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의 기적
아사쿠라 다쿠야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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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우리는 빙의라는 소재에 열광하는 것일까? 


몸은 그대로인데 혼이 바뀐다는 빙의라는 소재는 하가시노 게이고의 [비밀]의 등장 이후 미스테리류 소설에 전면으로 부상한다.  [비밀]은 곧 영화로 만들어졌고 잇달아 그 아류작이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아마 우리에게는 자신의 캐릭터를 부정하고 새 출발하고픈 욕구가 있기에 '빙의'라는 소재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한 번 쯤은 '새로운 나'를 꿈꾸었을 것이고, 그런 공감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문학이나 영화의 텍스트 속에서 완전히 주인공의 캐릭터를 변모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서 '빙의'라는 소재는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전도 유망한 피아니스트였던 기사라기는 오스트리아 유학 도중 돌연한 총격전에 휩싸여 한 소녀, 치오리를 구한 대신 손가락하나를 잃게 된다. 부모를 잃고 기사라기와 동거하기 시작한 치오리는 3세 수준의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지만 기사라기의 영향인지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피아노를 포기한 기사라기는 일본으로 돌아와 치오리의  자선 공연을 주선하기 시작한다. 한 뇌 전문 요양소를 공연차 방문한 기사라기는 자신을 좋아했던 대학 후배를 만나는데, 그곳에서 난 헬기 사고로 그 후배와 치오리의 영혼이 뒤 바뀌게 된다.


이 소설은 구성에 허점이 있다. 엄연히 기사라기와 치오리의 얘기였던 소설이 중반 이후부터 치오리의 존재는 희박해진다. 갑자기 주인공이 바뀌어 말 그대로 치오리는 자신의 몸을 빌려준 채 소설의 후면으로 밀려난다. 때문에 전반부에 왜 그렇게 작가가 기사라기와 치오리의 관계에 대해 공을 들여 치중을 했는지 의아해지는 면이 있다. 백두산을 바라보고 등정했는데, 갑자기 우리는 한라산을 가야한다며 방향을 튼 것 같은 구성이다. 단지 4일 동안만 빙의 상태가 유지된다는 작가의 주장도 개연성은 없어 보인다. 꿈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는 캐릭터들의 주장은 아무래도 독자에게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대단히 재밌는 소설이다. 작가가 제시한 치오리의 병명, [Servant Syndrome]이란 소재도 흥미롭고, 인간의 뇌에 대한 취재도 이 소설을 상당히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 이사쿠라 다꾸야' 라는 일본의 신예작가의 작품인데 캐릭터와 에피소드의 풍부함은 이 작가의 미래를 기대하게끔 만들고 있다. 다만 소설의 플롯에는 더욱 숙련의 기간이 필요할 듯하다.


여름에 읽으면 서늘하고 따뜻한 감동이 찾아오는 미스터리이다. 실망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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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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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런 농담이 있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대쉬했다. 그러자 여자가 쌀쌀맞게 거절한다.


"저 이미 임자 있어요."


"골키퍼 있다고 골 못 넣습니까?"


"골 넣었다고 골키퍼 바꾸나요?"


어떤 소설가가 이 농담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소설을 한편 써냈다. 그런데, 여기에 농담을 한 층 더해 이 골대에는 골키퍼가 둘이다. 한 술 더 떠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단지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두 번 한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아내가 결혼했다]이다.


드라마의 일부이건 소설의 첫 장이건 공통된 목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이러 이러한 룰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에 관한 것이다.'란 이야기의 설정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 주인공들과 이 소설의 룰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시청자는 채널을 돌리시고 독자는 책장을 덮으시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이렇게 아내가 나라는 남편 외에 또 다른 남편을 두기로 결심했다는 룰을 받아들이면 한 없이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이 소설의 남편 덕훈은 이러한 아내의 룰을 받아들인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가끔 외도를 하는 것을 묵인하기로 동의했고, 결국은 아내에게 말려들어 재경이란 다른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는 것에 동의를 한 것이다. 이 룰을 덕훈이 받아들였듯이 독자도 이 룰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룰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책장을 덮으면 그만이다. 당신이 욕을 하건 말건 작가는 이 소설의 아내 인아처럼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일단 이 룰을 받아들이면 이 소설은 굉장히 재미있다. 앞서 말한 축구의 비유들이 실제로 소설의 삼 분의 일을 채우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내의 선택에 끌려가고 있는 남편의 전전 긍긍도 희대의 코미디이거니와 그 틈새를 메우고 있는 축구에 관한 정보와 비유도 대단히 재미있다. 재밌는 시트콤의 마지막 대사들이 그러하듯 적절한 재치와 위트로 칙칙한 얘기가 유쾌하게 들려진다.


그 유쾌함 틈 속에 인류의 오랜 풍습인 사랑과 결혼에 대한 작가의 조롱도 흥미롭다. '사랑이 없어진다면 더 이상 부부의 연을 유지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집시의 결혼 풍습 등 인류의 모습에 대한 작가의 다양한 취재도 재미있다.


다양한 재미의 전 후반 9 0분 동안 가득한 소설이다. 재밌는 소설을 찾기도 벅찬 요즘 아니던가. 하지만 관객인 당신이 작가의 전제를 말없이 수긍하고 따라가지 않을 작정이면 결코 이 책을 선택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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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왕원화 지음, 문현선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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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원화의 전작 [단백질 소녀]를 워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홍콩의 왕가위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한  [단백질 소녀]는 월간 잡지에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되었던 소설이기에  그 구조 자체는 극화하기에 문제가 있는 작품이라 봅니다. 따라서 왕가위 감독이 [단백질 소녀]를 대본화하는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는 왕원화가 본격적인 장편소설로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원작을 구매해 영상화 작업을 할 지 판단하기 위해 책을 펴들었습니다.


소설의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즈핑의 결혼식을 계기로 어린시절 친구인 주요 등장인물이 소개됩니다. 항상 남들보다 앞섰던 모범생 즈핑은 이번에도 친구들 보다 앞서서 그레이스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천하의 바람둥이인 두팡은 20대 초반의 어린 여자친구 안안을 데리고 결혼식장에 나타나지만 여전히 다른 여성을 향해 레이더를 돌리고 있습니다. 과거의 이별을 아직 극복하지 못한 밍홍은 거의 완벽한 여자인 주어치를 소개받지만 여전히 쭈빗거릴 뿐입니다.


이 소설은 밍홍의 스토리를 축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모범생 출신인 이 대만 남성 작가 자신의 모습이 소설 곳곳에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도시의 삶 속에서 그들의 30대를 견뎌내려는 범생이들의 부딪치고 좌절하는 인생과 사랑이야기입니다. 비슷한 삶을 꾸리는 저이기에 작가의 캐릭터에 유난히 공감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설명한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란 여성들의 범주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너무 편안하지만 오히려 지루했기에 남자들은 그녀들을 떠납니다. 떠나고 난 후에야 남자들은 그녀들이 얼마나 훌륭한 여자인지 깨닫고 그제야 더 좋은 남자가 되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결혼 직전에 만난 마지막 여자친구들이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입니다. 제가 읽기에 주인공인 끝에서 두 번째 여자 주어치와 안안의 모습은 모든 남성이 그리는 거의 완벽한 배우자들입니다. 그 완벽한 여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밍홍과 두팡은 상당히 결함이 있는 남자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오히려 '끝에서 두번째 여자 친구를 버린 멍청한 남자'들의 얘기입니다. 이처럼 완벽한 여자들이 사랑을 얻지 못하는 이야기가 독자들이 손들 수밖에 없는 개연성과 싱싱한 캐릭터를 통해 전해진다. [단백질 소녀]에서 보여주었던 다채로운 캐릭터 플레이는  이번에도 여전히 재밌는 남과 여의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


캐릭터에 비해 소설의 스토리는 빈약합니다.  캐릭터는 따올 수 있지만 참신한 플롯은 아니기에 TV 드라마의 원작으로서는 힘이 없어 보입니다. 회사에 원작의 구매를 추천하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끝에서 두번째 여자인 저우치의 모습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디 이런 여자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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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몬스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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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의 [뷰티풀 몬스터]를 한마디로 요약한 제목이 '강남 싱글 패션 문화 포탈 북'이다.


나는 강남에서 8학군의 초중고를 나와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연예 산업의 종사자가 되었다. 여기에 건강 때문이었지만 좋은 직장을 관두고 패션 관련 직종에도 잠시 다닌, 나름대로 感좋은 아내와 1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이 정도면 '강남'의 패션 문화에 가까울만한데 여전히 난 그 문화로부터는 소외되고 있다. 오죽하면 '시크'하다는 어휘를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을까.


책을 펴든 순간, 그토록 그리워하고(?) 알고 싶었던 문화의 입구(포탈)를 찾은 느낌이었다. 이 책의 어휘와 인물, 정보들만 소화한다면 나도 어느 정도는 '시크'해 지지 않겠나 하는 바람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 책을 내리 두 번이나 읽었다. 


두 번 읽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재밌는 책이다.  '대책 없는 솔직함과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는 글' 이 이 책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작가의 표현이다. 작가는 애써 '쿨'하다는 정서를 비껴가려 했지만, 요즘 우리 주위의 쿨한 전문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한겨레 신문을 창간 초부터 줄곧 탐독해온 삐따기들은 자본주의적 소비욕구를 절절히 드러낸 탐욕스런 글이라고 비판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한겨레 적이지 않은 욕구를 아이러니하게도 한겨례 신문과 그  소속 잡지를 통해 솔직히 드러낸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한겨례 적인 사람들은 세상이 그들의 생각처럼 돌아가길 원할 테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이 세상의 진면모이다. 사실 다른 색깔의 세상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우리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솔직히 8,90년대를 거쳐 혁명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지겨워진 내 마음을 이쯤에선  인정해야겠다. 제인 버킨의 백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도 사람이란 말이다,


김경의 글을 읽고난 최후의 깨달음은 '솔직하자'와 '스타일을 갖자'이다. '욕망에 솔직하자는 것'이 아닌 척하다 위선을 부리는 것보다는 훨씬 고결한 느낌일 것이다. '스타일을 갖자'는 아름답게 보이려고 애쓰자는 것인데, 남들에게 보이려고 애쓰는 동안 정말 스스로가 아름다워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솔직하자'나 '스타일을 갖자'나 다 세상 유일무이한 자신의 정체를 찾자는 것이다.  작가가 꺼내 보여준 수많은 인물과 어휘 만으로도 배가 부른데, 뜻 깊은 배움도 있었다.


사족 같지만 작가에게 딴죽을 걸어본다. 인용과 옮겨온 말이 많아서 어느 것이 작가의 생각인지 헛갈리는 경우도 있다. 심하게 말하면 이 사람, 저 사람의 말과 글을 옮겨 편집한 에디터의 글 같은 부분도 있다. '미친 망아지'를 좀 정리해서 '준마'로 키워 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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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쓰다
매거진 t 편집부 엮음 / 씨네21북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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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TV드라마의 유일한 잣대는 시청률이었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건 말건 많이 보기만하면 좋다'는 생각이 도전 받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인터넷을 통해 결집한 매니아적인 시청자들이 양으로만 평가하던 TV드라마에 질적인 평가를 하였고 그때 나타난 인터넷 시대의 'TV드라마 총아'들이 이 책 [드라마를 쓰다]에 나온 황인뢰 감독, 노희경, 인정옥, 신정구 작가이다. 이들은 문화 상품으로서의 TV드라마가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TV에서도 명품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속내를 안다는 것은 장인의 비밀스런 공방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TV드라마의 제작 현장은 흡사 전쟁터와 닮았다. 내 앞에 적군이 있고 나는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는 당위가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제대로 총을 겨눌 수 없는 절박한 위기상황이 있다. 과장이 심한 비유가 되겠지만 옆에서 죽어가는 전우를 보고서야 마비된 이성으로 적에게 총질을 시작하는 전장이 TV드라마의 제작 현장이다. 작가와 연출이 세운 애초의 의도는 전투가 시작되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으로 마비되기 시작한다. 이런 마비의 순간에 작가와 연출은 더 이상 자신의 재능과 감각을 속일 수 없는 원초적인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그들은 자신의 삶을 TV 속에 고스란히 노출하기 시작한다. 그러기에 황인뢰 감독, 노희경, 인정옥, 신정구의 속내는 그들의 작품을 만들어 낸 본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이 얼마나 정직하게 이 글 속에 녹아 나왔는지는 제 3자는 잘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TV드라마를 처음 쓰는 신인들은 이런 부분에서 헛갈릴 수 있다. 신정구 작가의 표현처럼, '눈물'로 쏟아놓은 대본을 방송한 한참 후에 낸 후일담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지난 후 한참 뒤에 회고 한 전투씬은 미화될 수 있다. 전우애도 생각나고 자신의 전과가 미화될 수도 있다. 신인들이 그 미화된 부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전투에 참여한다면 그들은 곧 처참한 현실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편집자들은 스타일이 좋다. 문장력도 좋다. 하지만 TV드라마는 '드라마를 쓰는' 작업이기보다는 '피를 토하는' 작업에 가깝기에 나의 피 토함이 아름다운 '명품'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더럽고 추한 '토사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런 토사물이 예쁜 노란색으로 윤색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 책 [드라마를 쓰다]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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