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에게

 

- 나 희 덕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의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 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무나

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테니

  칠칠맞은 어미 탓에 영달이가 한 달 가까이 고생을 했다. 애간장이 녹고 뼈와 살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은 고통을 알았다. 그리고 영달이가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자 영달이의 어미가 탈이 나서 영달이의 어미의 어미를 힘겹게 했다. 어제 오후, MRI의 요란한 기계음을 들으며 누워 있는데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잠이라도 들면 어쩌나. 정신이 무척 또렷해졌다.

 

  거울을 볼 때도, 혼자 있어도, 잠을 자는 동안에도, 나는 나에게 집중을 하지 못하겠다. 그 질긴 사랑이 나를 강철과도 같이, 나의 정신과 육체를, 거대하고 푸르고 단단한 나무처럼, 단련시켜가길. 지금껏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도 지향한 적이 없는 바. 나의 바람은 오직 하나 뿐. 무쇠처럼 강해지고 싶다. 그것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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