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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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과 [파이란]의 원저자인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 [장미도둑]을 펴들었을 때는 공교롭게도 일본 만화 [시마과장]을 보고 있을 때였다. 이 단편집의 6개 중 절반의 내용이 일본의 샐러리맨과 관련된 것이기에 내내 소설과 만화를 비교하고 읽었다.

이 두개의 출판물을 동시에 읽으며 내가 바라보게 된 일본 사회는 출구가 하나 밖에 없는 답답한 곳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봉급을 받고 한 곳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 곳의 주인공들이었고, 그 틀 속에서 각각의 행복이라는 것을 추구하는 모습들... 이른 바 쳇바퀴 인생이란 것이 이 소설과 만화의 근간이었다. 차이라면 소설은 그 쳇바퀴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통해 독자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고, 만화는 쳇바퀴를 훌륭히 돌리는 시마과장을 통해 대리만족이란 환타지를 준다고 할까.

[수국꽃의 정사]는 주인공들과 시대상황, 공간이 함께 쇠락한다. 정리해고 당한 남자와 텅빈 술집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무희가 손님이 끊긴 온천을 배경으로 만나 자살을 공모한다. 어쩌면 억지스런 설정이 작가의 필체와 묘사로 인해 사실성을 띄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무진기행]에서 느끼지 못한 절실함을 나는 왜 이 일본의 단편을 통해 느꼈을까. [나락]이나 [죽음 비용] 모두 이러한 쳇바퀴를 이탈하고 있는 사람들의 최후를 보여준다. 그들의 최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내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는 미래를 엿보았다고 할까. 성적표를 받기 전에 미리 성적을 알았을 때의 안도감이 드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나의 심정이었다.

[히나마츠리]와 [가인]은 참으로 비디오 적이다. 특집 드라마 한편을 손에 쥐듯 인물들의 움직임이 역동적이다. 그러나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의 캐릭터는 위에서 언급한 세 편과 같은 정서라고 말할 수 있겠고, 왜 이 작가의 작품들이 영화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어떤 이는 참으로 가벼운 정서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참으로 담백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울화통이 치밀도록 집착하는 캐릭터는 없지만 묵묵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현실의 벽을 향해 입을 앙다물고 머리를 부딪는 정서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정서에 슬그머니 동화돼 가슴이 따뜻해져 오니 나도 왜색 독자인가. 나는 애써 부인하고 싶다, 어짜피 민족과 인종을 초월해서 사람의 가슴을 울리고 이야기를 전하는 게 문학의 임무일텐데, 나는 일본인이라기 보다는 아사다 지로라는 작가에게 굴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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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이은희 지음 / 궁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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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양과 잡문을 쓴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얻게되는 교훈이 있다. 그 하나는 쉬운 글을 읽는 편안함과, 나머지는 쉬운 글을 쓰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 가 하는 점이다. 쉬운 글은 오직 저자가 자기가 얘기하고 있는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쉬운 글을 독자에게 곧장 책읽는 재미를 알려주곤 한다.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의 저자 이은희는 이런 의미에 생물학 전반에 대해 상당한 이해와 실력을 겸비한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생명의 탄생과 조화, 성과 유전, 홀몬과 바이오 테크놀로지 등 생명공학, 유전공학 등 최근 인간 세계를 뜨겁게 달구는 말머리들을 해박한 지식과 한 없는 다정함으로 쉽게 독자에게 베풀고 있다.

생물학 입문서 정도의 가벼운 얘기들이지만, 현대 과학의 철학을 통찰하는 비범함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최근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 논란이 되고 있는 배아복제와 인간 복제의 문제에 있어서, 왜 과학자들이 그 같은 실험의 노정을 걷게 되었는지 밝혀주기에 최근의 시사 문제에 대해서도 눈이 밝아지는 느낌이다.

부제가 [신화에서 발견한 36가지 생물학 이야기]라 붙어 있고, 각 아이템의 도입부에 관련이 있더고 보여지는 그리스, 로마의 신화를 제시하고 있으나, 그리 적절한 상관관계는 없어보인다. 이러한 것이 작가와 편집인의 과잉친절이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신화 읽기라는 재미를 걷어버리고서 라도 이 책은 이미 충분히 재밌기에 과학에 무덤덤한 인문학도들에게도 권할 수 있는 내용이다.

바이오 테크놀로지는 현대의 화제가 되는 과학 문명의 발달에 대해서 작가의 시각은 혁명적이다. 이 모두가 인간의 진화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시각은 이 글의 가장 마지막 문장으로 정리되고 있다.

'과학은 소를 닮을 것,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앞을 향해서 나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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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1 리처드 파인만 시리즈 4
리처드 파인만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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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세상을 살면서 가끔씩 부딪치는 즐거운 일 중의 하나는 우리 인간들 속에 흩어져 있는 천재를 발견하는 일이다. 영화 [X맨]의 뮤탄트(돌연변이)들 처럼, 보통 사람들이 갖지 못한 기발한 능력을 가진 이 천재들은, X맨들은 지구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는데 반해,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아름답게 한다. 어린 시절 나는 내 주위에서 음악적인 천재를 만났었다. 작곡과 연주를 자연스레 해내고 절대 음감을 소유한 그는, 내게는 모짜르트였다. 話術의 천재를 만난 적도 있다. 남도 출신의 그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걸쭉한 입담과 유머는 그와 대화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을 언어의 축복으로 행복하게 했다. [매그놀리아]나 [펀치 드렁크 러브]의 토마스 앤더슨 감독도 영상 세계에 있어서는 천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상은 천재들이 이끌어간다. 보통 사람들은 천재가 달성한 업적을 유지하거나 이용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 세상의 현실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그리도 천재에 가까운 인재에 목말라 하는 것 아닐까?

과학 부문에 이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명백해 진다. 과학사를 전공한 '토마스 쿤'이란 학자의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책은 파라다임이란 개념을 소개해 유명해졌는데, 이 책의 요지는 과학은 점진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인 새로운 컨셉(파라다임)이 도입되어 폭발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혁명적인 과학의 개념은 당연히 천재적인 과학자에 의해 가끔가다 발견되거나 밝혀지는 것들이다. 그러하기에, 과학에는 뉴튼이나 아인쉬타인 등의 스타 과학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 파인만이 있다. 우리는 물리학에서 성취한 그의 천재적인 성과에 관해서는 학문이 짧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다만 그의 물리학이 1945년 나가사끼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고, 20세기와 그 이 후 인류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음은 알 수 있다. 이러한 천재의 裏面은 어떠했는지, 이 천재가 凡人을 바라보는 시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했는지, 천재의 비공식적인 일면을 알 수 있는 책이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이다. 다행히 파인만의 캐릭터는 상당히 희극적이라 그의 인생을 알게 되는 독서의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파인만이란 X맨은 우리와는 다른 천리안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물리학이라는 기초 과학의 세계에서 전자의 움직임과 영향 관계를 살피는 혜안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세상의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는 투시안이 있었다. 연구실의 간식을 옮겨가는 개미들의 움직임에서 모든 금고와 자물쇠의 원리까지, 그는 보통 사람에게는 삶의 일부를 이루는 당연한 것들을 꿰뚫어 보고 관찰해 그 만의 질문과 대답을 내놓고는 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이 귀찮거나 몰라서 개선하지 못하는 사항들에 혁명적인 개선과 진보의 바람을 불어 놓고는 했다. 이러한 개량의 손길은 어린 시절 라디오 수리에서 시작해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에 이르는 과정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개선과 발전을 행동으로 추구하는 천재, 그가 바로 파인만씨였다.

그는 삶의 즐거움을 우리와는 다른 곳에서 찾는 것처럼 보인다. 숨겨진 진리를 찾고, 얽혀진 미스테리의 실타래를 푸는 가운데 그는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었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동안에도 수학적 진리를 알고파 했고, 그 와중에 생물학에도 지분거린다. 이런 것들이 재밌기에 그는 보통 사람이 다다를 수 없는 학문적 성과와 인생의 성취를 맛 본 모양이었다.

파인만씨는 천재였다. 그가 로스 알라모스에서 개발해 낸 원자폭탄이 인류에게 재앙의 화근임을 분명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은 변화한 것이고 인류는 어느 정도 진보한 것이 틀림없다.

p.s: 하나 잊지 말고 남겨야 할 말은 1권을 보고나니 2권을 구입할 의무감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누가 주면 읽을까, 사서 볼 필요까진 느끼지 못 한다는 것... 바로 이 책에 딱 맞는 무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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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ie. 2004-04-26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권도 봤습니다. 지금 제 책장에 잘 모셔두고 있어요^^
 
가짜 경감 듀 동서 미스터리 북스 80
피터 러브제이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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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남을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명절을 앞두고 귀향하는 차안에서의 남은 시간처럼... 이때에는 역시 추리소설 만큼 훌륭한 소일거리가 있을 수 없다.

<가짜 경감 듀>는 그런 휴일 연휴에 생긴 여가를 아주 재밌게 메워 주었다.

추리 소설, 혹은 탐정 소설을 짓는 작가는 바로 탐정의 캐릭터로 고민할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셜록 홈즈를 비롯해 미스 마플, 포와로 등 수 많은 탐정의 캐릭터가 이미 탄생해 있으니 새로 시작하는 작가들은 과연 어떤 인물을 창조해 낼 것인가.

작가 피터 러브시는 이런 점에서 특별한 탐정을 만들어 냈다.
월터 바라노프는 아내에게 금전적인 의지를 하는 치과의사이다. 마술사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독심술 공연을 하긴 했지만, 돈 많은 전직 배우 리디아의 지원을 받아 의학을 공부해 개원한 상태이다. 이 모든 안락한 환경을 져버리고 아내 리디아는 미국에 가겠다고 하자, 월터의 생활을 송두리체 흔들리기 시작한다. 때 마침 나타난 연인 알머는 월터에게 아내를 살해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어넣는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이 월터란 사람이 범인이 되는 추리극이 시작될 것이라 예상할 것이다. 뜻 밖에도 월터는 그가 범행 공간으로 설정한 대형 여객선 내에서 전직 경찰 듀경감으로 오인되고, 뜻 밖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에 이른다. 러브시가 창안해 낸 이 형사의 캐릭터는 '잘 들어주는' 남자이다. 이 범죄자이자 형사인 캐릭터는 작가가 설정한 장치들에 의해 개연성있는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가짜이기에 남의 말을 잘 들어줄 수 밖에 없고, 범죄자의 경험을 치루었기에 범인의 심정을 알 수도 있는 그런 캐릭터이다.

이 훌륭한 캐릭터 외에도 이 소설의 장점은 의외성과 반전이다. 주인공이 죽인 아내는 나타나지 않고 엉뚱한 시체가 나오며 극은 독자의 기대와 예상을 배신하고 심하게 뒤틀린다. 거기에 최후의 반전까지 더해져 독자와 작가의 두뇌 싸움은 결말에 까지 팽팽하게 지속된다. 이 두뇌 싸움의 결과를 알게 된 후 작가를 원망할 수 없는 것은, 추리소설의 작가가 시청자에게 제시해야 될 단서들은 이미 모두 행간을 통해 흩 뿌려져 있기에 독자는 작가에게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신선한 캐릭터와 의외성, 그리고 반전까지... 킬링 타임용으로 꺼내 든 한편의 추리 소설에서 기대이상의 재미를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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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 좋아하세요? - 어느 불량 큐레이터의 고백
박파랑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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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얘기로 시작해보자. 벌거벗은 임금님 얘기가 있다. 모두들 벌거벗은 임금님이 입은 것으로 짐작하는 화려한 의상을 칭찬하고 있을 때 한 당돌한 아이가 외쳤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데요!'

이 책의 저자 박파랑은 바로 이 동화에 나오는 당돌한 아이이다. '솔직함', '발랄함', '신랄함'으로 무장한 이 책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에서 박파랑은 당돌하게 큐레이터의 일상을 까발리고, 한국 미술계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미술대학을 나오고 미술계에서 일을 하게 되었음에도, 그림을 감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고백은 '솔직하다'. 이 솔직함은 이 책의 대중성으로 연결되어 미술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들도 편하게 페이지를 넘겨볼 수 있다. 철학과 미학의 난해한 용어를 남발하는 현학적인 인사들에 대해 '지적 사기'라고 공격한 뉴욕대의 앨런 소칼의 편에 선 작가는, 정반대로 한없이 쉽고 편안하게 큐레이터의 직업세계와 미술계로 독자를 안내하고 있다.

저자의 문화와 미술계에 대한 실례들은 '발랄하다'. 흥미를 돋우는 재미있는 인물과 사건들이 한달음에 책을 읽게 해주고 있다. '지적 사기'를 이용해 뉴욕 지성계를 발칵 뒤집은 장난스런 사건에서, 빌바오란 쓰러져 가는 도시가 구겐하임 박물관을 유치해 부흥한 일화, 큰손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유명 컬렉터에서 우리나라의 이름 없는 큰 손 컬렉터까지, 발랄하고 생생한 일화들이 이 책을 재밌게 하고 있다.

한국 미술계는 저자의 '신랄한' 공격에 당황했으리라. 특히 작품에 주력하기 보다 패거리를 만들고, 글질과 뒷말을 통해 자신의 불이익을 막으려 했던 화가들은 박파랑의 신랄한 공격에 낯빛이 변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녀의 신랄함은 독자들에게 후련한 대리만족을 줄 정도이다. 그러나, 그 후련함 끝에 한국 미술계 나아가서 우리 문화계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우리들의 책임을 따져 묻고 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급 자동차와 고급 시계, 명품 의상을 차려입는 우리의 졸부 근성, 그 화려한 차림새로 압구정동과 청담동의 카페에나 고작 들르는 우리의 한심함에 대해서 냉정하게 꾸짖고 있다. 내가 보기 위해 마음에 드는 그림을 집안에 모셔두는 구매 행위에는 게으른 우리들이 바로 한국 문화를 어둡게 하는 범인이라는 생각에 그녀의 신랄함이 무서워지게 된다.

그림을 잘 모른다는 그녀의 솔직한 고백은, 문화를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가르침은 그림을 보는 행위는 자기자신에게 솔직하게 '좋아하는' 그림과 '좋아하지 않는' 그림을 나눠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작가가 그림에 친해지게 된 시작이었고, 독자에게도 좋은 출발인 것 같다.

큐레이터 박파랑으로 인해 나도 그림을 좋아할 솔직한 용기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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