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나리오, 나쁜 시나리오
토머스 포프 지음, 박지훈.윤용아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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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가 한 드라마 프로듀서가 시상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좋은 대본 아래 나쁜 연출 없고, 나쁜 대본 아래 좋은 연출 없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본의 완성도는 작품의 성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연출가가 작품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대본의 완성도입니다. 이 때문에 연출의 제1의 임무는 작가에게 도움을 주거나 대본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제는 프로듀서로서 작가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유능한 PD가 작가와 대본을 위해 할 수있는 최선은 주로 실수와 실패를 막아주는 것입니다. 결국, 드라마나 영화를 재미있게 하는 열쇠는 작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이 대본에 무엇이 문제이다 이것을 고쳐라.' 까지는 여느 PD도 할 수 있지만 '어떻게'에 대해서 안내할 수 있는 PD는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PD와 작가가 만나서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과 비슷한 모습을 토머스 포프가 지은 [좋은 시나리오 나쁜 시나리오]를 읽으시면 목격하실 수 있습니다. 한 대본이 어떻게 좋은 작품으로 영상화되었는지, 어떤 점을 수정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지, 연출가 작가가 커뮤니케이션하는 모습을 참관하는 과정이 있다면 그것은 백만 금을 주고 참석할 만한 가치 있는 세미나일 것입니다. 실수를 막아주는 프로듀서와 명작을 창안해 낸 작가의 공동 수업을 듣는 것과 비견한 일입니다.


이 책의 작가 토머스 포프는 프로듀서 출신은 아닙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이미 영화화된 시나리오를 복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프로듀서들의 목소리와 비슷합니다. 좋은 시나리오의 장점과 나쁜 시나리오의 단점을 골라내는데 그 안목이 높습니다. 안목이 높다는 것은 초보자에게 쉬운 가르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적의 수준이 높기에 초보자들이 느낌이 올 정도로 명확하고 짜릿짜릿한 가르침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험자들에 포프의 지적은 가려운 데를 긁는 시원함이 있습니다.


덧붙여 명작과 졸작이 탄생하게 된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뮤지컬의 고전인 1951년작 [Singin' in the Rain]이 제작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1920 ~30년대의 노래를 재활용하고자 기획되었다는 특별한 속사정은 놀라웠습니다.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곡이 나온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곡에 스토리를 꿰맞춘이 말 되지 않는 기획을 베티 콤덴과 아돌프 그린 두 작가가 어떻게 명작으로 바꾸었는지 흥미진진한 뒷얘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초보자에게는 과한 책, 경험자에게도 쉬운 책은 아닙니다. 우선 이 책의 리스트에 오른 영화를 보고 한 편 한 편 작가의 분석을 따라 고민한다면 좋은 공부가 되리라는 점은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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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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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도전한다'는 추리소설만이 주는 재미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사건에 관한 모든 실마리를 작품 속 여기저기에 놓아둡니다. 독자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과 같은 분량의 단서를 가지고 두뇌 싸움을 합니다. 얼마나 빨리 범인이 누구인지, 진상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사람이 이 도전의 승자입니다.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은 이런 면에서 본격적으로 독자와 두뇌 싸움을 벌입니다. 작가는 대놓고 두번에 걸쳐 '독자에게 도전한다'고 선언해 우리의 투지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러나 큰 그림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 소설이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 1981년에는 더더욱 쉬운 문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불행히도 이 책은 우리에게 이십 여년이 흐른 뒤에야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유명한 트릭은 '소년 탐정 김전일'에도 소개되었고, 우리 영화 '텔미 썸팅'에서 응용되었습니다. 추리 소설을 자주 접하는 분은 중반부에 '아하'하고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독자를 붙드는 훅크는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미 진화해 버린 21세기의 독자에게 이 소설이 여전히 매력적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지난 만큼 독자의 수준도 콘텐츠의 창의성도 발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80년대의 DNA 식별 등 과학 수사 기법을 적용한다면 무너지는 소설의 전제도 아쉽습니다. 작가가 글 중에서도 언급한 세계적인 추리 소설의 생명력이 이 작품에도 있으지는 의문입니다.


명작은 세월을 거슬러 살아남습니다. 한 때의 인기로 명성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세월의 검증을 통과해 살아남으려면 범죄의 트릭 이상으로 인간성을 건드리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나 봅니다. 책장을 덮은 후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바로 이런 人性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본령보다는 맥거핀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정통파 추리 소설 팬에게는 여전히 사랑받을 작품입니다. 늦게 소개되어 김이 새버린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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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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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을 통해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오늘의 사회 조직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학교 교육은 맹목적인 것이 되면서 도무지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모든이들이 입학하고 졸업한다. 과연 학교는 모든 학생들에게 정당한 곳일까? 만약 그 학교 교육을 통해서 단 한 사람이라도 '꿈'을 잃어버리고 일찍 도태되는 과정을 강요당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제도일까?


위의 이야기는 온다 리쿠의 [여섯 번째 사요꼬]의 내용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하지만 온다 리꾸의 소설을 읽고 많은 독자들이 반복해서 떠올리는 것은 학교라는 곳이다. 졸업생 가운데 선택받은 한 명의 사요꼬가 다음 대의 '사요꼬'를 지정한다. 지정받은 사요꼬는 학교 축제까지 자신이 사요꼬임을 숨기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다. 어느 해 새로 선택된 사요꼬가 활동을 개시하던 차에 또 다른 사요꼬가 등장한다. 공부 잘하고 예쁜 그 사요꼬는 과연 인간인지 도깨비인지 독자들을 알지 모를 공포감에 시달리게 하며 '사요꼬 전설'의 숨겨진 진실을 향해 인도한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꿈이 있는 학창생활을 만난다. 나의 학창 시절에서 결여되었던 것, 지금 학생들과 앞으로의 학생들에게 부족할 수 있는 것을 대신 경험한다. 맹목적이었던 우리의 학교와는 다르게 꿈과 이야기가 있는 학교가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온다 리쿠의 학교는 환상이 가득한 테마 파크이다. 신기루 같은 캐릭터, 사요꼬에 대한 작가의 결말이 100% 확실하지는 않다. 사건의 인과 관계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있어, 독서를 끝낸 사람들도 다시 이야기를 생각해보게 한다.


역시 재미있는 것은 학교라는 배경이다. 내가 학생으로서 학교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학교의 입장에서 학생은 손님일 뿐이다. 정해진 휴가 기간을 보내고 떠나는 관광객 처럼 우리는 학교에 애매한 흔적을 남긴 손님이었다. 학교 자체가 하나의 생물이라면 학생과 같은 드나드는 객들은 반가운 손님일까, 아니면 성가신 객일까. 작가는 이런 아이디어에 착안해서 [여섯 번째 사요꼬]를 쓰게 된 것 같다. 조금 전 문장은 스포일러에 가까우니, 더 궁금하신 분은 책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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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쟁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1
조 홀드먼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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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쟁]은 1972년에 발표된 고전에 속하는 SF 소설입니다. 20세기 말 인류는 장거리를 단번에 도약할 수 있는 콜랩서라는 우주 공간의 장소를 발견합니다. 이와 함께 중장거리를 여행하기 위해 특수한 감압장치 속에 들어가 수개월 간 동면에 빠지는 기술도 발견합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우주를 탐사하던 중 토오란이란 외계의 생명체와 접촉합니다. 그러나 그 접촉은 천년이 넘게 진행될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에 참전한 작가 조 홀드먼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 소설에 녹아내었습니다. 한 문명과 문명이 충돌해서 최악의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지 냉정하게 예견합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보여준 미래에 대한 예측입니다. 작품이 씌여진 1970년대임을 감안한다면 놀라울 정도로 이성애, 동성애에 대한 개방적인 시각을 보입니다. 그런 개방된 시선으로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과 선악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풍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허구를 창조했는데, 그 논리는 오늘의 SF물에도 널리 통용될 정도로 정연한 것이 많습니다.


이 소설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주인공 윌리엄 만델라와 메리게이 포터의 멜로 드라마입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시공의 바다를 여행하기에 단 한 번의 이별은 두 사람에게 수 백년이란 시간의 격차를 만들어 냅니다. 이 시공의 격차를 뛰어넘어 사랑을 완성하는 이야기가 이 하드보일드한 전쟁 SF에 새로운 재미를 주었습니다.


SF에 관심있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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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문화인류학, 개정판 지식여행자 7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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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는 'dozen'의 일어식 표현이니 숫자 열둘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다스'가 마녀들의 세상에서는 열 셋을 의미한단다. 같은 단어를 두고 쓰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음을 작가 '요하네라 마리'는 [마녀의 한 다스]라는 제목을 통해 전하는 것이다.


러시아 동시통역사로 일한 작가는 유럽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얻었던 모양이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가져 달라고 부탁한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해석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이라 할 정도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 아이의 학교에서 '결석을 권하는 통신문'을 받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이가 열이나 설사가 생기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내용이다. 개근을 목표로 아무리 아파도 무리하게 출석을 했던 아빠의 눈으로는 잘 이해가 가질 않는 통신문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빠른 회복과 있을지도 모를 전염의 위험을 예방하려 결석을 권하는 학교의 방침은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생각이 세월이 지나며 바뀐 경우가 많다.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다. 바뀐 후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면 그토록 한 가지 사상이나 생각에 집착했던 시간이 부끄러워진다. 더욱 부끄러워지는 것은 그때는 나와 다른 이들의 세계를 엿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편협했다.


[마녀의 한 다스]를 읽으면 이렇게 한 사람이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느끼는 적고 큰 충돌의 문화사가 펼쳐져 있다. 그 충돌은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독자는 자신의 편협함을 벗어날 여유를 배우게 된다.


결국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는 여유이다. 나이든 남이든 모든 대상을 여유를 갖고 바라보길 권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서 나쁜 소리, 쓴 소리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 폭풍 같은 비난을 하는 우리는 여유가 없는 사람들다. 이에 대해 작가는 소중한 가르침을 준다.


"자신 또는 자국민을 캐릭터화 할 줄 아는 국민, 자신과 자국민을 스스로 떨어져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 결점을 희화화할 줄 아는 성숙한 국민은 여유가 있다. 유연하고 강하다. "


이런 여유있는 나라가 문화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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