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에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  - p. 168

따라서 웃음은 최고의 익살꾼의 손에 쥐어지면 도덕적 목적을 획득하며, 농담은 다른 사람들이 성격과 습관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수단이 된다. 농담은 정치적 이상을 표현하고, 더 공정하고 더 멀쩡한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 p. 224

정치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기후 위성으로 기상 상태의 위기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늘 문제를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거기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용한 것을 가르쳐준다. 그 결과 피해의식, 수동적 태도, 혼란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 p. 288

물론 기독교는 세속 도시와 그 가치를 없애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도 서양에서 사람들이 부와 미덕을 구분한다면, 또 중요한 사람이냐 아니냐만 따지지 않고 선한 사람이냐 아니냐도 따진다면, 그것은 많은 부분 수백 년 동안 자신의 자원과 위신을 이용하여 지위의 의로운 분배에 대한 몇 가지 특별한 관념을 옹호해온 기독교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 p. 342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 p. 372

그러나 지위에 대한 요구는 불변이라 해도, 어디에서 그 요구를 채울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다. 창피를 당할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어떤 집단의 판단 방식을 우리가 이해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결국 우리가 따르는 가치와 관련이 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따르는 것은 두려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복종을 하기 때문이다. 마취를 당해 그 가치가 자연스럽다고, 어쩌면 신이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거기에 노예처럼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 조심스러워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p. 385

 

알랭 드 보통 / 불안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 p. 22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인물들의 행동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친구나 어떤 연인은 우리가 파산을 하거나 수모를 당해도 우리를 모른 체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가끔은 그 말을 믿어볼 수도 있겠지), 우리가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속물들의 매우 조건적인 관심이다.  - p. 27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루소의 벌거벗은 야만인은 가진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타지마할에 사는 후손들과는 달리 그들은 아주 적은 것을 갈망하는 데서 오는 큰 부는 누릴 수 있었다.  - p. 82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진다.  - p. 119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 p. 124

 

알랭 드 보통 / 불안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랜만에 학교 근처에 가고 방학이 되니 Y 생각이 났다. 그 때도 겨울이었을거다. 자취방으로 놀러간 나에게 마른 김가루를 얹은 뜨겁고 고소한 라면을 끓여줬던 것이. 한 쪽 벽면을 그득히 채우고 있던 책들과 목욕탕의 비누 냄새가 기억날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은 Y를 볼 수 없다. 졸업을 한 뒤로 생활에 쫓겨 Y와의 연락을 잊고 지냈고 언제든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녀는 내가 모르는 곳으로 떠났다.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고. 예전에 쓰던 다이어리나 일기장의 귀퉁이에는 Y의 흔적이 남아있다. 색감이나 재질이 독특한 종이에 비스듬히 써 내려간 메모들.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이 든다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넌 나보다 더 했지.

Y를 처음 본 것은 새내기 시절 교양국어 시간이었다. 작가를 하나씩 정해서 조별로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교육학과 대표로 눈에 띄게 작은 여자 아이가 교단에 섰다. 까만 단발머리에 느릿느릿 정감 있는 경상도 사투리,  그녀의 첫인상은 매우 독특했다. 어디서 봤던 사람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한 편, 세상에 저런 케릭터를 가진 여자아이도 드물거야 싶은 독특함이 그녀에게 있었다. 그녀는 일견 평범한듯 하면서도 특이했고 특이한듯 하면서도 익숙하고 편안했다. 나는 단번에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다. 이후로 우리는 같은 단과대학 내에서 생활했기에 마주치면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눴고 같은 기숙사 내에서 생활했기에 밥을 먹다가, 기숙사를 오가다가 간혹 마주치면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새내기 시절엔 대개 그렇듯, 본격적으로 말을 건네기엔 뭔가로 둘 다 분주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우리가 결정적으로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학기가 되어 동아리 생활을 시작한 나는 괴물같은 선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동아리 생활의 열혈분자가 되어 있었다. 그 날도 어김 없이 동아리방에서 네눔을 쥑이네, 네년을 살리네 하고 있던 중 동아리 문이 빠꼼히 열리면서 익숙한 표정의 쬐그만 여자 아이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어, Y잖아?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고 서로가 모르는 사이 똑같이 2학기부터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부터 Y와 나의 활약상은 바야흐로 화려하게 펼쳐진다. 늘상 칙칙+암울+꾸리꾸리+사막사막 했던 동아리는 Y와 나, 그리고 여전히 연락이 닿고 있는 자칭, 빨강 머리 앤 H의 합작으로 완죤 개그 동아리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한 터프했던 총무 언니는 계속 그런 식이면 술을 잔뜩 먹여서 죽여버리겠다고 위협도 했으나 우리는 몰라요~ 좋아라~ 하면서 겁나 놀고 겁나 까불고 겁나 웃었다. 우울한 자태로 쇼파에 파묻혀 있던 선배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Y가 췄던 창밖을 보라, 안무는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적시면 생각나곤 한다. 몹시도 그립게. 정말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킥킥킥, 웃음이 삐져나오던 호시절 중의 호시절이었다.

그렇듯 철모르게 즐겁기만 했던 우리도 2학년이 되고 슬슬 대학생활에 회의를 느껴가는 시기가 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조차 창문에 모래알 비벼대는 소리처럼 짜증났던 시기,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아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언제든 네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라던 선배에게 건방진 눈으로 왜요? 라고 물었던 나는 나중에 동아리에 대한 향수병까지 앓게 되지만 당시에는 어느 곳에든 내가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버겁고 귀찮고 신경질 나기만 했다. 나는 혼자서 무한히 자유롭고 싶었다. 뒤늦게 시작된 사춘기였다. 한편 나의 탈퇴로 잠시 갈등하던 Y는 그녀가 열망하던 것이 있었기에 계속 남기로 했고 동아리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가끔 만나서 같이 웃고 같이 울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변하고 그녀도 변하고 있었지만 그건 각자의 변화일 뿐 우리의 관계에 변화라곤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돌연 휴학을 결심한 내가 복학을 해서 학교로 돌아왔을 때 Y는 마치 멸종 위기에 놓인 새처럼 수줍고 두렵게 변해 있었다. 사람 만나기를 극도로 꺼리고 있었고 자취방에 혼자 틀어박혀선 밥도 해먹지 않고 과자만 사다먹으며 단편소설들을 쓰고 있었다. 복학을 한 나는 다른 모든 것을 덮어둔 채 열심히 학과 공부에 매진했고 간혹 신변에 생긴 얘깃거리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Y를 방문하곤 했다. 그녀도 가끔 써모은 단편소설들과 먹을거리를 사들고 내가 사는 자취방을 방문해서 밤이 늦도록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다 가곤 했었다. 밥을 잘 안해먹는 그녀를 위해, 마치 밥을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자취를 하던 나는 반찬을 만들어서 주었고 그녀는 반찬이 있으면 뭐해, 밥을 안해먹는데, 라면서 번번히 거절하곤 했다. 안쓰러웠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그냥 가끔만 만나는 것이었고 그녀의 소설들을 읽고 코멘트를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그냥 두었다. 나처럼 시험을 준비하고 평범하게 살길 바랬으나 Y의 고집은 그녀 자신을 몰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 스스로 깨닫기를 바랬다. 너도 시간이 좀더 지나면 우리의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될거야. 사는 거 별거 있더냐.

그러나 Y는 돌아오지 않았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와 쿵닥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내가 어느 날 Y를 떠올렸고 그녀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을 땐 이미 늦은 다음이었다. 학과에 전화를 했을 땐 자퇴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겨우 예전에 살던 자취방 주소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메일을 보내면 반송되어 돌아왔다. 전화번호도 바뀌고 그녀가 보냈던 편지 겉봉에는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녀가 일하고 싶은 곳이 있다고 간간히 이야기했던 그 곳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Y는 아무런 단서 하나 남기지 않고 총총히 사라졌다. 서울에 가고 싶다 했으니 남동생을 돌봐주면서 어느 대학의 문예창작과라도 다니고 있을런지 기대도 해보지만 혹, 어디로 시집 가서 조용히 살고 있는지 소설을 쓰러 먼 곳으로 떠났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문득문득 Y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도 나를 기억해 줄 지 모르겠다. 이렇게 뻔한 생활인으로 변해 있는 나를 보면 무슨 말을 할지도 궁금하다. 나는 그녀가 이런 식으로 사라진 것이 많이 놀랍다거나 원망스럽지는 않다. 언제나 사람들로부터 숨어 있길 좋아하는 그녀였으니까. 나는 예외가 되리란 생각은 오해였던 것 같다. 누구나 혼자이고 싶은 시간이 있다. 그것은 짧을 수도, 길어질 수도 있다. Y가 어딘가에서 건강히 잘 살아가고 있길 빈다. 그녀와 함께 했던 기쁨들, 슬픔들, 실수와 몽상으로 점철된 시간들, 우리는 왜 그렇게 무모하고 어리석고 착하고 아름다웠는지. 그리고 그녀가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Just Read It!

- 표정훈 / 탐서주의자의 책 / 26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잘코군 2005-12-2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봤어요. ^^

깐따삐야 2005-12-2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고 절판되어서 구하기 힘든 책을 쓱싹했던 경험이 떠올라 흐뭇(?)했습니다.
 

요즘 들어 사랑니가 속을 썩이고 있다. 그것도 누워서 배 째라는 식으로 올라오는 중이라서 대학병원까지 방문해야했다. 내 몸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건방지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다. 쓸데없는 막니 하나가 아주 매트릭스를 찍고 앉았다. 05년 후반기는 참 고단하기도 하다. 튼튼한 것으로 보자면 이십세기 마지막 히로인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건강을 자랑하고 다니던 내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차츰 모든 것이 좋아질 무렵 방학을 즐겨볼까 했더니만 기어이 사랑니가 경종을 울리는구나. 어쨌거나 마지막 경종을 울리다, 가 되었음 좋겠는데.

한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도착한 대학병원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참 많기도 하다.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은 아들의 네 번 째 다리 수술의 예약을 확인하러 온 것 같았는데 병원 측에서는 예약이 빠진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아주머니는 그럴리가 없다고 의사 샘과 전화 연결을 부탁한다고 말했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참 안쓰러웠다. 네 번 째 수술이라니. 세상에 그걸 빠뜨리면 어쩌자는 건데. 접수원들의 기계적인 손놀림을 보고 있자니 나도 불안해졌다. 파바방 도장 찍고 드르륵 카드 긁고 찍찍 영수증 구분선 뜯어내고 눈이 오락가락했다. 엄마는 대학병원 특유의 복잡다단한 진료 절차를 밟으면서 내 돈 내고 이렇게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는 일도 드물다면서 다 때려치고 식구 중에 하나를 의사 만들던지 해야지 불편해서 못 살겠다 하셨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는데 기왕 하는 거 아주 오지게 열심히 해서 의사나 될 걸 그랬나, 에혀. 암튼 산골에서 줄창 미끄러져가며 여기까지 왔다는 엄마의 기지가 없었다면 아마 어둑어둑해진 지금쯤에나 간신히 집에 도착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랑니 발치는 실패했다. 오늘 확 빼버리고 왔음 좋았을텐데 염증이 있어서 가라앉힌 다음 뽑아야 한단다. 그것도 열흘 뒤에나. 어쨌거나 열흘 동안 이 쥑일놈의 사랑니와 한 몸 한 뜻으로 동고동락 해야 하는 것이다. 네모난 마스크를 쓴 얼굴이 네모난 의사 샘은 차분차분한 말투의 여자 샘이었고 뭐 그런 얼굴이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냥 내 느낌 상 이를 잘 뽑게 생기신 것 같았다. 마치 영구치 중의 하나인 두 번 째 어금니처럼 억세고 튼튼하게 생기셨다. 그나마 다행이다.

사랑니 뽑기 전에 이틀 정도 학교에 나가서 근무를 해야 하고 입시 때문에 아이들도 봐야 될 것도 같다. 만나려고 했던 친구들을 만나게 될는지는 잘 모르겠고. 어차피 맛난 것도 못 먹고 볼이나 싸매고 앉았을텐데 귀찮아서 얼른 집에 보내려고 들겠지. 이 쥑일놈의 사랑니, 방학을 아주 통째로 잡아먹을 심산이구나. 켁! 샘들은 지금쯤 제주도 앞 푸른 바다를 내다 보면서 싱싱한 바다회를 먹으며 간만의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겠구나. 사랑니를 마지막 액땜으로 다가오는 2006년엔 본래의 건강하고 발랄했던 내 모습을 찾고 싶다. 아프면 다 소용 없다. 정말루.

※ 사랑니가 영어로는 wisdom tooth라는데 지혜를 알 나이에 나기 때문이란다. 처음에 솟아날 때의 아픔이 첫사랑의 고통과도 같다고 해서 사랑니라는 설도 있고. 근사한 이름과 그럴듯한 의미에 비하면 생긴 거나 하는 짓이나 당최 꼴 뵈기 싫어 미티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잘코군 2005-12-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랑니가 났는데 안뽑아도 된대요. 저도 모르게 다 났어요.

깐따삐야 2005-12-28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받으셨구랴. 부럽소. 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