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외로운 전쟁
김용한 지음 / 포북(for book)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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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00만 명 추모인파가 봉하마을을 다녀가고 49재와 안장식 이후에도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추모 콘서트 제목 그대로 다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서점가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 신드롬이 일어나 여러 권의 추모시집과 인터뷰집, 어린이 책을 비롯하여 서거 이후에만 20여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김용한이 쓴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FOR BOOK 펴냄)은 2000년 총선을 전후한 특정한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선거 기획 전문가인 정치컨설팅 그룹 MIN 대표인 박성민씨는 그가 쓴 책에서 정치를 일컬어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기는 게임"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옳은 것이 강한 것에 이겨야 한다"는 신념을 펼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용한이 쓴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은 옳은 것이 이기는 세상,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위하여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걸어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분수령이 된 2000년 총선 당시의 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집권당의 부총재이며 정치 1번지 종로구 국회의원이라는 기득권과 탄탄대로를 버리고 '화합과 통합의 정치'라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신념, 이상을 펼치기 위해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하는 '바보 노무현'의 가장 치열했던 순간을 담은 기록입니다. \ 

아울러, 그 순간 험난한 가시밭길에 동행했던 참모인 이른바 '땅개'들의 고군분투, 그리고 유권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지역감정과의 대결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바보'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열두 척의 배로 일천여 척의 일본 수군에 맞서면서 "必生卽死 必死卽生"라는 말로 군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스스로 죽어서(선거에 떨어져야) 다시 사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저자 김용한은, 2000년 총선이라고 하는 특정 사건을 중심에 둔 기록을 책으로 엮어낸 이유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절규해왔던 지역 통합의 정치이념인 '노무현 정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산에서 출마, 다시 가시밭길을 가다

그리하여,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은 그가 모든 기득권을 훌훌 벗어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앞으로 지역구를 부산이나 경남 지역 중 한 곳을 정해 출마하겠다."

1999년 2월, 노무현 의원은 청와대를 다녀오고 나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발표를 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부산 출마에 대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부산에 내려온 것은 우리 역사에서 대립과 반목, 그것을 한번 극복해보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역 갈등 상황은 위험 수위에 달해 있으며 그러한 적대감과 대결을 부추기는 정치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분리가 곧 불평등을 의미'하듯 지역분할구도가 지역의 상대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본문 중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를 통하여 지역을 뛰어넘는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고, 화해와 용서·사람이 넘치는 감동의 정치를 이루어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역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를 바보라고 불렀던 것이구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붙여 준 별명 중에서 '바보'라는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였습니다. 2000년 총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말하자면, 2000년 총선 부산 출마는 정치를 안 했으면 안 했지 명분과 원칙에 어긋나는 구차한 기회주의식 정치는 않겠다는 정치인 노무현의 굳은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 총선, 부산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지역을 뛰어 넘는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종로 선거구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 온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에서는 가수 방실이를 닮은 '선동대장 방실이 아줌마'의 입을 빌어 말해주고 있습니다. 선동대장 방실이 아줌마는 왜 노무현을 지지하였을까요? 그녀는 살기가 힘들어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지는 지난번 부산시장 선거 때부터 노무현 후보님을 지지해 왔심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 우리 같은 서민이 잘살 수 있을 것 같애서........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듭니까? 열심히 열심히 해도 생활이 안 나아지니까 그래서예......." (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맞심더, 인물이야 좋지예, 내도 노 후보를 좋아한다 안캅니꺼. 그런데 대중이 밑에 들어가 그게 꼴 뵈기 싫어지지 안할랍니다. 민주당이라 카마 호남당 아인교? 호남당. 그라마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오라 카이소. 팍 찍어준다 카끼네." (본문 중에서) 

2000년 총선 당시 많은 부산 사람들은 노무현은 좋은데, 그가 민주당이라서, 호남당, 김대중당이라서 찍어줄 수 없다고 드러내놓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노무현의 입장은 분명하였습니다. 그는 지역감정 앞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벽을 허물기 위하여 출마하였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밝힙니다.

"부산에서 콩이면 광주에서도 콩이고, 광주에서 콩이면 충청도도 콩인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지역을 뛰어넘는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정치 1번지 종로구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 온 노무현은 초반 여론조사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역감정의 높은 벽에 부딪쳐 패배하고 맙니다. 2000년 4월 13일, 부산 북 강서을 유권자들은 지역감정의 높은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노무현에게 패배의 쓴 잔을 안기지만 그날 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必生卽死 必死卽生"

노무현의 패배가 알려진 그날 밤, 6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노무현의 패배에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렸고, 하룻밤 사이에 약 18만 명의 누리꾼들이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정치인 노무현이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충격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던 그때, 사이버 공간에서는 수많은 네티즌들이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한국 정치의 내일과 희생을 애절하고도 뜨겁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홈페이지에는 "아름다운 바보 한국인! 힘내세요!!" 같은 글이 끝도 없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노무현 후보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투표장에 들어가니 붓두껍을 든 손이 1번으로 가더라. 그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노무현은 바보다. 그러나 아름다운 바보다. 우리나라가 잘되려면 그런 아름다운 바보가 더 늘어나야 한다."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며 어느 부모도 제 자식에게 정치가가 되라고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의원을 보면서 나는 다섯 살 난 아들이 자라면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노 의원 같은 정치가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4.13 총선에 기권했지만 노무현 의원이 낙선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 같은 방관자적 자세가 그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노 의원이 지역감정 타파 실험을 중지할까 걱정되어서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00년 5월 7일 대전 고속버스터미널 앞 카페에서 처음 만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라고 합니다. 이 모임은 한 달 후 그들은 정식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몇 개월 만에 2000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거대한 조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새로운 바람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불기 시작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낙선 후에 '지역감정 해소책'을 주제로 강연을 하러 광주에 갔을 때는 밀려드는 시민들의 사인 공세 때문에 강연이 끝나고 30분 가까이 행사장을 떠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인기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한테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정치인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상향적인 민심의 지지를 받는 열성적인 고정 팬을 둔 최초의 정치인이 된 것입니다. 이윽고 노무현의 정치노선과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들, 혹은 그냥 서민들이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혹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불과 2년 후에 노무현을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기적'을 이루어냅니다.

실속도 없이 노무현을 도운 이유

저자 김용한은 사람들이 "너는 왜 실속도 없이 노무현을 돕느냐"고 묻는다면 서슴치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돕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것으로, 상식과 원칙이 승리하는 사회가 되기를 조금이라도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저자뿐만 아니라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노사모를 비롯한 지지자들, 그리고 탄핵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들 모두 원칙과 상식이 승리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그와 함께 하였을 것입니다. 

아울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 봉하마을과 전국 곳곳의 분향소를 찾은 이들도 역시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도운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자신들의 꿈을 함께 이루어왔던 것이지요.

때문에 노무현 지지자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은 순수한 자원봉사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노무현의 정치철학과 명분에 공감을 느껴 따르는 사람들이었으며 노무현과 같은 서민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노무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무현과 함께 원칙과 상식이 승리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불나비들이었던 것입니다.

김용한이 쓴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은 2009년 5월 23일, 그 불행한 사건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책으로 나오지 않고 묻혀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무모하리만치 숭고한 도전, 슬프도록 아름다운 도전 기록을 담은 이 책은 "必生卽死 必死卽生"의 기적 같은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을 읽다 예전에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 엮은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살아가는 법>에서 읽은 '정치'라는 주제의 글이 생각나 소개합니다.

어쩌면 좀 괜찮은 사람인 척 하는 우리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치

좀 괜찮은 사람들은
정치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좀 괜찮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권력을 내주고
그들로부터 지배받는 벌을 받는다.

- 막시무스가 쓴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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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이혜영 지음 / 한국방송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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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800리.
전체 300km 구간 중 지금까지는 남원 주천에서 산청 수철까지 70여km가 개통되었다. 지리산길 조성은 사업은 2007년부터 '사단법인 숲길'이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사)숲길은 지리산생명연대가 지리산길 사업을 위해 설립한 부설법인이고, 지리산생명연대는 도법스님을 비롯한 생명운동가들이 참여하여 지리산권을 중심으로 환경운동과 생명평화운동을 펼쳐온 단체이다.


(사) 숲길은 산림청이 복권사업으로 조성한 녹색자금의 지원을 받고, 지리산을 둘러싼 5개 시군의 협력을 받아 지금까지 70여 km 구간을 개통하였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매년 조금씩 개통되어 2011년 즈음에 순환형의 지리산 둘레 길이 완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산림청의 일방적인 약속파기로 우여곡절 끝에 5월까지 70km만 간신히 개통되고 나머지 구간은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어 버렸다고 한다.


늘림과 성찰의 길, 지리산길

(사)숲길은 느림과 성찰의 길, 그리고 책임여행을 제안해왔다. 지리산길을 걷는 여행자뿐만이 아니라 그 길위에서 살아온 주민 역시 똑같은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들썩한 관광상품이 되는 방식을 지양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구간 개통이 여러 지방자치 단체로 이관됨으로써 이 길의 '초심'이 지켜질 수 있을지 하는 염려가 많이 있다. 지자체들의 막개발식 예산 따먹기 혹은 전시행정으로 흐르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느림과 성찰의 길'이라는 초심을 지킬 수 있을지하는 걱정 말이다.

지난 8월 1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남원 운봉에서 함양 마천 벽송사에 이르는 30여 km를 구간을 지리산길 안내센터 홈페이지와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을 길잡이 삼아 다녀왔다.

지리산길 안내센터는 걷기 여행자를 위한 단순 정보 제공이 전부였던 반면에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은
마을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가 담겨있는 온기 넘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4차선 도로 반대운동이 탄생시킨 지리산 둘레 길

2004년 무렵, 익산지방국통관리청과 남원시는, 남원 인월에서 함양 마천으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추진하였다. 2차선 도로가 4차선 도로로 확장되려면, 산을 더 깍고, 터널 2개를 뚫고, 교량 3개를 세워야 대공사가 벌어져야 했었다. 거대한 공사판이 벌어질 상황에서 인월과 산내면 주민들이 확장공사를 막아냈다고 한다.

주민들은 터널과 4차선 도로가 아니라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뚜렷하였고, 확장 공사 저지를 기념하여 '강 따라 길 따라 60번 지방도변 마을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만들어놓은 지도를 보니까 첨엔 남의 동네를 보는 것처럼 신기하더라고. 새삼 우리 마을이 이렇게 이뻤던가 싶고. 사람 사는 것이 그래야 해. 차만 쌩하니 가버리면 뭐 해!"(본문 중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속 마을 을 연결하는 길이 지리산길의 모태과 되었다는 것이다. 도로 확장 저지운동은 지역주민들에게 '길'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고, 주민들과 실상사, 시민단체의 아이디어가 모여 '지리산길'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그냥 단순한 여행 안내 책자가 아니다. 그가 쓴 책에는 처음 지리산 둘레 길을 연 사람들의 '초심'이 담겨있고, 여러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길과 숲, 역사와 마을에 관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다음은 이혜영이 소설가 김훈의 작품에서 찾아낸 '숲'이라는 글자에 대한 표현이다.

"숲이라는 글자는 모양 마저도 숲을 닮아서 글자만 들여다봐도 숲에 온 것 같다고. 발음으로 분리해서 봐도 마찬가지다. 'ㅅ'의 날카로움, 'ㅍ'의 서늘함은 모두 바람의 잠재태라는 것이다. 그 잠재태가 모음 'ㅜ'에 함께 실리면, 나무숲에 이는 부드러운 바람난다. 숲. 길게 발음하면 '수-우우우ㅍ'. 그럴 때면 바람이 일어 풀을 스치고. 작은 나무가 머리를 살랑이고, 큰 나무는 온몸을 휘청거리는 것 같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쓴 이혜영은 직접 걸어서 어떤 때는 차를 타고 지리산 둘레 길을 직접 답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40여권에 달하는 많은 참고자료를 뒤져 '숲'이라는 글자에 대한 표현과 같은 보석 같은 문장들을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들여주고 있다. 

소설이나 문학작품만 섭렵한 것이 아니라 역사책, 여러 사람들이 쓴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지리산 둘레길에 얽힌  자료를 찾아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에 모두 담았다. 그래서, 이 책에는 걷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마을 이야기,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야기, 지역 역사와 문화이야기 그리고 지금도 지리산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책을 읽어보면, 그녀가 지리산길을 걷는 동안 참 많은 길 위의 사람들과 그에 걸쳐있는 동네 사람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그녀가 쓴 책에는 사람들이 지리산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장항마을 당산소나무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윗당산, 아랫당산, 중간당산이 흩어져 있다는 것과 옛날에는 세 군데서 모두 당산제를 지냈지만 지금은 윗당산에서만 제를 지낸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마을 주민 이영자씨의 입을 빌어 장항마을 당산제를 지내는 광경을 마치 사진으로 보는 것 처럼 생생하게 전해준다.

"당산제 지내는 사람은 사흘을 깨끗한 찬물로 목욕재계해야 돼. 당산에다 금줄 치고 바람골에서 물 길어 와서 밥 짓고. 제사 지내고 나서 윗당산 돌담 아래다가 돼지머리를 묻어. 나중에 파봐서 그게 없으면 산신이 잡순거라고 했지. 동네에서 일 터지면 당산제를 잘못 지내서 그런 거라고 했어. 아주 중요한 행사였지." (본문 중에서)

그래서,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그냥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다. 800리 지리산길을 걷는 길잡이 일뿐만 아니라 지리산길을 함께 걷는 길동무이기도 하다. 지리산길을 걷다가 다리쉼을 하는 당산나무 아래서나 마을 입구 정자나무 그늘아래서 이 책을 꺼내 읽으면 딱 제격이기 때문이다.

길잡이 책, 그리고 길동무 책

지리산길을 걷기 위해 오는 기차나 버스안에서, 하루하루 걷기를 마치고 민박집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지나온 길, 그리고 걸어갈 길에 담긴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솔솔하기 이를데가 없다. 

수 백장이 넘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독자들 마음을 지리산길로 확 잡아 끌고, 마을과 구간별로 구분해놓은 상세한 구간지도와 마을민박, 숙박, 식당과 음식에 대한 정보는 분명 덤이다.

아울러, 이 책에는 앞으로 개통될 전남 구례, 경남 하동 그리고 개통된 길에서 더 나아간 산청과 남원의 일부구간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책에서 앞서 소개하는 구례와 하동구간 지리산길의 윤곽은 다음과 같다.

"구례길은 구한말  지조 높았던 선비 매천 황현의 사당, 운조루, 섬진강변의 석주관 칠의사묘 등 역사의 굵직한 흔적들을 더듬어간다. 섬진강을 낀 시원한 들마을을 이어 마지막엔 지리산 피아골 깊숙이 들어간다. 하동길은 화개 차밭 사이를 걷다가 형제봉을 넘어 악양 들판을 배려다보는 경관이 멋지다. 악양에서 회남재를 넘어가면 오지 아닌 오지 청학동 초입. 지리산길응 여기서 방향을 달리하여 인적 드문 갈치재를 구불구불 넘어 산청으로 간다." (본문 중에서)

이렇게 이어지면 지리산 둘레길 800리가 모두 열리는 것이다. 미리 가보는 지리산길 역시 이 책에 담긴 보너스가 틀림없다.

지리산길과 이어지는 길, 제주 올레길

한편, 이 책에는 지리산길 뿐만 아니라 제주 올레길에 관한 소개도 60여쪽이 넘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서는 제주올레길로 지은이의 호기심이 뻗쳐갔다는 것이다. 이혜영은 두 길을 걸으며 생각해보니 지리산과 제주섬은 이란성 쌍둥이더라고 한다. 

"제주도에도 한라'산'이 있고, 지리산에도 구름 '바다'가 남실거린다. 제주의 돌담을 닮은 석축이 지리산의 다랭이 논을 떠받치고 있다. 지리산은 유배받은 산이었고, 제주도는 유배의 사람이었다. 제주 4.3은 지리산의 '산사람'들을 잉태하고 낳았다. 적어도 내게 지리산과 제주는 같은 이야기를 품은 다른 형식이었다. 나는 어느새 두 애인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그래서,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두 애인을 한꺼번에 소개하고 있다. 책 전체로 보면 지리산길이 주연,  제주올레길이 조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대중적인 접근 차원에서 지리산이 제주보다 수월하다는 작위적이고 무의미한 판단에 따른 나눔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직접 길을 걷는 여행자들도 지리산길의 관심이 제주올레로 이어지고, 제주 올레길을 걷고 나면 지리산길을 걷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책이 지리산길과 제주 올레길을 주연과 조연으로 삼은 것은 탁월한 케스팅이다.

다만, 한 가지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을 길동무 삼아 지리산길을 걸으며 느낀 아쉬움이 있다면, 지리산길과 제주 올레길을 한꺼번에 길동무로 삼기에 책이 너무 두껍고 무겁다는 것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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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편 - 책꽂이에서 연애편지를 꺼내다
허정도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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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소리 내어 책을 읽어보셨나요? 세상 많은 엄마들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기를 위하여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줍니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때부터 더 이상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보채지 않을 때까지 책을 읽어줍니다. 아직 드물기는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빠도 적지 않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좀 더 자라서 혼자서 책을 읽을 무렵이 되면 대부분 엄마, 아빠는 책 읽어주기를 그만둡니다.

가끔 영화나 소설에서 아버지를 위하여 책을 읽는 아들이나 엄마를 위해 책을 읽는 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책을 읽는 일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더군요.

책 읽어주는 남편? 이 책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되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올 초에 개봉한 독일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를 말하는 거냐는 물음입니다. 독일 소설 <더 리더>나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와 아무 상관없는 이 책은 건축가이자 경남도민일보 대표를 지낸 언론인 허정도가 쓴 독서일기 같은 글입니다.

아내를 위해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남편?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영화나 소설이 아닌 실화라는 이야기입니다. 독일 소설 <더 리더>나 올해 초에 개봉한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가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아내를 위하여 매일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던 남편이 쓴 책입니다.

<책 읽어주는 남편>은 지은이 허정도가 그의 아내 정미라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책에 관한 이야기와 그 책으로 인해 오랜 기억 속에서 집어 낸 삶을 담은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부부가 함께 읽은 스무 권 책의 '정수'를 모은 책이기도 하고, 두 부부가 함께 살아온 삶을 담은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책 '날개'에는 지은이와 나란히 그의 아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어보면 왜 두 사람이 나란히 소개되어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남편이지만, 아내와 함께 책을 읽고, 아내와 함께 나눈 이야기 그리고 아내와 함께 살아온 삶이 바로 이 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은이는 '책 읽어주는 남편'으로 소개되어 있고, 그의 아내는 '듣는 아내'로 소개되어 있는데, 사실은 책을 읽어주는 '단순노동'(?) 보다 더 '내공'이 필요한 일이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간혹 아내가 읽어줄 때도 있지만 보통은 내가 읽습니다. 내가 잘 읽어서가 아니라 듣는 데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듣기를 시작해 빠르면 5분, 늦어도 10분 안에 까무룩 잠이 듭니다.......그러니 몇 시간 동안이나 졸지 않고 무던하게 듣고 있는 아내가 놀랍습니다." (본문 중에서)

책 읽는 소리를 듣는 일은, 그냥 혼자서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칫 조금만 방심하면 이내 딴 생각에 젖어들거나 잠을 물리치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책, 읽기가 쉬울까? 듣기가 쉬울까?

허정도가 쓴 <책 읽어주는 남편>은 아주 독특한 형식으로 씌어진 '독후감'입니다. 마치 소설을 보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고갑니다. 과거는 책을 읽는 부부의 삶이고, 현재는 함께 읽는 책 속에 있는 오늘입니다.

존 우드가 쓴 <히말라야 도서관>편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됩니다. 아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일의 진행과정,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신 직후 작가가 쓴 '토지'를 소리 내어 읽으며 추모한 이야기, 그 다음에는 존 우드의 히말라야 도서관 이야기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히말라야 도서관>에 씌어진 존 우드의 삶을 소개하는 과거에서 빠져나오면, 책 읽은 소감을 나누는 부부의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독특한 구성 때문에 책을 읽어보면 그냥 독후감을 보는 느낌보다는 꼭 소설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한 편 읽고 있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게 됩니다.

아울러 허정도가 쓴 <책 읽어주는 남편>은 여느 보통 독후감보다 훨씬 끈끈하고 깊은 맛이 배어 나오는데 그것은 아마 어렵고 힘겹고 가난했던 삶의 기억에서 묻어나오는 따뜻함과 애절함 때문인 듯합니다.

신경숙이 쓴 소설 <리진>을 읽는 동안 부부가 주고받은 이야기는 '듣는 아내' 정미라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에 관한 기억 한 자락입니다.

"아내가 말한 초등학교 때 은사는 조용욱 선생님으로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와 교사생활을 했다 합니다. 설령 아이들을 방치해 놓는다 해도 누구도 간섭하지 않을 섬마을 작은학교에서 조용욱 선생님은 열정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답니다. 편모 슬하에 살림살이마저 가난했던 아내는 차별 없이 대해준 선생님이 더욱 고마웠던 모양입니다."(본문 중에서)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애틋한 이름들

랜디 포시가 쓴 베스트셀러 <마지막 강의>를 읽으며 '책 읽어주는 남편' 허정도가 기억해낸 아버지에 관한 기억 역시 따뜻함과 애절함이 묻어납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버지가 아직 어린 세 아이를 위해 '마지막 강의'를 읽으면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입니다.

"태어나보니 식민지 시골 빈농의 아들이었고, 교육받지 못했으니 출세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일제기와 전쟁을 거치고 나니 마흔이 되었습니다. 희망없는 시대에 청춘을 보냈고 가난과 더불어 일생을 보냈습니다. 세상은 아버지가 감히 희망 한 번 품어보지 못할 만큼 어둡고 거칠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사춘기 때, 리어카로 행상하시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한 적이 있습니다. 길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괜히 움츠러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반기셨지만 못난 아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아버지가 부끄럽다니..., 그렇게 힘들여 번 돈으로 먹고 마시고 입고 자고 공부까지 하는 자식 놈이 말입니다." (본문 중에서)

모두가 힘든 그 시절,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좀처럼 자식들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웠습니다. 세상 많은 아들들이 그 시절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였기 때문에 훗날 철이 들고나면 사춘기 시절의 어리석음을 용서받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곁에 없기 때문에 더 안타까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혜정이 쓴 <친정엄마>를 함께 읽으며 기억해 낸 '책 읽어주는 남편'의 장모, '듣는 여자'의 친정엄마에 관한 기억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30여 년을 살면서 서로 못다한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함께 책을 읽으며 기억해보니 아직도 서로 못다한 기억들이 적지 않더라는 것 입니다.

"아내는 생후 20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젊은 홀어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체구가 작고 몸이 건강하지 못했던 장모는 거제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땅 한 평, 밭 한 뙈기도 없이 큰아들과 밑으로 네 딸을 혼자 힘으로 키웠습니다........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막내딸이 측은해서 어머니는 아내에게 각별했고 아내는 그 사랑을 받아먹고 자랐습니다."(본문 중에서)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부부는 책으로 인해 더 많은 삶을 공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다는군요. 단숨에 읽어내는 단편뿐만 아니라 긴 장편을 읽을 때에도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을 소리 내어 읽고 쉬는 동안에는 책으로 인해 떠올리게 되는 젊은 날의 기억을 공유하게 되었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내와 차분하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내와 아내의 어머니 사이에 감추어 두었던 서러움과 아픔,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향한 애잔한 그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풀어졌고 그 속에 아내의 회한이 녹아나왔습니다."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이것을 '책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위대함'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과거의 기억으로만 돌려놓지는 않습니다. 책은 부부에게 새로운 경험 세계를 열어주기도 새로운 인생계획을 세우게도 합니다. 책 한 권 글 한 줄로 인생이 바뀐 사람이 어디 이 부부뿐이겠습니까?

마음을 움직이게 위대한 힘을 가진 '책'

지은이는 아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기대하지 않았고 예측하지 못한 재미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친정엄마>를 읽으며 붉은 팥칼국수가 전라도 음식이란 걸 알게 되었고 나이 오십이 되어 처음으로 팥칼국수를 먹어보고, 김남희가 쓴 히말라야 여행기를 읽고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계획을 세우기도 하더군요.

부부가 함께 앉아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고 들으며 삶을 윤택하게 하는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한 부부는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도 책이며,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고 들어주는 삶도 물려주고 싶어 합니다.

"우리 부부는 훗날 아이들에게 읽은 날짜가 적힌 책들을 남겨주기로 했습니다. 한술 더 뜬 아내의 제의를 받아들여 좋은 책 한 권을 택하여 읽는 소리를 녹음하기로 약속하기도 했습니다."(본문 중에서)

법정 스님이 쓴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으며 가장 반가웠던 대목이 바로 자식들에게 부모가 함께 읽은 책을 삶의 자취와 정신적 유산으로 남겨주라는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그리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던 터라 스님의 말씀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책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다"

시인 도종환 선생은 이 책 추천사 첫 머리에 "부부가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썼습니다. 책을 함께 읽으며 주인공들을 따라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눈이 퉁퉁 붓도록 같이 울기도 하고, 다가올 시간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는 이 부부의 모습이 부러웠다고 합니다.  

지은이가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것은 '안부대상포진'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도리와 의무 혹은 서비스 차원의 이벤트 비슷한 것"이었지만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한 후에는 생각하지 못하였던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연히 시작한 소리 내어 책읽기에서 삶의 또 다른 재미와 의미를 발견한 부부는 꾸준히 함께 책을 읽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들이 찾은 낭독이 주는 행복한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책과 삶, 추억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 책은 한 번 손에 쥐면 놓을 수 없을 만큼 흡입력이 있지만 지은이가 읽은 책 속의 주인공과 지은이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지은이는 간결한 문장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읽은 책을 소개하면서 여러 번 간결한 문장이 좋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쓴 책 역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합니다. 그래서 읽기에 더 편합니다.

지은이가 아내와 함께 읽은 스무 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인용한 글들은 그가 가진 삶의 철학과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감동과 교훈을 갖게 되는 것은 살아가는 삶과 철학 그리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읽은 많은 책을 저도 읽었습니다. 저 역시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어놓은 곳도 많습니다. 지은이가 <책 읽어주는 남편>에서 인용한 스무 권의 책에서 찾아낸 인용문을 보면 지식인으로서 올바르고 곧은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책 한 권 소리 내어 읽어보지 않으시렵니까? 다른 책도 좋지만, 소리 내어 읽는 책 읽기의 특별한 즐거움을 소개하는 <책 읽어주는 남편>을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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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편 - 책꽂이에서 연애편지를 꺼내다
허정도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단순히 책 읽어주는 이야기, 책 읽은 감상문이 아니다. 그는 따뜻한 영혼을 가진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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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파울로 프레이리 외 지음, 프락시스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교육과 사회변화를 위해 헌신해 온 브라질 교육운동가 파울로 프레이리와 미국 사회운동가 마일스 호튼의 대화집입니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해방으로 보고 이를 실천한 20세기의 대표적 교육사상가입니다.  1950년대에는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독자적 교육방법을 개발하였고, 1963년에는 브라질 정부의 문해교육 프로그램 책임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1964년 군사 쿠데타때 체제전복혐의로 투옥되었고, 국외로 추방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였으며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1979년 브라질로 돌아와 노동자당에 입당하였고, 1988년부터 수년간 상파울루 시 교육감을 지냈다고 합니다. 프레이리가 국내에 잘 알려진 것은 그의 초기 대표작인 <페다고지>가 일찍 국내에 소개되어 소위 '민중교육' 진영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일스 호튼은 상대적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일스 호튼이라고 하는 탁월한 교육운동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1932년 테네시 주의 쿰버랜드에 하이랜더 지역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미국 시민권운동과 지역사회학교운동을 이끌었던 유명한 교육운동가라고 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인 제인 애덤스 그리고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일하였으며,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 만들기를 꿈꾸면서 흑인과 노동자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호튼은 노동조합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잠시 하이랜더를 떠나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 은퇴할 때까지 40년 동안 하이랜더 책임자로 일하였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를 읽으면서 처음 만난 마일스 호튼이라는 인물에게서 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서평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프레이리 보다는 마일스 호튼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는데 조금 더 관심이 기울어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대담은 1987년 12월 프레이리의 제안으로 호튼이 살고 있는 테네시주 하이랜더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대화가 있은 지 2년 후 대담집은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호튼은 이 원고의 초안을 프레이리와 검토 하고 사흘 후인 1990년 1월 19일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마일스 호튼이라고 하는 탁월한 사회운동가의 유작이기도 합니다.

프레이리와 호튼, 100년이 넘는 민중교육 실천 '회고'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회고'라고 하는 독특한 방식을 통하여, 두 사람의 탁월한 교육운동가가 지닌 시민교육, 민중교육 사상을 풀어내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경험한  백 년이 넘는 교육실천 독자들과 나누는 책입니다.

마일스 호튼의 어린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 이야기는 그가 탁월한 사회운동가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학교 교육에 대한 문제를 발견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교사들이 학생들로부터 문학작품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작품을 읽고 암송해야 할 대상으로 강요하니 학생들이 싫어할 수밖에요. 저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말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사들을 존경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무능한 교사들에게 저항하는 방식으로 책읽기를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의 바보 같은 질문 때문에 바보가 되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답니다. 교사들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책읽기에 몰입하는 동안 비판적 태도를 키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쿰버랜드 장로교회에서 있었던 두 사건은 어린시절 마일스 호튼이 비판적 사고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어느 날, 한 선교사가 교회에서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는지를 이야기하였답니다. 호튼은 선교사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고 영혼을 구하는 일이 참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는군요.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갈 거라는 선교사의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교사 말대로라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가지만, 아예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선교사가 전한 복음이 원주민들을 지옥으로 보냈다면?

호튼은 선교사가 복음을 전했음에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얼만지, 그리고 그로 인해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은 또 얼만지 얼른 속으로 계산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선교사가 지옥으로 보낸 사람들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고 합니다. 설교 후 토론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신학적 질문을 할 때, 호튼은 다음과 같은 산술적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셨나요? 선교사님 말씀대로 따지면, 구원한 사람들보다 수백 배나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신 것 같은데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댁에서 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있을 텐데요."

젊은 시절 마일스 호튼의 비판적 사고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교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독교와 관련된 또 하나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호튼이 지역 청년모임 회장으로 모임을 주선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느 날 모임에서 회원들에게 주일 외의 나머지 엿새 동안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주일날만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늘 신앙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하였던 것입니다.

일요일만 신앙인으로 사는 기독교인

그랬더니, 담임목사가 호튼의 이야기가 교회에 대한 모욕이라며 펄쩍 뛰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호튼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제가 가게에서 일하면서 보았더니, 많은 사람들, 특히 이 교회의 집사님, 권사님들이 주중에는 신앙에 따라 살지 않으시더군요. 그분들은 거짓말쟁이이자 위선자들입니다. 도둑질하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일하면서 목사님께서는 보실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가난한 흑인 아이들을 위해 값을 대신 치러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영수증을 조작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호튼은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지역유지들이 위선에 가득 찬 채 일요일만의 신앙생활에 빠져있었던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입니다. 그는 책보다도 일하던 가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흑인 민권운동의 배후 '하이랜더'

1932년 하이랜더 세운 호튼은 초창기에는 농촌운동과 노동운동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고, 1950년대부터 흑인을 위한 '문해교육' 운동에 집중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법원에 가서 유권자등록을 해야만 투료를 할 수 있었지요. 흑인들에게는 이름쓰기나 영수증 작성 같은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면서 최종적으로는 투표를 할 수 있는 시민권을 얻는 일에 집중하였다고 합니다.

하일랜더 문해교육반의 첫번째 강좌가 끝났을 때, 참가자의 80%가 법원에 유권자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문해교육은 글자를 읽히고 쓰는 것뿐만 아니라 투표권을 획득하여 시민권을 행사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문해학교는 곧 시민(권)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1957년 1월부터 1961년까지 400여명의 교사들이 시민학교 프로그램을 수료하였고, 다시 40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시민학교 프로그램으로 교육하였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하일랜드 지역의 선거권자는 무려 300%이상 증가했다는 것 입니다.

제도권 교육 밖에서 이루어진 하이랜더의 탁월한 시민교육 사례는 사실 국내에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하이랜더가 미국 시민권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이랜더에서 수십 번의 모임과 워크숍을 연 후, 미국 인종문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시민권운동이 일어났다. 로자파크스는 하이랜더에 몇 달간 머무른 후,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라는 백인 남자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촉발했다."

미국 시민권운동 초창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배후'는 바로 하이랜더였던 것 입니다. 흑인들이 선거권과 정치적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으며, 대중적인 흑인 지도자들이 교사로 참여하여 '문해교육'의 원리를 개발하였다는 것 입니다.

민중교육, 1년 만에 유권자 130만명 조직

프레이리 역시 탁월한 사회교육운동가이자 문해교육 실천가 입니다. 1959년 브라질에서 레시페시에 급진적 민주주의자인 미구엘 아레스가 시장으로 당선되자 헌법 개정을 위하여 농민들에게 투표권을 줄 수 있는 문해교육에 시작합니다.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였던 농민, 빈민들은 글을 읽을 수 없어 투표에 어려움을 겪었고 프레이리는 이들을 교육시키는 민중문화운동의 책임을 맡았으며, 1960년에는 국가 문해교육 프로그램 책임자가 됩니다.

1964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적으로 백만 명에 이르는 비문해자들이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방법으로 글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프레이리는 다른 수백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브라질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투표권자의 수가 80만 명에 불과하던 당시 페르남부코의 상황에서 1년 사이에 자그마치 130만 명이 넘는 새로운 유권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정권의 권력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프레이리와 호튼은 모두 문해교육과 선거권을 결합시킴으로써 단순한 문해교육을 시민(권)교육으로 끌어올렸고, 바로 그 성과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된 권력구조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고 결국 가혹한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프레이리는 쿠데타 정부에 체포되어 투옥과 고문을 당한 후에 국외로 추방당하며, 호튼 역시 매카시 선풍이 닥치자 공산주의자들과 접선하였다는 이유로 고초를 당하고 하이랜더 소유자산과 부동산을 압수당합니다. 

자유에 대한 믿음, 급진적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두 사람은 반대 세력의 음모와 공격으로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낙관주의를 버리지 않습니다. 호튼과 프레이리는 사회변혁을 위한 '민중교육' 일생을 바친 경험을 통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믿음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민중들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확고한 믿음이다. 둘째는 민중들이 자기 해방을 위해 자유를 성취할 수 있으며,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급진적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다."

호튼과 프레이리는 진정한 해방은 민중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며, 참여는 그 자체로 해방적이며 참여적인 교육실천으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호튼과 프레이리의 탁월함은 그들의 사상이 추상적이지 않다는 것 입니다.  그들의 사상은 각자의 삶속에서 이론과 실천을 결합시키면서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제도권에서 이루어진 프레이리의 성공사례와 제도권 밖에서 이루어진 호튼의 사례는 그들을 뒤쫓는 민중교육 활동가들에게 '조건'을 탓할 수 없는 실천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말미에 호튼이 소개하는 동양 철학자의 시 한 편은 독자들을 다시 한 번 놀라운 감동으로 끌어들입니다.

민중에게 가서 민중에게 배우라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사랑하라

민중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고 

민중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라

그러나 최고의 지도자는

모든 일이 끝나고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때,

'우리 힘으로 이 일을 해냈다'고

민중 스스로 말할게 할 수 있는 자일지니...


여러분 놀랍지 않은가요? 기원전 604년에 노자(老子)가 쓴 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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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6-19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근데... 민중도 제대로 없는 이 나라의 교육은 너무 슬퍼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