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이라는 게 그렇다. 스무살 때 보다 스물 세 살 때가 좀 덜 아프고 스물 세 살 때 보다는 스물 여섯 일 때가 훨씬 덜 아프다. 이별의 경계에 선 그 순간의 통증만큼은 과거와 비견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지속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확연하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멀쩡하다는 것이 결코 그를 덜 사랑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와 헤어진 지 훌쩍 시간이 지나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아직도 그의 안부를 물어온다는 것은 참으로 생뚱맞은 일이다.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 누군가 그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순간 난감했다. 그가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린 끝났어요, 라고 말을 해줘야 앞으로는 더 이상 저런 소리를 듣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누군가 사귀고 있었다는 걸 드러냈던 나 자신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플 때 헤어졌다는 사실 하나가 그를 좋지 못한 남자로, 아플 때 헤어짐을 당했다는 사실 하나가 나를 안된 여자로 만든다는 것도 그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시작이든 끝이든 연애는 당사자의 몫이다. 나는 한 때나마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한 전력이 있었던 내 자신이 우스웠다. 주변 사람들이란 연인들을 하나의 풍경, 벽에 걸린 그림처럼 바라보고 웅성거리기 밖에 더 하겠는가. 끝났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를 궁금해하지 않고 그가 남들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는 나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혼자서 그의 길을 가는 것이다.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그들만의 몫이 있다. 그들이 잠시 겹쳐 있었던 그 추억이야말로 풍경으로 남는 것이다. 풍경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고 우리에게 답을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풍경은 풍경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