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와 셀린느

같은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영혼끼리 공감하는 운명같은 하루를 보내고 작별하는 두 사람. 그들은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돌아섰지만 우리는 세월이 훌쩍 흐른 다음에야 비로소 Before Sunset이란 영화 속에서 더욱 성숙해진 그들과 재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나의 예상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같다. Before Sunset은 아직 보지 못했다. 개봉 당시에 봤더라면 추억으로 남을 뻔 했다. 그 때 못 보길 잘했다. 나중을 기약한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늘 더 많은 자유를 느낀다. 마음 놓고 일탈을 한다거나 누군가를 일부러 속인다거나 그런 의미의 방종이 아니라 왠지 다리 힘을 풀고 터덜터덜 걸어도 좋을 것 같고 호흡할 수 있는 산소의 양마저 좀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 말이다. 미국 청년인 제시(에단 호크 분)와 프랑스 아가씨인 셀린느(줄리 델피 분)도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엔나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랑의 아픔, 결혼의 의미,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평소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했던 사연들을 공유한다. 젊고 순수하고 풋풋한 이들은 상대에 대한 겉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빠져들지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서로의 갈 길로 떠난다. 두 사람은 아마 평생 서로를 그리워하고 떠올리며 살 것이다. 닮은 두 영혼이 마주쳐 불꽃을 일으키는 순간은 기대와는 달리 그렇게 쉽게, 자주 일어나 주지는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론 그렇게 꿈처럼 시작된 만남이라 하더라도 생활 속에서 서서히 퇴색되기 마련이니 어쩌면 두 사람이 여운만을 남긴 채 서로의 일상으로 복귀한 것은 참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어떤 한 사람을 허무하게 떠나 보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나와 영원히 오래오래 친구가 되길 바랬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려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연인 이외에도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좋으면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면 서로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나보다 먼저 사랑해 온 사람이 있었고 그는 이런 나를 설득했고 이해했고 기다렸지만 나는 당최 말을 듣지 않았다. 어리고 고집이 세었던 나는 그를 이기적인 욕심쟁이라고 생각했고 그를 좋아하면서도 미워했다. 이후 시간은 흘렀고 나의 이별 통보로 우리는 헤어졌다. 살다가, 간혹 그와 나눴던 대화가 한 움큼씩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한참 어린 나를 위해 대화의 코드를 그 편에서 섬세하게 맞추어 주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우리는 잘 맞았고 서로의 매력에 탄복했으며 너를 만나 행복하다는 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의 나라면? 나는 어렸기 때문에 그와 헤어졌지만 어렸기 때문에 그와 행복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두 가지 일이 벌어지는 데 한 가지 이유가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단 한 번 뿐일지언정, 혹은 앞으로 나에게 그런 행운이 주어질지도 모르겠으나 그 기억을 내 인생의 보너스 정도로 여기고 있다. 나도 영화같은 추억 하나 가지고 있다는 것. 정말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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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5-12-3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포 선셋 보고 너무나 좋아서 얼마전 선셋관 선라이즈 시리즈를 디비디로 구입했어요. 선라이즈를 아직 보지 않았는데. 어여 시간내서 봐야겠어요. 사랑은 정말 어렵죠. 너무나 예측 불가능하고 매번 다르기때문에 힘들어요.

깐따삐야 2005-12-3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사람끼리 감정의 저울질 없이 담백하게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재섭과 소희

몽환적이면서도 나른한 루시드 폴의 음악과 잘 어울렸던 이 영화는 매우 어둡고 우울했던 배경과 스토리 이면에 두 배우의 반짝거리는 젊음으로 빛이 나던 영화로 기억한다. 영화 속에서 재섭(김태우 분)은 정말 이도저도 뜻대로 안 풀린 채 상처와 불만을 가득 안으로 머금은, 결국 모든 것에 무심해지다 못해 초탈해진 듯한 학원 강사의 얼굴 그대로였다. 소희(김민정 분) 역시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한 채 외로움에 치를 떠는, 그것을 반항이나 당돌함으로 한껏 위장하여 내보일 수 밖에 없는 여리고 섬세한 여고생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감독은 배우를 잘 골랐다. 옆으로 가방을 매고 서 있는 재섭의 구부정한 어깨와 말은 안해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듯한 소희의 크고 맑은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보습 학원의 국어 강사인 재섭은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소통하지 않은 채 오직 길거리의 창녀들과만 몸을 나눈다. 그는 그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아무런 변화도 없고 아무런 희망도 없는 따분하고 외로운 일상이다. 그런 일상 속으로 소희라는 한 소녀가 뛰어든다. 공부도 잘하고 부유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소희에게 그런 것들은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녀는 이해 받지 못함에 괴로워하며 원조교제를 하는 등 자기 스스로를 막 다룬다. 재섭은 이러한 소희에게서 알듯 모를듯한 동질감을 느끼며 점점 더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버스 정류장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고 같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서로의 삶에 대해 수수께끼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그러나 임신과 낙태, 어린 여고생이 겪기엔 너무 큰 일들을 겪어버린 소희는 어느 날 부터인가 학원에 나오지 않고 재섭은 소희가 사라진 무료한 일상 속에서 계속 그녀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 정류장에서 소희를 다시 만나고 재섭은 소희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 이 영화를 외로움이 다른 외로움에게 말을 걸다, 라고 읽었다. 아직 스무살이 되지 않은 소녀와 아직 사회 속에 완벽히 편입되지 못한 청년은 서로가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본다. 삶 속의 위선과 구차함을 마주한 이들은 어설프게라도 연기를 하며 살 수가 없다. 산다는 것이 본래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고(박인환-'목마와 숙녀'에서 인용) 저마다 한 통속이 되어 서로의 비위를 맞춰 주며 통속적으로 굴러가는 것임을, 이들은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들이 택한 것은 왕따 놀이. 사회라는 공간 내에서 연기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바보가 되거나 왕따가 되어야 한다. 바보는 간혹 동정이라도 받지만 왕따는 혼자 고상 떤다고 뒷담화에나 오르락 내리락 하기 일쑤다. 때론 한 번 더 뒤집어서 본래는 왕따가 되기 좋을 스타일인데 바보 연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들레르의 알바트로스처럼 큰 날개를 숨기고 일부러 뒤뚱거리며 걷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웃고 즐거워한다. 그의 정신은 고고하게 창공을 날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육신이 질퍽한 지상에 있음을 잘 안다. 그리고 그 씁쓸한 괴리감을 웃음과 농담으로 채운다.

그래서 재섭과 소희의 왕따 놀이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나는 이들이 작은 동네만 오락가락하는 버스 말고 기차나 비행기도 타 보았으면 좋겠다. 컵라면만 먹지 말고 대파를 송송 띄운 맛있는 라면도 먹어보고 나와 관련된 사람들의 명단을 하나씩 정해서 천장 보며 욕해 보기, 그런 놀이도 하면서 놀았음 좋겠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 보고 말 없이 이해하는 soul-mate를 찾았으니 이제 두 사람이 할 일은 안으로 더 안으로 파고드는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을 같이 해보는 것이다. 지금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슬픔이나 괴로움, 그게 전부인 것 같지만 스무살이 되고 서른살이 되면 뭔가 다른 게 보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도 별 게 없고 삶은 자꾸만 더 구차해진다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싱싱한 채 살아 있고 더욱이 그리운 그 사람과 함께라면 그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두 사람이 이 영화처럼 솔직하고 간결하고 담백하게 살길 바란다. 때때로 젊다는 게 너무 힘이 드는 나를 포함한 모든 청춘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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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신 엄마가 빈둥대며 이것저것 투덜대는 내게 말씀하셨다.

"아무개 씨가 너 중신 해준다 어쩐다 하더라."

"옹? 그래서 뭐랬어?"

"됐다고 했지."

"왜?"

"만나봐서 서로 좋으면 상관 없는데 괜히 한 쪽에서 마음에 안 들거나 그래봐. 이 좁아터진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소문이 빤하게 퍼지겠냐. 괜히 흠만 잡히지. 이 동네는 한 집 건너 한 집이면 죄다 육촌에 팔촌에 그렇더만."

"글킨 그러타... 근데 어떤 사람인데?"

"공무원이라더만. 허이구, 그래도 시집은 간다고 하는 거 보면 내 웃겨서."

"왜에~~~? 쳇, 내가 어때서."

"몰라서 묻냐. 내 딸이지만 참... 너같은 철딱서니를 누구한테 맡길 지 한 걱정이다. 내가."

"나보다 어린 쌤들도 여기저기 막 소개팅하고 선보고 그러더라 뭐."

"그 사람들이 뭐 다 시집 가려고 그러는 줄 아냐. 사람들 만나면서 다 자기 값이 얼마나 나가나 매겨보고 연애하다 잘 맞는다 싶으면 결혼도 하는거고 그럴려고 하는거지."

"참 할 일도 음따. 귀찮게스리... 그러고 다니면 귀찮지 않나. 연애가 얼마나 힘든 건데."

"네년이 힘든 연애만 골라서 하고 다니니까 그렇지. 하여간 다 너보다는 똑똑해. 알았냐?"

"몰라. 쳇!"

 

아빠라는 남자를 처음 만나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이따금씩 마치 연애와 결혼의 달인처럼 내게 면박을 주곤 한다. 일평생 한 남자랑만 연애하고(들은 야그라서 확신할 수 엄씀) 한 남자랑만 살아봤으면서도(이건 확신할 수 있씀) 내 앞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감 넘치고 파워 넘치는 자태로 연애와 결혼에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시곤 한다. 이러한 엄마 앞에서 나는 대체로 깨갱~ 하고 나가 떨어지기 일쑤인데,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엄마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각에도 참 바보 찌질이같은 연애만 했고 옷 보는 안목부터 시작해서 남자 보는 안목도 더럽게 없다. 엄마의 평가에 따르자면 남자를 보는 나의 안목은 단순의 극치를 넘어서 흡사 백치에 가깝다. 착한 남자가 좋더라 하면 정말 말 없고 순한 거 하나만 보고, 똑똑한 남자가 좋더라 하면 정말 박학다식한 거 하나만 보고, 그래도 나이 많은 남자가 이해심도 넓고 좋더라 하면 정말 나이 많은 거 하나만 본다. 착하긴 한데 무능하고, 똑똑하긴 한데 성격 지랄갖고, 나이는 많은데 느끼한 다중인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시야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나마 처음에 이런 나를 발견하고 누가 말려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누가 미처 발견 못한 사이 일단 한 번 사랑에 빠진 나는 사람을 반쪽만 알고 사귀었다는 것도 모른 채 고단한 연애에 올인한다. 이럴 때는 누가 와서 말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의 측근들은 알고 있다. 이런 나를 말리면 말릴수록 귀를 닫아버리고 더욱 더 연애에 투신한다는 것을. 그들은 그것마저 알고 있다. 결국 네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내비두며 간간히 삐져 나오는 푸념들을 받아주다보면 연애에 지친 내가 가족들을 비롯한 측근들의 품으로 컴백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럴 수 있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도리질을 해가면서 말이다. 그러면 나의 측근들은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올 것이 온 것 뿐이라고 얘기한다. 에라이, 똘추야. 그걸 이제 알았냐? 근데 그 사람도 너와 잘 안 되길 잘했어. 너도 쉬운 애는 아니걸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지금 나는 또 다시 그 쥑일놈의 사랑에 빠져보길 기대하는 것이다. 중매 시장에 뛰어들어 차는 있으세요? 연봉은 얼마나? 혹시 장남이신가요? 주말마다 그런 지루한 질문들을 던져가며 소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에 빠져보고 싶은 것이다. 손바닥만한 지역사회 내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오로지 십대와 육십대의 남자 밖에는 보이질 않지만, 혹시 아는 얼라의 외삼촌이나 사촌 형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고 소개팅 한 번 못하고 있지만,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인연이라면 언제 어디서고 뿅~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뽀샵 처리된 슬로우 모션으로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늘상 운명같은 게 어딨어, 말하고 다니지만 내심 정말 운명의 상대가 있는 건 아닐까, 나에게 어울리는 100%의 남자가 어딘가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 어쩌나, 이런 택도 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망상으로 그치고 말든 정말 현실화 되든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남들 말맞다나 똘추인 나는 아마 앞으로 누구를 또 만나더라도 너는 내 운명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두려움 없이 올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100%의 남자를 만났다고 하하호호 좋아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래서 엄마가 내가 연애 어쩌네 하면 탐탁치 않게 여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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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5-12-29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05-12-29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ㅡㅡ;
 
편집자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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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일의 director가 된다는 것. 누구나 한 번 쯤 꿈꾸어 보지 않았을까.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직접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고 직접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생각만큼 만만한 일은 아닐지라도, 어떤 책을 보다가 이렇게 밖에 못 써? 이렇게 밖에는 못 만들어? 이러한 건방진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남들보다 책을 조금 더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책 한 권 세상에 내놓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봤지만 어떻게 그 정도의 책을 감히 세상에 내놓을 생각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냉정한 독자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출판사 마음산책의 대표인 편집자 정은숙이 편집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기록한 것이다.

어떻게 출판인의 길에 들어섰고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아 매진했고 한 출판사의 대표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는지 비교적 자세하고 성실히 기록하고 있다. 

편집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이렇듯 자세하게 고백한 책은 아마도 처음이지 싶다.

간혹 작가의 인터뷰 속에, 혹은 작가가 주인공인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편집인들의 모습은 작가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작가의 신념을 무시하고 대충 상품성만 따지는 인물들로 비춰지기 일쑤였는데 (실제로 그런 편집자들도 없진 않겠지만) 이 책 속에서 드러나는 편집자의 모습은 불교에서 말하는 천수보살이나 만수보살처럼 보인다.

그만큼 책 한 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편집자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어떤 책을 만들 것인가에 대하여 궁리하고 모색하는 기획자로서, 좋은 책이 될 수 있는 좋은 글을 알아 볼 수 있는 독자이자 감식가로서, 저자를 배려하고 저자와 교감하는 매니저로서, 책의 얼굴을 찾아주는 예술가이자 디자이너로서, 책의 매력을 어필하는 홍보인으로서,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총감독으로서, 편집자의 역할은 다양하고도 중요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책의 대부분이 마음산책에서 출간된 책들이고 그 책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도 하나의 홍보 전략이 아닌가, 편집자로서의 삶 전체를 조망하기엔 다소 국소적이고 한계가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편집의 전 과정을 한 눈으로 이해할 수 있고 편집자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출판인이나 편집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더불어, 편집자 정은숙이 사회 초년생으로 출판에 입문하여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하나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될 때까지 겪어왔던 시행착오의 과정을 지켜보며 편집자로서의 삶을 넘어서, 전문가로서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지혜롭고 열정적으로 행동할 것. 

스스로 먼저 감동 받을 줄 알고 사람들에게 그 감동을 돌려줄 것.

그녀의 이러한 조언은 꼭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인생의 어느 분야에서나 통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게으름에 빠진 무료한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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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오 마이 캡틴


키팅선생님(로빈 윌리암스 분)


토드 앤더슨(에단 호크 분)

중학생이었을 무렵에 이 영화를 tv로 처음 봤다. 꿈 많던 소녀 시절(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참...)한 마디로 필 받고 감동 먹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소설로도 보고 키팅 선생님이 떠난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빌려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Carpe Diem. - 오늘을 즐겨라. 키팅 선생님이 남겼던 이 말이 하도 근사해서 방학 때 친구에게 편지나 엽서를 보낼 때 끄트머리에는 항상 저 말을 적어넣는 간지러운 짓도 많이 했다. 당시에 공공연히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고 말하고 다녔으니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새삼 다가온다. 대략 십 년이 흐른 지금 몇 차례 꿈이 바뀌는 우여곡절을 거친 후 나는 결국 키팅 선생님처럼 선생님이 되었으나 키팅 선생님같은 선생님이 되지는 못했다. 기회가 되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왠지 부끄러워질 것 같다.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 고등학교인 웰튼 아카데미에 영어 교사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암스 분)이 부임해 오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키팅은 기존의 고답적인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기 위해 학생들을 하나씩 책상 위로 올라가게 하기도 하고 교과서의 불필요한 페이지를 가리키며 직접 손으로 찢어내라고 말한다. 그는 휘트먼의 싯구를 인용하며 학생들에게 자유의 가치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상상력에 대하여 가르친다. 보수적인 학풍에 갑갑해 있던 학생들은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참다운 인생의 가치를 역설하는 그에게서 존경과 매력을 느낀다. 이후 키팅을 따르던 몇몇의 아이들은 그로부터 전해 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조직하고 학교 밖으로 빠져나와 동굴 속에서 모임을 가지며 그 동안 억압되어 있었던 자유를 발산하는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들 멤버 중의 하나였던 닐이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연극의 주연을 맡으면서 아버지로부터 전학을 가라는 명을 받게 되고, 닐은 배우가 되리라는 자신의 꿈을 이해받지 못함에 괴로워 하다가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결국 이 사건으로 모임은 해체되며 키팅은 책임을 안고 학교를 떠나게 된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세 번 째 사진, 수줍은 소년 토드 앤더슨(에단 호크 분)이 짐을 챙겨 나가는 키팅 선생님을 향해 Captain, oh my Captain을 외치며 책상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다. 반전이라면 반전일 수도 있는 것이 토드는 늘상 다른 학생들의 의견에 묻어가는 식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생활을 해 온 상당히 수줍고 소극적인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듯 눈에 띄지 않는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고 자신감을 키워 준 키팅을 향한 마지막 헌사로 교장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용감하게 책상 위로 올라가서 오, 나의 선장을 부른다. 그러자 키팅을 사랑했던 몇몇 학생들이 함께 책상 위로 올라선다. 교장 선생님이 당황하여 Sit down을 외치며 흥분하는 모습은 장면을 더욱 감동적이고 감칠맛 나게 하는 조미료의 역할을 해낸다. 학교란 왜 늘 이런 우스꽝스런 풍경을 자아내는 것일까.

과거의 웰튼 아카데미의 현실에 비해 현재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더 각박해지고 치열해졌을 뿐이다. 여전히 키팅 선생님은 내 마음 속에 중요한 상징처럼 남아 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그래도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가르친다. 이미 아이들부터가 사회로부터 무의식 중에 이식 받은 탁월한 현실 감각을 바탕으로 돈과 성공의 의미에 대해 꿰뚫고 있는 경우도 많다. 바야흐로 카드를 한 번 드르륵 긁으면 행복이 와르르 쏟아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김소월의 시집 한 권이 신형 휴대폰보다 더 나은 가치를 지니고 길거리 밴드 드러머를 꿈꾸는 사람이 성형외과 의사를 꿈꾸는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과연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의 기득권은 꿈이 아니라 돈을 가진 자의 것이다. 가진 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진 자의 룰을 따르지 않으면 가난한 보헤미안으로 살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번에 상고로 원서를 낸 아이들에게 지금부터 자격증을 닥치는대로 몽땅 따서 나중에 조금이라도 조건 좋은 곳에 취직한 다음 돈을 잔뜩 벌라는, 그지같은 조언을 했다. 그 중엔 밥보다 춤을 더 좋아하는 녀석도 있었지만 더욱 열심히 춤을 춰서 댄서가 되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인문계고로 원서를 낸, 집안 형편이 좀 낫고 공부에 취미가 있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해서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 사회를 일으키는 장본인이 되라는, 역시나 그지같은 충고를 했다. 그걸 누가 모르나? 그렇게 사는 법을 누가 모르냐고. 나는 결국 일 년 동안 아이들에게 새로운 것이라곤 눈꼽 싸라기 만큼도 가르치지 않았고 그것은 나 자신부터가 일정 궤도에 올라 그 궤도를 이탈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뻔하니 아둥바둥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만 없다면 학교는 얼마나 평화로운 곳이 될 것이냐, 라는 당최 앞뒤가 안 맞는, 누가 들으면 큰일 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생각이나 하고 앉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가 보다. 初心 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랄까. 몇 년이나 묵었다고 이리 빨리 노쇠했는지. 처음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 지나친 열정으로 중심을 못 잡고 허둥대던 그 모습 속에서 근래에 엄습해오는 매너리즘의 해법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모르고 나 자신에 대한 정립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가 교사를 배출하는 시스템의 폐해를 나를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을 정도다. 다른 건 좀 부족하더라도 외모가 빼어나서 뭇 남학생들의 환심을 사는 방법도 있겠으나 어차피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게 생겨주지 않은 데다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전락하는 건 시간 문제니 그것도 물 건너 갔다. 아무튼 재충전과 재도약이 필요한 이 시기에 나부터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노력해야 아이들에게도 그 에너지가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방학 기간 동안 교직은 心術이라고, 내 마음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어떻게 살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기왕이면 오래 갈 수 있는 가치를 심어주는 교육을 해야 할 것 같다. 뚜렷한 철학을 기저로 정말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매 시간 매 초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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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2-29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갑자기 하우스가 보고 싶어집니다. 오- 윌슨!

깐따삐야 2005-12-29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보지 않는 드라마라서. ^^ 성장한 닐의 모습을 보고 싶네요.

이잘코군 2005-12-3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캡틴 오 마이 캡틴 하면서 책상위로 일어서는 저 장면.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ㅠ_ㅠ 저도 키팅선생이 되고파요. 먼저 교과서부터 찢어야되나...?

깐따삐야 2005-12-3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쿠. 저는 아마 애들 앞에서 교과서를 찢어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거에요. 워낙에 그렇고 그런 이미지라서.

BRINY 2006-01-02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 서재에 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깐따삐야님은 중학교 선생님이신가봐요. 저도 작년초까지는 중학교에 있었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저도 눈물 흘리면서 본 영환데, 얼마전 이 소설을 읽는 학생을 발견하고 찡했어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 책이 아이들에겐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현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모든 학생들이 책상 위에 올라간 게 아니라, 여전히 신경 안 쓰는 척, 나랑 관계 없는 척하면서 의자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는 학생들도 있던게 더 인상적이었어요.

깐따삐야 2006-01-0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저도 예전에 이 영화를 울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도 울면서 볼 것 같아요. 영화 속 키팅 선생님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 것 같거든요.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