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조다. 모처럼 학교에 나와 있다. 3층 교무실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와 선선한 2층 교무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집에서는 영달이와 법석이느라 에어컨 바람 속에서도 흐르는 땀을 어쩌지 못했는데 가만히 있으니 덥지 않구나. 에어컨의 냉기도 영달이와 나의 불타는 열정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던 바. 그나저나 오늘은 할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시겠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새삼 안부를 챙길 만큼 몸이 좋지 않았는데 방학을 하고 얼마간의 치료를 거치고 영달이와 수선스럽게 교감하는 사이, 심신이 다소 가뿐해졌다. 그 와중에 구체적인 상상도 해보았다. 우선 일을 접는다. 문화센터에 등록해 영달이와 율동, 미술 등을 함께 배우고 주부면 주부답게 살림도 제대로 익힌다.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질이 양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그 이상을 추구하기에 나의 정신력과 체력이 참으로 하잘것없다는 진실. 익숙하지만 편안해지지 않는 진실은 그 동안 극도의 스트레스로 나를 압박했다.
그러나 나란 엄마는 일을 포기하는 대신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있었다. 여기는 지저분해서 안돼, 저기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풀이 죽어 있을까, 이래저래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친정의 앞동 어린이집에 자리가 하나 났다. 그리고 영달이는 다음주 월요일에 생애 처음으로 어린이집 등원을 앞두고 있다. 남편은 설렌다는 말로 내 눈총을 받았고 엄마 앞에서만 발랄총명할 뿐. 낯선 사람 앞에선 뾰족한 눈빛과 입술을 그대로 드러내는 이 아기를 어떻게 보낼까. 그야말로 괴롭다. 그나마 몇 걸음이면 후다닥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까, 위안을 삼으며 "영달이가 어린이집에서 예쁜 노래 배워서 엄마한테 불러주면 차암 좋겠다!" 종종 세뇌시키고 있다.
얼마 전 "EBS 엄마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한 어떤 엄마가 "할 수만 있다면 결혼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라며 와락 눈물을 쏟는 장면이 있었다. 마주앉은 의사는 기가 막히다는 눈빛이었고 그 눈빛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해서 나는 공감에 연이은 부끄러움으로 오래 울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고 설사 순간순간 되살아나서 스스로를 괴롭히더라도 앞선 세월을 거쳐온 나 자신과 영달이라는 존재 자체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영달이는 그새 이 세상에서 나의 감정과 기분을 가장 잘 알아채는 유일한 사람으로 자라났다. 내 눈에 담긴 허망한 소망 안에 자신이 끼일 자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영달이는 본능적으로 내 손을 더욱 꽉 잡아 이끌거나 TV에 나오는 못된 아이처럼 행동한다. 영달이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같은 소설을 읽고 깊은 밤, 그리운 감정에 넋을 놓기도 하고 소설책을 두어권 쯤 담기에 좋은 가방을 보면 그 가방을 매고 어디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에 슬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자책과 갈등 대신 나 자신을 격려할 줄도 알게 되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는 바위가 될 수는 없기에 그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예의 그 말랑말랑한 성품 덕에 영달이에게 풍성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긍정하되 그것이 책임회피의 구실이 되어선 안된다고, 조심스럽고도 단호하게 마음을 추스른다.
엄마는 병이 난 내게 너무 오버해서 잘해주려고 하지 말고 아이를 하나의 가족구성원으로 생각하라, 는 말씀을 하셨다.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꼭 맞는 지적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사랑하다 죽어버리는 예술 속 히로인이 아닐 터. 폭풍의 언덕에서 초원의 집으로 내려와 아이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어야 한다. 이 행복한 긴장의 끈이 나를 견고히 지탱시켜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