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공에 울고 웃고’…국제중 신입생 추첨 현장


기사입력 2008-12-26 17:28 |최종수정2008-12-26 20:58 


[쿠키 사회] 26일 오전 10시반 서울 중곡동 대원중학교 6층 강당은 국제중 일반전형 입학생 최종 선발을 기다리는 317명의 학생과 그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학부모들은 저마다 옆에 앉은 자녀의 몸을 감싸거나 손을 쥐고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괜찮아. 긴장하지 마. 추첨이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추첨은 오전 11시20분쯤 이 학교 김일형 교장이 경찰관과 함께 밀실에 들어가 흰색, 녹색, 귤색 등 세 가지 색깔의 탁구공 중에서 하나를 고른 뒤 시작됐다. 학생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차례로 단상에 올라가 상자 속에서 공을 뽑았다. 600여명이 줄지어 움직였지만 강당은 구두굽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1시간20분 뒤 모든 학생이 공을 뽑아 들고 자리에 앉자 김 교장은 별도의 상자에 감춰뒀던 공을 꺼내들었다.

"귤색이다!"

귤색 공을 가지고 있던 106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곳곳에서 폴짝 폴짝 뛰어오르며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흰색이나 녹색 공을 뽑아든 학생과 부모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한숨을 내뱉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학생은 울음을 터뜨렸고 그들의 부모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괜찮으니 울지 말라"며 다독였다.

서울 미아동 영훈중에서도 추첨으로 내년도 입학생이 가려졌다. 영훈중은 '합격'을 뜻하는 붉은색 구슬과 나무 구슬을 각각 포장해 상자에 넣은 뒤 학생이 하나씩 뽑아 그 자리에서 열어 보도록 했다. 즉석에서 희비가 갈리자 학부모들은 자녀의 당락 여부와 상관 없이 선발 방식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대원중 김 교장은 "어쩔 수 없이 실시한 추첨이지만 이런 방법은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데다 실력이 아닌 운으로 당락이 갈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 서울시교육청과 선발 방식 개선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노란 탁구공을 손에 쥐고 환호성을 지르는 학부모와 어린 학생들, 광신도 집회현장을 방불케 한다. 사실 '추첨'이야 말로 가장 공평한 학생 선발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발 방식이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국제중학교 관계자들은 좀 더 경제력 있는 부모를 두고 있고, 더 많은 선행학습으로 무장된 아이들을 원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학교의 유일한 운영 원리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들을 받아야 민사고, 외고, 과학고와 같은 소위 '명문고'에 많이 진학시킬 수 있고,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만 국제중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지위와 부를 재생산해 낼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의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학벌사회'의 문제부터 시작하여, 강남 대 강북의 교육격차,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교육격차,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 일제고사와 전교조 교사 파면 그리고 국제중 문제 등 너무 많아서 하나 하나 다 나열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그 근본 원인이 정확하게 하나의 논리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대게 논란의 핵심은 '경쟁교육' 대 '평등교육'에 있다.

'경쟁', '경쟁력' 하루에도 수 십번이 넘게 듣는 친숙한 단어이다. 박정희정권 시절의 화두였던 '수출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의 확보를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감내해야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학생들도 '교육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의 논리 아래 많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경쟁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악'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진보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경쟁이 역사발전의 중요한 추동력 중 하나였다는 것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시작으로 한때 전 세계의 절반을 붉은 깃발로 뒤덮었던 사회주의의 물결이 하나의 거대한 실험으로 막을 내린 것만을 보더라도 경쟁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경쟁은 인간의 잠재력을 무한히 끌어올리기도 하고 그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잘못된 경쟁으로 인한 악영향은 경쟁의 순기능을 상쇄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끔직한 전쟁들... 이권과 패권 다툼... 모두 경쟁의 어두운 면들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의 현주소는 경쟁의 부작용에 있다. 식상하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잘나간다는 대학이 세계 대학들과는 경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과, 중고등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다른 OECD국가에 비해 매우 높지만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기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경쟁이라고 하는 도구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16일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떠한 13명의 학생들을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당한 유현초등학교의 설은주 선생님은 잘못된 경쟁체제의 희생물이었다. 초등학생까지 일렬로 줄세우기 하는 것을 과연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맞춤법, 산수... 물론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일제고사 시행으로 인한 학생들의 의욕상실과 좌절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일제고사 시행으로 사교육은 늘어만 갈 것이고 어린 나이에 학원에서 늦게까지 특강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의 머리에서 과연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을까. 게다가 온갖 비리로 얼룩진 공정택 교육감은 저렇게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설은주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선택권과 자율권을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직이라니...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 평준화를 이야기하고 고교 평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경쟁을 배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경쟁의 순기능을 극대화 하려는 행위이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 하였던 '경쟁교육' 대 '평등교육'의 대결 구도는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를 지니고 있다. 경쟁과 평등은 언제나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진보진영에서 이야기 하는 교육 정책에 100% 공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교육시스템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생각도 많고 할 말도 많은데 머리가 복잡해서 생각만큼 잘 정리가 되질 않는다. 아무튼, 설은주 선생님이 다시 아이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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