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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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저를 잘 아는 분들이 제 독서 습관 중 아주 나무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소설(특히 미스테리 소설)의 전제를 알고 호기심이 일면, 그것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도입부가 제기한 문제에 자극을 받으면 견디지 못하고 책의 뒷 장을 넘겨 모범 답안을 찾아보고 맙니다. 이런 독서의 방식은 범인을 알고 책을 뒤집어 다시 찾아보는 시간의 낭비를 하지 않고, 작가의 장치들을 빼곡히 짚어보며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다고 저는 변명합니다. 서가에 오랫동안 꽂혀 있던 <열정>을 읽으며, 저는 이런 독서 습관을 다시 되풀이 했습니다.

장군이 그의 친구에게, 오랜 시간동안 평생 되뇌었던 질문을 했을 때, 과연 친구인 콘라드의 반응이 무엇인지 궁금해, 소설의 말미를 꺼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열정>은 저를 유혹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제가 읽은 이 <열정>은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흔하디 흔한 바람 난 유부녀, 아내를 잃은 남편, 친구의 아내를 사랑한 남자의 얘기지만, 작가는 이 소재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독자들로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 질문으로 바꿨습니다.

저는 작가 산도르 마라이가 다룬 것은 '사랑과 우정'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는 문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을때, 내 사랑을 고집하는 것이 진정 상대를 사랑하는 행위인지. '스팅'의 노래 중에 'If you love somebody, set them free'. 말도 있지만, 날 사랑하지 않는 이를 자유롭게 해준다면 그것이 진정 사랑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행위인지.이러한 질문들이 이 글을 읽는 동안 계속 되새겨 졌습니다.

크리스티나를 떠나 열대로 향한 콘라드도, 그녀를 두고 2시간 거리의 사냥 별장으로 별거를 택한 '장군'도 겉으로는 상처를 안고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선택을 하였지만, 아무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사십 일년 전의 시간에 묶여있는 모습이 연이어 다른 질문을 만들어 냈었습니다.

크리스티나가 콘라드의 행위에 대해 말한 '겁쟁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더욱 힘을 얻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크리스티나를 먼저 보내고 살아 남은 두 사람은 결국 연인이자 아내인 크리스티나의 표현대로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결말을 뒤집어봐도 작가가 제기한 질문에 대답으로 씌여진 문장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작가가 설정한 대답은 아마 질문에 포함되어 있었나 봅니다. 책을 차분히 읽지 않고 결론부로 성급히 뛰어 간, 독자의 '비겁함'에 대해, 이 헝가리의 문호 '산도르 마라이'는 이런식으로 조롱을 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나의 비겁함을 상쇄하고 '답'을 알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이 소설에 시간을 할애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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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스타 - 이희재 단편집
이희재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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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무실 안에 굴러다니던 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때가 꼬질꼬질한채 책상 위 한 구석에 놓인 이 책을 습관적으로 짚어 들고 한장 두장 넘기기 시작했다. 이희재의 [간판스타]가 바로 그 책이었다.

한장 두장 페이지를 넘기고,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로 목차가 넘어가는 순간 나는 작가가 이 작품집을 발표한 80년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다녀온 잠시동안의 80년대는 과거로의 추억의 여행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었고, 한동안 애써 잊으려 했던 우리 사회의 다른 삶들의 모습이었다.

예전의 나에게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개개인의 삶에 대한 즉자적인 해결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에게도 착하고 좋은 사람의 밑바탕이란게 있었다. 나만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가진 넉넉한 시절이 있었다. 이희재의 [간판스타]는 바로 나의 그런 좋았던 시절을 되새겨 주었다.

80년대의 사회를 비춘 이 만화가 아직도 의미가 있음은 내게는 또다른 충격이었다. 이제 20여년이 지난 지금 희재씨의 만화에 나오는 '경숙이', '종팔씨', 오작구 황씨 아저씨'는 여전히 서울 변두리에 살고 있다. 그러한 삶의 의미가 내가 애써 잊고 묻어두었던 폐부의 깊숙한 곳을 슬며시 저리게 한다.

200억의 돈이 정치자금으로 주고받은 그들은 지금, 한달 20만원의 돈을 벌기 위해 쓰레기 리어카를 모는 종팔씨의 힘에 겨운 팔뚝이 여전히 땀방울에 절어 있음을 알까? 신당을 창당하고 수십억돈의 영수증을 이리 세고 저리 넘기며 앞으로의 이문을 계산하고 있는 그들은, 희재씨의 '간판스타'들이 바라보고 있을 절망감을 가늠할 수는 있을까?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이고, 종이 누그인지 그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주인이 힘겹게 바탈길을 올라갈 때, 종이 몇백만원짜리 식사를 호텔에서 하고있는 이 뒤집어진 현실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러나,[간판스타]의 장점은 현실의 고발에 있지 않다. 척박한 공사판 한쪽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민들레] 처럼, 희재씨는 희망의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철 없으나 속 깊은 '끝지'의 울음 속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우직한 사내들의 이야기에서 미묘한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희망은 세 아이를 잃은 '종팔씨의 아내'에게 네번째 아기가 들어섰음을 알리는 마지막 컷에서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봉식이 아버지'의 말 처럼 아직도 푸른 하늘은 우리 모두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푸른하늘을 잊은지도 오래된 것 같다. 참 잊고 산 것이 많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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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자들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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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근 출판계에서 대박을 터뜨린 책들은 이른바 '부자되기'에 관한 책들이 많다고 한다. 그 첫번째 신호탄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라면 최근의 성공작은 이 <한국의 부자들>이란 책이라고 한다. 재밌는 것은 일반문학 등 다른 책과는 달리 이 '부자되기' 책들은 남성에게 많이 어필하고 있고, <한국의 부자들>도 내 주위 거의 모든 남성들의 손을 이미 거친 뒤였다.

아무래도 기획의 승리이다. 타고난 부자이거나, 연예인이 아니고 보통 사람에서 출발해 알부자가 된 사람들 백명의 케이스를 조사해서 책을 만들었으니 그 현실감과 실제의 예가 주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이 책을 읽어보니 부자에 대해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첫째, 부자는 처음부터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구가 아주 강한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더, 더'를 외치며 그들 주변의 돈을 끌어 모으고, 투자를 해왔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의 부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부동산 투자를 통해 성공했다는 것이다. 값싼 땅을 사서 가치가 오른 뒤에 처분했다거나, 개발 가능성이 많은 땅을 미리 사둔 뒤에, 그곳에 빌딩을 짓거나 적당한 투자를 해 이젠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게 했다는 것이다.

셋째, 부자는 예외없이 절약형 인간이라는 점이다. 지출할 때는 신중하게 한다. 그들도 명품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명품이 오래가고 물건이 좋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남에게 자랑을 하기 위함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넷째, 부자는 예외없이 자신이 부자임을 숨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TV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자들 이미지는 굉장히 잘못돼 있다는 작가의 주장도 수긍이 간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돈이 많아서 가정은 화목하지 않다는 우리의 선입견도, 가난한 자들의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 같다. 부자가 자살하는 일은 거의 없다. 현대의 정회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카드빚에 몰리고 생활고에 쫓겨 최후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우리 실상이다.

실용서를 보통은 읽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 반성을 하게 했다. 월급쟁이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잊고, 안이하게 살고 있었다는 점을 먼저 상기했다. 같이 이 책을 읽은 아내와는 우리도 절약형 삶을 살아보자고 다짐하며 '생활의 변화'를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한편으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더욱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생생한 실상을 발견했기에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나와 우리 가족의 생활자세(특히 경제와 돈이라는 면에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에, 오랜만에 읽은 실용서에서 나름대로 이득을 본 것 같다. 부자가 되려면은 월급을 모아서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니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최근의 부동산 대책은 심히 못마땅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참, 부자들의 공통점 중 한 가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성실하다. 나는 성실한가? 당신은 과연 성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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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스테이크
에프라임 키숀 지음, 프리드리히 콜사트 그림, 최경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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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서 이렇게 신나게 웃어 본것이 언제이던가? 어린 시절 [6학년 0반 아이들], [내 이름은 나일등] 등의 명랑소설로 웃음보를 터뜨리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에서 기막힌 해학과 아이러니를 감상한 후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콧대 센 마누라, 철 없고 고집 센 자식들... 보통 가장들이라면 누구나 구비하고 있을 이 같은 삶의 구속물들. 이것들이 우리들 중년남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자유와 구속의 아이러니는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대단한 웃음의 원천이다. 아마도,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일에서 착안한 듯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스라엘로부터 먼 공간을 지난 한국의 가정에도 꼭 들어맞기에 저절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멈추기가 힘들 지경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철학적이라는 점이다. 만약 그 누군가가 주장했듯이 철학이란 것은 '우리의 삶과 전혀 괴리되지 않은 것이며, 우리에게 삶의 지표를 일러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맞는다면 이 책은 철학적이다.

어찌어찌해도 해결되지 않은 일상의 모든 문제들은 어느 순간 답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소한 일에 얽매여 고통받는 글 속의 작가가 하고있는 고민이 어느 순간 엉뚱한 곳에서 해결책이 등장하곤 할때, 이 글은 새삼스레 철학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완전히 해결되는 것도, 해결되지 않는 일도 없는 우리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았게 해주기에 인생을 관조하는 철학적 시선을 제공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이 고달프지만 이 책은 재미있듯이, 우리의 삶도 고달프지만 살아볼 가치는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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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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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외국 서점의 도서 구분에 보면 Self Help란이 있다. 주로 성공적인 삶, 부자로서의 삶,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성공지침서 들을 모아놓은 섹션이라 할 수 있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는 분명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Self Help란에 놓여질 책이지만, 소설이라고 구분해도 딱히 반발할 수는 없는 책이다.

어느 날 실직의 위기에 빠진 폰더라는 사람이 교통사고를 계기로 홀연이 대천사 가브리엘과 6명의 역사적 인물을 만나게 된다는 얘기이다. 중간중간 들려주는 인생에 관한 경구들도 소중하지만 소설로서 스토리의 흐름도 흥미진진하다. 사실 예전에 이런 성공지침서들을 보면 그 도덕군자같은 훌륭한 가르치심보다는 군데군데 나오는 실례들, 인생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들이 더욱 재밌었던 것을 기억해 본다면, 이 책의 기획은 독자들이 어디에 흥미를 느낄 것인지 잘 예상해 과녁을 적중시킨 것 같다.

각 인물이 그 사람이 역사적 모맨트에 맞춰 나타난 폰더씨에게 한 마디씩의 도움이 될 말을 던져 주고 있다. 비슷하기도 하고 장황한 면도 없지 않아 있으나, 내가 폰더씨와 함께 일곱 사람을 만난 후 배운 교훈은 '뭔가 하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인생에 역경이 찾아오고, 좌절하게 될 때는 '뭔가 하라'는 것이다. 과거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들을 가지고 괴로워하고 한탄해봐야 어쩔 수 없으니 내일을 바라보고 '뭔가 하라'는 것이다. 정말 다순하고 진부한 얘기이다. 이런 구닥다리 얘기가 새로운 생명력을 갖는 것이 바로 폰더씨가 하루 동안 겪은 여행의 힘이다.

아들에게 권하고 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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