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교수 “100일 정권이 퇴진하는 사태 올 수도”
입력: 2008년 06월 11일 01:30:50
 
ㆍ시민이 할 일은 다했다…이젠 정치권이 나서길

10일 밤 최장집 교수가 서울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100만 촛불대행진을 지켜보고 있다.        우철훈기자

“동서를 통틀어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나라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시위 인파가 거리로 나오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10일 오후 8시 광화문 사거리 부근 코리아나호텔 앞의 시위 군중 틈에서 만난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65)는 “6월 항쟁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라며 놀라는 모습이었다.

최 교수는 오후 7시쯤 제자들과 함께 시위에 합류했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의 68년 5월은 혁명적 사태가 전개된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뜨거운 목소리와 함께 질서있고 평화적이며 냉정한 분위기가 조화된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민주화됐다고 평가 받는 국가에서, 어째서 100일밖에 안된 정부에 대해 이 정도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수 있는지 민주주의사적으로도 연구할 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화는 20년 전에 이뤄냈지만 아직도 보수정당이 집권해 민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통치 방식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것으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하고 그것이 정치적인 결과로 표현돼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번 집회의 가장 큰 의의로 시민들이 민주화라는 큰 얘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 경제적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간 우리 정당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시민들의 사회 경제적 요구에 반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격하게 폈지만 시민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번 사태로 시민들이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첨예한 관심을 갖고 개입하기 시작했음이 분명해지면서 정당들은 이러한 구체적인 요구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전환의 계기에 처했습니다. 이젠 진보와 보수 정당이 분명히 차이를 갖고 시민들의 요구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관련, 운동의 에너지를 정당제도로 수렴해야 한다는 논의를 주도해온 최 교수는 이번 시위에 대해서도 “거리의 정치는 오늘 이 선에서 그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이 문제는 ‘끝이 없는 시위’가 아니라 제도권 내 정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정치를 통해 풀어야지 이 단계를 넘어서는 시위가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 교수는 “21년 전처럼 독재정부에서 민주정부로 정치체제를 변화시킨다든가, 지금처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쇠고기 문제 등 거대 이슈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규모로 거리에 나와 ‘이건 안된다’고 말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섬세한 대안을 만들어 내는 일에는 ‘거리의 정치’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치권이 나서서 전체 공익에 부응하는 제도 조건에서 선택할 대안,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낼 단계가 됐다”는 얘기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청와대에 대해서는 “내각과 청와대 보좌진이 총사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들을 바꿔서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정책 기조 전반에 대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간 시민들의 요구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던 태도를 버리고 이들의 구체적인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고, 목소리를 담아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100일도 안된 정권이 정말로 퇴진하는 세계사적인 기록을 세울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국회에 대해서는 “어째서 지금 사태에서 정당이 전혀 보이지 않는지 참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까 지나가다 보니 통합민주당 등 야당은 군중의 한 부분으로 앉아있더군요. 정말 참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당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다양한 시민들의 소리를 적극 반영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온 것 아닌가요.”

그는 여당보다 야당에 대해 더욱 신랄했다. “수가 적다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단 몇 사람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된 대안을 갖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요구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주 얘기도 안하고 시민들 집회만 따라나와 있는 일이 반복되면 보수정당 체제만 강화되는 일이 쳇바퀴 돌 듯 이어지는 결과를 허용할 뿐입니다.”

여당에 대해서는 “다수당이라고 해서 야당의 대안 제시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집권당으로서 더 책임감을 느끼고 시민들의 이 거대한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해 해결책을 찾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해서는 “촛불집회가 지금까지도 시민사회 단체들이 많이 개입한 운동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자제하고 정치권을 끝없이 압박하면서 지켜보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이제는 숨을 고르고 지켜봐야 한다”는 제안에 다시 한 번 단서를 달았다. “내가 시민들에게 여기서 자제해야 된다고 하는 뜻은 이런 것입니다. 시민들이 숨 고르고 있는 사이 이명박 정부가 여론이 사그라들고 이렇게 그냥 넘어간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때야말로 이 정부는 존립 자체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손제민기자>

 

나는 이번 광우병 사태를 통해 한국 제도민주주의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본다. 사실 지난 정권에서도 제도민주주의의 한계는 뚜렸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과는 달리 이명박 정권이 집권 초기에 이토록 수세에 몰리는 이유는 한계를 감추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권위주의적이고 국민과의 쌍방향 소통을 차단한 채 일방적으로 국정운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촛불시위가 어떻게 진행이 될 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된다.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재협상을 하겠다고 나오면 좋겠지만, 하는 꼬라지를 보니 내각과 청와대 수석 개편안만을 내놓고 재협상은 못하겠다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데 안쓰럽다.

나는 이번 광우병 사태를 통해 형성된 국민들의 에너지를 이번 사안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형을 바꾸는데 써야 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제도민주주의의 한계를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87년 이후로 꾸준히 추락하는 투표율, 여전히 갈 길이 먼 정당정치, 정부와 의회의 원활하지 못한 소통 등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촛불시위에 꼽사리 끼려는 민주당 의원들의 엉덩이 부터 차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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