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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스타 - 이희재 단편집
이희재 지음 / 글논그림밭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사무실 안에 굴러다니던 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때가 꼬질꼬질한채 책상 위 한 구석에 놓인 이 책을 습관적으로 짚어 들고 한장 두장 넘기기 시작했다. 이희재의 [간판스타]가 바로 그 책이었다.
한장 두장 페이지를 넘기고, 두번째 세번째 이야기로 목차가 넘어가는 순간 나는 작가가 이 작품집을 발표한 80년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다녀온 잠시동안의 80년대는 과거로의 추억의 여행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었고, 한동안 애써 잊으려 했던 우리 사회의 다른 삶들의 모습이었다.
예전의 나에게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개개인의 삶에 대한 즉자적인 해결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에게도 착하고 좋은 사람의 밑바탕이란게 있었다. 나만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가진 넉넉한 시절이 있었다. 이희재의 [간판스타]는 바로 나의 그런 좋았던 시절을 되새겨 주었다.
80년대의 사회를 비춘 이 만화가 아직도 의미가 있음은 내게는 또다른 충격이었다. 이제 20여년이 지난 지금 희재씨의 만화에 나오는 '경숙이', '종팔씨', 오작구 황씨 아저씨'는 여전히 서울 변두리에 살고 있다. 그러한 삶의 의미가 내가 애써 잊고 묻어두었던 폐부의 깊숙한 곳을 슬며시 저리게 한다.
200억의 돈이 정치자금으로 주고받은 그들은 지금, 한달 20만원의 돈을 벌기 위해 쓰레기 리어카를 모는 종팔씨의 힘에 겨운 팔뚝이 여전히 땀방울에 절어 있음을 알까? 신당을 창당하고 수십억돈의 영수증을 이리 세고 저리 넘기며 앞으로의 이문을 계산하고 있는 그들은, 희재씨의 '간판스타'들이 바라보고 있을 절망감을 가늠할 수는 있을까?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이고, 종이 누그인지 그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주인이 힘겹게 바탈길을 올라갈 때, 종이 몇백만원짜리 식사를 호텔에서 하고있는 이 뒤집어진 현실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그러나,[간판스타]의 장점은 현실의 고발에 있지 않다. 척박한 공사판 한쪽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민들레] 처럼, 희재씨는 희망의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철 없으나 속 깊은 '끝지'의 울음 속에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우직한 사내들의 이야기에서 미묘한 희망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희망은 세 아이를 잃은 '종팔씨의 아내'에게 네번째 아기가 들어섰음을 알리는 마지막 컷에서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봉식이 아버지'의 말 처럼 아직도 푸른 하늘은 우리 모두의 눈 앞에 펼쳐져 있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푸른하늘을 잊은지도 오래된 것 같다. 참 잊고 산 것이 많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