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되지 않는 것들 중에는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겨두어야 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

 

*

 

설명되지 않지만 그대로 존중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어째서 나는 다른 장소나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장소, 이 사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지와 같은 문제.

 

*

 

설명은 상대에게 크게 팔을 휘두르면서

"나 여기 있어, 나한테 와!"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다.

설명을 하려면 상대를 찾으러 가야 하고,

따라서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사람 가까이에 가서 마치 손을 잡고 하는 것처럼 이끌어줄 수 있어야 한다.

 

 

_ 미셸 퓌에슈 『설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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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에게
객관적이지 못한 것은
정상이다.
 
_ 미셸 퓌에슈 『사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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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 눈 때문이겠지만,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걸었다.

언제부터인가 휘청휘청 넘어질 듯 흔들려야만 다른 사람의 손을 잡게 됐는데,

그래서인지 이제는 누군가 다른 사람 손만 잡아도 휘청휘청 넘어질 듯 어지러워지더라.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엄마가 그런 말씀을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살아보니 그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겠다.

 

_ 김연수 「일기예보의 기법」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손, 잡기.

문득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아직, 휘청휘청 넘어질 듯 어지러워지는 손,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내가 잡았던,

가장 설렜던, 가장 기억에 남는 손을 떠올려보게 된.

 

 

꼬물꼬물 아가 조카가 나의 손가락 하나를 꽉 쥐던 순간의 감동과 놀람과 기쁨,

좋아하는 작가님의, 내가 좋아하는 그 글들을 써내렸을 그 손을 꼬옥 쥐어본 그 순간의 벅참,

지난주 금요일, 얼결에 잡았던 박시환의, 서늘한 손, 그 손의 온도를 잊지 못하고 있는 내 손의 설렘.

 

이런 손들,

지금 내가 떠올리고 있는 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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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이향

 

 

  심심해서 옛 사진첩 뒤적거리다보면 그 안에 아이는 크게 웃고 있다 아이가 작을 때는 웃음이 참 컸다 사진 밖으로 쏟아지는 웃음 그러고 보면 웃음이 아이를 키운 것 같다 웃는 그 힘으로 잠을 자고 젖을 빨고 팔다리 쭉쭉 뻗었겠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내 몸도 간지러워

  아침에 눈뜨는 것도 어렵지 않았는데

  아이 곁에서 다 웃어버렸는지

  어쩌다 저녁모임에서 돌아오는 긴 골목 같거나,

  기껏해야 한바탕 헛웃음 뒤로 번지는 물기 같다

 

 

 

 

 

 

따끈따끈 새 시집 한 권 들고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문학동네시인선 47번, 이향 시집 『희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시집을 받자마자 넘겨보다가,

“좋다아...!” 절로 감탄 터졌다...!

 

처음 눈 마주친 시는 ‘웃음’인데, 왠지,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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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1-1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고 갑니다. 시인처럼 읽는 사람 역시 웃음뒤 물기 남기겠네요.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

원주 2013-11-19 10:25   좋아요 0 | URL
그 웃음 뒤 물기, 함께 느껴주셔서 감사해요...!
한동안 이 시집에 푸욱 빠져 지낼 것 같아요.^*^

그렇게혜윰 2013-11-1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 캬 좋다~~^^

원주 2013-11-19 10:26   좋아요 0 | URL
시집은, 더 좋아요...!!! ^^*
올 겨울, 자신 있게 추천하고 다닐 시집!! ^^
 

최승호 詩集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

 

 

 

 

  코가 깨져본 사람은 이해하리라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돌부리들이 있다는 것을

  넘어진 자리에서 흙먼지를 털고 얼른 일어나

  다시 직립의 자세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누가 봐도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당당하게 걸어가야 하고

  걸어가고 또 걸어가다보면

  해질녘 긴 그림자처럼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것을

 

  _ 「돌」 부분

 

 

 

  떡이 된다는 것은

  마음이 바닥에 누워 있게 된다는 것

  바닥에 누워 있게 된다는 것은

  무기력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

  떡이 되어 베개를 베고 누워 있든

  베개를 안 베고 누워 있든 떡이 되면

  끈적거리는 절망감과 물컹한 후회가 찾아온다

 

_ 「떡」 부분

 

 

 

마귀와 오래 싸우다보면 마귀가 된다. 쩨쩨한 마귀와 싸우다보면 쩨쩨한 마귀가 되고 저 잘난 마귀와 싸우다보면 저 잘난 마귀가 된다. 마귀와의 싸움은 지나고 나면 정말 헛되고 부질없고 덧없다. 너절한 세월 뒤에 사악한 인생 뒤에 후회화 죄악의 냄새를 풍기면서 허무가 그윽하게 찾아온다. 물론 죽으면 마귀는 사라진다. 한 사람을 다 망가뜨린 승리감에 기뻐 날뛰면서 마귀는 또다른 제물을 찾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이런 마귀는 사실 조무래기 마귀에 지나지 않는다.

 

_ 「마왕」 부분

 

어느 날 나 없는 나의 고독은

동쪽 은하

외뿔소자리에서 고개를 쳐들 것이다

 

_ 「소행성」 부분

 

똥꿈을 꾸면 로또를 사야 한다

똥꿈에도 불구하고 로또는 휴지가 된다

다시는 로또를 사지 말아야지

지구가 황금색 똥바다로 변하는 꿈을 꿔도

로또를 사지 말아야지

하지만 로또 말고 무슨 희망이 남아 있단 말인가

똥꿈을 꾸지 않아도 로또를 사야 한다

그는 또 로또를 산다

로또는 또 휴지가 된다

 

_  「대박」 부분

 

 

 

 

말술은 아니지만 어제도 술을 마셨고 그저께도 마셨다. 이년 전에도 마셨고 이십 년 전에도 마셨다. 그렇게 마셔댔는데 마신 게 없다. 밑 빠진 술자루에 술붓기, 밑 빠진 술주전자로 술따르기.  

 

_ 「색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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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도 만나고,                                      은하수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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