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원에 갔다. 내일이 아는 선생님 결혼식이라 간만에 사람들 북적거리는 곳으로 외출을 해야 할 일이 생겨서 머리를 살짝 다듬기로 했다. 봉투만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가 소견머리 없는 년이라고 엄마한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동네 미용실은 연탄 난로가 중앙에서 뽕뽕 더운 기운을 내뿜고 있어 따듯하고도 왠지 운치 있었다. 난로 위에 끓고 있는 물로 타먹는 인스턴트 봉지 커피는 물 건너 온 원두커피보다 훨씬 맛있다. 원래 우리나라 봉지 커피는 외국 사람들이 엄청 좋아해서 우리나라에 왔을 때 자기네 나라로 사가지고 간다는 설도 있다.

커피를 한 잔 타서 호로록 마시고 있는데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한 아줌마들의 수다. 내가 이 미용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화끈하고도 소탈한 미용사 아줌마 때문이기도 하다. 탄탄한 연륜으로 머리를 잘한다는 것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아무튼 오늘의 화제는 아줌마의 친구인 아무개 아줌마의 사연이었는데, 한 인물하고 한 성격한다는 그 아줌마가 아예 내놓고 바람을 핀다는 것이었다. 손바닥만한 동네니 남편도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아이들도 알지만 그 아줌마가 애인으로부터 거둬들이는 물자들이 워낙에 고급하고 럭셔리하야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되시는 분께서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오버해서 아줌마에 대한 애정을 과잉 표시한다는 것이 아줌마를 골때리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줌마들은 주야장천 거 참 능력있는 여자를 마누라로 얻어서 그 식구 호강한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그런 여자들이 남편한테도 잘하고 자식한테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음식까지 잘한다면서 말이다. 안그래도 미용사 아줌마도 한 술 보태셨다. 능력있는 애인 뜯어서 25만원짜리 조끼 사주는 엄마가 어딨겠냐고.

물론 오가는 대화 속에는 정말 그 여자 야심차다, 라는 반응 아래 나는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러지도 않겠다는 평범한 아줌마들의 의지가 담겨 있지만 이제는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 되어버린, 한 집 건너 한 집일이 되어버린 것이 부부 사이의 바람인 것 같다. 그것을 회복불능의 배신과 파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젠 적당히 눈감아 주어야 자기도 좋은 사람이 되고, 쿨하고 모던한 배우자가 되는 것처럼 흘러가는 것이 요즘의 세태인 것 같다. 말릴 수 없는 것이 바람이고 파탄 지경까지 가봐야 어차피 아이들 엄마만한 사람이 있겠냐는 식의 체념에 애인만큼 잘해주진 못해도 그 반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경쟁심까지. 몇 십 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주변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어쩌자고 다른 가치들은 무시한 채 날로 영악해지기만 하는 건지,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아이들까지 낳아서 사는 방식을 대물림하려고 드는 건지 아직 미혼인 나로써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여자들이 예전에 비해 큰 소리를 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은 같은 여자로서 참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저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더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을 간혹 한다. 직업 탓인지는 몰라도 부모가 기본적인 신뢰와 배려 없이 서로의 권리와 서로의 자유만을 주장하는 가정은 그 부작용을 고스란히 아이들이 떠안기 때문이다. 요즘은 너무 모든 걸 내놓고 산다. 솔직함과 자유분방함이 시대의 아이콘처럼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어설프게 어른들 흉내를 내며 날로 발칙하고 영악해져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무서운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았다면 뻔뻔하게 사는 법이 아니라 떳떳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학교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하지 않는 아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 아이들은 대개 결손가정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삶을 사는 데 있어 별다른 기준이나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는 부모들 밑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대충 살아도 살아지긴 하는 게 한 세상이라지만 적어도 부모가 된 사람은 자신이 사는 모습이 자식에게 그대로 대물림 될 수도, 아니면 반대로 피해의식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숙지하며 살아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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