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달이는 약 2주 간의 방황을 끝내고 할머니의 품으로 컴백했다. "엄마가 없었어. 무서웠어."로 무한반복되는 하소연과 고작 오전 두 시간을 보내면서도 온 가족의 신경선이 벌레 더듬이마냥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급기야 모두 포기를 선언했다.
자유로운 망아지마냥 길렀던 아이를 허락과 통제 없이는 나갈 수 없는 공간에 무리하게 적응시키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육아전문가들이 어린이집 보내는 시기를 36개월 이상으로 보는 것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지금은 그 이후라도 영달이가 원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다. 학교도 가기 싫은 날에는 보내지 않을 기세. 남편은 탐탁찮아 할 것이고 나 자신 공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학교에 나가는 맹목적 성실성은 가엽고도 무섭다.
영달이가 생애 처음으로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 섞여 격렬하게 드러낸 부적응과 비타협의 몸짓으로 나는 내 딸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너는 나를 닮았구나. 나 역시 사교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이다. 어린이집 원장은 영달이는 그렇게 심한 케이스가 아니다, 말도 잘하고 인지력이 뛰어난 아이니 적응만 하면 누구보다 잘 지낼 것이다, 설득했지만 나는 내 안의 스트레스 만큼 영달이 안의 스트레스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다.
한동안 밤에 일어나 앉아 서럽게 울고 입맛을 잃어 핼쑥했던 아이가 어린이집을 쉬면서 비로소 제 빛깔을 찾아가고 있다. 며칠 갈팡질팡했지만 영달이 또래는 그저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놀아야 할 나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 마음이야 다 비슷할텐데 이럴 땐 친정엄마가 가까이에 계시다는 것이 정말 큰 힘이다.
학교로 돌아오니 주변 선생님들이 그 고비만 넘기면 되는데 엄마가 독하지 못해서 못 보낸 거라고 안타까워들 하신다. 어쩌면 그 얘기가 옳을 수도 있는데 마음 약한 엄마인 나는 영달이가 그전처럼 웃음을 찾고 재잘거리는 모습에 만족하고 있다. 노래 부르고, 스티커 붙이고, 찰흙 조물거리고, 거미줄과 개미떼 구경하고, 물고기 먹이 주고, 숨바꼭질 하고, 뽀로로 노래처럼 노는 게 제일 좋지 않은가.
빨리 퇴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