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이라는 게 그렇다. 스무살 때 보다 스물 세 살 때가 좀 덜 아프고 스물 세 살 때 보다는 스물 여섯 일 때가 훨씬 덜 아프다. 이별의 경계에 선 그 순간의 통증만큼은 과거와 비견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지속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확연하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멀쩡하다는 것이 결코 그를 덜 사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와 헤어진 지 훌쩍 시간이 지나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아직도 그의 안부를 물어온다는 것은 참으로 생뚱맞은 일이다.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 누군가 그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순간 난감했다. 그가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린 끝났어요, 라고 말을 해줘야 앞으로는 더 이상 저런 소리를 듣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누군가 사귀고 있었다는 걸 드러냈던 나 자신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플 때 헤어졌다는 사실 하나가 그를 좋지 못한 남자로, 아플 때 헤어짐을 당했다는 사실 하나가 나를 안된 여자로 만든다는 것도 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시작이든 끝이든 연애는 당사자의 몫이다. 나는 한 때나마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한 전력이 있었던 내 자신이 우스웠다. 주변 사람들이란 연인들을 하나의 풍경, 벽에 걸린 그림처럼 바라보고 웅성거리기 밖에 더 하겠는가. 끝났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를 궁금해하지 않고 그가 남들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는 나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혼자서 그의 길을 가는 것이다.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그들만의 몫이 있다. 그들이 잠시 겹쳐 있었던 그 추억이야말로 풍경으로 남는 것이다. 풍경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고 우리에게 답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풍경은 풍경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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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다소 호들갑스럽게 나를 반가워하던 막내 이모가 오늘 입원을 했다. 유머가 있고 낙천적인 이모는 자궁에 물혹을 키우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웃는 얼굴을 했던 것이다. 내가 스물두 살이었던 그해, 엄마가 똑같은 병명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의사가 소독을 할 때마다 마치 상해버린 비엔나 소시지처럼 드러났던 엄마의 수술 자국은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도 내 눈에 선하다. 내가 옆에 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술 후 통증 때문에 눈을 떠서 나를 보지 못했던 엄마. 수술 이후에 엄마는 눈에 띄게 늙어갔고 마흔이 넘어도 비교적 낭창낭창했던 허리 부근에 보호막처럼 살이 붙기 시작했다. 엄마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예전엔 안그랬잖아. 이 정도 표현 밖에 못하는 무뚝뚝한 딸이지만 나라고 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모가 아프다는 것은 엄마가 아픈 느낌이랑 많이 비슷한 것 같다. 누구든지 아픈 것은 참 안된 일이지만 큰어머니가 편찮으셨을 때와는 다가오는 느낌이 좀 다른 것 같다.

이모에게는 올해 수능을 친 채 스물도 되지 않은 딸이 하나 있고 심하게 엄마 탐을 하는 철딱서니 아들도 하나 있다. 이모가 아니면 고지서 하나 제때로 떼어 올 줄도 모르는 심약한 남편도 있고 수시로 드나들며 두 달에 한 번 꼴로 건강검진을 받는 꼬장꼬장한 시부모님도 있다. 그 뿐인가. 엄마 노릇을 대신 해줘야 하는 열 살 배기 조카와 그 조카의 아빠인 여리고 게으른 남동생도 있다. 그렇게 많은 역할들 속에서도 지친 내색 없이 항상 여유가 넘치고 씩씩하기만 했던 이모가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다. 살고 죽는 문제를 떠나서 홀로 수술대에 오른다는 건 참으로 외롭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항상 안타깝게 여기던 동생을 자신이 겪었던 똑같은 고통 속으로 말없이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다는 아니어도 대강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밖에 엄마로썬 상처의 세월이었던 어떤 시간이 떠올라 저렇듯 잠못 이루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다. 이럴 땐 좀더 살갑고 좀더 다정하지 못한 내가 참 아쉽다. 하루 빨리 귀여운 막내이모가 넉넉한 온몸으로 나를 열렬히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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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 방이 두 개 있다. 블로그와 서재인데 오늘 블로그 디자인을 새롭게 바꾸어 봤다. 어차피 그래도 나는 나지만. 12월 말에 2005년을 정리하는 글을 한 편 올릴 셈이다. 블로그의 향방은 그 때 가서 결정하고 싶다. 방이 두 개라는 것은 번거로울 뿐이다. 용도가 다르다면야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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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미니홈피와 저만 드나드는 창고용 홈피, 그리고 이거 이렇게 세개에요. 미니홈피는 지인들과의 소통로고, 창고용 홈피는 제 글을 모아놓는 창고, 그리고 서재는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과 소통하고 만나기 위한 장이에요. 이곳에선 원래부터 저를 알고 있던 사람은 없죠. 새로운 관계의 형성. ^^

깐따삐야 2005-12-29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니홈피나 블로그는 왠지 다용도실 같은 느낌이 있는데 서재는 그냥 서재라서 좋더라구요. 서재는 저만의 다락방인 셈이죠. 소란한 지상으로부터 조금 더 올라온. ^^

마늘빵 2005-12-2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저와 관련된 사람들로부터의 도피성 성격도 있고,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거죠 머. 자폐. ^^
 

사지 육신이 피곤한데도 이불 속으로 파고들 수가 없다. 끝간 데 없는 헛헛증. 가장 무서워하던 것이 최근 들어 다시 엄습하기 시작했다.

쉴 때가 되었거나 변화가 필요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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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이었다. S 아버지가 귤을 사오셨다. 원서 쓸 때가 되어서 사진과 도장도 손수 챙겨 오셨다. 사진 속의 S는 여전히 나를 야려보고 있었다. 나를 야려보는 S를 보면서 차갑고 맛있는 귤을 먹었다. 누나 넷, 이어서 탄생한 귀한 S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나를 야려보면서도 당당하고, 나는 나를 야려보는 S를 미워할 수가 없다. 겨울에 먹는 귤처럼, S는 차가워서 더욱 달콤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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