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다소 호들갑스럽게 나를 반가워하던 막내 이모가 오늘 입원을 했다. 유머가 있고 낙천적인 이모는 자궁에 물혹을 키우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웃는 얼굴을 했던 것이다. 내가 스물두 살이었던 그해, 엄마가 똑같은 병명으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의사가 소독을 할 때마다 마치 상해버린 비엔나 소시지처럼 드러났던 엄마의 수술 자국은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도 내 눈에 선하다. 내가 옆에 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술 후 통증 때문에 눈을 떠서 나를 보지 못했던 엄마. 수술 이후에 엄마는 눈에 띄게 늙어갔고 마흔이 넘어도 비교적 낭창낭창했던 허리 부근에 보호막처럼 살이 붙기 시작했다. 엄마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예전엔 안그랬잖아. 이 정도 표현 밖에 못하는 무뚝뚝한 딸이지만 나라고 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모가 아프다는 것은 엄마가 아픈 느낌이랑 많이 비슷한 것 같다. 누구든지 아픈 것은 참 안된 일이지만 큰어머니가 편찮으셨을 때와는 다가오는 느낌이 좀 다른 것 같다.

이모에게는 올해 수능을 친 채 스물도 되지 않은 딸이 하나 있고 심하게 엄마 탐을 하는 철딱서니 아들도 하나 있다. 이모가 아니면 고지서 하나 제때로 떼어 올 줄도 모르는 심약한 남편도 있고 수시로 드나들며 두 달에 한 번 꼴로 건강검진을 받는 꼬장꼬장한 시부모님도 있다. 그 뿐인가. 엄마 노릇을 대신 해줘야 하는 열 살 배기 조카와 그 조카의 아빠인 여리고 게으른 남동생도 있다. 그렇게 많은 역할들 속에서도 지친 내색 없이 항상 여유가 넘치고 씩씩하기만 했던 이모가 내일 수술을 앞두고 있다. 살고 죽는 문제를 떠나서 홀로 수술대에 오른다는 건 참으로 외롭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항상 안타깝게 여기던 동생을 자신이 겪었던 똑같은 고통 속으로 말없이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다는 아니어도 대강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밖에 엄마로썬 상처의 세월이었던 어떤 시간이 떠올라 저렇듯 잠못 이루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다. 이럴 땐 좀더 살갑고 좀더 다정하지 못한 내가 참 아쉽다. 하루 빨리 귀여운 막내이모가 넉넉한 온몸으로 나를 열렬히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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