'한 어떤 면을 거의 맛보지는 못했다.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나는 바로 이 때문에 작가의 다른 책들을 더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처녀작 이후 어떤 글들을 써내었는지 몹시 궁금해지는 작가라는 데 동의. 그리고 이 책 곳곳에 묘사된 알바니아 인들의 습성에 관한 부분들도 많은 흥미를 이끌어냈다. 이 책에서는 주로 무기와 전쟁에 관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지만 작가의 또다른 책을 통해 내게 마음만으로는 친근한 이 나라 알바니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 같아 적잖은 기대가 피어오른다.

 

 

책을 덮으며, 장군이 유해를 찾으러 떠나기 전 장군을 찾아온 노파의 말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간청을 드릴 테니," 노파가 말을 이었다. "부디 이 노인네의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봐주시겠소? 마지막 순간 누가 곁에 있었고 마실 거라도 주었는지,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_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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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군대의 장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1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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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만 책을 골랐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책. 죽음, 군대, 장군, 제목에 쓰인 세 단어가 모두 나의 흥미를 전혀 끌지 못하는 책이었다. '이런' 제목인데도 굳이 이 책이 끌렸던 건, 이 책을 읽은 어떤 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고 싶어졌다'고 한 말 때문이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출간 한 달밖에 안 된 신간인데! 단 한 권의 만남으로 그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면 역시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받아보고서야 알바니아 출신 작가의 책임을 알았다. 책 뒤표지에는 이런 문구.

 

우리는 『죽은 군대의 장군』을 통해 알바니아에 고귀한 문학적 전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발칸반도의 '문학 대사' 이스마일 카다레, 그의 문학의 서막을 연 첫 장편소설.

 

'알바니아'라는 나라 이름 때문에 나는 '책탑'을 이룬 신간 중에서도 이 책을 좀 더 일찍 집어들게 되었다. 얼른 읽고 동생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알바니아라는 나라를 알게 된 건, 2003년이었다. 당시 중국에 있던 나는 알바니아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여러 통 받았고, 나 또한 발신인에는 중국 주소를, 수신인에는 알바니아 주소를 적어 넣은 편지를 꽤 여러 통 보냈다. 알바니아는 내 동생이 일 년 가까이 머물렀던 곳이다. 나는 '알바니아' 하면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과 나는 짐작도 못할 어떤 풍경 속에서 지냈을 동생이 떠오른다. 내가 머물렀던 어떤 곳들 못지 않게 내 안에 친근함으로 자리한 나라, 알바니아.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알바니아 소설이다! 읽기도 전부터, 나는 이 책에 정을 주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어느 '죽은 군대의 장군' 이야기이다. 내용을 알고 보니 딱 그 주인공을 묘사한 제목이지만, 내용을 알기 전에는 의아하기만 했던 제목. 죽은 군대의 장군이라니, 자기 군대를 모조리 적진에 버리고 홀로 도망친 장군 이야기라도 되는 걸까? 라고 잠깐 생각도.

 

지금 나는 죽은 자들로 이루어진 한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비닐 가방이 군복을 대신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테두리는 검고 흰 줄이 두 개 쳐진, 올림피아 사에서 특수 제작한 푸른 가방. 처음에는 관 몇 개가 전부였지만 차츰 중대와 대대가 형성되었고, 이제는 연대와 사단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비닐 가방에 든 일단의 군대가…… _ 156~157쪽

 

장군은 지금 이십 년 전, 전쟁의 포화 속에 목숨을 잃고 타국에 묻힌 자국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알바니아에 와 있다. 그러니까 '비닐 가방에 든 일단의 군대'는 그가 발굴해 내어 수습한 병사들의 유골이다. '올림피아 사에서 특수 제작한 푸른 가방' 속에 담긴 유골. 그리고 이 책은 장군이 '관 몇 개'에서부터 '일단의 군대'를 형성하기까지 유해를 수습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분위기는 대체로 무겁고 어둡지만, 무엇이 전조등처럼 끊임없이 이 책의 책장을 비추어 멈추지 않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달리도록 한다. 그 '무엇'은 나는 살면서 몇 번 떠올려보지 못했던,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낯선 땅 이곳저곳에 묻힌 우리 군인들의 유해이기도 했고, 이 책에 등장한, 곧 자국 대령의 손에 목숨을 잃을 한 탈영병의 일기장이기도 했고, 유해 발굴 작업을 마무리 짓기 직전에 맞닥뜨린 최대의 고비이기도 했으며, 이 책을 지배한 두 계절, 가을과 겨울의 스산함이기도 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비극적인 문학의 혈맥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작가에 대한 평을 읽고 조금쯤은 유쾌한 글을 기대하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는 '유머러스'한 어떤 면을 거의 맛보지는 못했다.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나는 바로 이 때문에 작가의 다른 책들을 더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처녀작 이후 어떤 글들을 써내었는지 몹시 궁금해지는 작가라는 데 동의. 그리고 이 책 곳곳에 묘사된 알바니아 인들의 습성에 관한 부분들도 많은 흥미를 이끌어냈다. 이 책에서는 주로 무기와 전쟁에 관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지만 작가의 또다른 책을 통해 내게 마음만으로는 친근한 이 나라 알바니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 같아 적잖은 기대가 피어오른다.

 

 

책을 덮으며, 장군이 유해를 찾으러 떠나기 전 장군을 찾아온 노파의 말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간청을 드릴 테니," 노파가 말을 이었다. "부디 이 노인네의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봐주시겠소? 마지막 순간 누가 곁에 있었고 마실 거라도 주었는지,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_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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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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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어느 신체 장애인의 눈물 겨운 성공담,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향한 모욕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이런 표현을 한 번 끄집어내어 본다. 왜냐하면, 그럴 거라 짐작하고 이 책을 읽지 않은 내가 있었으니까. 나는 이러저러하게 몸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려움을 딛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당신도-사지육신 멀쩡한 당신도-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딱히 그런 책을 이전에 읽고 반감을 가진 적이 있는 것은 아닌데도) 무슨 심리인지 그렇다면 읽고 싶지 않았다. 어느 책 제목처럼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하는 이야기를 거부하는, 글쎄, 비뚤어진 심리?(저 제목의 책을 나쁘게 말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고, 그저 이 상황을 담을 제목을 빌려왔을 뿐.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언젠가 나의 힘이 바닥 났을 때 붙들 지푸라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장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는 책이다.)

 

도대체 잣대가 어디 있고, 무엇이 잣대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떤 잣대 하나를 들고 '자, 나는 당신보다 이만큼 힘든 사람이다. 하지만 나도 해냈다. 그러니 당신도 해내길 바란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일단 비교하기 싫었고, 비교를 통해 내가 누군가보다 이런 점은 낫다는 것을 확인하며 쾌락 또는 안도를 느끼고 싶지 않았고, 비교를 통해서만이 나도 어느 부분쯤은 '괜찮은 인간'임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로서, 나의 가치를 찾아야 할 뿐이라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내게 바로 그 점을 일깨워주었다. 내가 나 자신으로서 나의 가치를 찾기를 말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가능성'이다. 내 안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준 책.

 

책의 주인공은 자기 안의 가능성을 찾아낸 인물이고,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가능성으로 지금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삶-누구나가 바라 마지 않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기 안의 가능성을 찾아내기 위해, 마지막 한계까지 발끝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 그 이야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빠져들었다.

 

그에게 그의 장애에 대해 한번 물어보라. 아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무슨 장애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마음만 먹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걸요. 부모님은 저를 그렇게 키우셨습니다." _ 10쪽

 

패트릭 헨리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에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은 아니었으나, 또 오랫동안 잊고 있다 새롭게 내 안에서 깨어난 가르침들. 나 또한 마음만 먹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존재일지도 모르며(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가 나를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 것이며), 내가 태어날 때 신이 내게도 무언가 능력 하나를 주셨을 것이며(설마, 하필, 내가 태어날 때만 깜빡 졸고 계시진 않았겠죠?), 내가 어디까지 손을 뻗을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알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말 것이며(포기하는 순간, 나는 내 한계를 스스로 한정 짓고 말 테니), 내 곁에는 이처럼 사랑 가득한 내 가족들이 늘 나를 응원하고 지켜주고 있으며(늘 잊고 살아 미안해요, 나의 가족들), 내가 나로 태어난 데는 나만의 어떤 소용이 있으리라는 것 등등. 때로는 '꾸짖음'으로 들리는 말들도 있었다. 패트릭 헨리가 나를 꾸짖은 게 아니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나 자신을 꾸짖는 소리들. '사랑의 매'보다 효과는 좋으면서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도 아니니(육체적 고통은 때로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나무 몽둥이'보다 나무에서 나온 종이로 만들어진 책이 훨씬 나은 '사랑의 매' 역할을 함을 새삼 깨닫기도.

 

나는 몇 번인가 부모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걸을 수 없나요?"

화가 난 게 아니라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모두 다르게 만드셨단다. 그래서 너도 다르게 만드셨을 뿐이야."

엄마는 늘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걸을 수 있어도 나처럼 피아노를 잘 치진 못한다는 말도 꼭 덧붙였다. 마치 하느님이 커다란 상자 속에 수많은 능력을 넣어두었다가 사람이 태어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나누어준다는 이야기 같았다. _ 118쪽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으로 시작되는 질문은 나도 나 스스로에게 많이 던져본 질문이다(대부분은 사춘기 때 졸업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다시 사춘기가 오려는지 원).그 질문들을 일일이 꺼내자면 끝도 없을 테고, 또 굳이 일부러 끄집어 내어 나의 못난 점을 하나하나 상기하며 얼굴에 그늘 드리울 필요는 없을 테니 생략하겠지만, '하느님' 곁의 커다란 상자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그 안에서 내가 태어나던 순간 꺼내 주었을 그 능력을 떠올려보며 조금쯤 가슴이 따듯해진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 능력을 이미 발굴해놓고도 내가 아직 최선을 다해 내 한계까지 가보지 않아 이쯤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내가 내 능력 발굴에 너무 무심한 나머지 내 그 능력이 무엇인지 아직 찾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마음만 먹으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해보고 싶도록 내 안에 불을 지펴준 이 책, 그리고 그 단어 '가능성'. 내 안의 가능성과 내가 다시금 마음 맞추도록 해 준 이 책을 읽은 이 시간이 참 귀중했다.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든든한 단어인 줄 미처 몰랐다.

 

나도, 가능성이다. 

 

 

 

'오늘'은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로 가득 차 있다. 자기 자신이 알든 모르든.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 재능이 너무나 독특해서, 너무나 각양각색이라서, 자기 자신조차도 미처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나는 하느님이 내게 앞을 볼 수 없다는 '선물'을 주신 이유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또 내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신 이유는 내 능력을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게 사랑 많은 가족을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며 축복을 나누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_ 304~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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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스스키노 거리를 뒤져 탐정 아저씨(라고 부르면 팩 토라져 사건을 맡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제 나름대로는 친근함의 의미로 붙인 호칭이라고요, 탐정 아저씨!)를 찾아 사건 해결을 부탁드려야 할 것 같아요.

삿포로는커녕, 일본 땅은 어디도 밟아본 적 없는 저이지만, 왠지 스스키노 거리에서 탐정 아저씨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네요.

켈러 오하타에 있거나, 이사무에 있거나, 플라밍고 드림에 있거나, 뭐 그것도 아니면 아무 '바'나 뒤져보거나, 그마저도 아니라면 오락실에... 흠흠.

아, 어쨌거나 탐정 아저씨를 찾아내어 의뢰하고 싶은 일은,

 

당신이 잠든 사이, 아니 당신이 집을 비운 사이, 벌어지는 일입니다.

 

 

저희 집에는 올해 열두 살 되는 작고 까만 개가 한 마리 살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 때는 아주아주, 뚱뚱했지요.

밖에 데리고 나가면 개의 형상에 놀란 사람들이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질렀습니다.

"어머! 개야 돼지야?!"

"살 찐 것 좀 봐!!"

(네, 예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아무리 개라지만 대놓고 인신공격, 아니 견신공격을 하다니!!)

그것도 아니라면,

"임신했어요?"

쳇.

하지만 그런 말들과 작별한 지도 여러 달 되었네요.

지난 여름 척추디스크로 크게 고생을 하면서 혹독하게 살을 빼야 했거든요.

지난 겨울에 3.2킬로까지 쪘던 아이(아, 물론 3.2킬로짜리 다른 사람 아이가 있는 게 아니고, '개'를 말하는 겁니다. 흠흠)가 지금은 2.3킬로쯤 되는군요.

살을 빼는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아니, 사실 어떤 행동들이 어려울 건 없었어요. 다만 아침 저녁으로 철저하게 사료의 개수를 세어 적은 양을 일정하게 주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과일도 고기도 과자도 아무 것도, 주지 않았으니까요. 정신적인 고통이었죠. 그리고 다만 짐작해볼 따름인 배고픔.

그리고 그 배고픔 혹은 정신적인 고통이, 녀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번 들어보세요.

 

비록 먹을 걸 무척 좋아해 가족들이 무언가 먹고 있을라 치면 옆에서 초롱초롱 눈망울을 빛내며(아시죠? 일명 '슈렉 고양이 눈빛'. 딱 그렇답니다) 하나만 달라고 애원하곤 했지만 절대로 먹을 것에 덤벼들지는 않는 의젓한 녀석이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먹을 것 앞에서 나름대로 의연했던 녀석이, 가족들이 집을 비우면 도대체 어떻게 돌변하는 걸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라고 버럭! 하시는 거 아니죠? 그게 바로 탐정 아저씨한테 의뢰하고 싶은 일인데 그럼 누구한테 물어보겠어요?)

처음에는 사료 봉지를 습격했어요. 녀석의 사료는 밀봉 포장이 되어 있는 봉투에 그대로 넣어두고 먹였는데, 글쎄 이 녀석이 그 커다란 사료 봉지를 방으로 끌고 가 그 두꺼운 비닐봉지를 죄 물어 뜯은 다음에 사료를 맘껏 드셨던 겁니다(개한테 존댓말이라니! 하고 역정내지 마세요. 입버릇이 되어 놔서 절로 나오는 걸 어떡해요...). 배가 땅에 끌릴 정도로 불러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 꼴에 기가 막혔어요. 그 다음에는 부엌 음식물 쓰레기를 습격했고, 그 다음에는 화장실 쓰레기통을 습격했고, 그 다음에는... 어쨌든 그런 일이 있고나서 외출할 때마다 '단도리 단디' 하느라 외출 준비 시간이 엄청 늘어났어요.

그런데도 번번이 일은 터지니 딱 미칠 노릇이에요.

가장 알 수 없었던 일은, 도대체! 잠겨 있는 부엌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갔느냐 하는 거예요!

저희 집 부엌문은 갈고리로 잠금을 하게 되어 있는데, 사람인 우리야 손쉽게 열고 잠그고 하지만, 네 발로 선 키가 30센티도 안 되는 개가 사람 눈 높이의 갈고리를 열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제가 개 흉내를 내어(ㅡ.ㅡ) 부엌문 밑에 바짝 엎드려 문을 마구 긁어보고 흔들어도 봤습니다. 역시, 그래도 열리지 않아요.

그런데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잠겨 있는 부엌문을 열고 음식물 쓰레기를 습격하는 걸까요?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에요.

"집에다 CCTV를 달아야겠어!!!"

CCTV 달기 전에 일단 부엌문 앞에 늘 무거운 물건을 놓음으로써 더 이상 개가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없어졌지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것이 바로 불가사의?!

 

'바'에서 사건을 기다리고 있을 탐정 아저씨께 이 사건을 맡길게요.

도대체 개가 그 부엌문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는 건지, 제발 그 미스터리를 해결해주세요.

("아놔, 그냥 CCTV 달아!!"라고 하실 건 아니죠? 저희 개, 예뻐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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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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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 얼마쯤 읽어나가다가, 나는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냥, 갑자기 긴장이 됐다.

앞으로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데 중요한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런 내용 때문에.

 

"자네 혹시 왕따라고 아나?"

청년은 그제야 그를 쳐다보았다.

"내 둘째아들이 십 년 전에 어떤 애한테 그런 걸 당하다가 사고로 죽었어. 아무 잘못도 없는 앤데. 그냥 괴롭힘만 당하다가 괴롭힌 애가 캄캄한 저녁에 산으로 부르는 바람에 산으로 올라가다 실족해서 죽었어."

청년은 운전대를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한쪽 귀를 열고 있는 듯했다.

"십 년 전 일이야. 오래됐지. 하지만 그 일을 당한 우리 식구들은 십 년이 십 년 같지가 않아. 그애는 처벌도 안 받았어. 그애 아버지란 작자는 나한테 사과 한 번 안 했어. 사과가 다 뭐야,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다가 다른 사람들 입까지 막고 줄행랑까지 쳤지." _ 26~27쪽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이 그 간의 일을 유서로 남기고 자살한 일이 있었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한 여고생이 역시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연이어 터진 집단 괴롭힘 자살 사건으로, 마음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기사를 자세히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에도 몹시 암담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이런 문장에 나는 그밤, 괜한 섬뜩함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이야기는 십 년 전 가족을 잃은 이들과, 십 년 전 누군가를 아프게 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허구이다. 실제로는 그런 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다만 소설을 통해 들여다 본 곳에는, 무너진 두 개의 하늘이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연일 인터넷 뉴스에 오르던 사건들이 떠올라 심란했고, 책 속에 묘사된 지나친 학대 장면에 눈살을 찌푸렸고, 그러다 문득 현실 속에서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 책 속 화자가 헷갈려 조금쯤 혼란스럽게 읽었다.

 

표지 컬러와 같은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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