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부득탐승不得貪勝 -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
이창호 지음 / 라이프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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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둑을 둘 때마다, 할아버지는 상대에게 일일이 담배값이나 찻값, 자장면값을 내어놓았다. 그때 평생을 간직할 교훈 하나가 자연스럽게 내 마음 깊이 새겨졌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크든 작든 중요하든 사소하든 무엇을 얻으려면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게 세상을 알아가는 바른 법칙이다'-25쪽

즐거움이 재능이다.-27쪽

후지사와 슈코 9단의 축하 메세지

결과는 내가 졌지만, 이 군의 바둑됨됨이는 내키지 않았다.
지금대로라면 뭐랄까, '정감이 없는 바둑'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적다. 바둑은 승부를 내는 동시에 음악이나 회화와 같이 개성을 표현하는 엄연한 예술이다.

예술이라면 우리들이 감동하는 그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차원의 세계가 무르녹아 있어야 되는 것이다. 오직 이기기 위한 승부에 앞서, 자기 표현에 충실한 바둑을 항상 생각할 일이다.

이군은 넘버원이기 때문에 이제 그러한 임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러한 감동을 주는 바둑은 어떻게 하면 둘 수 있게 되는가?

이것은 어려운 경지의 것이기는 하지만 바둑의 공부만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높이는 공부가 바탕을 이루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130쪽

인간수업. 일본에는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검호가 있었다. 생애불패의 그였지만 검의 수업만으 한 것은 아니다. 좌선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교제를 넓히면서 인간을 높인 것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그의 그림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 수작이다.

인간을 높이는 것으로써 검의 도를 깊이 연구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검과 똑같이 바둑도 인간의 싸움이다. 바둑은 무한의 세계다. 인간을 차원 높게 끌어올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 그것은 끊임없는 절차탁마로써 가능한 일이다.

-131쪽

도끼타법과 귀마개사건

1994년 5월 16일 부산 파라다인스비치호텔에서 열린 동양증권배 결승5번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 사람은 장작을 패듯 연신 바둑판을 내리찍었고, 또 한 사람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도끼질의 주인공은 요다 9단이었고, 중얼거림은 선생님(조훈현)의 작품이었다.

결승 2국 아침 대국실로 들어서는 요다 9단을 본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귀를 가리켰다. 귀마개였다. 선생님의 중얼거림이 신경쓰여 귀마개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귓 속에는 인체의 평형감각을 유지시켜주는 세반고리관이 있는데 오랫동안 귀를 막으면 이런 기관에 작은 이상이 생겨 가벼운 두통이나 현기증을 유발한다. 섬세한 정신감각이 필요한 초반,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중반과 종반의 수읽기에 치명적인 장애가 되는 것이다.-142쪽

1986년 벽두 조치훈 9단에게 불행한 사고는 내게 평생 잊지 목할 강렬한 기억을 심어주었다.

1월 6일밤, 조 9단은 기성 방어전을 10일 앞두고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밤중에 차를 몰고 집 앞 골목길을 나서다가 오토바이와 경미한 접촉사고가 일어나 차문을 열고 내려선 것이 발단이었다. 진짜 사고는 그 다음,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났다.

오토바이와 함께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기 위해 길로 나온 조 9단은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튕겨져나갔고 그대로 의식을 읽었다. 지나가던 돼건 한 대가 차에서 막 내려서던 조 9단을 그대로 치고 달아난 것이다.

조치훈 9단이 눈을 뜬 곳은 기타시나가와 병원 침대 위였다. 전치 12주의 진단. 7일 오전 0시에 병원으로 옯겨서 8일 오전 9시에 수술실로 들어갔다. 15시간 20분이나 걸린 대수술이었다.

의사는 목숨을 건진 것만도 기적이라고 했다. 주치의는 대국을 포기하라고 권유했으나 조 9단은 머리와 오른팔과 두 눈만은 다치지 않은 것을 신성한 '계시'로 받아들여 끝까지 기성 방어전을 고집했다.-246쪽

대국날짜는 1월 16일. 연기는 없었다. 교통사고는 천재지볁이 아니므로 연기는 불가하다는 게 일본기원의 통보였다.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조치훈 9단은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그 타고난 체력이, 뼈마디가 부서져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켜 "기성전만큼은 두고 싶다"는 조 9단의 처절한 의지를 지탱시켰다.

1월 15이 아침 하네다 공항에 앰뷸런스 한 대가 도착했다. 활주로에는 요미우리신문사의 특별기가 대기하고 있었고 조치훈 9단은 침상에 누운 채 비행기로 옮겨졌다.
이튿날, 휠체어 한 대가 대국실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왼팔에 깁스를 깁스를 한 채. 오른쪽 정강이가 골절돼 밖으로 튀어나가도 왼쪽 무릎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당했으니,
결과는 무관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진정한 승자는 조치훈 9단이었다.
그는 '과연 나는 앞으로도 바둑을 둘 수 있을 것인가. 혹시 이대로 기사인생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참여했다고 한다.

-247쪽

여섯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평생 바둑만을 알고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바둑을 둘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절박한 심정에 그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불안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조 9단의 이 같은 일화는 절박함도 승부의 강력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슬럼프에 빠졌을 때나 최악의 상황에 몰렸을 때 조치훈 9단의 휠체어대국을 생각한다. 전치12주의 중상을 입고도 바둑판 앞에 앉을 수 있는 의지라면 해내지 못할 일이 무엇인가.-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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