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쓰다
매거진 t 편집부 엮음 / 씨네21북스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한때 TV드라마의 유일한 잣대는 시청률이었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건 말건 많이 보기만하면 좋다'는 생각이 도전 받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인터넷을 통해 결집한 매니아적인 시청자들이 양으로만 평가하던 TV드라마에 질적인 평가를 하였고 그때 나타난 인터넷 시대의 'TV드라마 총아'들이 이 책 [드라마를 쓰다]에 나온 황인뢰 감독, 노희경, 인정옥, 신정구 작가이다. 이들은 문화 상품으로서의 TV드라마가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TV에서도 명품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속내를 안다는 것은 장인의 비밀스런 공방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TV드라마의 제작 현장은 흡사 전쟁터와 닮았다. 내 앞에 적군이 있고 나는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는 당위가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제대로 총을 겨눌 수 없는 절박한 위기상황이 있다. 과장이 심한 비유가 되겠지만 옆에서 죽어가는 전우를 보고서야 마비된 이성으로 적에게 총질을 시작하는 전장이 TV드라마의 제작 현장이다. 작가와 연출이 세운 애초의 의도는 전투가 시작되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으로 마비되기 시작한다. 이런 마비의 순간에 작가와 연출은 더 이상 자신의 재능과 감각을 속일 수 없는 원초적인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때 그들은 자신의 삶을 TV 속에 고스란히 노출하기 시작한다. 그러기에 황인뢰 감독, 노희경, 인정옥, 신정구의 속내는 그들의 작품을 만들어 낸 본질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본질이 얼마나 정직하게 이 글 속에 녹아 나왔는지는 제 3자는 잘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TV드라마를 처음 쓰는 신인들은 이런 부분에서 헛갈릴 수 있다. 신정구 작가의 표현처럼, '눈물'로 쏟아놓은 대본을 방송한 한참 후에 낸 후일담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지난 후 한참 뒤에 회고 한 전투씬은 미화될 수 있다. 전우애도 생각나고 자신의 전과가 미화될 수도 있다. 신인들이 그 미화된 부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전투에 참여한다면 그들은 곧 처참한 현실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편집자들은 스타일이 좋다. 문장력도 좋다. 하지만 TV드라마는 '드라마를 쓰는' 작업이기보다는 '피를 토하는' 작업에 가깝기에 나의 피 토함이 아름다운 '명품'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더럽고 추한 '토사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런 토사물이 예쁜 노란색으로 윤색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 책 [드라마를 쓰다]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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