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군대의 장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1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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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만 책을 골랐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책. 죽음, 군대, 장군, 제목에 쓰인 세 단어가 모두 나의 흥미를 전혀 끌지 못하는 책이었다. '이런' 제목인데도 굳이 이 책이 끌렸던 건, 이 책을 읽은 어떤 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고 싶어졌다'고 한 말 때문이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출간 한 달밖에 안 된 신간인데! 단 한 권의 만남으로 그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면 역시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받아보고서야 알바니아 출신 작가의 책임을 알았다. 책 뒤표지에는 이런 문구.

 

우리는 『죽은 군대의 장군』을 통해 알바니아에 고귀한 문학적 전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발칸반도의 '문학 대사' 이스마일 카다레, 그의 문학의 서막을 연 첫 장편소설.

 

'알바니아'라는 나라 이름 때문에 나는 '책탑'을 이룬 신간 중에서도 이 책을 좀 더 일찍 집어들게 되었다. 얼른 읽고 동생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알바니아라는 나라를 알게 된 건, 2003년이었다. 당시 중국에 있던 나는 알바니아로부터 날아온 편지를 여러 통 받았고, 나 또한 발신인에는 중국 주소를, 수신인에는 알바니아 주소를 적어 넣은 편지를 꽤 여러 통 보냈다. 알바니아는 내 동생이 일 년 가까이 머물렀던 곳이다. 나는 '알바니아' 하면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과 나는 짐작도 못할 어떤 풍경 속에서 지냈을 동생이 떠오른다. 내가 머물렀던 어떤 곳들 못지 않게 내 안에 친근함으로 자리한 나라, 알바니아. 그리고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알바니아 소설이다! 읽기도 전부터, 나는 이 책에 정을 주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어느 '죽은 군대의 장군' 이야기이다. 내용을 알고 보니 딱 그 주인공을 묘사한 제목이지만, 내용을 알기 전에는 의아하기만 했던 제목. 죽은 군대의 장군이라니, 자기 군대를 모조리 적진에 버리고 홀로 도망친 장군 이야기라도 되는 걸까? 라고 잠깐 생각도.

 

지금 나는 죽은 자들로 이루어진 한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 비닐 가방이 군복을 대신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테두리는 검고 흰 줄이 두 개 쳐진, 올림피아 사에서 특수 제작한 푸른 가방. 처음에는 관 몇 개가 전부였지만 차츰 중대와 대대가 형성되었고, 이제는 연대와 사단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비닐 가방에 든 일단의 군대가…… _ 156~157쪽

 

장군은 지금 이십 년 전, 전쟁의 포화 속에 목숨을 잃고 타국에 묻힌 자국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알바니아에 와 있다. 그러니까 '비닐 가방에 든 일단의 군대'는 그가 발굴해 내어 수습한 병사들의 유골이다. '올림피아 사에서 특수 제작한 푸른 가방' 속에 담긴 유골. 그리고 이 책은 장군이 '관 몇 개'에서부터 '일단의 군대'를 형성하기까지 유해를 수습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분위기는 대체로 무겁고 어둡지만, 무엇이 전조등처럼 끊임없이 이 책의 책장을 비추어 멈추지 않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달리도록 한다. 그 '무엇'은 나는 살면서 몇 번 떠올려보지 못했던,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낯선 땅 이곳저곳에 묻힌 우리 군인들의 유해이기도 했고, 이 책에 등장한, 곧 자국 대령의 손에 목숨을 잃을 한 탈영병의 일기장이기도 했고, 유해 발굴 작업을 마무리 짓기 직전에 맞닥뜨린 최대의 고비이기도 했으며, 이 책을 지배한 두 계절, 가을과 겨울의 스산함이기도 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비극적인 문학의 혈맥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작가에 대한 평을 읽고 조금쯤은 유쾌한 글을 기대하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는 '유머러스'한 어떤 면을 거의 맛보지는 못했다.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나는 바로 이 때문에 작가의 다른 책들을 더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처녀작 이후 어떤 글들을 써내었는지 몹시 궁금해지는 작가라는 데 동의. 그리고 이 책 곳곳에 묘사된 알바니아 인들의 습성에 관한 부분들도 많은 흥미를 이끌어냈다. 이 책에서는 주로 무기와 전쟁에 관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지만 작가의 또다른 책을 통해 내게 마음만으로는 친근한 이 나라 알바니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 같아 적잖은 기대가 피어오른다.

 

 

책을 덮으며, 장군이 유해를 찾으러 떠나기 전 장군을 찾아온 노파의 말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간청을 드릴 테니," 노파가 말을 이었다. "부디 이 노인네의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봐주시겠소? 마지막 순간 누가 곁에 있었고 마실 거라도 주었는지,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_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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