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140자의 매직
이성규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블로거 몽양부활이  쓴 <트위터, 140자의 매직>

유명한 IT관련 재단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트위터를 소개 받고 처음 등록한 것이 2009년 3월 31일입니다. 첫 날은 가입 인사말만 트위팅하였구요.  

"OOO님 권유로 트위터 시작했습니다. 좀 전에 가입했는데...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네요. 마산YMCA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 후 한 달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가끔 트위터 싸이트에 들어가서 그냥 구경만 하였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저랑 같은 날 트위터를 시작한 유명인사로 진보신당 심상정 전 대표가 있네요.

트위터 붐을 일으킨 김연아(5. 22)나 유명 인사인 김주하(7.16), 김제동(8. 5), 박중훈(7. 28), 김형오(6.11), 노회찬(7.6), 최문순(6.17), 박용만(5.30) 같은 분들보다는 빨리 시작한 셈이지만, 등록만 해놓고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시간만 흘렀습니다.

한 달 후 4월 30일, 시흥시장 시민후보 선거결과를 보고 누군가에게라도 말을 좀 해야겠다 싶어 다시 한 번 트위팅을 시도해봤습니다.

“선거 결과가 희망의 단초를 발견하게 하네요. 시흥시장 선거 무소속 시민후보 벽을 참 넘기 어렵네요. 참”

몇몇 분들이 답 글을 보내주셨지만 별로 신통치 않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처음 두 달간 저의 트위터 사용기의 전부입니다.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가 연달아 트위팅 될 때는 한가한 사람들의 ‘싸이질’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트위터, 도대체 이걸로 뭘 하라는 거야?

그 후 몽양부활이 쓴 <트위터, 140자의 매직>을 읽기 전까지 모두 47개의 글을 트위팅 하였습니다만, 모두 블로그 포스팅 한 글을 자동으로 트위팅 해주는 티스토리 기능을 이용한 것 일 뿐입니다.

김연아 트위터 열풍 이후에 언론에서도 앞 다투어 트위터를 소개하고 있었지만, 낯가림도 좀 있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걸 어려워하는 저는 쉽게 트위터의 세계로 빠져들기 어려웠습니다.

한 마디로 <트위터, 140자의 매직>을 만나기 전 까지 트위터는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을 저의 followers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단방향 매체일 뿐이었습니다. 트위터를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된 것 입니다.

블로거 몽양부활이 쓴 이 책은 “신선하고 혁신적인 커뮤니케이션 공간에 참여하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기초적인 정보”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소셜미디어라는 측면에서 트위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트위터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트위터로 무엇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더 많은 공을 기울렸다. 트위터라는 갑자기 떠오른 ‘듣보잡’ 해외서비스가 지닌 정치, 사회, 경제적 가치가 무엇이고, 내가 참여하면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엮으려고 노력했다”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트위터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정치사회적인 의미에 더욱 주목하고 있는 책입니다. 책의 구성 역시 그런 저자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사용법은 제 5장에서야 다루고 있고, 1장 ~ 4장까지는 트위터의 탄생과 성장, 트위터 열풍의 실체, 트위터 저널리즘의 현실, 그리고 소셜미디어로서 트위터의 가능성에 대한 내용을 풍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트위터가 주목받는 이유?

트위터가 주목받고, 트위터 때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외견상 트위터가 한국에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국내 서비스도 시작하지 않은 외국 서비스에 김연아, 이외수, 김형오, 이명박 유명인, 정치인들이 가입하고 트위팅을 하기 시작한 영향이 큽니다.

그러나, 정작 트위터 사용자와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진짜 이유는 웹기반 서비스의 본질적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트위터, 140자의 매직>을 쓴 이성규는 트위터 열풍의 실체는 ‘실시간성’에 있다고 말 합니다.

실제로 트위터 저널리즘이 떠오르게 된 것도 트위터의 ‘속보성’ 그리고 ‘실시간성’이라는 특성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기존 언론사를 앞지르는 트위터 속보성을 보여주는 3대 사건으로 ‘허드슨강 비행기 추락사건 속보’, ‘이란 대선 속보’ 그리고 ‘마이클 잭슨 사망소식 속보’를 들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의 취재에 트위터가 활용되어 ‘속보성’을 더해 주었다는 국내 사례도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기관 DDoS 공격사건 기사입니다. 아울러 실시간성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 사망 확인하는 속보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불과 1시간 30분 만에 트위터를 통해 밝혀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트위터의 ‘오보’, ‘루머’ 확산에 대해서도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 합니다. 그는 제프 자비스라고 하는 저명한 블로그 칼럼리스트의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증명됐지만 웹에는 루머가 퍼지는 것처럼, 진실도 그만큼 빨리 퍼져나간다며 기성언론의 보도를 일갈했다. 그에 따르면 루머를 퍼뜨리는 공간이 웹이라면 그걸 뒤집는 진실을 퍼뜨리는 공간 또한 웹이다.” (본문 중에서)

앞서 소개한 비행기 추락사건이나 주요기관 DDoS 공격사건, 김대중 대통령 사망보도 등이 모두 이런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에 해당되는 것이지요. 웹 기술을 이용한 트위터는 집단에 의한 실시간 필터링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라는 것 입니다.

또한, 트위터의 저널리즘적 활용 가능성을 ①속보의 발견, ②인터뷰 진행, ③간단한 피드백과 사실 확인, ④업무의 프로모션 이라고 호주의 대표적인 미디어 블로그 ReadWriteWeb를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트위터가 세상을 바꾸는 소셜미디어가 될 가능성

저자는 트위터가 소셜 미디어 효과를 발휘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를 꼽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촛불집회의 ‘소셜 미디어 효과’의 발원지가 ‘아고라’였다면, 미국에서 이루어진 오바마발 소셜 미디어 발원지는 바로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 사이트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대선이 치르질 때까지 오바마의 트위터에 친구를 맺은 네티즌은 무려 13만여 명. 그가 맺은 친구 수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5000여명 수준에 불과한 그친 매캐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치다.”

이뿐 아니라 페이스북 300만명, 마이스페이스에선 84만명이 오바마를 친구로 등록하였다고 합니다. 소셜 미디어의 선택을 받은 오바마가 폭넓은 풀뿌리 지지자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009년 1월 기준으로, 오바마가 모금한 3200만 달러 가운데 90퍼센트인 2800만달러는 모두 온라인으로 모금됐다. 선거가 끝날 무렵까지 페이스북에서만 무려 93만 2000여 명의 소액기부자가 자신의 주머니를 열었다.” (본문 중에서)

소셜미디어는 오바마 대통령 탄생에 기여하는 한편, 오바마 대통령 탄생의 수혜를 입어 대선기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기도 하였답니다. 오바마 취임식 역시 트위터에겐 호재로 작용하였는데, 초당 트위팅 건수는 평소 5배, 분당 트위팅 건수가 4배 증가하였다는 것입니다.

미디어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저자 이성규는 소셜미디어로서 트위터의 미래와 가능성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습니다. ▲ 2012년 대선 아이폰 3GS와 트위터가 만나면, ▲ 트위터 시국선언 모집에서 발표까지 같은 글들은 바로 소셜미디어로 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사회변화 가능성을 전망해보는 글 들입니다.

저자, 몽양부활 소셜미디어로서 트위터에 대한 기대가 대단합니다.

“트위터는 ‘사회적 소통의 동맥경화’를 치유해 여론과 현실이 괴리되는 현상을 방지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정상적인 대의체계를 작동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아무쪼록 저자의 바람대로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트위터의 정치, 사회적 가치까지 경험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읽어주는 남편 - 책꽂이에서 연애편지를 꺼내다
허정도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소리 내어 책을 읽어보셨나요? 세상 많은 엄마들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기를 위하여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줍니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때부터 더 이상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보채지 않을 때까지 책을 읽어줍니다. 아직 드물기는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빠도 적지 않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좀 더 자라서 혼자서 책을 읽을 무렵이 되면 대부분 엄마, 아빠는 책 읽어주기를 그만둡니다.

가끔 영화나 소설에서 아버지를 위하여 책을 읽는 아들이나 엄마를 위해 책을 읽는 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책을 읽는 일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더군요.

책 읽어주는 남편? 이 책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되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올 초에 개봉한 독일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를 말하는 거냐는 물음입니다. 독일 소설 <더 리더>나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와 아무 상관없는 이 책은 건축가이자 경남도민일보 대표를 지낸 언론인 허정도가 쓴 독서일기 같은 글입니다.  

아내를 위해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남편?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영화나 소설이 아닌 실화라는 이야기입니다. 독일 소설 <더 리더>나 올해 초에 개봉한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가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아내를 위하여 매일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던 남편이 쓴 책입니다.

<책 읽어주는 남편>은 지은이 허정도가 그의 아내 정미라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책에 관한 이야기와 그 책으로 인해 오랜 기억 속에서 집어 낸 삶을 담은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부부가 함께 읽은 스무 권 책의 '정수'를 모은 책이기도 하고, 두 부부가 함께 살아온 삶을 담은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책 '날개'에는 지은이와 나란히 그의 아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어보면 왜 두 사람이 나란히 소개되어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글쓴이는 남편이지만, 아내와 함께 책을 읽고, 아내와 함께 나눈 이야기 그리고 아내와 함께 살아온 삶이 바로 이 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은이는 '책 읽어주는 남편'으로 소개되어 있고, 그의 아내는 '듣는 아내'로 소개되어 있는데, 사실은 책을 읽어주는 '단순노동'(?) 보다 더 '내공'이 필요한 일이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간혹 아내가 읽어줄 때도 있지만 보통은 내가 읽습니다. 내가 잘 읽어서가 아니라 듣는 데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듣기를 시작해 빠르면 5분, 늦어도 10분 안에 까무룩 잠이 듭니다.......그러니 몇 시간 동안이나 졸지 않고 무던하게 듣고 있는 아내가 놀랍습니다." (본문 중에서)

책 읽는 소리를 듣는 일은, 그냥 혼자서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칫 조금만 방심하면 이내 딴 생각에 젖어들거나 잠을 물리치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책, 읽기가 쉬울까? 듣기가 쉬울까?

허정도가 쓴 <책 읽어주는 남편>은 아주 독특한 형식으로 씌어진 '독후감'입니다. 마치 소설을 보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고갑니다. 과거는 책을 읽는 부부의 삶이고, 현재는 함께 읽는 책 속에 있는 오늘입니다.

존 우드가 쓴 <히말라야 도서관>편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됩니다. 아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일의 진행과정,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신 직후 작가가 쓴 '토지'를 소리 내어 읽으며 추모한 이야기, 그 다음에는 존 우드의 히말라야 도서관 이야기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히말라야 도서관>에 씌어진 존 우드의 삶을 소개하는 과거에서 빠져나오면, 책 읽은 소감을 나누는 부부의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독특한 구성 때문에 책을 읽어보면 그냥 독후감을 보는 느낌보다는 꼭 소설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한 편 읽고 있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게 됩니다.

아울러 허정도가 쓴 <책 읽어주는 남편>은 여느 보통 독후감보다 훨씬 끈끈하고 깊은 맛이 배어 나오는데 그것은 아마 어렵고 힘겹고 가난했던 삶의 기억에서 묻어나오는 따뜻함과 애절함 때문인 듯합니다.

신경숙이 쓴 소설 <리진>을 읽는 동안 부부가 주고받은 이야기는 '듣는 아내' 정미라가 기억하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에 관한 기억 한 자락입니다. 

"아내가 말한 초등학교 때 은사는 조용욱 선생님으로 육지에서 섬으로 들어와 교사생활을 했다 합니다. 설령 아이들을 방치해 놓는다 해도 누구도 간섭하지 않을 섬마을 작은학교에서 조용욱 선생님은 열정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답니다. 편모 슬하에 살림살이마저 가난했던 아내는 차별 없이 대해준 선생님이 더욱 고마웠던 모양입니다."(본문 중에서)

소리 내어 부르는 것만으로도 애틋한 이름들

랜디 포시가 쓴 베스트셀러 <마지막 강의>를 읽으며 '책 읽어주는 남편' 허정도가 기억해낸 아버지에 관한 기억 역시 따뜻함과 애절함이 묻어납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버지가 아직 어린 세 아이를 위해 '마지막 강의'를 읽으면서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입니다.  

"태어나보니 식민지 시골 빈농의 아들이었고, 교육받지 못했으니 출세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일제기와 전쟁을 거치고 나니 마흔이 되었습니다. 희망없는 시대에 청춘을 보냈고 가난과 더불어 일생을 보냈습니다. 세상은 아버지가 감히 희망 한 번 품어보지 못할 만큼 어둡고 거칠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사춘기 때, 리어카로 행상하시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한 적이 있습니다. 길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괜히 움츠러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반기셨지만 못난 아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아버지가 부끄럽다니..., 그렇게 힘들여 번 돈으로 먹고 마시고 입고 자고 공부까지 하는 자식 놈이 말입니다." (본문 중에서) 

모두가 힘든 그 시절,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좀처럼 자식들에게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웠습니다. 세상 많은 아들들이 그 시절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였기 때문에 훗날 철이 들고나면 사춘기 시절의 어리석음을 용서받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곁에 없기 때문에 더 안타까워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혜정이 쓴 <친정엄마>를 함께 읽으며 기억해 낸 '책 읽어주는 남편'의 장모, '듣는 여자'의 친정엄마에 관한 기억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30여 년을 살면서 서로 못다한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함께 책을 읽으며 기억해보니 아직도 서로 못다한 기억들이 적지 않더라는 것 입니다.  

"아내는 생후 20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젊은 홀어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체구가 작고 몸이 건강하지 못했던 장모는 거제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땅 한 평, 밭 한 뙈기도 없이 큰아들과 밑으로 네 딸을 혼자 힘으로 키웠습니다........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막내딸이 측은해서 어머니는 아내에게 각별했고 아내는 그 사랑을 받아먹고 자랐습니다."(본문 중에서) 

함께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부부는 책으로 인해 더 많은 삶을 공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다는군요. 단숨에 읽어내는 단편뿐만 아니라 긴 장편을 읽을 때에도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을 소리 내어 읽고 쉬는 동안에는 책으로 인해 떠올리게 되는 젊은 날의 기억을 공유하게 되었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내와 차분하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내와 아내의 어머니 사이에 감추어 두었던 서러움과 아픔,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향한 애잔한 그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풀어졌고 그 속에 아내의 회한이 녹아나왔습니다."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이것을 '책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위대함'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과거의 기억으로만 돌려놓지는 않습니다. 책은 부부에게 새로운 경험 세계를 열어주기도 새로운 인생계획을 세우게도 합니다. 책 한 권 글 한 줄로 인생이 바뀐 사람이 어디 이 부부뿐이겠습니까?

마음을 움직이게 위대한 힘을 가진 '책'

지은이는 아내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기대하지 않았고 예측하지 못한 재미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친정엄마>를 읽으며 붉은 팥칼국수가 전라도 음식이란 걸 알게 되었고 나이 오십이 되어 처음으로 팥칼국수를 먹어보고, 김남희가 쓴 히말라야 여행기를 읽고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계획을 세우기도 하더군요. 

부부가 함께 앉아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고 들으며 삶을 윤택하게 하는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한 부부는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도 책이며,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고 들어주는 삶도 물려주고 싶어 합니다.

"우리 부부는 훗날 아이들에게 읽은 날짜가 적힌 책들을 남겨주기로 했습니다. 한술 더 뜬 아내의 제의를 받아들여 좋은 책 한 권을 택하여 읽는 소리를 녹음하기로 약속하기도 했습니다."(본문 중에서)

법정 스님이 쓴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으며 가장 반가웠던 대목이 바로 자식들에게 부모가 함께 읽은 책을 삶의 자취와 정신적 유산으로 남겨주라는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그리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던 터라 스님의 말씀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합니다.

"자식에게 책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다"

시인 도종환 선생은 이 책 추천사 첫 머리에 "부부가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썼습니다. 책을 함께 읽으며 주인공들을 따라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눈이 퉁퉁 붓도록 같이 울기도 하고, 다가올 시간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는 이 부부의 모습이 부러웠다고 합니다.  

지은이가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것은 '안부대상포진'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도리와 의무 혹은 서비스 차원의 이벤트 비슷한 것"이었지만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한 후에는 생각하지 못하였던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연히 시작한 소리 내어 책읽기에서 삶의 또 다른 재미와 의미를 발견한 부부는 꾸준히 함께 책을 읽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들이 찾은 낭독이 주는 행복한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책과 삶, 추억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 책은 한 번 손에 쥐면 놓을 수 없을 만큼 흡입력이 있지만 지은이가 읽은 책 속의 주인공과 지은이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지은이는 간결한 문장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읽은 책을 소개하면서 여러 번 간결한 문장이 좋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쓴 책 역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합니다. 그래서 읽기에 더 편합니다.

지은이가 아내와 함께 읽은 스무 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인용한 글들은 그가 가진 삶의 철학과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감동과 교훈을 갖게 되는 것은 살아가는 삶과 철학 그리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읽은 많은 책을 저도 읽었습니다. 저 역시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어놓은 곳도 많습니다. 지은이가 <책 읽어주는 남편>에서 인용한 스무 권의 책에서 찾아낸 인용문을 보면 지식인으로서 올바르고 곧은 삶을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책 한 권 소리 내어 읽어보지 않으시렵니까? 다른 책도 좋지만, 소리 내어 읽는 책 읽기의 특별한 즐거움을 소개하는 <책 읽어주는 남편>을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이혜영 지음 / 한국방송출판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지리산 둘레길 800리.
전체 300km 구간 중 지금까지는 남원 주천에서 산청 수철까지 70여km가 개통되었다. 지리산길 조성은 사업은 2007년부터 '사단법인 숲길'이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사)숲길은 지리산생명연대가 지리산길 사업을 위해 설립한 부설법인이고, 지리산생명연대는 도법스님을 비롯한 생명운동가들이 참여하여 지리산권을 중심으로 환경운동과 생명평화운동을 펼쳐온 단체이다.

(사) 숲길은 산림청이 복권사업으로 조성한 녹색자금의 지원을 받고, 지리산을 둘러싼 5개 시군의 협력을 받아 지금까지 70여 km 구간을 개통하였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매년 조금씩 개통되어 2011년 즈음에 순환형의 지리산 둘레 길이 완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산림청의 일방적인 약속파기로 우여곡절 끝에 5월까지 70km만 간신히 개통되고 나머지 구간은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어 버렸다고 한다.

늘림과 성찰의 길, 지리산길

(사)숲길은 느림과 성찰의 길, 그리고 책임여행을 제안해왔다. 지리산길을 걷는 여행자뿐만이 아니라 그 길위에서 살아온 주민 역시 똑같은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들썩한 관광상품이 되는 방식을 지양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구간 개통이 여러 지방자치 단체로 이관됨으로써 이 길의 '초심'이 지켜질 수 있을지 하는 염려가 많이 있다. 지자체들의 막개발식 예산 따먹기 혹은 전시행정으로 흐르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느림과 성찰의 길'이라는 초심을 지킬 수 있을지하는 걱정 말이다.

지난 8월 1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남원 운봉에서 함양 마천 벽송사에 이르는 30여 km를 구간을 지리산길 안내센터 홈페이지와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을 길잡이 삼아 다녀왔다.

지리산길 안내센터는 걷기 여행자를 위한 단순 정보 제공이 전부였던 반면에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은 마을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가 담겨있는 온기 넘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4차선 도로 반대운동이 탄생시킨 지리산 둘레 길

2004년 무렵, 익산지방국통관리청과 남원시는, 남원 인월에서 함양 마천으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추진하였다. 2차선 도로가 4차선 도로로 확장되려면, 산을 더 깍고, 터널 2개를 뚫고, 교량 3개를 세워야 대공사가 벌어져야 했었다. 거대한 공사판이 벌어질 상황에서 인월과 산내면 주민들이 확장공사를 막아냈다고 한다.

주민들은 터널과 4차선 도로가 아니라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뚜렷하였고, 확장 공사 저지를 기념하여 '강 따라 길 따라 60번 지방도변 마을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만들어놓은 지도를 보니까 첨엔 남의 동네를 보는 것처럼 신기하더라고. 새삼 우리 마을이 이렇게 이뻤던가 싶고. 사람 사는 것이 그래야 해. 차만 쌩하니 가버리면 뭐 해!"(본문 중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속 마을 을 연결하는 길이 지리산길의 모태과 되었다는 것이다. 도로 확장 저지운동은 지역주민들에게 '길'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고, 주민들과 실상사, 시민단체의 아이디어가 모여 '지리산길'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그냥 단순한 여행 안내 책자가 아니다. 그가 쓴 책에는 처음 지리산 둘레 길을 연 사람들의 '초심'이 담겨있고, 여러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길과 숲, 역사와 마을에 관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다음은 이혜영이 소설가 김훈의 작품에서 찾아낸 '숲'이라는 글자에 대한 표현이다.

"숲이라는 글자는 모양 마저도 숲을 닮아서 글자만 들여다봐도 숲에 온 것 같다고. 발음으로 분리해서 봐도 마찬가지다. 'ㅅ'의 날카로움, 'ㅍ'의 서늘함은 모두 바람의 잠재태라는 것이다. 그 잠재태가 모음 'ㅜ'에 함께 실리면, 나무숲에 이는 부드러운 바람난다. 숲. 길게 발음하면 '수-우우우ㅍ'. 그럴 때면 바람이 일어 풀을 스치고. 작은 나무가 머리를 살랑이고, 큰 나무는 온몸을 휘청거리는 것 같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쓴 이혜영은 직접 걸어서 어떤 때는 차를 타고 지리산 둘레 길을 직접 답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40여권에 달하는 많은 참고자료를 뒤져 '숲'이라는 글자에 대한 표현과 같은 보석 같은 문장들을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들여주고 있다.

소설이나 문학작품만 섭렵한 것이 아니라 역사책, 여러 사람들이 쓴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지리산 둘레길에 얽힌  자료를 찾아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에 모두 담았다. 그래서, 이 책에는 걷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마을 이야기,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야기, 지역 역사와 문화이야기 그리고 지금도 지리산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책을 읽어보면, 그녀가 지리산길을 걷는 동안 참 많은 길 위의 사람들과 그에 걸쳐있는 동네 사람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그녀가 쓴 책에는 사람들이 지리산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장항마을 당산소나무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윗당산, 아랫당산, 중간당산이 흩어져 있다는 것과 옛날에는 세 군데서 모두 당산제를 지냈지만 지금은 윗당산에서만 제를 지낸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마을 주민 이영자씨의 입을 빌어 장항마을 당산제를 지내는 광경을 마치 사진으로 보는 것 처럼 생생하게 전해준다.

"당산제 지내는 사람은 사흘을 깨끗한 찬물로 목욕재계해야 돼. 당산에다 금줄 치고 바람골에서 물 길어 와서 밥 짓고. 제사 지내고 나서 윗당산 돌담 아래다가 돼지머리를 묻어. 나중에 파봐서 그게 없으면 산신이 잡순거라고 했지. 동네에서 일 터지면 당산제를 잘못 지내서 그런 거라고 했어. 아주 중요한 행사였지." (본문 중에서)

그래서,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그냥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다. 800리 지리산길을 걷는 길잡이 일뿐만 아니라 지리산길을 함께 걷는 길동무이기도 하다. 지리산길을 걷다가 다리쉼을 하는 당산나무 아래서나 마을 입구 정자나무 그늘아래서 이 책을 꺼내 읽으면 딱 제격이기 때문이다. 


길잡이 책, 그리고 길동무 책

지리산길을 걷기 위해 오는 기차나 버스안에서, 하루하루 걷기를 마치고 민박집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지나온 길, 그리고 걸어갈 길에 담긴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솔솔하기 이를데가 없다.

수 백장이 넘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독자들 마음을 지리산길로 확 잡아 끌고, 마을과 구간별로 구분해놓은 상세한 구간지도와 마을민박, 숙박, 식당과 음식에 대한 정보는 분명 덤이다.

아울러, 이 책에는 앞으로 개통될 전남 구례, 경남 하동 그리고 개통된 길에서 더 나아간 산청과 남원의 일부구간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책에서 앞서 소개하는 구례와 하동구간 지리산길의 윤곽은 다음과 같다.

"구례길은 구한말  지조 높았던 선비 매천 황현의 사당, 운조루, 섬진강변의 석주관 칠의사묘 등 역사의 굵직한 흔적들을 더듬어간다. 섬진강을 낀 시원한 들마을을 이어 마지막엔 지리산 피아골 깊숙이 들어간다. 하동길은 화개 차밭 사이를 걷다가 형제봉을 넘어 악양 들판을 배려다보는 경관이 멋지다. 악양에서 회남재를 넘어가면 오지 아닌 오지 청학동 초입. 지리산길응 여기서 방향을 달리하여 인적 드문 갈치재를 구불구불 넘어 산청으로 간다." (본문 중에서)

이렇게 이어지면 지리산 둘레길 800리가 모두 열리는 것이다. 미리 가보는 지리산길 역시 이 책에 담긴 보너스가 틀림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개념있는 여행 책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은 지은이 스스로 강조 하였듯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개념있는 여행 책이다. 그냥 단순한 볼거리, 먹을거리, 교통편, 그리고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만 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지은이는 금계-동강 그리고 동강-수철 구간을 소개하면서 분단과 한국전쟁이 빚어낸 가슴 아픈 상처인 빨치산 활동과 민간인 학살 문제를 끄집어낸다. 여행 책의 분위기로는 다소 무거운 느낌을 줄지도 모르지만, 지리산과 그 길이 담은 회한의 역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벽송사 뒷편 산길에 세워 놓은'공비'(?) 마네킹과 빨치산토벌전시관 자료에 따르면, "빨치산은 민족사에 오점을 남긴 씻을 수 없는 범죄 집단이고 집단 최면에 걸린 시대의 분운아"라는 것이다.

"북한에선 최고 혁명가로 추앙받은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이 땅에선 헛된 꿈으로 인명 피해를 야기한 공비의 우두머리가 된다."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학계를 중심으로 빨치산을 비롯한 해방정국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만나는 역사기념관의 자료는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천박한 수준임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빨치산에 얽힌 회한의 역사 이야기를 전하면서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아니타 레인이라는 호주 가수가 부른 노래 '벨라  차오(Bella Ciao)라는 노래를 소개하고 있다. 애인을 두고 떠나는 이탈리아 빨치산의 마음을 담은 유명한 노래라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애잔하고 아름다운 이 노래를 찾아냈지만, 망할놈의 저작권법 때문에 함께 들려줄 수 없어 여간 아쉽지 않다.

지리산길 위에 새겨진 상처를 보듬어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도 지은이의 몫이었던가 보다. 700여기의 억울한 죽음이 묻힌 방곡리 민간인 학살 추모공원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최근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산청 외공리, 원리 민간인학살 터 발굴 현장도 놓치지 않는다.

지리산길과 이어지는 길, 제주 올레길

한편, 이 책에는 지리산길 뿐만 아니라 제주 올레길에 관한 소개도 60여쪽이 넘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서는 제주올레길로 지은이의 호기심이 뻗쳐갔다는 것이다. 이혜영은 두 길을 걸으며 생각해보니 지리산과 제주섬은 이란성 쌍둥이더라고 한다.

"제주도에도 한라'산'이 있고, 지리산에도 구름 '바다'가 남실거린다. 제주의 돌담을 닮은 석축이 지리산의 다랭이 논을 떠받치고 있다. 지리산은 유배받은 산이었고, 제주도는 유배의 사람이었다. 제주 4.3은 지리산의 '산사람'들을 잉태하고 낳았다. 적어도 내게 지리산과 제주는 같은 이야기를 품은 다른 형식이었다. 나는 어느새 두 애인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그래서,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두 애인을 한꺼번에 소개하고 있다. 책 전체로 보면 지리산길이 주연,  제주올레길이 조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대중적인 접근 차원에서 지리산이 제주보다 수월하다는 작위적이고 무의미한 판단에 따른 나눔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직접 길을 걷는 여행자들도 지리산길의 관심이 제주올레로 이어지고, 제주 올레길을 걷고 나면 지리산길을 걷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책이 지리산길과 제주 올레길을 주연과 조연으로 삼은 것은 탁월한 케스팅이다.

다만, 한 가지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을 길동무 삼아 지리산길을 걸으며 느낀 아쉬움이 있다면, 지리산길과 제주 올레길을 한꺼번에 길동무로 삼기에 책이 너무 두껍고 무겁다는 것이 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은 누구의 것인가 - 물 권리 전쟁과 푸른 서약
모드 발로 지음, 노태호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석유보다 빠르게 물이 마르고 있다. 세상에 많고 많은 것이 물인데, 물이 석유보다 빠르게 마르고 있다는 말이 쉬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구상에 물은 그대로지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은 깜짝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물이 사라지다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물 순환에 관한 기초 지식을 초등학교 과정에서 배웠다. 지구상에는 한정된 물이 존재하고 우주선에 실어 지구 밖으로 실어 내지 않는 한 물은 대기의 순환과정을 통해 영구적으로 되돌아온다고 말이다.

지구상에는 연간 약 4000억 리터 물이 물->수증기->구름->비의 형태로 순환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구상의 물은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청정한 물은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지난 50년간, 인류는 엄청난 속도로 지표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제 3세계에서 발생되는 오폐수의 90%는 처리과정 없이 하천과 강, 바다로 유출되고 있으며, 중국의 주요 강 80%는 수중 생물이 살 수 없을 만큼 오염되었고, 주요 도시 지하수의 90%가 오염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은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 파키스탄 인구의 25%만이 청정한 음용수를 이용하고, 자카르타 우물의 90%, 방글라데시 지하수의 65%, 인도의 강과 호수 중 75%가 오염되어 먹는 물로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경우 내륙 지표수의 75%, 이용가능한 지하수의 30%가 고도로 오염되었으며, 비도시거주자의 60%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있다고 한다. 유럽의 경우 사정이 조금 낫기는 하지만 지표수의 20%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으며, 미국 강과 하천의 40%는 음용수로 위험을 지니고 있고, 전체 호수의 46%는 독성물질로 오염되어 있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사정 역시 아시아 나라를 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아프리카는 여러 대륙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상황이다. 지구상에서 오염된 물 때문에 위협 받는 25개 나라 중 19개 나라가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인구의 1/3이상이 안전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는데, 향후 15년 내에 전체 인구의 절반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8초마다 한 명이 더러운 물을 먹고 죽는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물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다. 인도에서만 매년 오염된 물로 인해 사망하는 5세 이하 어린이가 210만 명에 이르고, 방글라데시의 경우 최소 120만 명이 비소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보건기구는 지구상 모든 질병 및 질환의 80%가 오염된 물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지난 10년간 설사병으로 사망한 아동의 수는 제 2차 대전이후 총기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보다 많으며 매 8초마다 아동 한 명이 더러운 물을 마시고 사망한다." (본문 중에서)

이미, 세계 인구의 2/5는 수인성 전염병이 유발되는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고, 전 세계 병상의 절반은 수인성 질환 환자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물 빈민, 물 난민을 아는가? 아직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역시 낯선 일인가? 인도 뭄바이의 화장실 1개당 인구수는 무려 5440명이라고 한다. 유엔은 앞으로 겨우 20년 후인 2030년경에 제 3세계 거대도시 중심부의 인구 중 절반이 이와 같이 위생시설 및 용수공급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물 빈민'으로 전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멕시코와 미국의 접경에서는 매일 수백 명의 멕시코인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다. 농사 지을 땅이 말라버려 멕시코의 시골을 떠날 수밖에 없는 '물 난민'들이라고 한다. <물은 누구의 것인가>를 쓴 세계적인 환경운동가 모드 발로는 지금은 작은 농촌마을이 버려지고 있지만, 대도시 전체가 물 부족으로 버려지는 날도 멀지 않았다고 '경고'하고 있다.

물 빈민, 물 난민이 급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물 빈민과 물 난민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제 3세계 국가들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은 남의 이야기로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먼 나라 이야기도, 먼 미래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세계 최대의 담수호인 슈피리어 호는 최근 80년 동안 수위가 지속적으로 낮아져 2007년 최저에 이르렀으며, 해안선은 15미터 이상 뒤로 물러났다." (본문 중에서)

"캘리포니아 주에 남아 있는 담수의 양은 향후 20년 정도면 바닥날 수준이며, 뉴멕시코 주의 경우 1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 남아있을 뿐이다. 애리조나 주의 담수자원은 이미 고갈되어 외부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

실제로 미국환경청(EPA)은 현재의 물 사용방식을 지속한다면 향후 5년 이내에 36개 주에서 물 부족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고 한다.

"20세기 들어 인구는 3배 증가 하였으나 물 소비는 무려 7배 증가하였다. 30억 인구가 증가할 2050년에는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물만 80%가 더 필요하다." (본문 중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대륙인 호주는 거의 모든 주요 도시가 물 부족 현상에 직면하고 있으며 건조지역이 확산되고 있다.

땅속의 지하수도 마르고 있다

오늘날 지하수는 과거 조상들이 우물을 사용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옛날 우물은 순환되고 재충전되는 자원이었지만, 오늘날 지하수는 석유처럼 한 번 뽑아 쓰고 나면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과도한 관개용수로 요르단강의 물을 끌어다 쓴 결과 사해가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관개농법은 우리에게 2배에 가까운 식량을 제공해 주었지만, 3배 이상의 물 수요를 증가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 (본문 중에서)

한때 농업혁명으로까지 칭송되던 관개농법은 겨우 50년도 지나지 않아 실패 사례임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20만 개의 관정에서 뽑아 올린 지하수를 사용하는 미국 대평원은 작물 생산량은 줄어드는데 물 수요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한편, 석유 위기의 대응책이라고 하는 바이오 연료가 물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옥수수로부터 에탄올 1리터를 만드는데, 17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매년 180억 킬로그램의 콩 바이오연료를 브라질에서 수입하는데, 브라질 콩 재배지역의 강은 모두 말라가고 있다고 한다.

물 위기를 악화시키는 첨단 기술

아울러, 대규모 댐들은 유기물과 식물을 썩게 하여 온실효과의 주범인 메탄가스를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담수어종 1/3을 멸종 또는 멸종위기에 처하게 하고, 담수와 해수가 만나서 수많은 어종이 서식하는 강 하구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댐 건설 못지않게 널리 활용되는 기술적 해결 방법은 바로 수로를 활용한 물 이동이다. 물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곳에서 배수관을 통해 먼 곳으로 이동시켜 물 부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멕시코시티, 리비아, 이스라엘, 인도, 러시아 등의 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시도 되었거나 지금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 아랄해, 여섯 번째로 큰 호수 차드호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해가 말라가는 것은 대규모 관로를 이용한 물이동이 물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가 되고 있다.

물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국적 물기업들이 도입한 첨단 과학기술의 절정은 바로 '해수담수화'이다. 이미 세계 155개 나라에서 1만2300개의 시설을 설치하여 하루 470억 리터의 물이 생산되고 있다. 이 중 2000개 정도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고 세계 해수 담수화 물의 1/4이 생산된다고 한다.

"지구 표면의 약 70%는 물이 차지하고 있고, 지구상에는 13.9억㎦ 의 많은 물이 있고 그 중 3% 정도가 육지의 물이고 97%는 바닷물이다. 육지의 물 중 대부분은 빙산과 빙하로 되어 있어 사람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물의 양은 지구 전체 물의 양의 0.03%밖에 되지 않는다." (본문 중에서)

해수 담수화 기술은 바로 지구 전체 물의 97%를 차지하는 바닷물을 담수로 만드는 기술이고, 다국적 물기업들은 해수담수화가 물 부족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은 누구의 것인가>를 쓴 모드 발로는 해수담수화의 가진 문제점을 고발하고 있다.

①해수담수화 시설은 에너지 고비용 기술로 막대한 온실 가스를 방출하여 물 부족을 더 악화시킨다.

②담수화 시설은 생산과정에 사용된 화학물질과 중금속이 농축된 독성화합물을 배출한다. 물 1리터마다 독성물질 1리터가 바다에 버려진다.

③해수를 취수하는 과정에서 프랑크톤, 생물의 알, 유생, 물고기와 수서식물을 죽인다.

④담수시설로 들어간 물은 역삼투 과정에 의해서는 여과되지 않은 유해물질을 포함한다.

실제로 제 3세계 나라들은 폐수의 90%를 처리 없이 방류하고 있고, 담수화 시설은 그 자체로 오염물질을 끊임없이 바다로 내 보낸 후 그 물을 다시 취수하여 염분을 제거하여 공급하는 위험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환경에 대한 엄청난 영향과 비용을 고려할 때 해수담수화는 꿈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실패를 자인하게 만드는 기술에 불과할 뿐 아니라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물 부족을 틈타 막대한 이윤을 남기는 물기업

물기업, 특히 수에즈와 베올리아는 그들의 실패와 대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고 있다고 한다. 1990년 세계 인구 중 약 5000만 명의 사람들이 민간 물 공급자로부터 물을 사 먹었지만,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10%인 약 6억 명이 거대 물기업으로부터 물을 사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여전히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15억 인구를 제외한 40억 인구의 약 15%에 해당되며, 앞으로 10년 내에 기업으로부터 물을 사먹는 숫자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이 이들 기업의 예측이라고 한다.

모드 발로가 쓴 <물은 누구의 것인가>는 다국적 물기업들이 어떻게 수돗물 공급을 민(사)영화 시켰는지, 세계은행이 어떻게 제 3세계에 민영화 방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하였는지, UN, WTO 같은 국제기구,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와 여러 연구기관들이 민영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밝히고 있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물 민영화가 처음부터 세계 최강의 권력을 쥔 자들에 의해 계획하고 실행하였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세계 물포럼과 지속가능정상회의가 어떻게 물 민영화를 위한 꼭두각시 노릇을 하였는지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수천 명의 직원이 해고당했으며 물 가격이 급속히 치솟아서 민영화를 시작한 첫 10년 동안 세전 이익이 147%나 증가하였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수도세를 내지 못하여 공급이 끊겼으며 이러한 현상은 1997년에 총리로 선출된 토니 블레어가 그런 행위를 금지시킬 때까지 계속되었다." (본문 중에서)

모드 발로는 부정부패, 치솟는 물 가격, 물 공급 중단사례, 수질 악화, 족벌주의, 오명, 직원 해고 같은 일들은 모두 수도민영화로 인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무리 정직하게 운영하더라도 물의 보전과 수자원 근원지 보존"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이윤 창출이지 모든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수도물 민영화는 빈곤층에 물을 공급하는 데 실패했고, 인간의 물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였으며, 민주주의의 원칙을 희생시키고, 지역민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채, 외국의 수자원 통제와 독점을 야기"하였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책은 오늘날 세계를 휩쓰는 수에즈와 베올리아, 네슬레 코카콜라와 펩시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담수사업, 병입수 사업, 수돗물 민영화를 통해 제 3세계를 더욱 빈곤하게 만드는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아울러 이런 거대기업들이 물을 독점하기 위하여 카르텔을 형성하고 투기를 일삼는 현장도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세계 곳곳에서 이런 거대 다국적 물 기업에 맞서는 시민들의 투쟁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승리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국적 물 사냥꾼에 대항하는 싸움의 승전보를 전하고 있으며, 물 문제 해결을 위한 바람직한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더 나은 물의 미래를 위한 푸른 서약은 물이 지구와 지구에 사는 생물들의 권리임을 분명히 할 뿐만 아니라 물의 소유가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한 창일 때, 정부는 한 차례 수돗물 민(사)영화를 추진하다가 주춤한 상태이다. 세계 물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 물 기업 '베올리아'와 '수에즈'의 자회사인 '온데오(Ondeo)' 같은 회사들이 한국 수돗물 시장을 노리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모드 발로는 <물은 누구의 것인가>를 통해 수돗물 민영화와 병입수를 포함한 물의 사유화가 가져올 처참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혜안을 열어주는 탁월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특강>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주행의 시대에 가장 주목 받는 역사학자 중 한 명이 바로 한홍구 교수입니다.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에서 자주 그가 쓴 글과 인터뷰 기사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역주행의 시대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 불안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답을 구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김대중 정부 10년을 거꾸로 돌려놓으려는 줄 알았더니, 김영삼 정부 5년까지 포함하여 문민정부 이전 군사정부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광란하는 듯합니다.

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날치기 악법을 일사부재리의 원칙마저 짓밟으며 통과시키고, 파업노동자들의 목을 죄고,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잡아가두는 일을 마구잡이로 일삼고 있습니다.


한국현대사에 대한 흥미진진하고 날카로운 해석을 담은 책 <대한민국사 4권>을 썼던 한홍구 교수의 <특강>은 바로 이 험난한 시대를 명쾌하게 해석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길잡이를 자처하는 책 입니다.

<특강>은 한겨레교육문화센터가 주최하여 모두 8강좌로 진행된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 강좌’를 다듬어 엮은 책 입니다. ‘대한민국사 강좌’는 2008년 5월 촛불정국 이후 눈앞에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해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재해석하기 위한 기획 강의였다고 합니다.

2008년 10월 13일부터 12월 1일까지 진행된 ‘대한민국사 강좌’는 뉴라이트와 역사 교과서, 조작 간첩 사건, 토건국가의 역사, 제헌헌법, 괴담의 생산과 유통 소비, 친일경찰의 뿌리를 이어받은 한국경찰, 교육문제, 촛불의 역사성과 의미 등을 주제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명박, 괴담, 밥솥 시리즈

<특강> 제 1강의 주제는 ‘역사의 내전,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입니다. 제 1강에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밥솥시리즈입니다.

“박정희가 열심히 일해서 밥솥을 하나 장만했어요. 그리고 밥을 지어놓고 죽었습니다. 전두환이 들어서서 퍼 먹었죠. 그 다음에 노태우가 보니까 밥은 전두환이 다 퍼 먹어서 누룽지를 긁어 먹었습니다. 김영삼이 밥솥을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거든요. 박박 긁다가 솥단지를 깨먹었어요. 김대중이 들어서서 외국 돈도 빌리고 카드빚도 내서 전기밥솥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그랬더니 노무현은 110V냐, 220V냐 코드만 만지작거리다가 밥을 못 지었어요. 국민들이 배고파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니까 이명박이 나타나서 ‘밥은 내가 해줄게. 내가 금방 지을 수 있어’하고 그 전기밥솥을 장작불 위에 딱 올려놓았다는 거 아닙니까.” (본문 중에서)

한홍구는 보수 세력의 놀랄만한 무능력을 밥솥시리즈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쇠고기협상, 환율문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과거사위원회’에서 일 하다보니 보수 세력들이 ‘말 안 들으면 잡아다가 줘 패면서 국정을 운영하고 정권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무능한 보수는 정권을 잡자마자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 하고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학교와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 입니다.

“민주화되면서 방송이 정권의 손아귀를 벗어나 독립성을 회복하고, 교육도 전교조가 생기면서 많이 달라졌죠. 주먹으로 팰 수 도 없고 정권 유지의 버팀목이었던 방송과 교육을 놓쳐버리니까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겁니다.”(본문 중에서)

지금 이명박 정부가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 떠난 교사,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을 처벌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일이나 세계적인 망신에도 불구하고 엉터리 표결로 미디어법 통과시키는 것은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 입니다.

말하자면, 교육과 방송을 장악하지 못하면 유지할 수 없는 정권이라는 것 입니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장비를 확충하고, 서울광장에 차벽을 설치하고, 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는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권력을 연장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의 위기

그럼,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역사학자 한홍구는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라고 진단합니다.

“우리가 민주화를 하긴 했는데 어떤 민주화입니까? 구시대와 폼 나게 단절한 것이 아니라, 구시대를 다 살려놓고 그 똥물이 가득 찬 통에다 계속 새 물을 부었습니다. 언젠가는 맑아지겠지 하면서요. 그러나 보니 구체제의 오물은 그대로 남겨둔 체 절차적 민주화만 이루어졌어요.” (본문 중에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가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말 합니다. 탄핵 자체는 반민주적 해위였는데,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 절차만 남은 허울뿐인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왔었다는 것이지요.

위기를 맡은 국민들을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에 과반수 의석을 안겨줌으로써 민주화의 위기에서 벗어나오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행정수도 문제로 부딪히지만 대개혁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결국 수구세력들에게 200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대반격의 기회를 내주게 되는데, 한홍구 교수는 그 첫 번째 사건이 바로 ‘뉴라이트’의 등장이라고 합니다. 그는 뉴라이트를 수구세력의 ‘구원투수’라고 비유하였더군요.

뉴라이트의 면면을 보면 과거 운동권에 있던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류근일, 이재오, 김문수, 차명진, 송복, 심재철, 김진홍, 서경석 등과 같이 운동권 출신이 권력에 안긴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모두 개별적으로 포섭된 경우라고 합니다.

친일파, 건국공신 그리고 뉴라이트

그런데, 뉴라이트의 경우는 새로운 간판아래 몸값을 불리면서 집단적으로 등장하였다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합니다. 그는, 뉴라이트의 등장을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진단합니다.

뉴라이트가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정통성이 집권세력에 의해 의문시되면서 국가정체성이 손상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친일 역사청산에 대한 위기의식을 표현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뉴라이트가 벌인 가장 적극적인 활동이 바로 ‘과거 청산’과 ‘교과서 문제’라는 것 입니다.

이른바 ‘건국절’ 논란의 핵심은 바로 과거 친일파가 애국자로 ‘변신’에 성공한 역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집단과 친일파를 애국자로 인정하자는 집단이 부딪힌 역사적 사건입니다. 불과 60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분명해집니다.

1948년 8월 정부수립 당시만 하더라도 ‘친일청산’은 약속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1949년에 일어난 ‘남로당 프락치 사건’, ‘반민특위 습격’, ‘백범 김구 암살’ 등을 통해 친일파의 반격이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대한민국이 이승만과 친일파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는 것 입니다.

결국 뉴라이트의 역사 왜곡과 교과서문제는 이런 역사를 미화하기 위한 작업인것이지요. 그들은 친일의 흔적이 선명한 ‘광복절’은 국민들의 기억에서 지우고, ‘건국’을 내세우고 싶어 한다는 것 입니다. 이런 뉴라이트가 국가 정체성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 정체성’이라는 것이 한홍구의 주장입니다.

“이명박이 중국에 다녀오자마자 비서를 붙잡고 물어봤죠. 촛불집회의 배후를 물었죠.......거기에는 반드시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죠....... 내 마음에 안 드는 모든 나쁜 것은 다 배후가 있죠. 이게 바로 국가보안법 정체성입니다.” (본문 중에서)

국가보안법 정체성과 조작 간첩 사건

국가보안법 정체성에 의해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조작 간첩 사건’이라는 것 입니다. 실력 없는 수구세력들이 이른바 ‘간첩 전성시대’를 만들어 ‘배후’를 조작하여 정권을 지탱해온 것이 한국현대사라는 주장입니다.

역설적이게도 1970년대 이후 북한에서 보내는 간첩이 줄어드는 동안 남한에서는 새로운 간첩전성시대가 열렸다는 겁니다. 북한에서 간첩이 내려오지 않으니, 이른바 공안기구에 의해 남한에서 간첩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1970년대, 80년대에는 억울한 간첩들로 ‘간첩 전성시대’가 열렸다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어부간첩과 재일동포 간첩 사건들이 “간첩의 간자 하고도 상관없는” 억울한 간첩 사건이라는 것 입니다.

<특강>에서 한홍구 교수가 소개하는 어이없는 조작 간첩사건을 정말 황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자장면이 맛있다. 경부고속도로가 4차선이다.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일, 군대생활에 대한 기억, 자신이 복무했던 부대위치, 어부가 기억하고 있는 바다의 물 때, 마을 파출소 위치 이런 것들이 다 군사기밀 수집, 탐지에 해당된다는 것 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하여 ‘고문’이 자행되었고, 악명 높은 이근안은 간첩(?)을 세 명이나 잡았다고 합니다. 모두 고문으로 간첩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국이 분단 된 것 때문에 동포사회가 총련과 민단으로 나뉘어졌고, 총련에 속한 동포들과 만나면 간첩이 되었다는 겁니다. 한홍구 교수는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잡을 수 있는 간첩은 북과 관련된 간첩이나 조작 간첩,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아야 하는 간첩뿐이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 미국이 보내는 간첩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국가보안법은 하루 빨리 없어지고, 진짜 간첩을 잡을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한편, <특강>은 촛불 이후의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여러 키워드를 현대사의 관점에서 치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키워드 중 하나는 ‘토건국가’입니다. 일본을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토건국가가 된 과정, 부동산 투기의 역사, 강남개발의 신화, 개발독재의 역사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의 경제위기는 마인드가 골수에 박힌, 토건국가 시대의 행동대장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토건국가 ‘마인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임시정부 강령, 제헌헌법에 민주주의의 ‘길’이 있었다

또 다른 키워드는 ‘헌법’입니다. 촛불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수 없이, 수 없이 강조하였습니다. 한홍구 교수는 <특강>에서 헌법정신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임시정부 건국강령과 제헌헌법에 담긴 사회 공공성을 우리 앞에 다시 내놓습니다. 이 나라가 원래부터 엉망이 아니었다는 것 입니다.

친일파들이 건국공신으로 둔갑하기 전만 하여도 온전하게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헌법적 토대가 충분하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줍니다. 아울러,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는 제헌헌법에 담긴 사회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영화’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임시정부’와 ‘제헌헌법’이라고 단언합니다. 아울러 임시정부의 법통과 제헌헌법에 기초한 국가 정체성을 짓밟은 것이 바로 친일파 건국세력이라는 것 입니다.

또 다른 키워드는 ‘민주주의와 촛불’입니다. 그는 촛불을 통해 ‘민주주의를 직접 살아 본 세대’의 역동성을 이야기 합니다. 그는, 전쟁 끝나고 7년 만에 4.19가 일어났으며, 암흑과 같았던 유신 후에 불과 7년 박정희가 죽었고, 광주 학살 이후 7년 만에 6월 항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그는, “민주주의는 절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고 말 합니다. 미래의 변화와 희망을 만들어내는 지금,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 시킵니다. 인물보다 원칙과 정책을 중심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국정원과 검찰을 개혁하고 과거사 청산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칙을 가진 사람, 법을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을 소탕하고 거기에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따라 그 역할을 하는데 제 몸을 던지겠습니다.” (본문 중에서)

바로 한홍구 교수의 원칙과 정책입니다. 그는 각자가 생각하는 원칙과 정책을 내걸고 여기에 만족하는 후보를 만들어 모든 것을 바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 합니다. 시간이 없어 그를 직접 만날 수 없었던 독자들과 함께 한홍구 교수의 <특강>을 통해 희망의 씨줄, 날줄을 함께 엮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