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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외로운 전쟁
김용한 지음 / 포북(for book) / 2009년 7월
평점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00만 명 추모인파가 봉하마을을 다녀가고 49재와 안장식 이후에도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추모 콘서트 제목 그대로 다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서점가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 신드롬이 일어나 여러 권의 추모시집과 인터뷰집, 어린이 책을 비롯하여 서거 이후에만 20여권의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김용한이 쓴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FOR BOOK 펴냄)은 2000년 총선을 전후한 특정한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선거 기획 전문가인 정치컨설팅 그룹 MIN 대표인 박성민씨는 그가 쓴 책에서 정치를 일컬어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기는 게임"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은 "옳은 것이 강한 것에 이겨야 한다"는 신념을 펼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용한이 쓴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은 옳은 것이 이기는 세상,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위하여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걸어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분수령이 된 2000년 총선 당시의 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집권당의 부총재이며 정치 1번지 종로구 국회의원이라는 기득권과 탄탄대로를 버리고 '화합과 통합의 정치'라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신념, 이상을 펼치기 위해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하는 '바보 노무현'의 가장 치열했던 순간을 담은 기록입니다. \
아울러, 그 순간 험난한 가시밭길에 동행했던 참모인 이른바 '땅개'들의 고군분투, 그리고 유권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지역감정과의 대결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바보' 노무현은 바보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열두 척의 배로 일천여 척의 일본 수군에 맞서면서 "必生卽死 必死卽生"라는 말로 군사들을 독려하였다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스스로 죽어서(선거에 떨어져야) 다시 사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저자 김용한은, 2000년 총선이라고 하는 특정 사건을 중심에 둔 기록을 책으로 엮어낸 이유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절규해왔던 지역 통합의 정치이념인 '노무현 정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부산에서 출마, 다시 가시밭길을 가다
그리하여,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은 그가 모든 기득권을 훌훌 벗어던지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앞으로 지역구를 부산이나 경남 지역 중 한 곳을 정해 출마하겠다."
1999년 2월, 노무현 의원은 청와대를 다녀오고 나서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발표를 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부산 출마에 대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부산에 내려온 것은 우리 역사에서 대립과 반목, 그것을 한번 극복해보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역 갈등 상황은 위험 수위에 달해 있으며 그러한 적대감과 대결을 부추기는 정치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분리가 곧 불평등을 의미'하듯 지역분할구도가 지역의 상대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본문 중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를 통하여 지역을 뛰어넘는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고, 화해와 용서·사람이 넘치는 감동의 정치를 이루어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지역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를 바보라고 불렀던 것이구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붙여 준 별명 중에서 '바보'라는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하였습니다. 2000년 총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말하자면, 2000년 총선 부산 출마는 정치를 안 했으면 안 했지 명분과 원칙에 어긋나는 구차한 기회주의식 정치는 않겠다는 정치인 노무현의 굳은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 총선, 부산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지역을 뛰어 넘는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종로 선거구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 온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에서는 가수 방실이를 닮은 '선동대장 방실이 아줌마'의 입을 빌어 말해주고 있습니다. 선동대장 방실이 아줌마는 왜 노무현을 지지하였을까요? 그녀는 살기가 힘들어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지는 지난번 부산시장 선거 때부터 노무현 후보님을 지지해 왔심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 우리 같은 서민이 잘살 수 있을 것 같애서........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듭니까? 열심히 열심히 해도 생활이 안 나아지니까 그래서예......." (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맞심더, 인물이야 좋지예, 내도 노 후보를 좋아한다 안캅니꺼. 그런데 대중이 밑에 들어가 그게 꼴 뵈기 싫어지지 안할랍니다. 민주당이라 카마 호남당 아인교? 호남당. 그라마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오라 카이소. 팍 찍어준다 카끼네." (본문 중에서)
2000년 총선 당시 많은 부산 사람들은 노무현은 좋은데, 그가 민주당이라서, 호남당, 김대중당이라서 찍어줄 수 없다고 드러내놓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노무현의 입장은 분명하였습니다. 그는 지역감정 앞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벽을 허물기 위하여 출마하였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밝힙니다.
"부산에서 콩이면 광주에서도 콩이고, 광주에서 콩이면 충청도도 콩인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 중에서)
지역을 뛰어넘는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정치 1번지 종로구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 온 노무현은 초반 여론조사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역감정의 높은 벽에 부딪쳐 패배하고 맙니다. 2000년 4월 13일, 부산 북 강서을 유권자들은 지역감정의 높은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노무현에게 패배의 쓴 잔을 안기지만 그날 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必生卽死 必死卽生"
노무현의 패배가 알려진 그날 밤, 6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노무현의 패배에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렸고, 하룻밤 사이에 약 18만 명의 누리꾼들이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정치인 노무현이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충격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던 그때, 사이버 공간에서는 수많은 네티즌들이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한국 정치의 내일과 희생을 애절하고도 뜨겁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홈페이지에는 "아름다운 바보 한국인! 힘내세요!!" 같은 글이 끝도 없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노무현 후보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투표장에 들어가니 붓두껍을 든 손이 1번으로 가더라. 그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노무현은 바보다. 그러나 아름다운 바보다. 우리나라가 잘되려면 그런 아름다운 바보가 더 늘어나야 한다."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며 어느 부모도 제 자식에게 정치가가 되라고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의원을 보면서 나는 다섯 살 난 아들이 자라면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노 의원 같은 정치가가 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4.13 총선에 기권했지만 노무현 의원이 낙선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 같은 방관자적 자세가 그를 떨어뜨렸다고 생각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노 의원이 지역감정 타파 실험을 중지할까 걱정되어서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00년 5월 7일 대전 고속버스터미널 앞 카페에서 처음 만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라고 합니다. 이 모임은 한 달 후 그들은 정식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몇 개월 만에 2000명이 넘는 회원을 가진 거대한 조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새로운 바람은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불기 시작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낙선 후에 '지역감정 해소책'을 주제로 강연을 하러 광주에 갔을 때는 밀려드는 시민들의 사인 공세 때문에 강연이 끝나고 30분 가까이 행사장을 떠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인기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한테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정치인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상향적인 민심의 지지를 받는 열성적인 고정 팬을 둔 최초의 정치인이 된 것입니다. 이윽고 노무현의 정치노선과 철학에 공감하는 사람들, 혹은 그냥 서민들이 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혹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불과 2년 후에 노무현을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기적'을 이루어냅니다.
실속도 없이 노무현을 도운 이유
저자 김용한은 사람들이 "너는 왜 실속도 없이 노무현을 돕느냐"고 묻는다면 서슴치 않고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돕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것으로, 상식과 원칙이 승리하는 사회가 되기를 조금이라도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저자뿐만 아니라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노사모를 비롯한 지지자들, 그리고 탄핵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들 모두 원칙과 상식이 승리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그와 함께 하였을 것입니다.
아울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 봉하마을과 전국 곳곳의 분향소를 찾은 이들도 역시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도운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자신들의 꿈을 함께 이루어왔던 것이지요.
때문에 노무현 지지자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은 순수한 자원봉사자들이 대부분이었고, 노무현의 정치철학과 명분에 공감을 느껴 따르는 사람들이었으며 노무현과 같은 서민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노무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무현과 함께 원칙과 상식이 승리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불나비들이었던 것입니다.
김용한이 쓴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은 2009년 5월 23일, 그 불행한 사건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책으로 나오지 않고 묻혀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무모하리만치 숭고한 도전, 슬프도록 아름다운 도전 기록을 담은 이 책은 "必生卽死 必死卽生"의 기적 같은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노무현의 외로운 전쟁>을 읽다 예전에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 엮은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살아가는 법>에서 읽은 '정치'라는 주제의 글이 생각나 소개합니다.
어쩌면 좀 괜찮은 사람인 척 하는 우리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대가'를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치
좀 괜찮은 사람들은
정치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좀 괜찮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권력을 내주고
그들로부터 지배받는 벌을 받는다.
- 막시무스가 쓴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