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신 엄마가 빈둥대며 이것저것 투덜대는 내게 말씀하셨다.

"아무개 씨가 너 중신 해준다 어쩐다 하더라."

"옹? 그래서 뭐랬어?"

"됐다고 했지."

"왜?"

"만나봐서 서로 좋으면 상관 없는데 괜히 한 쪽에서 마음에 안 들거나 그래봐. 이 좁아터진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소문이 빤하게 퍼지겠냐. 괜히 흠만 잡히지. 이 동네는 한 집 건너 한 집이면 죄다 육촌에 팔촌에 그렇더만."

"글킨 그러타... 근데 어떤 사람인데?"

"공무원이라더만. 허이구, 그래도 시집은 간다고 하는 거 보면 내 웃겨서."

"왜에~~~? 쳇, 내가 어때서."

"몰라서 묻냐. 내 딸이지만 참... 너같은 철딱서니를 누구한테 맡길 지 한 걱정이다. 내가."

"나보다 어린 쌤들도 여기저기 막 소개팅하고 선보고 그러더라 뭐."

"그 사람들이 뭐 다 시집 가려고 그러는 줄 아냐. 사람들 만나면서 다 자기 값이 얼마나 나가나 매겨보고 연애하다 잘 맞는다 싶으면 결혼도 하는거고 그럴려고 하는거지."

"참 할 일도 음따. 귀찮게스리... 그러고 다니면 귀찮지 않나. 연애가 얼마나 힘든 건데."

"네년이 힘든 연애만 골라서 하고 다니니까 그렇지. 하여간 다 너보다는 똑똑해. 알았냐?"

"몰라. 쳇!"

 

아빠라는 남자를 처음 만나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이따금씩 마치 연애와 결혼의 달인처럼 내게 면박을 주곤 한다. 일평생 한 남자랑만 연애하고(들은 야그라서 확신할 수 엄씀) 한 남자랑만 살아봤으면서도(이건 확신할 수 있씀) 내 앞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감 넘치고 파워 넘치는 자태로 연애와 결혼에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시곤 한다. 이러한 엄마 앞에서 나는 대체로 깨갱~ 하고 나가 떨어지기 일쑤인데,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엄마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각에도 참 바보 찌질이같은 연애만 했고 옷 보는 안목부터 시작해서 남자 보는 안목도 더럽게 없다. 엄마의 평가에 따르자면 남자를 보는 나의 안목은 단순의 극치를 넘어서 흡사 백치에 가깝다. 착한 남자가 좋더라 하면 정말 말 없고 순한 거 하나만 보고, 똑똑한 남자가 좋더라 하면 정말 박학다식한 거 하나만 보고, 그래도 나이 많은 남자가 이해심도 넓고 좋더라 하면 정말 나이 많은 거 하나만 본다. 착하긴 한데 무능하고, 똑똑하긴 한데 성격 지랄갖고, 나이는 많은데 느끼한 다중인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시야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나마 처음에 이런 나를 발견하고 누가 말려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누가 미처 발견 못한 사이 일단 한 번 사랑에 빠진 나는 사람을 반쪽만 알고 사귀었다는 것도 모른 채 고단한 연애에 올인한다. 이럴 때는 누가 와서 말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의 측근들은 알고 있다. 이런 나를 말리면 말릴수록 귀를 닫아버리고 더욱 더 연애에 투신한다는 것을. 그들은 그것마저 알고 있다. 결국 네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내비두며 간간히 삐져 나오는 푸념들을 받아주다보면 연애에 지친 내가 가족들을 비롯한 측근들의 품으로 컴백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럴 수 있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도리질을 해가면서 말이다. 그러면 나의 측근들은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올 것이 온 것 뿐이라고 얘기한다. 에라이, 똘추야. 그걸 이제 알았냐? 근데 그 사람도 너와 잘 안 되길 잘했어. 너도 쉬운 애는 아니걸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지금 나는 또 다시 그 쥑일놈의 사랑에 빠져보길 기대하는 것이다. 중매 시장에 뛰어들어 차는 있으세요? 연봉은 얼마나? 혹시 장남이신가요? 주말마다 그런 지루한 질문들을 던져가며 소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에 빠져보고 싶은 것이다. 손바닥만한 지역사회 내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오로지 십대와 육십대의 남자 밖에는 보이질 않지만, 혹시 아는 얼라의 외삼촌이나 사촌 형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하고 소개팅 한 번 못하고 있지만, 만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인연이라면 언제 어디서고 뿅~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뽀샵 처리된 슬로우 모션으로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늘상 운명같은 게 어딨어, 말하고 다니지만 내심 정말 운명의 상대가 있는 건 아닐까, 나에게 어울리는 100%의 남자가 어딘가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 어쩌나, 이런 택도 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이 망상으로 그치고 말든 정말 현실화 되든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남들 말맞다나 똘추인 나는 아마 앞으로 누구를 또 만나더라도 너는 내 운명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두려움 없이 올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100%의 남자를 만났다고 하하호호 좋아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래서 엄마가 내가 연애 어쩌네 하면 탐탁치 않게 여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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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9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05-12-29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ㅡㅡ;