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학교였다. 월요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공문이 왔으니 학교로 나오라는 연락이었다. 다리도 시원찮고 사랑니 때문에 앓고 있는 줄 알면서 그깟 대수롭지 않은 공문이나 처리하라고 이렇게 눈이 미친듯이 오는 날 학교를 나오라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어제 장학사한테 구두로 보고했으니 문제는 없을거라고 했더니 그래도 나오란다. 암, 그렇지. 학교가 어떤 곳이며 나의 상사가 어떤 사람인데.

부시시한 몰골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택시비를 오른손에 쥔 채 집을 나섰다. 눈은 나를 저주하듯 더더욱 심하게 퍼붓기 시작했다. 사랑니는 왠지 더 쑤시는 것 같고 미끌미끌한 길을 걸으려니 짜증이 뒷통수에서 막 솟구치려는 찰나 길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그 지점에서 옴마야, 쇼트트랙 선수들이 미끄러지며 결승점에 들어오듯 샤-악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코트며 바지며 쥐고 있던 이천원까지 몽땅 눈과 흙탕물이 뒤섞인 채로 더러운 자태를 길 한복판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다쳤던 오른쪽 발목에 징한 느낌이 전해져 왔으니 창피한 마음에 벌떡 일어섰다. 다행히 발목은 괜찮았다. 짜증과 설움 만땅이 되어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그러신다. 너는 어쩜 하기 싫은 것만 하려고 하면 넘어지냐고. 맞다. 바로 그거다.

어쨌든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 가서 미친듯이 공문을 처리하고 다시 미친듯이 퍼붓는 눈을 맞으며 집에 돌아왔다. 공문 때문에 학교 나왔냐고 묻는 말을 들으니 더 짜증났다. 네네, 이깟 별스럽기 짝이 없는 공문 하나 때문에 개처럼 헐떡거리며 예까지 왔수다, 그뿐인줄 아쇼? 오다가 냅다 미끄러져서 다시 집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우. 발목은 아슬아슬하지, 사랑니는 욱씬대지, 이런 걸 가리켜 불행 삼합이라고 하는 거 아쇼? 물론 실제로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나의 밥줄, 나의 눈물겨운 직장이니깐.

아무튼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는 하기 싫은 일을 하려고 하면 반드시 넘어진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달리기를 하기 싫으면 달리다가도 꼭 자빠졌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러 가야하는 일이 생기면 운동화를 신고 가도 꼭 넘어졌다. 올해 억지로 맡은 업무 때문에 출장을 갔을 때는 아예 쇼크를 먹고 쓰러져서 좁은 종네에 소문이 파다하게 났었다. 소문이 와전되어 수업하던 중 과로로 쓰러졌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기가 막혔다. 그리고 올 가을엔 기어코 그 업무 때문에 타 도시로 출장을 다녀오던 길, 버스에서 내리다가 데구르르 구르는 바람에 발목을 크게 다쳐 4주 진단을 받고 병가를 내야했다. 나의 머리는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이렇듯, 없던 돌뿌리가 보이고 깨끗하던 안경에 허옇게 김이 서리는 등 곧잘 넘어지는 방향으로 회전한다.

엄마는 이런 나에게 세상을 마음껏 깐보라, 는 조언을 해주셨다. 나쁜 일, 하기 싫은 일을 거부하려고 들지 말고 싫은 사람, 거북스런 사람 때문에 실망하지도 말고 세상엔 그런 일도 있지, 세상엔 저런 사람도 있는게지, 이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라고 하신다. 싫은 것에 연연할수록 싫은 것에 더 휘말려들고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나 스스로가 된다는 것이다. 싫은 사람일수록, 보기 싫은 사람일수록, 그까짓꺼 그렇고 그런 사람도 있나보지, 깐봐버리면 그 때서야 벗어날 수 있는 거라고 하신다. 넘어져서 다쳤던 사람도 나 자신이 아니었냐고 그러신다.

엄마 말씀이 맞다. 세상이 내가 생겨먹은 모양대로 끼워 맞춰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 자신을 세상 속에 억지로 우겨넣을 수도 없다면 그냥 내 자신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너무 빡빡한 사고로 일관했던 것 같다. 발목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좋아질 것이고 사랑니도 방학 동안 발치하면 더 이상 속을 썩이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닥친 일이면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더 이상 넘어지는 고통까지 겸비하지 말자. 내가 갈 길에. 예쁜 발자국을 만들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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