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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오르한 파묵, 그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책을 보지는 못했다. 봤던가? 어쨋든 이름만으로는 꽤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이기에 소설과 소설가라는 제목을 보고 관심을 갖고 보게되었다. 이 책은 하버드대 강연록이다.
소설은 두 번째 삶입니다. 프랑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이 말한 꿈처럼, 소설도 우리네 삶의 다채로움과 복잡함을 보여 주고, 우리가 아는 것 같은 사람, 얼굴, 물건 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마치 꿈에서 그러하듯이, 우리는 때로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접한 것들의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잊고, 우리가 보고 있는 상상의 사건이나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소설에서 보고 희열을 느꼈던 허구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느낍니다. 이 두 번째 삶이 우리에게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소설을 현실의 대신으로 생각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소설과 현실의 삶에 혼돈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착각, 이러한 순진함에 대해 우리는 절대 불평하지 않지요. 오히려 마치 꿈속에서 그러하듯이,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이 계속 진행되기를, 이 두 번째 삶이 현실이고 진짜라는 느낌이 게속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상상의 이야기와 허구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어떤 소설이 현실의 삶이라는 착각을 계속 이끌어내지 못하면 우리의 즐거운 기분과 평온함은 사라집니다.(12쪽)
작가는 열여덟 살과 서른 살 사이에 소설을 읽으며 머릿속과 영혼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또렷하게 그려내고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랬다고 한다. 나역시 그 시절 소설을 읽으면서 무언가 깨어나고 내 삶이 거듭나기를 바랬던 마음이 간절했다. 지금도 역시 그렇긴 하지만 학창시절 책을 읽을때는 참 그 마음이 간절했던듯 하다. 당장 공부를 해야하는 학생이었지만 공부하기보다는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고 이 책 한권을 읽으면 나의 삶이 좀더 멋지게 변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역시도 그런 기대를 하지만 나이가 나이니만큼 예전처럼 온전히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 마음속에 무언가 작은 움지임과 감탄을 기대하게 된다. 내가 겪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상상해놓은 그 곳에 마치 여행을 하듯 소설이란 참으로 매력적이다. 직접 가지 않아도 내 마음은 이미 그곳에 있고 도저히 만날수 없는 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닮아있음에 놀라운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나만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생각한게 아니구나..나만 약한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말이다.
그런 소설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모든 상황들 소설의 역할들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생각도 읽을수 있다. 안나가 모스크바에서 브론스키를 만나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의 심상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안나가 브론스키 생각을 지울수 없었기에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기에 책을 읽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섬세하게 그려낸다.
소설읽기의 진정한 희열은 세계를 외부가 아니라, 안에서, 그 세계에 속한 등장인물의 눈으로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18쪽)
그리고 작가만의 소설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었던 사실에 더 궁금증을 갖게 되고 오르한 파묵의 다른 책들도 더 읽어보고 싶어진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었다면 더 공감이 되었으리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스물 두 살 작가가 어느날 가족과 친구들에게 화가가 되지 않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말했을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르한, 사람은 스물 두 살 때 인생을 알 수 없단다. 나이를 좀 더 먹고 인생을, 사람들을, 세상을 경험해 봐. 그런 다음에 소설을 써!"라는 말에 작가는 분개하고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소설은 우리가 인생을, 사람을 알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니에요. 다른 소설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써 보고 싶기 때문에 쓰는 거라고요!" (1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