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요즘 출판계에선 괜찮아 시리즈가 대세인가 보다. 서점에 들러서 언뜻 본 '괜찮아'만 해도 세 권. 그 중의 한 권이 이 책이다. 수중에 문화상품권이 없었으면 안 샀을지도 모를 책.  

 

처음에는 학급문고에 비치된 <불편해도 괜찮아>를 읽고 저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두 권의 책 모두 술술 읽힌다. 본인의 겉마음, 속마음, 상대의 속마음, 겉마음까지 알아서 읽어준다. 평일 오후, 시원한 카페에서 착하고 입담 좋은 남자친구와 맛난 커피를 연이어 시켜가며 즐겁게 수다 떨고난 느낌.  

 

두 권을 읽고 난 저자에 대한 느낌은 대략 이렇다. 배경은 주류인데 나름의 콤플렉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완벽한 주류는 아니고 자아비판 및 자기고백을 밑거름 삼아 보수와 진보를 향해 양날의 비판을 시도하는 모습이 독특하다는 것. 편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욕 좀 먹겠다 싶은 케릭터.

 

소장하고 애장할 이유까지는 못 찾겠지만 누가 나 좀 아프지 않게 긁어줬으면 싶을 때 읽으면 유쾌하고 유익한 독서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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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달이는 약 2주 간의 방황을 끝내고 할머니의 품으로 컴백했다. "엄마가 없었어. 무서웠어."로 무한반복되는 하소연과 고작 오전 두 시간을 보내면서도 온 가족의 신경선이 벌레 더듬이마냥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급기야 모두 포기를 선언했다.

 

  자유로운 망아지마냥 길렀던 아이를 허락과 통제 없이는 나갈 수 없는 공간에 무리하게 적응시키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육아전문가들이 어린이집 보내는 시기를 36개월 이상으로 보는 것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지금은 그 이후라도 영달이가 원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다. 학교도 가기 싫은 날에는 보내지 않을 기세. 남편은 탐탁찮아 할 것이고 나 자신 공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학교에 나가는 맹목적 성실성은 가엽고도 무섭다.

 

  영달이가 생애 처음으로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섞여 격렬하게 드러낸 부적응과 비타협의 몸짓으로 나는 내 딸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너는 나를 닮았구나. 나 역시 사교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이다. 어린이집 원장은 영달이는 그렇게 심한 케이스가 아니다, 말도 잘하고 인지력이 뛰어난 아이니 적응만 하면 누구보다 잘 지낼 것이다, 설득했지만 나는 내 안의 스트레스 만큼 영달이 안의 스트레스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다.

 

  한동안 밤에 일어나 앉아 서럽게 울고 입맛을 잃어 핼쑥했던 아이가 어린이집을 쉬면서 비로소 제 빛깔을 찾아가고 있다. 며칠 갈팡질팡했지만 영달이 또래는 그저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놀아야 할 나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 마음이야 다 비슷할텐데 이럴 땐 친정엄마가 가까이에 계시다는 것이 정말 큰 힘이다.   

 

  학교로 돌아오니 주변 선생님들이 그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엄마가 독하지 못해서 못 보낸 거라고 안타까워들 하신다. 어쩌면 그 얘기가 옳을 수도 있는데 마음 약한 엄마인 나는 영달이가 그전처럼 웃음을 찾고 재잘거리는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 노래 부르고, 스티커 붙이고, 찰흙 조물거리고, 거미줄과 개미떼 구경하고, 물고기 먹이 주고, 숨바꼭질 하고, 뽀로로 노래처럼 노는 게 제일 좋지 않은가.

 

  빨리 퇴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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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8-24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근에 제 조카가 24개월을 넘기면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다녀오면 꼭 엄마 없어 울어 이러면서 어린이집 싫다고 한다더라구요. 그 얘기 들을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저 역시 신문의 어느 칼럼에서 36개월 이상부터 보내야되는게 아닐까, 하고 얘기를 여동생에게 해봤었는데, 이 시기를 넘기면 적응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제게 그 시기는 몹시 힘겹게만 느껴져요. 저는 그 아가도 아니도 그 아가의 엄마도 아닌 이모일 뿐인데 말이죠. 아이가 잠깐동안 어린이집에 가있으면 아기 엄마도 쉴 수 있으니까 좋을것 같기는 한데, 엄마품을 그리워하는 아기를 보내는 것이 과연 잘하는걸까 생각하면 또 그도 아닌것 같고. 계속 보내기로 결정하든 혹은 나중에 보내기로 결정하든 자꾸만 잘하는걸까, 하는 의심은 하게될 것 같아요.

깐따삐야 2012-08-24 10:3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조카도 그새 많이 자랐군요. 저도 처음엔 긍정적인 상상을 많이 하며 결정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아이도 이상해지고 저 또한 고작 두 시간 보내놓고도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더라구요. 정신이 온통 어린이집에 가 있어서 머리만 지끈지끈 아프고 하루에도 보낼까, 말까, 갈등을 수십차례... 결국 "본인이 가고 싶다고 할 때 보내자"로 무기한 연기한 상태에요. 동생분 말씀처럼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열이면 열 다 적응을 한다는데 저는 포기했답니다.
비가 와서 밖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지금쯤 할머니랑 심심하겠다, 생각하면 이게 잘한 결정인가 싶어요.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소신이 없어요.ㅠ
 

  근무조다. 모처럼 학교에 나와 있다. 3층 교무실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와 선선한 2층 교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집에서는 영달이와 법석이느라 에어컨 바람 속에서도 흐르는 땀을 어쩌지 못했는데 가만히 있으니 덥지 않구나. 에어컨의 냉기도 영달이와 나의 불타는 열정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던 바. 그나저나 오늘은 할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시겠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새삼 안부를 챙길 만큼 몸이 좋지 않았는데 방학을 하고 얼마간의 치료를 거치고 영달이와 수선스럽게 교감하는 사이, 심신이 다소 가뿐해졌다. 그 와중에 구체적인 상상도 해보았다. 우선 일을 접는다. 문화센터에 등록해 영달이와 율동, 미술 등을 함께 배우고 주부면 주부답게 살림도 제대로 익힌다.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질이 양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그 이상을 추구하기에 나의 정신력과 체력이 참으로 하잘것없다는 진실. 익숙하지만 편안해지지 않는 진실은 그 동안 극도의 스트레스로 나를 압박했다.

 

  그러나 나란 엄마는 일을 포기하는 대신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여기는 지저분해서 안돼, 저기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풀이 죽어 있을까, 이래저래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친정의 앞동 어린이집에 자리가 하나 났다. 그리고 영달이는 다음주 월요일에 생애 처음으로 어린이집 등원을 앞두고 있다. 남편은 설렌다는 말로 내 눈총을 받았고 엄마 앞에서만 발랄총명할 뿐. 낯선 사람 앞에선 뾰족한 눈빛과 입술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 아기를 어떻게 보낼까. 그야말로 괴롭다. 그나마 몇 걸음이면 후다닥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까, 위안을 삼으며 "영달이가 어린이집에서 예쁜 노래 배워서 엄마한테 불러주면 차암 좋겠다!" 종종 세뇌시키고 있다.  

 

  얼마 전 "EBS 엄마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한 어떤 엄마가 "할 수만 있다면 결혼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라며 와락 눈물을 쏟는 장면이 있었다. 마주앉은 의사는 기가 막히다는 눈빛이었고 그 눈빛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해서 나는 공감에 연이은 부끄러움으로 오래 울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고 설사 순간순간 되살아나서 스스로를 괴롭히더라도 앞선 세월을 거쳐온 나 자신과 영달이라는 존재 자체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영달이는 그새 이 세상에서 나의 감정과 기분을 가장 잘 알아채는 유일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내 눈에 담긴 허망한 소망 안에 자신이 끼일 자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영달이는 본능적으로 내 손을 더욱 꽉 잡아 이끌거나 TV에 나오는 못된 아이처럼 행동한다. 영달이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같은 소설을 읽고 깊은 밤, 그리운 감정에 넋을 놓기도 하고 소설책을 두어권 쯤 담기에 좋은 가방을 보면 그 가방을 매고 어디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에 슬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자책과 갈등 대신 나 자신을 격려할 줄도 알게 되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는 바위가 될 수는 없기에 그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예의 그 말랑말랑한 성품 덕에 영달이에게 풍성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긍정하되 그것이 책임회피의 구실이 되어선 안된다고, 조심스럽고도 단호하게 마음을 추스른다.

 

  엄마는 병이 난 내게 너무 오버해서 잘해주려고 하지 말고 아이를 하나의 가족구성원으로 생각하라, 는 말씀을 하셨다.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꼭 맞는 지적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사랑하다 죽어버리는 예술 속 히로인이 아닐 터. 폭풍의 언덕에서 초원의 집으로 내려와 아이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 행복한 긴장의 끈이 나를 견고히 지탱시켜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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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에게

 

- 나 희 덕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의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 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테니

  칠칠맞은 어미 탓에 영달이가 한 달 가까이 고생을 했다. 애간장이 녹고 뼈와 살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을 알았다. 그리고 영달이가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자 영달이의 어미가 탈이 나서 영달이의 어미의 어미를 힘겹게 했다. 어제 오후, MRI의 요란한 기계음을 들으며 누워 있는데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잠이라도 들면 어쩌나. 정신이 무척 또렷해졌다.

 

  거울을 볼 때도, 혼자 있어도,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나는 나에게 집중을 하지 못하겠다. 그 질긴 사랑이 나를 강철과도 같이, 나의 정신과 육체를, 거대하고 푸르고 단단한 나무처럼, 단련시켜가길. 지금껏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도 지향한 적이 없는 바. 나의 바람은 오직 하나 뿐. 무쇠처럼 강해지고 싶다. 그것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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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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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따듯하고 착한 소설.

 

구구절절한 서사나 눈부신 묘사 없이도 충분히 강렬히 아름답다.

 

좋다.

 

리뷰는 종종 그 책을 흉내내고 싶어진다.

 

고로 나도 긴 말 하기 싫다.

 

황정은의 소설로 낙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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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2-02-0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12-02-06 10:17   좋아요 0 | URL
소설이 이상하고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