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
정재영 지음 / 풀빛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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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부끄럽지만) 나는 '전혀'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만큼, 철학을 거의 모름을 밝혀둔다.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 중에는 철학에 상당한 지식이나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을테고, 나처럼 철학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한 번쯤은 발을 담가보고 싶은,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나와 비슷한 경우의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읽은 느낌을 간단히 남겨본다.

철학,이라는 말을 듣고 "너 자신을 알라"나 소크라테스, 플라톤 같은 철학자를 떠올리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내가 처음으로 읽은 철학책이 바로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이다.

작년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고나서 갑자기 무척 알고싶어진 철학자가 있어서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철학 쪽을 기웃거려 책을 몇 권 빌려 왔었다. 의욕에 불타 올라 그 중 한 권의 책장을 펼쳤지만, 결국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함께 빌려온 다른 철학서와 함께 그대로 반납하고 말았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뒤, 몇몇 흥미로운 철학서 소개를 보았지만 선뜻 집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책,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가 기어이 나를 잡아 끌어 책장을 펼쳐들도록 한 데는 그만한 매력이 있었을테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일단 겁없이 철학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제목을 보고는 철학과 '도시 디자인'이 결합된 책인가, 생각했는데 책 소개를 읽어보니 유럽 도시 곳곳으로 철학 여행을 떠난다 한다.

그렇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과 사람을 살살 유혹하다 못해 황홀하게 만드는 여행이 결합된 책이라니, 내가 작년에 맛 본 '실패'의 쓰라린 경험을 기억 저편으로 밀어내고 다시 도전해볼 용기를 내도록 해준다.

저자의 당부대로 먼저 여행짐을 꾸렸다. 나는 이제 열한 곳의 유럽 도시와 고대 그리스로 떠날 테니까!

하지만 사뭇 경쾌한 발걸음으로 떠난 '여행'은 몇 걸음 내딛기도 전에 이 여행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음을, 아니 상당히 무거울지도 모름을 느끼게 해주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경치나 보고 즐기자고 떠난 여행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철학 여행'이니까.

저자는 이 철학 여행의 목표를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살면서 한 번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여행 목표만 보고도 그 무게가 느껴지리라 생각된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만큼 답도 없고 어려운 질문이 있을까? 그런데 이제 우리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이 여행을 떠나자 한다. 처음의 경쾌한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사뭇 비장해진다.

 

그리고 닷새 정도에 걸쳐 대단원의 '철학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어떤 도시를 다녔으며, 어떤 철학 사상을 보고 들었고, 어떤 철학자를 만났는지는, 책 소개에 나와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사실 그걸 정리하기에는 아직 나는 '철학을 너무 몰라~'가 진심이겠지만.)

이 여정에는 정말 흥미로워 정신없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닌 곳도 있었고, 엄청난 무게감에 짓눌려 한 줄 한 줄 천천히 따라가며 잠시 쉬었다 가고 싶은 곳도 있었다. 아, 이런 게 철학의 묘미로구나 하며 열심히 밑줄 긋고 황홀한 마음으로 읽은 부분이 있었는가 하면, 아, 역시 철학은 너무 어렵구나 하며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을 글자,라는 심정으로 읽은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 위해 떠난 여행길일지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으로만 충만할 수는 없는 법. 이번 '철학 여행'도 그런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굴곡이 있었던 것은 당연지사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나 같은 철학 문외한도 겁없이 덤벼들 수 있도록 매력적인 소재로 접근했다는 점이었다면,

그 다음 매력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철학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될까?

이 책에서 소개해준 데카르트의 <방법 서설>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읽고 싶어졌으니까. 앞으로는 다른 철학책도 과감히 도전해 볼 수 있으리라는 용기가 생겼으니까.

물론 책 속에서 만난 여러 철학적인 내용들이 무척 어려웠고, 정말 철학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읽기에는 힘든 내용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말했다시피 나는 철학을 '하나도' 모르지 않는가. 어떻게 전혀 모르는 분야에 접근을 하면서 그저 쉽고 재미있기만을 바란단 말인가. 나의 '도둑놈 심보'가 부끄러워지고, 그런 나의 마음가짐을 반성할 수 있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꾸짖기라도 하듯, 여행에 앞서 말한 저자의 한 마디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남이 먹기 좋게 꼭꼭 씹어서 한입에 넣어 주는 철학은 생명력이 약하다."(당연히 이 책에서는 그렇게 '꼭꼭 씹어서 한입에 넣어 주는' 밥은 없다.) 그러니 이 책은 내 스스로 꼭꼭 씹어가며 몇 번이고 읽어 생명력이 강한 철학을 내 안에 키워야겠다.

 

나처럼, 철학을 어렵게만 느끼고 선뜻 접근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철학을 만나보라고 적극 권해주고 싶다.

후회하지 않는 철학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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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마루 2008-12-08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한번 읽어봐야 될것 같은 책입니다.
도시속 철학이라.. 유럽여행가기전 봐야 될것 같음..^^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 - 프랑스에 간 카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강혜경 옮김 / 시공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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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롱스타킹...

우리에게는 '말괄량이 삐삐'라는 제목으로 더 익숙한 삐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또는 받고 있는 삐삐이니만큼

내게도 '삐삐'하면 떠오르는 특별한 추억이 한 자락 있다. 

어렸을 때, 난생 처음으로 본 연극이 바로 삐삐였던 것.(지금 기억하기로는 연극이었던 것 같은데 잘은...)

우리 4남매와 사촌 언니 동생까지 해서 모두 엄청 들뜬 마음으로 봤던 삐삐.

빨간 양갈래 머리와 주근깨가 과장된 커다란 인형 머리를 쓴 삐삐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날 즐거웠던 우리들의 모습은 아주 선명하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남들 다 보이는 '와우~!'라는 반응은 미처 못 나왔다.

사람 이름 못 외우는 나의 주특기가 여기에서도 발휘되었다,고 핑계대기에는 너무나 대 작가인데?

그 이름 아래 소개 된 '삐삐의 작가'를 보고서야 아!하고 탄성이 터지며, 떠오르는 나의 어린 시절 추억...

생각해보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을 책으로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보고도 기억을 못하는지, 책 이름을 하도 많이 들어서 봤다고 착각을 하고 안 봤는지.-가끔 이런 책들이 있다.)

이제서라도 나는 그녀의 작품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었다.

그 시절에 함께 삐삐를 보며 같이 박장대소하고 같이 즐거웠던 사랑스런 나의 형제자매, 사촌들,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 책은 린드그렌의 자전적 여행 소설 3부작이다.

<미국에 간 카티 - 바다 건너 히치하이트>, <이탈리아에 간 카티 - 베네치아의 연인>, <프랑스에 간 카티 -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

나는 개인적으로 제목이 가장 끌리는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을 먼저 읽어보았는데,

아, 이 책이 3부작의 막내였다.(기왕 이렇게 된 거, 다음에는 <베네치아의 연인>을 읽으리라 다짐. 아예 거꾸로...)

 

이 여행 소설의 주인공은 카티. 유쾌하고 발랄한 20대 아가씨이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 에바가 나오고 이탈리아에서 만난 렌나르트가 주요 등장 인물이다.

(<이탈리아에 간 카티 - 베네치아의 연인>에서 그 '연인'이 혹시 렌나르트가 아닐까? 혼자 추측을...)

미국으로 이탈리아로 열심히 돌아다닌 카티가 이번에 프랑스에 가는 이유는?

바로 렌나르트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

늘 외국에서 하는 결혼식을 꿈꾸던 내게는 정말 '꿈의 결혼식' 장면을 이 책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어나가는 내 마음이 얼마나 떨리고 설는지는...

 

카티, 렌나르트, 에바와 함께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말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 가 본 파리이지만, 처음 온 것이 아닌 파리.

왜냐하면 이미 책으로 사진으로 영화로 무수히 만나온 도시이니까.

그 도시에 드디어 발을 디뎠을 때의 그 황홀함, 그 도시 곳곳에서 만나는 익숙한 것들에의 친근감.

아, 나도 파리에 발을 디디면, 낯선 느낌보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친구를 만난 듯한 그런 느낌이 들까?

그 느낌을 함께 맛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마음은 이미 파리에 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행복했다.

책 속에서 삐삐가, 아니 카티가 통통통 튀어다니는 느낌이랄까.

와아! 드디어 파리에 도착했다!!!라고 소리 지르며 얼른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고,

나 이제 결혼해! 얼마나 행복한줄 알아?!라고 하며 황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이봐, 내가 이제 엄마가 된다고!라고 하며 벌써부터 모성애가 가득한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 같고.

카티와 함께한 프랑스 여행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팔에 안고 카티가 속삭여 주는 이야기는, 올해 만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하고 싶다...

아, 정말이지 아름다운 나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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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발견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0
스텐 나돌니 지음, 장혜경 옮김 / 들녘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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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어렸을 적에 행동이 무척 굼떴다.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느라 전쟁을 치르는 통에도(4남매의 등교 준비가 얼마나 부산했을지 한 번 상상해 보시길!) 나는 "세월아 네월아~" 꿈지럭꿈지럭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부모님과 떨어져 살 적에는 지각을 밥 먹듯이 했고, 아침마다 아버지가 우리 4남매를 등교 시켜주실 적에는 나 때문에 몽땅 지각하게 생겨, 경적을 누르다 지친 아버지가 나는 빼놓고 다른 3남매를 먼저 '배달'하고 오신 적도 있었다. '쏜살같다'는 시간이야 지나가든 말든 나 혼자 무슨 배짱으로 그런 여유를 부렸었는지 모르겠지만, 뭐 어쨌든 지금은 다 옛일이다.

 

살다 보니, 시간이 더 빨라진 건지,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건지, 여하튼 이제는 '쏜살처럼' 지나가는 그 시간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이제는 '느리다'는 것이 죄악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바쁜 시대에 꿈지럭거릴 틈이 어디 있어!라고 누가 호통이라도 치는 것 같다. 요즘 들어, 그때의 '느림'이, 그때의 배짱이 가득 담긴 '여유'가 그리워지곤 한다. 바쁜 일도 없으면서 경보 대회라도 나간 모양으로 바쁜 걸음을 내딛는 내 모습을 발견 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내 마음에 한 줄기 느림의 여유를 되찾아 주는 책을 만났다. 바로 스텐 나돌니의 <느림의 발견>.

 

이 책의 주인공은 19세기 영국해군장교이자 북극탐험가인 존 프랭클린이다. 존은 어렸을 적의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느린 아이였다. 존도 아버지에게 "또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네!"라고 꾸지람 듣기가 일쑤다. 친구들과 공놀이를 해도 공이 어느 순간에 지나갔는지, 누군가 공을 붙잡은 건지 그냥 내밀고 있는 손에 공이 와 닿았는지 알 수도 없다. 빠르게 날아다니는 공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에 존은 너무나 느렸다. 빨리 보려고 하면 눈에 줄무늬가 아른거리기도 한다. 존은 여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좋지만,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따돌림을 당할 뿐이다. 그래서 모습을 바꾸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은 존의 느림에 대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존이 어떤 변화를 시도해도 사람들에겐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느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존은 바다로 나가 배를 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쓸만한 항해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존은 바다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했다. 학업을 마치면 해군사관학교 생도 자격으로 배에 태워주겠다는 선원 매슈의 말에 용기가 충천하여 학교에서 열심히 '훈련'을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도 다른 사람이 되기는 어려웠다. 다들 존의 느림을 금세 간파하고 괴롭혔다. 하지만 존은 가슴 속에 거인 같은 희망을 품고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첫 항해에 나서는 날이 온다.

 

책은 이어서 존 프랭클린의 선원으로서의 삶, 선장으로서의 삶, 해군장교로서의 삶 등을 들려주며, 그의 삶 곳곳에 '느림'이라는 장치를 설치해 놓고, 우리가 '느림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도록 해준다. 존 프랭클린이 실제로 '느리게' 살았던 인물인지는 모르겠다. 저자의 설정이든 실제 인물의 삶이었든, 소설 속 존 프랭클린의 인생을 통해 '느림'이 가르쳐주는 깨달음이 참 많았다.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느리다는 것이 삶을 크게 그르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학교에 조금 지각한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어긋날 것도 아니지 않은가). 행동으로 인한 실수든, 말로 인한 실수든 대개는 조급함이나 성급함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해서 인생의 매 순간을 다 느리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빨라야 할 때는 빠르고, 느려야 할 때는 느릴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충실히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의 나는 조금 느려도 될 때마저도 "빨리빨리!"를 외치며 시간을 재촉하며 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모처럼 '느림'을 발견한 나는, 이제 조금 더 여유로울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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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2008-12-04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굼뜬 건 저랑 비슷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Love & Free 러브 앤 프리 (New York Edition) - 개정판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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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도서관에서 <러브 앤 프리>를 빌려 읽었는데, 어쩌다보니 반납 기일이 다 되어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었다.

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읽어서 그런지 마음에 그렇게 남지 않은 책이었는데,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여행서로 <러브 앤 프리>를 꼽는 것을 보고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드디어 얼마전에 <러브 앤 프리>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버전이 두 가지라 조금 당황했다.

작년에 내가 봤었던 노란 표지의 그 책과, '뉴욕 에디션'이라는 소개가 붙은 이 책이었는데, 옮긴이가 양윤옥 님인 걸 보고 이 책으로 결정!

(아마 두 권이 같은 책이겠지? 저자가 같으니까. 하지만, 옮긴이가 다르니 표현이 조금씩 다를 거고, 이 책은 영어 번역본이 함께 실려있다.)

 

올해 다시 만난 이 책의 느낌은, 작년에 만났을 때와 사뭇 달랐다. 일단은 시간에 쫓기며 읽지 않았고,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추천서라는 것을 염두에 둔, 그런 배경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때보다 지금의 내가 더 '방랑해 버'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유일지도. 나는 어떤 한 책과 만나는 '타이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이 책은 무척 시의적절하게 내 앞에 나타나주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는 당장이라도 여행짐을 꾸리고 싶어 가슴 속에 눈물이 흐를 정도로.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싶은('혹시 죽는다면 미안해 투어'라는 아슬아슬한 이벤트를 다수 개최했다니!) 저자 다카하시 아유무가 그의 영혼의 반쪽 사야카와 결혼을 하고 세계를 떠돌며, 세계 곳곳에서 써내려간 시 몇 편을 사진과 함께 엮은 것이 바로 이 책 <러브 앤 프리>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인터넷 몇 번 검색하면 다 나오는 그렇고 그런 여행 정보가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마저 감동시키는 저자의 영혼의 속삼임이 담겨있다.

 

저자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시아, 유라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북미, 일본을 떠돌며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은 그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나 아름다운 풍광이 아니라, '그곳'이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내면의 소리들, '그곳'이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사랑과 자유였다. 일테면 이런 것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히피들이 부는 리코더 선율을 들으며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떠올리고 문득 떠오르는 질문,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일본의 경제발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처음으로 자신이 '아시아인'이라는 것을 의식한 순간, 캘커타에서 악당 같은 사내들과 맞닥뜨려 잔뜩 긴장한 가운데 돌연 기타를 꺼내들고 연주와 함께 열창을 했더니 '악당'들이 싱글벙글 웃더라는, 그래서 기타는 정말 좋은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같은 것들이다. 그때그때의 느낌을 써내려간 그 소중한 기록들이 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이웃나라 한국에 사는 나의 마음까지 깊이 울려버린 것이다.(생각해보니 여행서는 거의 국내 작가의 책들만 읽었지, 번역서를 읽은 기억이 많지 않다.)

 

과연 이 책이 수많은 사람들의 추천서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이해가 간다. 나의 시선을 아주 오랫동안 한 페이지에 붙잡아두고, 그 위로 웃음을 뿌리게도, 눈물을 떨구게도 한 이 책을, 나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저자의 그 세계일주 대모험을 나도 언젠가 해보리라,는 다짐을 아니 할 수 없는! 저자의 말에 나도 용기를 내어본다.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각오. 결정을 해버리면 모든 것은 돌아가기 시작한다." 맨날 용기만 내다가 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각오가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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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섹스칼럼니스트의 사랑방정식
김경순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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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을 때, 연애와 관련된 책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잘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데(아마 경험이 없어서? 대신 짝사랑에 관한 책은 좋아한다. 공감 백배이니까.)

이 책은 왠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동생의 애인을 빼앗아 버리는 과감한 30대의 성 이야기'라고 하니까,

동생의 애인을 빼앗기 전까지는 짝사랑으로 애 좀 태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쯤은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제2회 문학수첩문학상 수상작가'라는 소개도 거기에 한 몫했는데,

다 읽고나서 다시 보니, '수상작'이 아니고 '수상작가'의 작품이었더라는...

 

책 표지에는 옷걸이 세 개가 숫자 '2'에 줄지어 걸려있는데,

그 옷걸이의 주인은, 까만 바탕에 하얀 땡땡이 무늬의 넥타이, 빨간 민소매 원피스, 흰색 레이스 브래지어이다.

'섹스칼럼니스트의 사랑방정식'에 등장하는 소도구들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녀의 '과감한 성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봤다.

 

'나'는 <산업과도시>라는 신문에 일주일에 한 번 섹스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섹스칼럼니스트이다.

한국의 샤넬을 꿈꾸던 동생은 속옷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나'의 표현에 따르자면 '엄마가 돌아가셨기 망정이지, 더없이 조신했던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속상했'을지 상상도 안가는 자매의 직업이다.

'섹스 앤 더 시티' 캐리와 닮은 점이라곤 아침 식사 메뉴 밖에 없는 '나'는 자기 직업을 떳떳이 내세우지 못하고

직업을 말 할 때는 '섹스'는 떼어내고 그냥 '칼럼니스트'라고만 밝힌다.

 

'나'는 어느날 우연히 대학 다닐 때 조금 관심이 있었던 H를 만나게 되고,

동창으로 만남을 이어가던 중, H와 동생이 사귀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때부터 발동된 '나'의 별난 연애 기질...바로, 임자있는 남자에게 눈독들이기.

'나'는 그렇게 해서 여동생의 남자친구인 H에게 자꾸 마음이 끌리게 되고, 여동생은 언니를 위해 소개팅을 주선해준다.

바로 자기 회사의 과장님.

그러니까, 여자 속옷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남자와 섹스칼럼니스트의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굉장히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젊고 혈기 왕성한 여성의 이야기이니만큼 내용 전개도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나가는 느낌.

자매가 남자들 앞에서 은근히 신경전을 펼치다가 급기야는 육탄전까지 벌이는 장면들도 재미있고,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지는 '나'의 연애 이야기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조금 아쉬운 것은 이 안에서 연애 심리 같은 것은 충분히 묘사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보통 연애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을 읽다보면 함께 애가 타고, 긴장이 되거나 심장이 두근두근하거나,

잘 안 풀리는 연애에 안타까워지는 그런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그런 것은 느끼지 못했다.

'과감한 성 이야기'라고 하기에, '나'는 그리 과감한 성격의 소유자도 되지 못하는 듯 하고...

하지만, 젊은 여성의 감각으로 재미있게 읽어내릴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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