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어느 신체 장애인의 눈물 겨운 성공담,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향한 모욕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이런 표현을 한 번 끄집어내어 본다. 왜냐하면, 그럴 거라 짐작하고 이 책을 읽지 않은 내가 있었으니까. 나는 이러저러하게 몸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려움을 딛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당신도-사지육신 멀쩡한 당신도-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했고 (딱히 그런 책을 이전에 읽고 반감을 가진 적이 있는 것은 아닌데도) 무슨 심리인지 그렇다면 읽고 싶지 않았다. 어느 책 제목처럼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하는 이야기를 거부하는, 글쎄, 비뚤어진 심리?(저 제목의 책을 나쁘게 말하려는 의도는 절대 없고, 그저 이 상황을 담을 제목을 빌려왔을 뿐.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언젠가 나의 힘이 바닥 났을 때 붙들 지푸라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장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있는 책이다.)

 

도대체 잣대가 어디 있고, 무엇이 잣대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떤 잣대 하나를 들고 '자, 나는 당신보다 이만큼 힘든 사람이다. 하지만 나도 해냈다. 그러니 당신도 해내길 바란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일단 비교하기 싫었고, 비교를 통해 내가 누군가보다 이런 점은 낫다는 것을 확인하며 쾌락 또는 안도를 느끼고 싶지 않았고, 비교를 통해서만이 나도 어느 부분쯤은 '괜찮은 인간'임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로서, 나의 가치를 찾아야 할 뿐이라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내게 바로 그 점을 일깨워주었다. 내가 나 자신으로서 나의 가치를 찾기를 말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가능성'이다. 내 안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해준 책.

 

책의 주인공은 자기 안의 가능성을 찾아낸 인물이고,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가능성으로 지금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삶-누구나가 바라 마지 않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기 안의 가능성을 찾아내기 위해, 마지막 한계까지 발끝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 그 이야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빠져들었다.

 

그에게 그의 장애에 대해 한번 물어보라. 아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무슨 장애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마음만 먹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는걸요. 부모님은 저를 그렇게 키우셨습니다." _ 10쪽

 

패트릭 헨리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에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은 아니었으나, 또 오랫동안 잊고 있다 새롭게 내 안에서 깨어난 가르침들. 나 또한 마음만 먹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존재일지도 모르며(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가 나를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 것이며), 내가 태어날 때 신이 내게도 무언가 능력 하나를 주셨을 것이며(설마, 하필, 내가 태어날 때만 깜빡 졸고 계시진 않았겠죠?), 내가 어디까지 손을 뻗을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알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말 것이며(포기하는 순간, 나는 내 한계를 스스로 한정 짓고 말 테니), 내 곁에는 이처럼 사랑 가득한 내 가족들이 늘 나를 응원하고 지켜주고 있으며(늘 잊고 살아 미안해요, 나의 가족들), 내가 나로 태어난 데는 나만의 어떤 소용이 있으리라는 것 등등. 때로는 '꾸짖음'으로 들리는 말들도 있었다. 패트릭 헨리가 나를 꾸짖은 게 아니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나 자신을 꾸짖는 소리들. '사랑의 매'보다 효과는 좋으면서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도 아니니(육체적 고통은 때로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나무 몽둥이'보다 나무에서 나온 종이로 만들어진 책이 훨씬 나은 '사랑의 매' 역할을 함을 새삼 깨닫기도.

 

나는 몇 번인가 부모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걸을 수 없나요?"

화가 난 게 아니라 호기심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모두 다르게 만드셨단다. 그래서 너도 다르게 만드셨을 뿐이야."

엄마는 늘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걸을 수 있어도 나처럼 피아노를 잘 치진 못한다는 말도 꼭 덧붙였다. 마치 하느님이 커다란 상자 속에 수많은 능력을 넣어두었다가 사람이 태어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나누어준다는 이야기 같았다. _ 118쪽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으로 시작되는 질문은 나도 나 스스로에게 많이 던져본 질문이다(대부분은 사춘기 때 졸업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다시 사춘기가 오려는지 원).그 질문들을 일일이 꺼내자면 끝도 없을 테고, 또 굳이 일부러 끄집어 내어 나의 못난 점을 하나하나 상기하며 얼굴에 그늘 드리울 필요는 없을 테니 생략하겠지만, '하느님' 곁의 커다란 상자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그 안에서 내가 태어나던 순간 꺼내 주었을 그 능력을 떠올려보며 조금쯤 가슴이 따듯해진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 능력을 이미 발굴해놓고도 내가 아직 최선을 다해 내 한계까지 가보지 않아 이쯤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면 내가 내 능력 발굴에 너무 무심한 나머지 내 그 능력이 무엇인지 아직 찾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마음만 먹으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해보고 싶도록 내 안에 불을 지펴준 이 책, 그리고 그 단어 '가능성'. 내 안의 가능성과 내가 다시금 마음 맞추도록 해 준 이 책을 읽은 이 시간이 참 귀중했다.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든든한 단어인 줄 미처 몰랐다.

 

나도, 가능성이다. 

 

 

 

'오늘'은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로 가득 차 있다. 자기 자신이 알든 모르든.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 재능이 너무나 독특해서, 너무나 각양각색이라서, 자기 자신조차도 미처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나는 하느님이 내게 앞을 볼 수 없다는 '선물'을 주신 이유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또 내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신 이유는 내 능력을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게 사랑 많은 가족을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아낌없이 베풀며 축복을 나누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_ 304~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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